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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1
가격문의
화자: 이세준
대화자, 편집: 정희라
정희라(이하 정): 전시장에 놓인 ‘작가 노트[1]’ 잘 읽었어요.
이세준(이하 이): 제가 여기에 쓴 글들,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걸 쓰려고 노력했어요. 표면적인 것들도 나름의 역할이 있어요. 하지만, 제 작업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것들은 일부러 제외하고 적게 되는 것 같아요.정: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이: 저에게는 회화라는 오래된 미디어에 확장성을 부여한다든지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든지 아니면 그림 자체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것이 중요해요. 회화는 올드한 미디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탐구가 끝난 미디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생겨났을 시기에는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원초적인 행위였고, 그때의 그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 템퍼러리(temporary)한 것을 고정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던 거죠. 얼마나 갈망했겠어요. 사람들이...
박준수
한국 미술 시장의 불황이 찾아오기 전부터, 지인들로부터 해외 작가의 작품을 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가격이 잘 안 오르고, 오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해외 작가의 작품은 가격이 잘 오를 뿐 아니라, 유명 해외 갤러리에 전속 작가가 되기라도 하면 10배, 20배씩 상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국인은 사대주의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치 나는 아닌 사람인 척했지만, 사실 나의 성장기에도 사대주의의 흔적이 깊이 스며있었다.
미국에 계신 외삼촌은 한국에 올때마다 폴로 셔츠, 리바이스 청바지, G.I. JOE (당시에는 G.I.유격대라고 불렀다) 같은 미제 장난감과 디즈니 만화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사다 주셨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 많았고, 친구들이 집에 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집 같다”고 말하면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정재연
변화
유달리 추운 이번 겨울,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2025년을 마주하고 며칠 동안 고민한다. 그리고 컴퓨터에 앞에 앉는다. 새로운 브라우저 창을 열고, 또 한참 동안을 고민한다. 내가 찾고 있는 희망은 무엇일까? 내가 찾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찾는 눈부신 희망은 눈이 부실 정도로 나를 반짝이고, 아름답게 해주는 것일까?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다. “아, 맞다.” 그러다가 작년에 했던 일을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나는 무엇에 집중하는 것일까. 내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지. 아직도 나는 무언가를 쫓는 사람이구나. 어지러운 세상일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지금 현시점에서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것이 어렵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는 예전의 자신보다 더 나은 인생을 생각하고 꿈꾼다는 점에서 인생은 참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전 세계를 이어주는 바다처럼 인생은 광활하고 끝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무한한 삶. 서론이 길었다...
김영기
“빵빠~앙!!”
현대인은 언제 가장 용감할까? 손꼽히는 겁쟁이도, 내로라하는 찌질이(?)도 방구석에선 여포임은 익히 알려진 과학적 사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으면 여포 할애비도 우습다. 동네 편의점 알바 얼굴은 고사하고, 길고양이 눈길도 못 마주치는 소심꾼도 부릉부릉 도핑 한방이면 욕지거리 투팍, 육두문자 에미넴이 된다. 세모 무적버튼 도로 위에선 부처님도 투견이다. 고대 로마의 이름 모를 어느 검투사처럼 비장함이 맺힌 험상궂은 얼굴로, 칼 대신 핸들을 움키고, 클락션을 마구 두들기며 서로 삿대질한다. 오죽하면 소개팅 상대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얌체와 김여사, 무대뽀와 양아치로 가득 찬 도심 길바닥에 드라이브나 한번 나가라 할까. 비상등 세모 무적버튼...
박천
1. 흔적, 시간
우리는 시간을 어제로부터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서양철학이 오늘날의 사고 체계에서 보편이라는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 속에서 시간은 다르게 체험된다. 일출과 일몰,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시간은 단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쌓이며, 때로는 엮여가는 존재로 경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시간은 직선적인 흐름으로 고정되지 않고, 모든 순간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와 얽혀있는 복합적인 그물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도 생명이 기억을 안고 이어지는 방식에 기초하여,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었던 자리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이정민은 바로 이러한 다층적 시간의 경험을 작업의 상징체로써 담아낸다. 자연과 인간, 물질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표식을 관계의 새로운 층위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과거를 반추하거나 미래를 예견한다기보다는, 현재라는 순간 안에서 엮이고 변화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가는 동적 과정으로 드러내는 것에 있다. 물론 과거와 미래 사이의 관계성과 연속성 또한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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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and out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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