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過渡) 선물 세트
: OCI미술관에서 열린 한&모나의 개인전 《Sediment, Patina, Displacement》를 골똘히 되새기며
김영기(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공사장 비계를 화이트큐브에 세우고, 사진을 ‘설치’한다. 이 낯선 전시를 위해, 전반적인 계획과 각 부분의 구상안을 십수 번 줄기차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매번 정리한다. 나에겐 연구, 타인에겐 전달을 위해. 우수한 소통은 간명하다. 글, 사진, 그림, 영상, 모형, 몸짓…그 형식이 무어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정리를 놓았다. 말로 때우기 시작했다. 한&모나 듀오가 논두렁 따라 직수굿하게 걷는 소처럼 심지는 굳어도 생각이 참 많았다. 물론 그들은 귀가 열린 작가이다. 쓴소리 단소리 걸러 듣고 소화할 줄 안다. 고맙게도 내 의견은 무게감 있게 듣고 다듬어 작업에 씌우려 늘 애썼다. 다만 사흘이 멀다 하고 매번 색다른 플랜을 논하자니 빈곤한 나의 처리능력은 도무지 발맞추기 벅찼다. 그래서 연구는 제쳐 두고, 전달과 납득을 위해 멍석부터 쳤다. 호기심으로 초롱초롱한 그들의 눈, 제어회로 없이 밤낮 들어오는 머릿속 전구, 유레카 유레카 수시로 튕겨대는 손끝까지. 캐릭터와 작업 박자를 동네방네 알려 댔고, 그때부턴 자료도 없이 구연동화만 펼쳐도 모두가 수긍하고 측은해했다. 내일 또 바뀔 거, 먼저들 알아주면서.
전시 준비를 본격화하며 그들은 근처에 짐을 풀고 매일같이 미술관을 들락거렸다. OCI미술관은 지상층이 총 다섯 층인데 아래 세 층이 전시장이다. 가장 미술관스러운 부위인 셈. 그러나 그들은 화이트큐브로서의 미술관보다는 미술관의 탈을 쓴 물리 공간의 생김새, 그 장소가 지닌 이야기와 스쳐간 사람들에 더 관심을 주었다. ‘맥락에서 유리되어 순수하게 작업을 보이는 공간(=화이트큐브)’의 ‘맥락’에 시선을 둔 것. 짙은 감색의 벽돌 사이사이 특이한 줄눈으로 마감한 미술관의 외피, 본 전시장 이외의 공간, 계단이나 창틀, 그리고 맨 위층에 자리한 설립자 기념관을 편애했다. 열심히 가꾼 전시장은 저기 맨 뒷줄에 우물쭈물 서 있고.
5층에 위치한 기념관은 미술관이 속한 재단을 설립한 창업주의 기념관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상설 전시장이 아니다. 설립자가 사색과 수련에 몰두하던 서재를 생전 그대로의 분위기와 흔적 그대로 보존한 공간이다. 작가들은 화이트큐브로 감쪽같이 지운 ‘장소의 냄새’가 그곳에 잔뜩 배어있음을 알아챘다. 기념관 문을 여는 순간 두 배 더 커지고 세 배 더 반짝이던 둘의 눈빛이 아직 생생하다. 킁킁대며 안으로 들어서더니 여기저기 둘러보고 눈으로 더듬고 호들갑을 떠느라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앙에 널찍이 자리한 탁자와 목조 가구, 큼직한 지구본, 부릅뜬 사슴 머리, 휘황한 훈장, 각양각색의 기념품과 감사패로 꾸민 선반 등 척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김없이 그들의 시야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신 서예에 골몰한 흔적으로 한구석에 잔뜩 웅크린 화선지 더미, 반들반들한 나무 바닥이 주는 따뜻한 느낌, 벽 귀퉁이 곳곳에 박힌 사선형 나무 몰딩, 벽난로 근처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베를린 장벽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화이트큐브의 맥락 감별사였다.
물리 구조 또한 이미지와 맥락으로 더듬었다. 미술관 3층은 나머지 전시장과 마찬가지로 흰 벽체를 둘렀지만 바닥은 나무 마감이다. 4층, 5층의 나무 재질 마감과, 1층, 2층 전시장의 흰 벽체가 맞닿는 전장 같은 곳이다. 마치 과학 시간에 빨간 잉크를 탄 더운물과, 파란 잉크를 탄 찬물을 섞으면 서로 열을 교환하며 색상이 뒤엉키던 그 지점처럼. 또한 2층 전시장에는 바리솔 조명을 한 높은 천장 공간이 따로 있다. 3층 바닥 일부를 뚫어 2층 천장 삼은 것. 그들은 이런 공간을 일종의 ‘과도(過渡, transient)’로 바라보았다. 매일 보는 나와는 아마 예민함도 감회도 달랐으리라. 그들의 통찰은 그칠 줄 몰랐다. 전시장 2층 중앙은 바닥이 뻥 뚫려, 1층 공간과 그대로 이어지는 메자닌이 있다. 뚫린 바닥 난간 둘레로 반투명한 비닐을 씌우고 한 쪽을 터놓은 작업 〈Waving Surface〉는 한 달 내내 바삐 나폴대며, 위아래로 같은 공기를 머금었음을 관객에 각인시켰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시트지와 조명, 유색 창문으로 시각적 리듬을 일관되게 엮은 것도 동일한 이미지의 전이이다.
‘과도기’란 단어는 어딘가 일시적이고, 불안하며, 핵심이나 본론과는 거리가 있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장소의 속성을 ‘다양한 과도 세트’로 파악하다니. 그렇게 과도는 어엿한 ‘결과’로 승격했다. 쓸데없이 긴 지하철 환승 통로를 탓하며 빠른 걸음걸이로 투덜대던, 그래서 ‘과도’는 엉거주춤 미완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들은, 얼핏 제멋에 겨워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굴비 두름이나 나무 꼬치 같은 것임을 정확히 파악해 냈다. 그들은 과도 공간을 합목적적 공간과 또 다른 합목적적 공간을 잇는 공간, 말하자면 목적에서 한 발짝 더 물러난, ‘메타 합목적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물러나면서 몰입’하는 방법이라니! 명시된 목적(=이야기)에서 유리된다는 점에서 화이트큐브의 탈맥락적 속성과도 접점이 있다. 시각적이든 맥락이든그 어느 곳보다 반듯한 공간이, 어쩌면 바삐 지나는 지하철 환승통로의 무심함과 맞닿아 있음을 문득 상기하게 한 그들은 나에게 ‘유레카!’이다.
Image To be credited: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2023.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과도(過渡) 선물 세트
: OCI미술관에서 열린 한&모나의 개인전 《Sediment, Patina, Displacement》를 골똘히 되새기며
김영기(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공사장 비계를 화이트큐브에 세우고, 사진을 ‘설치’한다. 이 낯선 전시를 위해, 전반적인 계획과 각 부분의 구상안을 십수 번 줄기차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매번 정리한다. 나에겐 연구, 타인에겐 전달을 위해. 우수한 소통은 간명하다. 글, 사진, 그림, 영상, 모형, 몸짓…그 형식이 무어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정리를 놓았다. 말로 때우기 시작했다. 한&모나 듀오가 논두렁 따라 직수굿하게 걷는 소처럼 심지는 굳어도 생각이 참 많았다. 물론 그들은 귀가 열린 작가이다. 쓴소리 단소리 걸러 듣고 소화할 줄 안다. 고맙게도 내 의견은 무게감 있게 듣고 다듬어 작업에 씌우려 늘 애썼다. 다만 사흘이 멀다 하고 매번 색다른 플랜을 논하자니 빈곤한 나의 처리능력은 도무지 발맞추기 벅찼다. 그래서 연구는 제쳐 두고, 전달과 납득을 위해 멍석부터 쳤다. 호기심으로 초롱초롱한 그들의 눈, 제어회로 없이 밤낮 들어오는 머릿속 전구, 유레카 유레카 수시로 튕겨대는 손끝까지. 캐릭터와 작업 박자를 동네방네 알려 댔고, 그때부턴 자료도 없이 구연동화만 펼쳐도 모두가 수긍하고 측은해했다. 내일 또 바뀔 거, 먼저들 알아주면서.
전시 준비를 본격화하며 그들은 근처에 짐을 풀고 매일같이 미술관을 들락거렸다. OCI미술관은 지상층이 총 다섯 층인데 아래 세 층이 전시장이다. 가장 미술관스러운 부위인 셈. 그러나 그들은 화이트큐브로서의 미술관보다는 미술관의 탈을 쓴 물리 공간의 생김새, 그 장소가 지닌 이야기와 스쳐간 사람들에 더 관심을 주었다. ‘맥락에서 유리되어 순수하게 작업을 보이는 공간(=화이트큐브)’의 ‘맥락’에 시선을 둔 것. 짙은 감색의 벽돌 사이사이 특이한 줄눈으로 마감한 미술관의 외피, 본 전시장 이외의 공간, 계단이나 창틀, 그리고 맨 위층에 자리한 설립자 기념관을 편애했다. 열심히 가꾼 전시장은 저기 맨 뒷줄에 우물쭈물 서 있고.
5층에 위치한 기념관은 미술관이 속한 재단을 설립한 창업주의 기념관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상설 전시장이 아니다. 설립자가 사색과 수련에 몰두하던 서재를 생전 그대로의 분위기와 흔적 그대로 보존한 공간이다. 작가들은 화이트큐브로 감쪽같이 지운 ‘장소의 냄새’가 그곳에 잔뜩 배어있음을 알아챘다. 기념관 문을 여는 순간 두 배 더 커지고 세 배 더 반짝이던 둘의 눈빛이 아직 생생하다. 킁킁대며 안으로 들어서더니 여기저기 둘러보고 눈으로 더듬고 호들갑을 떠느라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앙에 널찍이 자리한 탁자와 목조 가구, 큼직한 지구본, 부릅뜬 사슴 머리, 휘황한 훈장, 각양각색의 기념품과 감사패로 꾸민 선반 등 척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김없이 그들의 시야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신 서예에 골몰한 흔적으로 한구석에 잔뜩 웅크린 화선지 더미, 반들반들한 나무 바닥이 주는 따뜻한 느낌, 벽 귀퉁이 곳곳에 박힌 사선형 나무 몰딩, 벽난로 근처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베를린 장벽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화이트큐브의 맥락 감별사였다.
물리 구조 또한 이미지와 맥락으로 더듬었다. 미술관 3층은 나머지 전시장과 마찬가지로 흰 벽체를 둘렀지만 바닥은 나무 마감이다. 4층, 5층의 나무 재질 마감과, 1층, 2층 전시장의 흰 벽체가 맞닿는 전장 같은 곳이다. 마치 과학 시간에 빨간 잉크를 탄 더운물과, 파란 잉크를 탄 찬물을 섞으면 서로 열을 교환하며 색상이 뒤엉키던 그 지점처럼. 또한 2층 전시장에는 바리솔 조명을 한 높은 천장 공간이 따로 있다. 3층 바닥 일부를 뚫어 2층 천장 삼은 것. 그들은 이런 공간을 일종의 ‘과도(過渡, transient)’로 바라보았다. 매일 보는 나와는 아마 예민함도 감회도 달랐으리라. 그들의 통찰은 그칠 줄 몰랐다. 전시장 2층 중앙은 바닥이 뻥 뚫려, 1층 공간과 그대로 이어지는 메자닌이 있다. 뚫린 바닥 난간 둘레로 반투명한 비닐을 씌우고 한 쪽을 터놓은 작업 〈Waving Surface〉는 한 달 내내 바삐 나폴대며, 위아래로 같은 공기를 머금었음을 관객에 각인시켰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시트지와 조명, 유색 창문으로 시각적 리듬을 일관되게 엮은 것도 동일한 이미지의 전이이다.
‘과도기’란 단어는 어딘가 일시적이고, 불안하며, 핵심이나 본론과는 거리가 있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장소의 속성을 ‘다양한 과도 세트’로 파악하다니. 그렇게 과도는 어엿한 ‘결과’로 승격했다. 쓸데없이 긴 지하철 환승 통로를 탓하며 빠른 걸음걸이로 투덜대던, 그래서 ‘과도’는 엉거주춤 미완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들은, 얼핏 제멋에 겨워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굴비 두름이나 나무 꼬치 같은 것임을 정확히 파악해 냈다. 그들은 과도 공간을 합목적적 공간과 또 다른 합목적적 공간을 잇는 공간, 말하자면 목적에서 한 발짝 더 물러난, ‘메타 합목적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물러나면서 몰입’하는 방법이라니! 명시된 목적(=이야기)에서 유리된다는 점에서 화이트큐브의 탈맥락적 속성과도 접점이 있다. 시각적이든 맥락이든그 어느 곳보다 반듯한 공간이, 어쩌면 바삐 지나는 지하철 환승통로의 무심함과 맞닿아 있음을 문득 상기하게 한 그들은 나에게 ‘유레카!’이다.
Image To be credited: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2023.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3, Published by 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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