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 OCI 미술관 《ㅎㅎㅎ》 전시 후기
젤라씨
사진: 전시장 전원 스위치가 있는 벽에 그려진 정유미의 드로잉
OCI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ㅎㅎㅎ》는 제목과 같이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삶의 무게를 ㅎ라는 표현에 달아보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만 보았을 때 이들이 어떤 사유로 한 카테고리에 묶이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되는데, 전시장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정철규의 천막이다. 입구에 설치되어 1층 전시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 설치 작품은 기획자의 설명을 빌자면 “정철규 모텔”의 “유리를 긁으며 부대끼는 천막 자락”이다. 알고 싶지 않지만 익숙한 풍경, 그것을 전시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작품으로 설치한 기획 의도가 흥미롭다. 웰컴, 헤븐이라고 안쪽에 써진 글씨는, 분명히 천국이 아닌 여기에 서있는 나에게 던져진 ‘ㅎ’였다.
전시는 귀여운데 잔인한, 아기자기한데 허무한 작품들로 이어진다. 박용식의 참수된 강아지와 고양이 머리 조각들, 배추 농장의 “팜니다” 안내문과 앤디 워홀의 바나나와 “An Jowa(안 조와)하는 Who(누구)”를 촬영하고 그려낸 강홍구의 작품들, 아파트 숲의 높은 벽을 넘으려고 버둥거리는 김나훔의 애니매이션은 모두 이 달달한데 텁텁한 ‘ㅎ’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인스타그램에 비친 삶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 빼고 다 행복하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진으로 박제된 타인의 삶.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의 조각들이 반짝이는 인스타그램 속의 삶에 이번 전시는 ‘ㅎㅎㅎ’라는 댓글을 단다. 사실은 지루한 존재들의 일상, 치열하게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과 현실에서의 좌절감 사이 내쉬어야만 하는 허탈한 웃음. 이것이야말로 “인생 참 재밌네”라고 읊조리게 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나락의 괴로움과 현생의 가벼움 사이 유쾌한 줄타기를 하던 전시는 정유미의 세 편의 영상 작품을 통해 그 존재의 무게를 담담하게 저울질한다. <먼지아이>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은 아무도 없는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잠을 잔다. 그리고 밥을 지어 먹는 순간, 영상의 인물은 아주 작은 형태로 출현한 또 다른 나 자신을 마주한다. 그는 이 단칸방 집에 살고 있는 ‘나’, 그리고 알몸의 ‘나’에게 밥 한 공기를 준다. 우리는 모두 미약하지만 밥 한 공기 먹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인스타그램 속의 삶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가볍고 무거운 것 사이, 까불거리고 심각한 것 사이, 그 사이의 모든 ‘ㅎㅎㅎ’에 대해 전시는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로 화답한다. 여기, 거기, 저기 모두 어디라고. ‘ㅎㅎㅎ’는 삶의 어디에서도 빗겨나갈 수 있는 치트키인 동시에 희극과 비극 그 어디엔가 있는 우리네 삶 바로 그것이라고. “ㅎ를 쓰고, 또 서로 달리 받아들인다. 보는 ㅎ인가, 듣는 ㅎ인가에 따라 다르다. ㅎ과 ㅎㅎ, ㅎㅎㅎ의 어감이 다르다”라는 기획자의 글처럼 ‘ㅎ’의 논리는 삶의 논리와 겹쳐진다. 전시가 느슨한 태도로 날카롭게 후벼 파는 지점은 삶의 이면이 아닌 삶의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머릿속에는 한 노래 구절이 맴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아무렇지 않어/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2023.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 OCI 미술관 《ㅎㅎㅎ》 전시 후기
젤라씨
사진: 전시장 전원 스위치가 있는 벽에 그려진 정유미의 드로잉
OCI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ㅎㅎㅎ》는 제목과 같이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삶의 무게를 ㅎ라는 표현에 달아보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만 보았을 때 이들이 어떤 사유로 한 카테고리에 묶이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되는데, 전시장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정철규의 천막이다. 입구에 설치되어 1층 전시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 설치 작품은 기획자의 설명을 빌자면 “정철규 모텔”의 “유리를 긁으며 부대끼는 천막 자락”이다. 알고 싶지 않지만 익숙한 풍경, 그것을 전시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작품으로 설치한 기획 의도가 흥미롭다. 웰컴, 헤븐이라고 안쪽에 써진 글씨는, 분명히 천국이 아닌 여기에 서있는 나에게 던져진 ‘ㅎ’였다.
전시는 귀여운데 잔인한, 아기자기한데 허무한 작품들로 이어진다. 박용식의 참수된 강아지와 고양이 머리 조각들, 배추 농장의 “팜니다” 안내문과 앤디 워홀의 바나나와 “An Jowa(안 조와)하는 Who(누구)”를 촬영하고 그려낸 강홍구의 작품들, 아파트 숲의 높은 벽을 넘으려고 버둥거리는 김나훔의 애니매이션은 모두 이 달달한데 텁텁한 ‘ㅎ’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인스타그램에 비친 삶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 빼고 다 행복하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진으로 박제된 타인의 삶.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의 조각들이 반짝이는 인스타그램 속의 삶에 이번 전시는 ‘ㅎㅎㅎ’라는 댓글을 단다. 사실은 지루한 존재들의 일상, 치열하게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과 현실에서의 좌절감 사이 내쉬어야만 하는 허탈한 웃음. 이것이야말로 “인생 참 재밌네”라고 읊조리게 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나락의 괴로움과 현생의 가벼움 사이 유쾌한 줄타기를 하던 전시는 정유미의 세 편의 영상 작품을 통해 그 존재의 무게를 담담하게 저울질한다. <먼지아이>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은 아무도 없는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잠을 잔다. 그리고 밥을 지어 먹는 순간, 영상의 인물은 아주 작은 형태로 출현한 또 다른 나 자신을 마주한다. 그는 이 단칸방 집에 살고 있는 ‘나’, 그리고 알몸의 ‘나’에게 밥 한 공기를 준다. 우리는 모두 미약하지만 밥 한 공기 먹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인스타그램 속의 삶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가볍고 무거운 것 사이, 까불거리고 심각한 것 사이, 그 사이의 모든 ‘ㅎㅎㅎ’에 대해 전시는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로 화답한다. 여기, 거기, 저기 모두 어디라고. ‘ㅎㅎㅎ’는 삶의 어디에서도 빗겨나갈 수 있는 치트키인 동시에 희극과 비극 그 어디엔가 있는 우리네 삶 바로 그것이라고. “ㅎ를 쓰고, 또 서로 달리 받아들인다. 보는 ㅎ인가, 듣는 ㅎ인가에 따라 다르다. ㅎ과 ㅎㅎ, ㅎㅎㅎ의 어감이 다르다”라는 기획자의 글처럼 ‘ㅎ’의 논리는 삶의 논리와 겹쳐진다. 전시가 느슨한 태도로 날카롭게 후벼 파는 지점은 삶의 이면이 아닌 삶의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머릿속에는 한 노래 구절이 맴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아무렇지 않어/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2023.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