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가 되지 못한 순간들
윤석원
지난겨울 끝자락 제자의 집에 마련된 모임에 갔다. 그리 친할 것 없는 이들이 모여 말과 술을 나누며, 걱정과 바람을 자분자분 털어놓는 동안 온기가 돌았다. 얼마 없는 말들을 다 꺼내놓자, 각자 돌아가며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고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어색함을 달래려 의미없는 말 늘어놓는 이 없이, 서로가 고른 노래를 정성껏 듣고 따라 불렀다. 운전 때문에 술 한잔하지 못했지만, 공간을 채운 음악과 달큰한 공기가 좋았다. 아무도 사진 찍는 이 없었지만, 그날의 투박하고 다정한 표정들은 기억 속에 고이 박혔다.
모든 이의 모든 일이 컨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 펼쳐지는 잘 다듬어진 세상 삼라만상은 신기하고 매력 넘쳐 보인다. 모든 시공간을 기록할 것 같은 기세로 끊임없이 올라오는 영상과 컨텐츠는 실재를 넘어 가상과 뒤엉켜 이제는 진짜 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치도 않다. 늘 곁에 있던 것처럼, 날 때부터 쥐고 나온 듯, 없으면 안 될 것 같이 되어버려 마치 생의 충만함과 비루함을 모두 맛보기에 충분한 듯 착각될 때가 잦다. 100여 년 전 검은 사각형을 그렸던 말레비치가 살아있다면 뭐라 했을까. 단지 시선을 잡아 두는 일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기이하고 엽기적인 일마저 망막을 자극하고 호시탐탐 우리의 정신과 시간을 훔쳐 가려 든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2차 대전 중, 미 해군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전투기들의 탄흔 많은 곳을 보강해 생존율을 높이려 했으나, 수학자 에이브러햄 왈드(Abrahan Wald)는 전혀 다른 의견을 냈다. 생존 전투기들이 아닌 격추된 전투기를 고려해야 한다며, 살아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 자국이 있는 곳을 보강할 것이 아니라, 총탄 자국이 없는 부위를 더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진단할 때, 이미 특정 기준으로 걸러진 일부의 데이터만으로 판단해 오류를 범하는 실수를 말한다.
SNS 속 행복을 증빙하는 수많은 영상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행복은 휘발성이 강해 붙잡아두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버리기에 유독 화면 속엔 슬픔보다는 행복이 넘쳐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평범한 일상과 지루함, 슬픔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기가 서 있는 시공간을 애정하기 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화면 속 그것들을 선망하며, 그것이 유행이고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고 오해할 때가 많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 작은 모임은 바라봐줄 이 없이 그때의 서로만으로 충분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게 자못 아쉽기도 하지만 말이다. 잘 가공된 시공간은 컨텐츠라는 이름을 달고 영원히 박제되어 반복되지만 기록되지 않은 어떤 인상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곱씹고 재구성되며 도래할 시공간의 흐름에 녹아든다. 컨텐츠를 소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컨텐츠가 되지 못한 대부분의 일들이 모여 우리 삶을 꾸려낸다.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웠던 기억과, 자랑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빛나는 소중한 경험. 빛과 공기처럼 눈치채지 못한 채 우리 주변을 감싸 채워주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런 신비한 일들 말이다.
2023. 0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컨텐츠가 되지 못한 순간들
윤석원
지난겨울 끝자락 제자의 집에 마련된 모임에 갔다. 그리 친할 것 없는 이들이 모여 말과 술을 나누며, 걱정과 바람을 자분자분 털어놓는 동안 온기가 돌았다. 얼마 없는 말들을 다 꺼내놓자, 각자 돌아가며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고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어색함을 달래려 의미없는 말 늘어놓는 이 없이, 서로가 고른 노래를 정성껏 듣고 따라 불렀다. 운전 때문에 술 한잔하지 못했지만, 공간을 채운 음악과 달큰한 공기가 좋았다. 아무도 사진 찍는 이 없었지만, 그날의 투박하고 다정한 표정들은 기억 속에 고이 박혔다.
모든 이의 모든 일이 컨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 펼쳐지는 잘 다듬어진 세상 삼라만상은 신기하고 매력 넘쳐 보인다. 모든 시공간을 기록할 것 같은 기세로 끊임없이 올라오는 영상과 컨텐츠는 실재를 넘어 가상과 뒤엉켜 이제는 진짜 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치도 않다. 늘 곁에 있던 것처럼, 날 때부터 쥐고 나온 듯, 없으면 안 될 것 같이 되어버려 마치 생의 충만함과 비루함을 모두 맛보기에 충분한 듯 착각될 때가 잦다. 100여 년 전 검은 사각형을 그렸던 말레비치가 살아있다면 뭐라 했을까. 단지 시선을 잡아 두는 일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기이하고 엽기적인 일마저 망막을 자극하고 호시탐탐 우리의 정신과 시간을 훔쳐 가려 든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2차 대전 중, 미 해군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전투기들의 탄흔 많은 곳을 보강해 생존율을 높이려 했으나, 수학자 에이브러햄 왈드(Abrahan Wald)는 전혀 다른 의견을 냈다. 생존 전투기들이 아닌 격추된 전투기를 고려해야 한다며, 살아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 자국이 있는 곳을 보강할 것이 아니라, 총탄 자국이 없는 부위를 더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진단할 때, 이미 특정 기준으로 걸러진 일부의 데이터만으로 판단해 오류를 범하는 실수를 말한다.
SNS 속 행복을 증빙하는 수많은 영상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행복은 휘발성이 강해 붙잡아두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버리기에 유독 화면 속엔 슬픔보다는 행복이 넘쳐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평범한 일상과 지루함, 슬픔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기가 서 있는 시공간을 애정하기 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화면 속 그것들을 선망하며, 그것이 유행이고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고 오해할 때가 많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 작은 모임은 바라봐줄 이 없이 그때의 서로만으로 충분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게 자못 아쉽기도 하지만 말이다. 잘 가공된 시공간은 컨텐츠라는 이름을 달고 영원히 박제되어 반복되지만 기록되지 않은 어떤 인상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곱씹고 재구성되며 도래할 시공간의 흐름에 녹아든다. 컨텐츠를 소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컨텐츠가 되지 못한 대부분의 일들이 모여 우리 삶을 꾸려낸다.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웠던 기억과, 자랑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빛나는 소중한 경험. 빛과 공기처럼 눈치채지 못한 채 우리 주변을 감싸 채워주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런 신비한 일들 말이다.
2023. 0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