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시급하고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문제
-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책 리뷰
한승주
한동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만약 ‘사과’라는 대상을 주제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가 생각하고 얘기하는 사과와 타인이 생각하고 얘기하는 사과는 과연 같을까? 우리는 정말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내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와 상대방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가 다를 텐데 우린 어떻게 사과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과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통하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라는.
하물며 사과라는 비교적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과일을 주제로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예술에 대한 논의를 우리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머리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현장에 있으면서 늘 고민하던 것도 실은 늘 이 지점이었다. 흔히 현대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이라고 하면 설명 없이는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과 그런데 그 설명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작가 개인의 사적 사유의 결과물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의 보편적인 설명을 먼저 제안하지 않고서는 작품은 결국 작가의 독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언어와 이론에 대한 합의 지점을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학 연구자 이동휘와 작가 이여로가 공동 집필한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은 바로 이 지점을 짚어내는 책이다. 총 10개의 장을 통해 예술, 언어, 이론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는데, 두 저자의 글이 번갈아 게재되어 있다. 이동휘는 보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예술이론이 왜 어려운지, 그렇다면 예술은 어떤 조건들로 되어 있는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여로는 기존의 예술이론과 언어의 틀을 벗어나 감상 차원에서부터 시작하는 개개인의 이론 집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 이후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두 저자의 연구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결코 서로를 구분할 수 없도록 일치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따금 맞닿았다가도 완전히 빗나가고 심지어 불화하기도 한다.[1] 책을 읽다 보면 글이 번갈아 게재되어 있지만 이 장이 누구의 글인지 차이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또 ‘사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상대방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는 영영 알아내지 못하고 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 10장에서 이동휘는 「독후감 혹은 코미디」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저자는 함께 글을 쓰고 미팅을 하며 남겨진 회의록과 영상을 통해 치열했던 다툼을 일부 공개한다. 그들은 공격했고, 공격당했고, 결국 서로의 차이와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무엇보다 두 사람이 공유했던 지점에 ‘재미’가 있었음을 밝힌다. 심각하게 대립각을 세우다가 갑자기 재미라니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아마도 서로의 다른 언어와 사고체계를 통해 이론을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싸움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 논의가 사실 경로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결론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배를 쥐고 웃을 정도의 코미디는 아니어도 허탈한 허무개그쯤으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사실 나는 어제 마트에서 사다 먹은 사과를, 상대는 지난 설에 선물 받은 사과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은 사과의 본질에 다가간다거나 사과 품종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치열한 논의라기 보다 그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사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열어놓는 이야기였다. 가볍게 접근했지만 마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저자는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라고 제목을 붙임으로써 독자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하나의 문제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위안이 되니까. 우리가 서로를 100% 이해할 순 없어도 100% 이해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이 말 안 되는 세상에서 기적처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1] 책 8p 인용.
2023. 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어쩌면 시급하고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문제
-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책 리뷰
한승주
한동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만약 ‘사과’라는 대상을 주제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가 생각하고 얘기하는 사과와 타인이 생각하고 얘기하는 사과는 과연 같을까? 우리는 정말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내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와 상대방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가 다를 텐데 우린 어떻게 사과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과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통하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라는.
하물며 사과라는 비교적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과일을 주제로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예술에 대한 논의를 우리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머리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현장에 있으면서 늘 고민하던 것도 실은 늘 이 지점이었다. 흔히 현대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이라고 하면 설명 없이는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과 그런데 그 설명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작가 개인의 사적 사유의 결과물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의 보편적인 설명을 먼저 제안하지 않고서는 작품은 결국 작가의 독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언어와 이론에 대한 합의 지점을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학 연구자 이동휘와 작가 이여로가 공동 집필한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은 바로 이 지점을 짚어내는 책이다. 총 10개의 장을 통해 예술, 언어, 이론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는데, 두 저자의 글이 번갈아 게재되어 있다. 이동휘는 보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예술이론이 왜 어려운지, 그렇다면 예술은 어떤 조건들로 되어 있는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여로는 기존의 예술이론과 언어의 틀을 벗어나 감상 차원에서부터 시작하는 개개인의 이론 집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 이후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두 저자의 연구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결코 서로를 구분할 수 없도록 일치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따금 맞닿았다가도 완전히 빗나가고 심지어 불화하기도 한다.[1] 책을 읽다 보면 글이 번갈아 게재되어 있지만 이 장이 누구의 글인지 차이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또 ‘사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상대방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의 사과는 영영 알아내지 못하고 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 10장에서 이동휘는 「독후감 혹은 코미디」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저자는 함께 글을 쓰고 미팅을 하며 남겨진 회의록과 영상을 통해 치열했던 다툼을 일부 공개한다. 그들은 공격했고, 공격당했고, 결국 서로의 차이와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무엇보다 두 사람이 공유했던 지점에 ‘재미’가 있었음을 밝힌다. 심각하게 대립각을 세우다가 갑자기 재미라니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아마도 서로의 다른 언어와 사고체계를 통해 이론을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싸움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 논의가 사실 경로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결론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배를 쥐고 웃을 정도의 코미디는 아니어도 허탈한 허무개그쯤으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사실 나는 어제 마트에서 사다 먹은 사과를, 상대는 지난 설에 선물 받은 사과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은 사과의 본질에 다가간다거나 사과 품종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치열한 논의라기 보다 그저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사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열어놓는 이야기였다. 가볍게 접근했지만 마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저자는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라고 제목을 붙임으로써 독자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하나의 문제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위안이 되니까. 우리가 서로를 100% 이해할 순 없어도 100% 이해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이 말 안 되는 세상에서 기적처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1] 책 8p 인용.
2023. 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