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주시자>와의 대화
정희라
네 개의 스크린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들, 그리고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에서 온갖 사유가 시작된다. 중앙의 가장 커다란 스크린 두 개 사이, 한 공간의 사방을 에워싼 네 개의 스크린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러니까 나를 중심으로 정면, 좌, 우, 그리고 뒤에 있는 스크린은 따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스크린과 스크린 사이에 빈 공간이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눈 먼 주시자’가 왔다 갔다 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말에서 느껴지는 문맥 사이의 틈은 스크린 사이 공간의 여백처럼 여기며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다.
챕터 1.
관측자는 평행한 두 세계의 차원의 경계면에 위치한다.
경계에 선 관측자는 지금과는 다른 가능성으로 형성된 시공간의 역사적 유물들을 마주한다.
김현석, Scripts for
<다모클레스의 검: 눈먼 주시자와 유물들
Sword of Damocles Blind Watchers and Relics>(2022)중-
대전시립미술관 넥스트코드2022 김현석 파트 전시전경
‘디지털도 역사적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 보는 순간, 다음 스크립트의 내용이 가상의 인물인 ‘눈 먼 주시자’의 말의 형태로 들려온다. <유물은 지각 경험의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지각하고 사유하는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 느껴지는 것 마냥 찌릿하게 스크립트에 반응하였다. 점에 대해 말하더니 이제는 픽셀에 관해 말한다. 최초의 픽셀이 완벽한 인공적인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그 세계는 이 현실을 초월한 세계라고. 한 작품 한 작품이 점이고 픽셀이며, 이 점과 픽셀은 완벽한 인공의 가상 세계라고 이해하며 전시장을 둘러보니 당장의 상황에 딱 들어맞지 않나! 김현석은 이 사유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을 흑요석을 잡은 손 <관측자(observer)>(2022)로 형상화하였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monolith)’를 모티프로 한 이 검은 돌이라 설명되는 이 작품의 검은 돌의 모양은 육면체이다. 김현석의 ‘촉각적 인터페이스’라는 표현 또한 인상 깊다. 마침 손가락의 터치에 의해 변하는 이미지 형식에 관해 글을 쓴 탓일지 모르겠으나, 손이 의미하고 상징하는 바는 회화, 조각, 글, 음식, 모든 감각과 활동과 같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현석, <관측자> 3D 프린트, 흑요석, 15x15x28(cm), 2022
<observer> 3D print, obsidian, 15x15x28(cm), 2022
대전시립미술관의 NEXT CODE 2022에서 만난 김현석의 작업은 “테크놀로지와 동시대성”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고 기술되어 있다. VR작업에서 파생된 영상 작업[1]을 먼저 보아서인지 물질에 더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유물로 남은 디지털은 메아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그것에 접촉한 관측자인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픽셀로 만들어진 인공 캐릭터와 사유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관측자로 상정된 존재는 전시장의 우리-관객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두 세계 사이의 연결 지점이 되는 점과 같은 존재는 단지 전시장에만 있지는 않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의 세계 그 중간에 위치한다. 눈 앞의 영상 속 ‘눈 먼 주시자’ 또한 김현석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니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관측자가 세상의 단서를 잡고 만지는 행위가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이입되는 순간을 경험하였음으로 김현석의 작업에 접촉하였다 선언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김현석의 <다모클레스의 검>은 AI가 도출하는 개연성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현석의 <다모클레스의 검>에서는 4종류의 인공지능이 마치 창조자처럼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김현석은 이를 3D 오브젝트와 보이스 사운드로 재구성하여 VR작업과 영상작업으로 우리 앞에 선보인다. 김현석이 이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GPT-3모델을 KakaoBrain에서 한글을 학습시킨 일종의 파생 모델이라 할 수 있는 KoGPT으로, 구글 colab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활용해 Kogpt API를 탑재한 뒤 문장을 쓰고 옵션(temperature, length)값을 조절할 수 있는 형태로 커스터마이징하여 작업하였다.[2] 쉽게 말하자면, 작가가 최초 문장을 프롬프트에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입력 문장의 다음 문장을 생성하고 작가가 그 문장을 다시 프롬프트에 입력, 다시 인공지능이 그 문장 뒤의 문장을 생성, 이 과정을 반복하여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편집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석은 다소 산발적인 형태로 AI와 대화하듯 주고 받으며 생성된 문장들을 취합하고, 생성된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글을 펼쳐 놓고 퍼즐을 맞추듯 정리하여 최종 스크립트를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말에서 우주, 점, 픽셀 그리고 사유와 같은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인상적이다’ 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떠한 사실을 새롭게 깨우치게 되어 충격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어울린다. AI가 뱉어 내는 문장에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니 ‘머릿속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다. 스크립트와 내래이션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에서 공간과 가상 세계, 인간 진화와 문명, 그리고 판타지까지 확장된 사고가 가능한데, 김현석의 작업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존재에 대한 탐구로 기술의 근원과 그 맥락을 짚음으로 상징을 품은 채 우리가 겪는 이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현석이 중간자로서 그리고 최종 감독으로서 조율하며 화자로 내세운 ‘눈 먼 주시자’의 말 - 인공지능 시스템을 작동시켜 튀어나온 말들이 작업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은 인공지능 그림이 이슈가 되는 시대와 맞물려 AI의 역할에 생각하게 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인물이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채팅 창 속 AI가 우리의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 익숙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음성으로 불러 답을 얻어내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다. 어느새 AI는 우리 곁에 어우러져 있다. 보통 산업 영상 속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척점에 있는데, 이는 기계의 자율성이 인간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주어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이 되지만, 우리는 자율성을 갖게 된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유형의 인공지능이라도 우리의 역사와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지기에 그것이 우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러니 김현석의 작업에 등장하는 AI의 말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그것)와의 대화가 우리 자신과의 대화는 아닐지 생각해 볼 만 하다.
[1] VR작업이 먼저이며,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VR작업에서 파생된 4채널 영상 설치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2] 김현석 작가와 주고받은 메일 참조.
2023. 0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눈 먼 주시자>와의 대화
정희라
네 개의 스크린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들, 그리고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에서 온갖 사유가 시작된다. 중앙의 가장 커다란 스크린 두 개 사이, 한 공간의 사방을 에워싼 네 개의 스크린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러니까 나를 중심으로 정면, 좌, 우, 그리고 뒤에 있는 스크린은 따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스크린과 스크린 사이에 빈 공간이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눈 먼 주시자’가 왔다 갔다 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말에서 느껴지는 문맥 사이의 틈은 스크린 사이 공간의 여백처럼 여기며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다.
챕터 1.
관측자는 평행한 두 세계의 차원의 경계면에 위치한다.
경계에 선 관측자는 지금과는 다른 가능성으로 형성된 시공간의 역사적 유물들을 마주한다.
김현석, Scripts for
<다모클레스의 검: 눈먼 주시자와 유물들
Sword of Damocles Blind Watchers and Relics>(2022)중-
대전시립미술관 넥스트코드2022 김현석 파트 전시전경
‘디지털도 역사적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 보는 순간, 다음 스크립트의 내용이 가상의 인물인 ‘눈 먼 주시자’의 말의 형태로 들려온다. <유물은 지각 경험의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지각하고 사유하는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 느껴지는 것 마냥 찌릿하게 스크립트에 반응하였다. 점에 대해 말하더니 이제는 픽셀에 관해 말한다. 최초의 픽셀이 완벽한 인공적인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그 세계는 이 현실을 초월한 세계라고. 한 작품 한 작품이 점이고 픽셀이며, 이 점과 픽셀은 완벽한 인공의 가상 세계라고 이해하며 전시장을 둘러보니 당장의 상황에 딱 들어맞지 않나! 김현석은 이 사유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을 흑요석을 잡은 손 <관측자(observer)>(2022)로 형상화하였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monolith)’를 모티프로 한 이 검은 돌이라 설명되는 이 작품의 검은 돌의 모양은 육면체이다. 김현석의 ‘촉각적 인터페이스’라는 표현 또한 인상 깊다. 마침 손가락의 터치에 의해 변하는 이미지 형식에 관해 글을 쓴 탓일지 모르겠으나, 손이 의미하고 상징하는 바는 회화, 조각, 글, 음식, 모든 감각과 활동과 같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현석, <관측자> 3D 프린트, 흑요석, 15x15x28(cm), 2022
<observer> 3D print, obsidian, 15x15x28(cm), 2022
대전시립미술관의 NEXT CODE 2022에서 만난 김현석의 작업은 “테크놀로지와 동시대성”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고 기술되어 있다. VR작업에서 파생된 영상 작업[1]을 먼저 보아서인지 물질에 더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유물로 남은 디지털은 메아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그것에 접촉한 관측자인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픽셀로 만들어진 인공 캐릭터와 사유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관측자로 상정된 존재는 전시장의 우리-관객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두 세계 사이의 연결 지점이 되는 점과 같은 존재는 단지 전시장에만 있지는 않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의 세계 그 중간에 위치한다. 눈 앞의 영상 속 ‘눈 먼 주시자’ 또한 김현석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니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관측자가 세상의 단서를 잡고 만지는 행위가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이입되는 순간을 경험하였음으로 김현석의 작업에 접촉하였다 선언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김현석의 <다모클레스의 검>은 AI가 도출하는 개연성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현석의 <다모클레스의 검>에서는 4종류의 인공지능이 마치 창조자처럼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김현석은 이를 3D 오브젝트와 보이스 사운드로 재구성하여 VR작업과 영상작업으로 우리 앞에 선보인다. 김현석이 이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GPT-3모델을 KakaoBrain에서 한글을 학습시킨 일종의 파생 모델이라 할 수 있는 KoGPT으로, 구글 colab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활용해 Kogpt API를 탑재한 뒤 문장을 쓰고 옵션(temperature, length)값을 조절할 수 있는 형태로 커스터마이징하여 작업하였다.[2] 쉽게 말하자면, 작가가 최초 문장을 프롬프트에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입력 문장의 다음 문장을 생성하고 작가가 그 문장을 다시 프롬프트에 입력, 다시 인공지능이 그 문장 뒤의 문장을 생성, 이 과정을 반복하여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편집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석은 다소 산발적인 형태로 AI와 대화하듯 주고 받으며 생성된 문장들을 취합하고, 생성된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글을 펼쳐 놓고 퍼즐을 맞추듯 정리하여 최종 스크립트를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말에서 우주, 점, 픽셀 그리고 사유와 같은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인상적이다’ 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떠한 사실을 새롭게 깨우치게 되어 충격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어울린다. AI가 뱉어 내는 문장에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니 ‘머릿속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다. 스크립트와 내래이션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에서 공간과 가상 세계, 인간 진화와 문명, 그리고 판타지까지 확장된 사고가 가능한데, 김현석의 작업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존재에 대한 탐구로 기술의 근원과 그 맥락을 짚음으로 상징을 품은 채 우리가 겪는 이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현석이 중간자로서 그리고 최종 감독으로서 조율하며 화자로 내세운 ‘눈 먼 주시자’의 말 - 인공지능 시스템을 작동시켜 튀어나온 말들이 작업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은 인공지능 그림이 이슈가 되는 시대와 맞물려 AI의 역할에 생각하게 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인물이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채팅 창 속 AI가 우리의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 익숙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음성으로 불러 답을 얻어내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다. 어느새 AI는 우리 곁에 어우러져 있다. 보통 산업 영상 속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척점에 있는데, 이는 기계의 자율성이 인간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주어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이 되지만, 우리는 자율성을 갖게 된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유형의 인공지능이라도 우리의 역사와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지기에 그것이 우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러니 김현석의 작업에 등장하는 AI의 말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그것)와의 대화가 우리 자신과의 대화는 아닐지 생각해 볼 만 하다.
[1] VR작업이 먼저이며,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VR작업에서 파생된 4채널 영상 설치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2] 김현석 작가와 주고받은 메일 참조.
2023. 0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