김영기
출근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데 문득, 성함 모를 아주머니의 뒤통수에 눈길이 갔다. 해안선 침식과도 같은 치명적 부분탈모가 남자의 업보라면, 골고루 숱이 묽을 팔자는 여자의 몫. 그녀의 머리는 있으면서도 없었다. 온전한 단발의 형상과, 민머리 두상이 포토샵 레이어처럼 절반씩 겹쳐 보이는 형국.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고군분투 두피를 고루 덮고 가려, 도리 없이 허전한 와중에도 치우침 없는 미묘한 균형이 돋보였다. 마치 가발 회사가 야심차게 론칭한 첨단 홀로그램 가발 피팅을 체험하듯 자연스러운 핏으로 반투명하게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원자핵 주변을 빠르게 돌며 확률적으로 두루 존재하는 전자의 구름이 떠올랐다. 모발과 두피, 생성과 상실, 짙음과 옅음, 풍요와 빈곤, 많음과 적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의 중첩이다. 말하자면 양자역학적 대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