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탕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전은희_문패_한지에 채색_41x32cm_2014
누구나 한 번쯤 듣고 흥얼대 보았음 직한 노랫말입니다. 신기한 점은 잘 모르는 노래일지라도 끄덕끄덕 박자를 맞추다 보면 제목이 ‘잡초’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관심을 독차지하던 한 송이 예쁜 꽃 대신 어느 이름 모를 변두리에 찌그러진(?) 잡초가 주인공인 노래지요. 가수 나훈아의 잡초(1982)입니다.
이름을 가졌건만 이름 없는, 즉 유명(有名)하지 않은 옆집 김씨, 앞집 박씨 같은 뭇 사람들을, 백 개도 넘는 온갖 성이 모였대서 백성(百姓)이라고 합니다. 또 그 생명력을 나훈아처럼 풀에 비유하여 민초(民草)라고도 부릅니다. 가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이름 모를’, ‘잡초’라고 하지요? 늘 스포트라이트를 쬐며 사는 유명인 대신, 오늘 하루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입니다. 바로 전은희 작가의 작품에서 말이지요. ‘문패’ 시리즈에는 정말로 여러분이 골목을 걸으면 쉽게 스쳐 지나는 집집의 문패가 등장합니다. 서태지나 조용필 대신 이점례, 박복순이 화폭 중앙을 차지하여 당당히 버티고 아로새겨 있지요. ‘우편함’ 시리즈는 말 그대로 우편함들이 주인공입니다. 담벼락이나 문짝 한편에 매달려, 신문에 가스 요금에 등록금 고지서까지 하루를 못 거르고 시달리느라 골병이 들어 삐걱삐걱 힘겨운 신음을 흘리곤 하던 친구들입니다. 구석에서 눈칫밥 먹으며 조연만 맡던 이들이 웬일로 화면에 버젓이 꽉 들어차니 반가우면서도 오늘따라 왠지 늠름해 보이고 한편으론 살짝 고맙고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레고 마냥 싫증 나면 부수고 새로 지을 수 있는 집이 아니기에, 문패가 매달리고 우편함이 몸을 기댄 담벼락이며 녹슨 철문은 그제도 어제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비에 젖고 바람에 에이며 갈라지고 부르튼 게 눈에 선합니다. 붙잡아도 가는 게 세월이건만 또 공짜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긴 세월을 채우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겁니다. 이점례 씨나 박복순 씨는 비록 화면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인물이며 무슨 삶을 살았을지 여러분들 누구나 자유로이 상상하고 느낄 수 있지요. 어감은 좀 클래식하지만 뜻밖에 어여쁜 아가씨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였을 수도 있습니다. 참, 어머니나 할머니도 아가씨였던 때가 다 있었겠군요. 세월은 예외 없이 흰머리를 심고, 이런저런 추억도 많이 남기며 지납니다. 수도가 얼어 터져 한겨울에 고생도 하고, 백 점을 아로새긴 시험지를 휘날리며 의젓하게 대문을 열어젖히고 듬직한 첫째가 엄마 품을 파고들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편함의 구겨진 신문을 내던지며 신문 사절 안 보이느냐고 외판원과 한바탕 실랑이가 오갔을 수도 있습니다. 펜팔에 빠진 작은누나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편지에 슬쩍 손대다 된통 혼쭐이 난 막내도 있었겠고요.
전은희_문패_한지에 채색_41x32cm_2014
전은희_우편함_한지에 채색_32x41cm_2013
그래서 정작 화폭엔 아무도 등장하지 않건만 이미 여러분들이 찾아낸 만큼,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겹쳐져 보입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없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고픈 배를 끌어안고 점심밥을 찾아 떠나 텅 빈 일터는 아무도 없는 공간인 동시에, 여러분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신기한 노릇이지요. 이미 여러분은 작가와 통했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비록 이점례 씨나 박복순 씨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접 출연하진 않더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담벼락이며 우편함에 쌓이고 낡고 바래 갈라지고 바스러진 기억과 추억을 우리는 얼마든지 그림을 통해 더듬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한 게 추억이지요. 비록 주목받지 못해도 말입니다. 작가는 주변에 스민 이런 소중한 다른 삶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목조목 어루만집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택했습니다. 보이는 건 그저 문패와 우편함이지만 진실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다양하고 소중한 삶을 비추는 눈길과 관심이지요.
전은희 작가는 한지에 먹과 분채 등 한국화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수십 년을 머금어 늙은 담이며 우편함이며 문짝을 담아내기 위해, 한지 표면을 그들처럼 거칠게 만듭니다. 그 위에 색을 한 꺼풀 두 꺼풀 거듭 입히고 쌓아 나갑니다. 한 해 한 해 낡은 추억 위에 새 추억이 쌓여 가듯이 말이지요. 그렇게 정성스레 쌓아올리다 보면 어느새 낡은 문패나 벽처럼 거칠면서도 깊고 은은하게 색이 우러납니다. 약탕기에 삶을 넣고 고이 다려 추억을 우려내듯 많은 시간을 거듭 인내하는 작업입니다. 글 제목이 추어탕 오타가 아님을 이제 확신하셨을 겁니다. 알고 보니 작업하는 과정 역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닮았지요?
전은희_초인종09_한지에 채색_41x32cm_2018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추억탕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전은희_문패_한지에 채색_41x32cm_2014
누구나 한 번쯤 듣고 흥얼대 보았음 직한 노랫말입니다. 신기한 점은 잘 모르는 노래일지라도 끄덕끄덕 박자를 맞추다 보면 제목이 ‘잡초’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관심을 독차지하던 한 송이 예쁜 꽃 대신 어느 이름 모를 변두리에 찌그러진(?) 잡초가 주인공인 노래지요. 가수 나훈아의 잡초(1982)입니다.
이름을 가졌건만 이름 없는, 즉 유명(有名)하지 않은 옆집 김씨, 앞집 박씨 같은 뭇 사람들을, 백 개도 넘는 온갖 성이 모였대서 백성(百姓)이라고 합니다. 또 그 생명력을 나훈아처럼 풀에 비유하여 민초(民草)라고도 부릅니다. 가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이름 모를’, ‘잡초’라고 하지요? 늘 스포트라이트를 쬐며 사는 유명인 대신, 오늘 하루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입니다. 바로 전은희 작가의 작품에서 말이지요. ‘문패’ 시리즈에는 정말로 여러분이 골목을 걸으면 쉽게 스쳐 지나는 집집의 문패가 등장합니다. 서태지나 조용필 대신 이점례, 박복순이 화폭 중앙을 차지하여 당당히 버티고 아로새겨 있지요. ‘우편함’ 시리즈는 말 그대로 우편함들이 주인공입니다. 담벼락이나 문짝 한편에 매달려, 신문에 가스 요금에 등록금 고지서까지 하루를 못 거르고 시달리느라 골병이 들어 삐걱삐걱 힘겨운 신음을 흘리곤 하던 친구들입니다. 구석에서 눈칫밥 먹으며 조연만 맡던 이들이 웬일로 화면에 버젓이 꽉 들어차니 반가우면서도 오늘따라 왠지 늠름해 보이고 한편으론 살짝 고맙고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레고 마냥 싫증 나면 부수고 새로 지을 수 있는 집이 아니기에, 문패가 매달리고 우편함이 몸을 기댄 담벼락이며 녹슨 철문은 그제도 어제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비에 젖고 바람에 에이며 갈라지고 부르튼 게 눈에 선합니다. 붙잡아도 가는 게 세월이건만 또 공짜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긴 세월을 채우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겁니다. 이점례 씨나 박복순 씨는 비록 화면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인물이며 무슨 삶을 살았을지 여러분들 누구나 자유로이 상상하고 느낄 수 있지요. 어감은 좀 클래식하지만 뜻밖에 어여쁜 아가씨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였을 수도 있습니다. 참, 어머니나 할머니도 아가씨였던 때가 다 있었겠군요. 세월은 예외 없이 흰머리를 심고, 이런저런 추억도 많이 남기며 지납니다. 수도가 얼어 터져 한겨울에 고생도 하고, 백 점을 아로새긴 시험지를 휘날리며 의젓하게 대문을 열어젖히고 듬직한 첫째가 엄마 품을 파고들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편함의 구겨진 신문을 내던지며 신문 사절 안 보이느냐고 외판원과 한바탕 실랑이가 오갔을 수도 있습니다. 펜팔에 빠진 작은누나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편지에 슬쩍 손대다 된통 혼쭐이 난 막내도 있었겠고요.
전은희_문패_한지에 채색_41x32cm_2014
전은희_우편함_한지에 채색_32x41cm_2013
그래서 정작 화폭엔 아무도 등장하지 않건만 이미 여러분들이 찾아낸 만큼,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겹쳐져 보입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없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고픈 배를 끌어안고 점심밥을 찾아 떠나 텅 빈 일터는 아무도 없는 공간인 동시에, 여러분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신기한 노릇이지요. 이미 여러분은 작가와 통했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비록 이점례 씨나 박복순 씨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접 출연하진 않더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담벼락이며 우편함에 쌓이고 낡고 바래 갈라지고 바스러진 기억과 추억을 우리는 얼마든지 그림을 통해 더듬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한 게 추억이지요. 비록 주목받지 못해도 말입니다. 작가는 주변에 스민 이런 소중한 다른 삶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목조목 어루만집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택했습니다. 보이는 건 그저 문패와 우편함이지만 진실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다양하고 소중한 삶을 비추는 눈길과 관심이지요.
전은희 작가는 한지에 먹과 분채 등 한국화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수십 년을 머금어 늙은 담이며 우편함이며 문짝을 담아내기 위해, 한지 표면을 그들처럼 거칠게 만듭니다. 그 위에 색을 한 꺼풀 두 꺼풀 거듭 입히고 쌓아 나갑니다. 한 해 한 해 낡은 추억 위에 새 추억이 쌓여 가듯이 말이지요. 그렇게 정성스레 쌓아올리다 보면 어느새 낡은 문패나 벽처럼 거칠면서도 깊고 은은하게 색이 우러납니다. 약탕기에 삶을 넣고 고이 다려 추억을 우려내듯 많은 시간을 거듭 인내하는 작업입니다. 글 제목이 추어탕 오타가 아님을 이제 확신하셨을 겁니다. 알고 보니 작업하는 과정 역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닮았지요?
전은희_초인종09_한지에 채색_41x32cm_2018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