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아트하우스, 그 이후의 이야기 – 과거의 소환
한승주
2000년 10월, 광화문에 새로 들어선 흥국생명 사옥에 일주아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이사장 이기화)이 미술기획사인 ‘아트 컨설팅 서울’(ACS)과 손잡고 만든 이 전시장 겸 자료보관소는 디지털 시대에 젊은 예술가들이 펼치는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웹아트 등 다양한 매체 실험 작업과 영상예술 활동을 집중해 조명하고 지원하면서 일반인들과 다리를 놓는 구실을 할 예정이다.’[1] 이 같은 운영 목표에 따라 1층에는 갤러리와 아카이브, 지하 2층에는 스튜디오와 77석 규모의 소극장 아트큐브가 조성되었고, 이후 약 5년간 뉴밀레니엄 시대의 이른바 ‘신세대’ 뉴미디어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서구 사회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미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오고 있던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2000년대 들어서야 국내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특히 IT 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지원한 정부 시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2] 이러한 확산에 따라,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라는 명칭으로 개최해오고 있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전시가 처음 열렸고, SK그룹에서는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며 아트센터나비를 열었다. 일주아트하우스 역시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들이 활동 초창기에 거쳐온 주요 기관 중 하나였다. 특히 지하 스튜디오는 미디어아트와 최신의 기술에 관심 있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 장비 사용법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품 제작으로 이어가는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 미술관 개관 전 발견한 일주아트하우스 자료에는 그 과정들이 인쇄물, 비디오, DVD 등을 통해 남아있었다. 그 기록이 창고에 쌓여있는 동안 근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우리는 손에 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기술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제는 유물이 된 2000년 초의 뉴미디어를 대중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과 현재와의 시차를 어떻게 녹여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고, 우선 잊힌 과거를 소환해 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게 된 첫 전시가 2019년 《세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였다. 이 전시에 유비호, 심철웅, 박화영 작가가 참여하여 각각 세 개의 작은 개인전 형태로 꾸리게 되었다. 세 분 모두 일주아트하우스 당시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였다.
전시를 열게 된 계기와 옛 자료들을 공유하자 세 분 모두 반가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아트하우스가 운영될 당시, 정장을 갖춰 입은 금융계 샐러리맨 인파 사이에서 자유로운 복장을 한 젊은 작가들이 지하 스튜디오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낮밤을 바꿔가며 작업했던 기억 등을 이야기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그 과정들을 거쳐 지나온 바로 지금, 현재의 작업이었다. 초창기의 계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창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작가에게 아무래도 지금 집중하고 있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인데 자료에만 관심이 쏠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분께 당시 개인전에 선보였던 작품을 같이 전시하는 방향으로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결과적으로 작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정말 오래된 구작 1점씩을 같이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시를 열게 된 최초의 취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는 방식이 과연 괜찮은 방법이었는지 전시를 진행하는 과정 내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설득이 되었는지 확신이 없다. 아무래도 실무자의 입장에서 당시 기술로 제작된 작품을 출력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예를 들어, 처음 제작 시 6mm 카메라로 촬영한 4:3비율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변환하여 DVD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를 다시 mp4 방식으로 변환하여 USB 담아 16:9 비율의 LCD 모니터에 상영하게 되는 식이다. 4k 해상도 영상까지 출력 가능한 기기에 해상도가 낮은 작품을 넣어 상영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대중 매체의 경우 과거 제작한 영상을 리마스터링하여 재배포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예술 작품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복원 작업을 마치고 재가동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사라진 기술을 통해 제작된 미디어 작업을 복원해서 재가동한다는 것의 범위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기관에서 모두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3]
매체의 문제뿐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과거와 현재 작품의 밀도 차이가 너무 커 같은 공간에 둘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세 분의 개인전을 한꺼번에 여는 바람에 초창기 작업에서 현재까지의 주요 작업들을 연이어 선보일만한 공간이 부족했던 것 또한 가장 아쉬웠던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와의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기관 측의 의의를 두어야 했고, 세 분의 작가들이 20년 동안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에는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예전과 같은 장소에서 선보일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1] 정재숙, “25일 문 여는 일주아트하우스” 한겨레, 2000년10월23일.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19087.html[2] 이다은, “김대중 정부의 인터넷 5년을 되돌아보다” IT DAILY, 2022년8월31일.
http://www.itdaily.kr/news/articleView.html?idxno=209811
[3]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 〈다다익선〉 복원 방향과 계획을 발표하며 작품에 사용된 브라운관(CRT) 텔레비전의 ‘원형 유지’ 방향을 발표한 후 복원 작업에 착수했으며, 추후 연구백서 발간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통홍보팀,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복원 방향 및 계획발표” 2019.9.11.
https://www.mmca.go.kr/pr/employmentDetail.do?bdCId=201909110006926&menuId=6020000000&searchBmCid=200903020000015.2022.12 ACK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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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아트하우스, 그 이후의 이야기 – 과거의 소환
한승주
2000년 10월, 광화문에 새로 들어선 흥국생명 사옥에 일주아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이사장 이기화)이 미술기획사인 ‘아트 컨설팅 서울’(ACS)과 손잡고 만든 이 전시장 겸 자료보관소는 디지털 시대에 젊은 예술가들이 펼치는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웹아트 등 다양한 매체 실험 작업과 영상예술 활동을 집중해 조명하고 지원하면서 일반인들과 다리를 놓는 구실을 할 예정이다.’[1] 이 같은 운영 목표에 따라 1층에는 갤러리와 아카이브, 지하 2층에는 스튜디오와 77석 규모의 소극장 아트큐브가 조성되었고, 이후 약 5년간 뉴밀레니엄 시대의 이른바 ‘신세대’ 뉴미디어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서구 사회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미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오고 있던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2000년대 들어서야 국내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특히 IT 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지원한 정부 시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2] 이러한 확산에 따라,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라는 명칭으로 개최해오고 있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전시가 처음 열렸고, SK그룹에서는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며 아트센터나비를 열었다. 일주아트하우스 역시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들이 활동 초창기에 거쳐온 주요 기관 중 하나였다. 특히 지하 스튜디오는 미디어아트와 최신의 기술에 관심 있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 장비 사용법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품 제작으로 이어가는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 미술관 개관 전 발견한 일주아트하우스 자료에는 그 과정들이 인쇄물, 비디오, DVD 등을 통해 남아있었다. 그 기록이 창고에 쌓여있는 동안 근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우리는 손에 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기술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제는 유물이 된 2000년 초의 뉴미디어를 대중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과 현재와의 시차를 어떻게 녹여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고, 우선 잊힌 과거를 소환해 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게 된 첫 전시가 2019년 《세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였다. 이 전시에 유비호, 심철웅, 박화영 작가가 참여하여 각각 세 개의 작은 개인전 형태로 꾸리게 되었다. 세 분 모두 일주아트하우스 당시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였다.
전시를 열게 된 계기와 옛 자료들을 공유하자 세 분 모두 반가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아트하우스가 운영될 당시, 정장을 갖춰 입은 금융계 샐러리맨 인파 사이에서 자유로운 복장을 한 젊은 작가들이 지하 스튜디오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낮밤을 바꿔가며 작업했던 기억 등을 이야기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그 과정들을 거쳐 지나온 바로 지금, 현재의 작업이었다. 초창기의 계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창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작가에게 아무래도 지금 집중하고 있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인데 자료에만 관심이 쏠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분께 당시 개인전에 선보였던 작품을 같이 전시하는 방향으로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결과적으로 작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정말 오래된 구작 1점씩을 같이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시를 열게 된 최초의 취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는 방식이 과연 괜찮은 방법이었는지 전시를 진행하는 과정 내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설득이 되었는지 확신이 없다. 아무래도 실무자의 입장에서 당시 기술로 제작된 작품을 출력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예를 들어, 처음 제작 시 6mm 카메라로 촬영한 4:3비율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변환하여 DVD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를 다시 mp4 방식으로 변환하여 USB 담아 16:9 비율의 LCD 모니터에 상영하게 되는 식이다. 4k 해상도 영상까지 출력 가능한 기기에 해상도가 낮은 작품을 넣어 상영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대중 매체의 경우 과거 제작한 영상을 리마스터링하여 재배포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예술 작품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복원 작업을 마치고 재가동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사라진 기술을 통해 제작된 미디어 작업을 복원해서 재가동한다는 것의 범위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기관에서 모두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3]
매체의 문제뿐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과거와 현재 작품의 밀도 차이가 너무 커 같은 공간에 둘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세 분의 개인전을 한꺼번에 여는 바람에 초창기 작업에서 현재까지의 주요 작업들을 연이어 선보일만한 공간이 부족했던 것 또한 가장 아쉬웠던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와의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기관 측의 의의를 두어야 했고, 세 분의 작가들이 20년 동안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에는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예전과 같은 장소에서 선보일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1] 정재숙, “25일 문 여는 일주아트하우스” 한겨레, 2000년10월23일.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19087.html[2] 이다은, “김대중 정부의 인터넷 5년을 되돌아보다” IT DAILY, 2022년8월31일.
http://www.itdaily.kr/news/articleView.html?idxno=209811
[3]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 〈다다익선〉 복원 방향과 계획을 발표하며 작품에 사용된 브라운관(CRT) 텔레비전의 ‘원형 유지’ 방향을 발표한 후 복원 작업에 착수했으며, 추후 연구백서 발간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통홍보팀,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복원 방향 및 계획발표” 2019.9.11.
https://www.mmca.go.kr/pr/employmentDetail.do?bdCId=201909110006926&menuId=6020000000&searchBmCid=200903020000015.2022.12 ACK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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