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아트하우스, 그 이후의 이야기 - Intro
한승주
올 3월, 전년도 가을부터 몇 개월간 이어오던 전시의 마무리를 겸하여 꽤 오랫동안 근무하던 미술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개관 준비 시점부터 참여했던 곳이었기에 정이 많이 들었고, 계획해 두었던 전시들을 채 실행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실은 아쉬운 마음을 몇 달째 담아두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시간이 흐르면 당시의 일들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본 지면을 빌어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일전에 전시 도록에 관한 글에도 썼지만, 전시 기간이 끝나고 나면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전시의 끄트머리를 잡고, 이후의 연결고리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의 일환이기도 하다.
먼저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국내 미디어아트의 태동과 흐름에 관한 것이다. 근무하던 미술관은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 내에 위치해 있었는데, 입사 후 개관을 준비하는 동안 그곳에 미술 관련 공간이 처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옥이 지어졌던 2000년대 초반, 로비 한편에 미디어아트 플랫폼 ‘일주아트하우스’가 운영되었고, 관람객이 직접 미디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와 작은 전시 공간, 그리고 지하 2층에 아티스트들이 직접 장비를 사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도 있었다. 현재도 운영 중인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의 2관은 당시엔 ‘아트큐브’라는 이름으로 각종 인디 영화제를 진행하고,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사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작가나 미술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일주아트하우스의 기념비적인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는 일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워낙 오래전 일이라 실물 자료나, 웹상에도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1]
한창 개관 준비에 여념이 없던 2016년 초여름의 어느 날, 사옥 통제실 소장님으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아주 곤란한 목소리로 미술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잠깐 지하에 내려와서 뭘 좀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직원 모두가 함께 지하 3층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아주 낡은 창고 안, 일주아트하우스가 문을 닫은 2006년경부터 그날까지 약 10여 년 간의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은 귀한 자료들을 만나게 되었다.[2] 다량의 VHS 비디오, DVD와 각종 홍보용 인쇄물, 심포지엄 자료집, 용도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무수한 음악 테이프, 그리고 구형 비디오카메라와 비디오, DVD 플레이어, 구형 모니터 등의 장비였다.[3] 우리는 그렇게 몇 달에 거쳐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자료들을 사무실이 있는 2층까지 실어 나르고, 먼지를 닦고 분류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무실을 만들면서 작게 마련해두었던 서고는 이 자료들로 가득 찼고, 중복되는 자료들은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그렇게 되찾아온 자료는 수량이 많긴 했어도 모두 완결된 형태이고, 만들어진 시점도 대부분 명확히 표기되어 있어 분류가 어렵진 않았다. 낡은 플레이어는 기기만 남아있는 상태라 세운상가를 뒤져 연결 선을 구입해 비디오 자료들을 확인했는데, 당시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새 고해상도에 익숙해진 눈앞에 나타난 거친 해상도의 4:3 화면은 아날로그 시절을 거쳐온 세대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이 향수는 이후 전시를 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 주 요인이었다. 20년 전의 혁신인 ‘뉴미디어’를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앞으로 한두 편 정도의 글을 통해, 위 자료를 활용한 전시를 준비하고 실행하며 맞닥뜨렸던 뉴미디어 장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일주아트하우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미디어아트 전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1] 비교적 최근, 미디어아트 연구자 및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손세희가 월간미술을 통해 「2000년 이후 한국 미디어아트 플랫폼 이야기 1, 2」를 연재하며 일주아트하우스를 포함해 7개 미디어아트 플랫폼에 대해 다룬 바 있다. (2020년 11월, 12월호.)
[2] 사옥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처치 곤란한 짐을 미술관에서 해결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3] 동영상 재생 플랫폼이 없던 시절, 직접 해외 기관에서 구입해온 것으로 보이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비디오, DVD에서부터 각종 영화제 수상 작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애니메이션 작품, 갤러리 전시 작품, 일주아트하우스에서 제작 지원한 아마추어 제작 비디오 등이 이사용 대형 박스로 수 십 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일주아트하우스, 그 이후의 이야기 - Intro
한승주
올 3월, 전년도 가을부터 몇 개월간 이어오던 전시의 마무리를 겸하여 꽤 오랫동안 근무하던 미술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개관 준비 시점부터 참여했던 곳이었기에 정이 많이 들었고, 계획해 두었던 전시들을 채 실행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실은 아쉬운 마음을 몇 달째 담아두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시간이 흐르면 당시의 일들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본 지면을 빌어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일전에 전시 도록에 관한 글에도 썼지만, 전시 기간이 끝나고 나면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전시의 끄트머리를 잡고, 이후의 연결고리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의 일환이기도 하다.
먼저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국내 미디어아트의 태동과 흐름에 관한 것이다. 근무하던 미술관은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 내에 위치해 있었는데, 입사 후 개관을 준비하는 동안 그곳에 미술 관련 공간이 처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옥이 지어졌던 2000년대 초반, 로비 한편에 미디어아트 플랫폼 ‘일주아트하우스’가 운영되었고, 관람객이 직접 미디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와 작은 전시 공간, 그리고 지하 2층에 아티스트들이 직접 장비를 사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도 있었다. 현재도 운영 중인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의 2관은 당시엔 ‘아트큐브’라는 이름으로 각종 인디 영화제를 진행하고,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사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작가나 미술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일주아트하우스의 기념비적인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는 일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워낙 오래전 일이라 실물 자료나, 웹상에도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1]
한창 개관 준비에 여념이 없던 2016년 초여름의 어느 날, 사옥 통제실 소장님으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아주 곤란한 목소리로 미술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잠깐 지하에 내려와서 뭘 좀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직원 모두가 함께 지하 3층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아주 낡은 창고 안, 일주아트하우스가 문을 닫은 2006년경부터 그날까지 약 10여 년 간의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은 귀한 자료들을 만나게 되었다.[2] 다량의 VHS 비디오, DVD와 각종 홍보용 인쇄물, 심포지엄 자료집, 용도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무수한 음악 테이프, 그리고 구형 비디오카메라와 비디오, DVD 플레이어, 구형 모니터 등의 장비였다.[3] 우리는 그렇게 몇 달에 거쳐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자료들을 사무실이 있는 2층까지 실어 나르고, 먼지를 닦고 분류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무실을 만들면서 작게 마련해두었던 서고는 이 자료들로 가득 찼고, 중복되는 자료들은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그렇게 되찾아온 자료는 수량이 많긴 했어도 모두 완결된 형태이고, 만들어진 시점도 대부분 명확히 표기되어 있어 분류가 어렵진 않았다. 낡은 플레이어는 기기만 남아있는 상태라 세운상가를 뒤져 연결 선을 구입해 비디오 자료들을 확인했는데, 당시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새 고해상도에 익숙해진 눈앞에 나타난 거친 해상도의 4:3 화면은 아날로그 시절을 거쳐온 세대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이 향수는 이후 전시를 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 주 요인이었다. 20년 전의 혁신인 ‘뉴미디어’를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앞으로 한두 편 정도의 글을 통해, 위 자료를 활용한 전시를 준비하고 실행하며 맞닥뜨렸던 뉴미디어 장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일주아트하우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미디어아트 전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1] 비교적 최근, 미디어아트 연구자 및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손세희가 월간미술을 통해 「2000년 이후 한국 미디어아트 플랫폼 이야기 1, 2」를 연재하며 일주아트하우스를 포함해 7개 미디어아트 플랫폼에 대해 다룬 바 있다. (2020년 11월, 12월호.)
[2] 사옥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처치 곤란한 짐을 미술관에서 해결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3] 동영상 재생 플랫폼이 없던 시절, 직접 해외 기관에서 구입해온 것으로 보이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비디오, DVD에서부터 각종 영화제 수상 작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애니메이션 작품, 갤러리 전시 작품, 일주아트하우스에서 제작 지원한 아마추어 제작 비디오 등이 이사용 대형 박스로 수 십 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