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가시가 성가시다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서연[1] “어때, 나 이상해?ㅎ”
민준 “ㅎㅎㅎ”
서연 “ㅎㅎ?? 별로란 거?”
민준 “ㅎㅎ아니”
(중략)
이후 한바탕 싸우고, 저녁도 안 먹고, 카페도 안 가고, 각자 집으로 찢어졌다고 한다.
서연 “어이가 없는 거예요. ‘ㅎㅎ’이라니. 매사가 그래요. 성의가 없어. 엉거주춤해. 뭐든 어중간해. 이도 저도 아니고. 도대체가 딱 부러지는 게 없어. 안 어울리면 아니라고 하든지.”
민준 “ㅎㅎㅎㅎㅎ아니, 어이없는 건 저죠. 어울린대도요. ‘아니’ 하면 건성이라고, ‘ㅋㅋ아니’ 하면 그냥 백퍼 짜증이거든요? 살펴보는 중인데. 추임새도 모름?”
오붓하게 핏대 세우는 남녀를 보며 ‘ㅎ’에 전율한다.
서연과 민준은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ㅎ을 쓰고, 또 서로 달리 받아들인다. 보는 ㅎ인가, 듣는 ㅎ인가에 따라 다르다. ㅎ과 ㅎㅎ, ㅎㅎㅎ의 어감이 다르다. 같은 개수여도 앞뒤 어디 붙느냐에 따라 다르다. 같은 위치여도 상황과 맥락과 상대의 캐릭터마다 다르다. …됐고, 읽는 방법부터 중구난방 제각각이다.
흰 벽을 누비는 불그죽죽한 가스 배관을 종횡무진 눈으로 훑는다. 폴짝폴짝 슈퍼마리오가 발판을 딛는 광경이 겹친다. 칙칙한 어느 회벽은 공사장 냄새(?)가 아른댄다. 그래서인지 그저께 해치운 짜장 곱빼기가 또 당긴다. 그래서 강홍구는 그ㅎㅎㅎ냥 그렸다. ‘진지한 그냥’만큼 선명한 논리, 딱 맞는 소금 간이 없다. 그냥 찍고, 그리고 싶을 때까지 노려보고, 그릴 만해서 그렸는데 무슨 양념을 더 칠까? 주인공 기대했건만, 주객전도 어느새 마리오와 짜장면 들러리를 서는 사진의 고충?
강홍구_Super Mario_digital print, acrylic_90×100㎝_2016
손바닥만한 땅에 바글바글 티격태격 생존 게임. 꼭 쥔 핸드폰이 세상의 전부인 양, 인스타 구멍에 얼굴 디밀고 행복 배틀에 인생을 불사른다. 처지면 진다. 거기 김나훔? 입꼬리에 텐션 다잡자. 생채기로 온몸이 얼룩져도 스마일. 생글생글 서로 감정 배설하며 덤덤하게 뻔뻔하게 너보다 행복하게. 혼자 반기는 고양이가 오늘따라 더 고마운 집구석, 불어 터진 사발면을 괜스레 후후 불며 웃픈 갬성 무드 깔고 굳센 척 다짐한다 “포커페이스마-일ㅎㅎ”
김나훔_인스타(Insta)_iPad drawing_30×30㎝_2017
사랑스러워 괴롭힌다? 블링-불링(Bling-Bullying)이란 제목만으로도 박용식은 이미 ㅎㅎㅎ스럽다. 절묘한 말장난을 한 꺼풀 벗기면 뼈와 반전이 도드라진다. 오늘도 온종일 고군분투 귀엽고 사랑스럽느라 지친 강아지. 목의 단면까지는 미처 귀엽지 못해 붉은 피와 살점, 허연 뼈가 적나라하다. 섬뜩함에 다시금 살피는 평온한 얼굴. 그런데 천연덕스레 환청이 울린다. “ㅎ …좋니?”
“자 어때 ㅎㅎ?”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막대기를 주워 들고 흙장난하듯 슥슥 그은 동그라미 하나. 이로써 ‘안팎’이 생겼다. 곳곳의 발자국은 ‘몸=위치를 가진 실체’임을 확인한다. “여기, 저기, 거기” 외치며 언어로 선명한 동그라미를 친다. 책상에 금을 그으며 짝꿍의 땅에, 분단의 현실에 눈뜬다. ‘선 넘은’ 연필과 지우개는 그 위치로 비극을 목도한다. “내 꺼!” 그 잽싼 손놀림과 단호한 선언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모두가 한 번쯤 이건용이었다.
정유미_연애놀이(Love Games)_single channel video_15mins_2012
소꿉놀이에 몰입한 커플. 종이꽃으로 단장한 여자에게, 남자는 눈길 한 줌 주지 않는다. 김영만 아닌가 싶을 만큼 줄기차게 꽃만 접는다. 시체놀이는 열연을 넘어 송장 하나 치울 각인가 불길할 지경이다. 무심한 병원놀이에 결국 여자는 눈물을 쏟는다. 정유미의 이 진지한 소꿉놀이는 이입할수록 웃음기가 사라지고 갈수록 내 이야기 같다. “ㅎ괜ㅎ찮ㅎ아ㅠㅠ” 커서 신물 나게 해 댈 애증의 소꿉놀이 왜들 그리 해댔나 싶다. 아 참, 이젠 ‘놀이’가 아니지.
별안간 운전대를 꺾는다. 웰컴 투 정철규 모텔. 앞유리를 긁으며 부대끼는 천막 자락을 헤치고 들어선 주차장. 비로소 제 발 저리듯 밀려오는 쓸데없는 안도감. 쪽창 너머 프런트 아주머니는 비몽사몽 오늘따라 어찌나 굼뜬지. 헛기침을 곁들이며 초조한 눈으로 로비를 두리번거린다. 키도 꽂기 전인데, 조마조마할 정도로 눈이 부신 205호는 안 봐도 딱 정남향이다. 도톰한 암막 커튼을 양손 가득 끄집으며 그제야 다시 안도한다. 나갈 땐 다른 커플과 눈길 말고 마음만 주고받는 게 불문율. “예쁜 사랑ㅎㅎ하세요”
정철규_두 번의 멈춤(Two Stops)_tent fabric sheet_653×382.5×335.5㎝_2023
5% 불순한 ㅎ.
노심초사 겸연쩍고 조심스럽다. 장난스럽다. 안도의 한숨이다. 어딘가 가식적이라 거리감이 있다. 긴가민가 미심쩍어 종잡기 힘들다. 알쏭달쏭 미묘하고 음흉 찝찝 꺼림칙하다. 어이없고 허탈 황당해 헛웃음 끝에 달관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ㅎ 같은’ 경우가 참 많다. 방정맞게 따라 웃는 눈매와 근엄한 입꼬리, 분명 빤한데 괜히 주저하는 뒤숭숭한 여운들, 그래서 알아서들 가늠하기 바쁜 것들 말이다. 전시장 안팎, 사소하며 의미심장한 ㅎ 틈새에서 누군가의 탄식이 솟는다. “ㅎㅎ 나 원 참…”
[1] 영희, 철수로 하자니 성의가 없어 보여, 최근 가장 흔한 남녀 이름 차트를 참고함ㅎㅎ
2023. 0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잔가시가 성가시다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서연[1] “어때, 나 이상해?ㅎ”
민준 “ㅎㅎㅎ”
서연 “ㅎㅎ?? 별로란 거?”
민준 “ㅎㅎ아니”
(중략)
이후 한바탕 싸우고, 저녁도 안 먹고, 카페도 안 가고, 각자 집으로 찢어졌다고 한다.
서연 “어이가 없는 거예요. ‘ㅎㅎ’이라니. 매사가 그래요. 성의가 없어. 엉거주춤해. 뭐든 어중간해. 이도 저도 아니고. 도대체가 딱 부러지는 게 없어. 안 어울리면 아니라고 하든지.”
민준 “ㅎㅎㅎㅎㅎ아니, 어이없는 건 저죠. 어울린대도요. ‘아니’ 하면 건성이라고, ‘ㅋㅋ아니’ 하면 그냥 백퍼 짜증이거든요? 살펴보는 중인데. 추임새도 모름?”
오붓하게 핏대 세우는 남녀를 보며 ‘ㅎ’에 전율한다.
서연과 민준은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ㅎ을 쓰고, 또 서로 달리 받아들인다. 보는 ㅎ인가, 듣는 ㅎ인가에 따라 다르다. ㅎ과 ㅎㅎ, ㅎㅎㅎ의 어감이 다르다. 같은 개수여도 앞뒤 어디 붙느냐에 따라 다르다. 같은 위치여도 상황과 맥락과 상대의 캐릭터마다 다르다. …됐고, 읽는 방법부터 중구난방 제각각이다.
흰 벽을 누비는 불그죽죽한 가스 배관을 종횡무진 눈으로 훑는다. 폴짝폴짝 슈퍼마리오가 발판을 딛는 광경이 겹친다. 칙칙한 어느 회벽은 공사장 냄새(?)가 아른댄다. 그래서인지 그저께 해치운 짜장 곱빼기가 또 당긴다. 그래서 강홍구는 그ㅎㅎㅎ냥 그렸다. ‘진지한 그냥’만큼 선명한 논리, 딱 맞는 소금 간이 없다. 그냥 찍고, 그리고 싶을 때까지 노려보고, 그릴 만해서 그렸는데 무슨 양념을 더 칠까? 주인공 기대했건만, 주객전도 어느새 마리오와 짜장면 들러리를 서는 사진의 고충?
강홍구_Super Mario_digital print, acrylic_90×100㎝_2016
손바닥만한 땅에 바글바글 티격태격 생존 게임. 꼭 쥔 핸드폰이 세상의 전부인 양, 인스타 구멍에 얼굴 디밀고 행복 배틀에 인생을 불사른다. 처지면 진다. 거기 김나훔? 입꼬리에 텐션 다잡자. 생채기로 온몸이 얼룩져도 스마일. 생글생글 서로 감정 배설하며 덤덤하게 뻔뻔하게 너보다 행복하게. 혼자 반기는 고양이가 오늘따라 더 고마운 집구석, 불어 터진 사발면을 괜스레 후후 불며 웃픈 갬성 무드 깔고 굳센 척 다짐한다 “포커페이스마-일ㅎㅎ”
김나훔_인스타(Insta)_iPad drawing_30×30㎝_2017
사랑스러워 괴롭힌다? 블링-불링(Bling-Bullying)이란 제목만으로도 박용식은 이미 ㅎㅎㅎ스럽다. 절묘한 말장난을 한 꺼풀 벗기면 뼈와 반전이 도드라진다. 오늘도 온종일 고군분투 귀엽고 사랑스럽느라 지친 강아지. 목의 단면까지는 미처 귀엽지 못해 붉은 피와 살점, 허연 뼈가 적나라하다. 섬뜩함에 다시금 살피는 평온한 얼굴. 그런데 천연덕스레 환청이 울린다. “ㅎ …좋니?”
“자 어때 ㅎㅎ?”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막대기를 주워 들고 흙장난하듯 슥슥 그은 동그라미 하나. 이로써 ‘안팎’이 생겼다. 곳곳의 발자국은 ‘몸=위치를 가진 실체’임을 확인한다. “여기, 저기, 거기” 외치며 언어로 선명한 동그라미를 친다. 책상에 금을 그으며 짝꿍의 땅에, 분단의 현실에 눈뜬다. ‘선 넘은’ 연필과 지우개는 그 위치로 비극을 목도한다. “내 꺼!” 그 잽싼 손놀림과 단호한 선언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모두가 한 번쯤 이건용이었다.
정유미_연애놀이(Love Games)_single channel video_15mins_2012
소꿉놀이에 몰입한 커플. 종이꽃으로 단장한 여자에게, 남자는 눈길 한 줌 주지 않는다. 김영만 아닌가 싶을 만큼 줄기차게 꽃만 접는다. 시체놀이는 열연을 넘어 송장 하나 치울 각인가 불길할 지경이다. 무심한 병원놀이에 결국 여자는 눈물을 쏟는다. 정유미의 이 진지한 소꿉놀이는 이입할수록 웃음기가 사라지고 갈수록 내 이야기 같다. “ㅎ괜ㅎ찮ㅎ아ㅠㅠ” 커서 신물 나게 해 댈 애증의 소꿉놀이 왜들 그리 해댔나 싶다. 아 참, 이젠 ‘놀이’가 아니지.
별안간 운전대를 꺾는다. 웰컴 투 정철규 모텔. 앞유리를 긁으며 부대끼는 천막 자락을 헤치고 들어선 주차장. 비로소 제 발 저리듯 밀려오는 쓸데없는 안도감. 쪽창 너머 프런트 아주머니는 비몽사몽 오늘따라 어찌나 굼뜬지. 헛기침을 곁들이며 초조한 눈으로 로비를 두리번거린다. 키도 꽂기 전인데, 조마조마할 정도로 눈이 부신 205호는 안 봐도 딱 정남향이다. 도톰한 암막 커튼을 양손 가득 끄집으며 그제야 다시 안도한다. 나갈 땐 다른 커플과 눈길 말고 마음만 주고받는 게 불문율. “예쁜 사랑ㅎㅎ하세요”
정철규_두 번의 멈춤(Two Stops)_tent fabric sheet_653×382.5×335.5㎝_2023
5% 불순한 ㅎ.
노심초사 겸연쩍고 조심스럽다. 장난스럽다. 안도의 한숨이다. 어딘가 가식적이라 거리감이 있다. 긴가민가 미심쩍어 종잡기 힘들다. 알쏭달쏭 미묘하고 음흉 찝찝 꺼림칙하다. 어이없고 허탈 황당해 헛웃음 끝에 달관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ㅎ 같은’ 경우가 참 많다. 방정맞게 따라 웃는 눈매와 근엄한 입꼬리, 분명 빤한데 괜히 주저하는 뒤숭숭한 여운들, 그래서 알아서들 가늠하기 바쁜 것들 말이다. 전시장 안팎, 사소하며 의미심장한 ㅎ 틈새에서 누군가의 탄식이 솟는다. “ㅎㅎ 나 원 참…”
[1] 영희, 철수로 하자니 성의가 없어 보여, 최근 가장 흔한 남녀 이름 차트를 참고함ㅎㅎ
2023. 0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