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기획전 MIMESIS AP6 : SIGN_월간미술 2023년 6월호에서 발췌
게을러터진 내가 빨간 버스를 타는 까닭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킬러 콘텐츠 Mimesis AP(Artist Project)가 한동안 잠잠해 자못 궁금하던 차, 때맞춰 여섯 번째 기획전으로 돌아왔다. 우리 사는 현대의 시간이 흐른 자국, 겹겹이 쌓인 단서, 한바탕 휩쓴 끝의 잔여물을 백요섭, 윤석원, 서원미 세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겹치지 않게 풀었다. 백요섭은 물감을 올리고 갈아내고 다시 덮어 적층하고, 은박 프로타주로 재개발 지역의 흔적을 새겼다. 윤석원은 ‘생사, 안팎, 고금, 종횡, 내외’의 대비 구조로 관조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서원미는 강렬한 서사성과 무거운 톤으로 ‘전쟁’ 현실을 조명하는 한편, 현란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가 ‘투쟁’사로 연결한다. 어김없이 시작된 세 작가의 극복과 타협 게임. 현란한 공간과, 또 상대 작가와 맞서고 어우러지는 소리 없는 전장을 거닌다.
“구작이네? 못 보던 작품인데?”
“OOO 맞아? 이런 면이 있었다고?”
“나, 알 것 같아! 왜 하필 세 가지 레퍼토리인지…”
평범하고 밋밋한 네이밍 ‘AP’. 그리고 비범함으로 가득 들어찬 속. 다소곳하고 가지런한 건 못 참는 유별난 공간도 공간이지만, 그걸 차치해도 전시 자체로 매회 이미 낯설고 새롭다. 설명을 받아쓰며 눈에 핏발 세우지 않아도, 새롭지 않은 작가의 새로운 면모가 알아서 날아와 박힌다. 이 쾌적한 낯설음과 경이야말로 AP를 기대하는 이유이고, 합정역에서 빨간색 광역 버스까지 갈아타며 찾게 만드는 재미이다.
역대 기획을 더듬으면 비교적 일관된 뼈대가 집힌다. ‘긁어모아’, ‘대조’한다. ‘화이트도 큐브도 아닌 곳’에서 ‘일탈’ 한다.
길게는 최근 10년간의 작업을 총동원한다. 연면적 1100평(약 3636㎡)에 달하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범상치 않은 규모, ‘이른 회고전’이라는 독특하고 또렷한 방향성에 힘입어, 작품 사이사이가 여러 의미로 조밀하다. 한 전시 출품작이 300점에 육박한다. 시간과 공간 양면으로 촘촘한 기획 특성상 작업량은 필수 소양이다. 그래서 모조리 ‘긁어모으며’ 작가는 자기 작업을 사실상 난생처음으로 집대성한다.
전시장을 두루 꿰는 일관된 박자는 대조, 대비이다. 마주한 작품과 이웃한 작품, 지난 시리즈와 최신 시리즈, 나아가 이번과 다음 회차 전시를 훑으며 저절로 변천을 감지한다. 세 작가는 서로 밀어주며 상생하고, 대조되어 각자를 부각하는 시너지를 낸다. 그에 따른 긴장감과 균형이야말로 이 전시의 가장 주된 인상. 크다가 작고, 긴박하고 느리며, 심각한데 때론 짓궂은 시각적/내용적 대비는 AP 놀이동산의 단골 레퍼토리이며 관객이 눈길 굴리는 기본 리듬이다.
199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미술관 본관은 펄럭이는(?) 외형부터 심상찮다. 들어서면 넉넉한 규모와, 변화무쌍 드높은 층고가 반긴다. 비대칭/비정형적 생김새, 닫히지 않고 교묘히 이어지는 구획, 벽의 곡선이 바닥과 만나 너울대는 실루엣에 기획자는 ‘어렵고 충동적이고 재밌겠구나’ 예감한다. 자연광의 변화를 감지, 인공조명을 최대한 배제한 빛 활용을 마주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화이트도, 큐브도 아니네? 화이트큐브인데…” 덕분에 여느 기관과도 유다른, 화장발 조명발 싹 뺀 솔직한 연출이 돋보인다. 연출이 솔직하다니 어폐가 있지만.
바야흐로 ‘뭐라도 해 볼 기회’이다. 곡면도 활용하고, 1000호에 달하는 큰 그림도 건다. 선보인 시기도, 장소도 제각각인 작품을 재조합해 한 덩이 가득 메운다. 못 보던 것, 보여 주지 않은 것을 내민다. 꺼내기 애매한 것? 오히려 좋다. 규모로 물타기를 하든 새로운 맥락을 짜내든, 받아 낼 멍석을 깐다. 잠시 두 눈과 귀를 막은 기획자 옆에서, 작가는 한 섹션을 독선적으로 꾸며 본다. 그렇게 자기 작업을 낯설게 마주한다. 자신도 모르던 작가적 단면을 발견한다. 내친걸음에 가 본 적 없는 길을 디딘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이렇게 일탈한다. 한 집 건너 한 전시장마다 운운하는 멘트 ‘실험적이고 도발적 작업 세계와 개성적인 면 조명’은 글로도 짚일 만큼 또렷한 아이템이 뒤따라야 한다. 입 털 시간에 손발로 실현해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 피부와 각막에 콕콕 와닿지 않으면? 대번에 결론 낸다. “속았다…” 바쁘고 맵고 성급하고 별스러운 요즘 관객에게 자비란 없다.
취향 참 또렷하다. 회화, 조각, 공예. ‘배척하지 않고 열려 있다’는 정희라 선임 큐레이터의 답변에도 불구, 여태까지의 발자취는 전통적 형식과 매체에 꽂혔다. 그러면서 개별 작업과 전시 기획 전반에 동시대성을 노골적으로 깔고 뿌린다. 참여 작가 전원이 작품으로 답한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사실, 기관의 취향은 따로 내세우지 않아도 미술씬과 콘텐츠 소비자가 정한다. 중립 기어 넣어 봐야 피할 수 없는 것. 공공영역에 발 담근 기관은 수집, 선정에 보완책을 두어 편향, 편파, 편중을 피하고, 사립 기관은 개별 기획의 의외성으로 극복한다. 그런 면에서 AP의 취향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고전, 사회적 역할, 일탈 일괄 보장이라니. 세대별 장점만 모은 실비보험이 문득 떠오른다.
작가 구성은 전적으로 학예실의 연구에 달렸다. 공모와 외부 심사 없이 선정한다. 기획자의 역할, 권한, 책임이 막강, 막중하다. 확보한 자료의 규모나 연구 심도도 그렇지만, 기관장의 관심과 의지도 인상 깊다. 매번 작업실에 직접 동행한다. 기획자가 학예연구를 챙기는 동안, 작업량, 자세와 열의, 아이디어, 성실과 협조, 유연성을 요모조모 살핀다. 작가 등줄기에 식은땀이야 제법 흐르겠지만 기관 차원의 관심이 곧 AP의 경쟁력 지속의 텃밭이고 원동력이다. 한편으론 발언권이 있는 관계자와 기관의 성향을 공략하는 것은 동시대 작가의 중요 소양 중 하나임을 다시금 절감한다. 또한 제대로 폭발하려면 연쇄 반응이 필요하다. 일회적인 전시가 아닌, 전시 서사와 인연의 시작을 추구한다. 참여 작가의 대표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소장품전, 기획전 등 다양한 작품 노출로 지속적인 활동 기회와 활력을 제공한다. 바로 AP가 노리는 선순환이다.
표면적으로 주제전 형식이면서도, 참여 작가 각자는 개인전 한번 제대로 여는 만큼 정성과 각오가 어릴 수밖에 없다. AP는 만 35세부터 45세 사이의 작가, 전업작가로 롱런할 기로에 선 이른바 ‘끼인 세대’를 겨냥한다. 그래서 별칭이 ‘이른 회고전’. 규모와 성격은 물론 색다른 압박감까지, 이런저런 색채에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명명이다. 너무 커 버리면 오히려 할 수 없는, ‘지금 당장 회고전’이라니.
대표사진촬영_임장활
2023.0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기획전 MIMESIS AP6 : SIGN_월간미술 2023년 6월호에서 발췌
게을러터진 내가 빨간 버스를 타는 까닭
김영기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킬러 콘텐츠 Mimesis AP(Artist Project)가 한동안 잠잠해 자못 궁금하던 차, 때맞춰 여섯 번째 기획전으로 돌아왔다. 우리 사는 현대의 시간이 흐른 자국, 겹겹이 쌓인 단서, 한바탕 휩쓴 끝의 잔여물을 백요섭, 윤석원, 서원미 세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겹치지 않게 풀었다. 백요섭은 물감을 올리고 갈아내고 다시 덮어 적층하고, 은박 프로타주로 재개발 지역의 흔적을 새겼다. 윤석원은 ‘생사, 안팎, 고금, 종횡, 내외’의 대비 구조로 관조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서원미는 강렬한 서사성과 무거운 톤으로 ‘전쟁’ 현실을 조명하는 한편, 현란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가 ‘투쟁’사로 연결한다. 어김없이 시작된 세 작가의 극복과 타협 게임. 현란한 공간과, 또 상대 작가와 맞서고 어우러지는 소리 없는 전장을 거닌다.
“구작이네? 못 보던 작품인데?”
“OOO 맞아? 이런 면이 있었다고?”
“나, 알 것 같아! 왜 하필 세 가지 레퍼토리인지…”
평범하고 밋밋한 네이밍 ‘AP’. 그리고 비범함으로 가득 들어찬 속. 다소곳하고 가지런한 건 못 참는 유별난 공간도 공간이지만, 그걸 차치해도 전시 자체로 매회 이미 낯설고 새롭다. 설명을 받아쓰며 눈에 핏발 세우지 않아도, 새롭지 않은 작가의 새로운 면모가 알아서 날아와 박힌다. 이 쾌적한 낯설음과 경이야말로 AP를 기대하는 이유이고, 합정역에서 빨간색 광역 버스까지 갈아타며 찾게 만드는 재미이다.
역대 기획을 더듬으면 비교적 일관된 뼈대가 집힌다. ‘긁어모아’, ‘대조’한다. ‘화이트도 큐브도 아닌 곳’에서 ‘일탈’ 한다.
길게는 최근 10년간의 작업을 총동원한다. 연면적 1100평(약 3636㎡)에 달하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범상치 않은 규모, ‘이른 회고전’이라는 독특하고 또렷한 방향성에 힘입어, 작품 사이사이가 여러 의미로 조밀하다. 한 전시 출품작이 300점에 육박한다. 시간과 공간 양면으로 촘촘한 기획 특성상 작업량은 필수 소양이다. 그래서 모조리 ‘긁어모으며’ 작가는 자기 작업을 사실상 난생처음으로 집대성한다.
전시장을 두루 꿰는 일관된 박자는 대조, 대비이다. 마주한 작품과 이웃한 작품, 지난 시리즈와 최신 시리즈, 나아가 이번과 다음 회차 전시를 훑으며 저절로 변천을 감지한다. 세 작가는 서로 밀어주며 상생하고, 대조되어 각자를 부각하는 시너지를 낸다. 그에 따른 긴장감과 균형이야말로 이 전시의 가장 주된 인상. 크다가 작고, 긴박하고 느리며, 심각한데 때론 짓궂은 시각적/내용적 대비는 AP 놀이동산의 단골 레퍼토리이며 관객이 눈길 굴리는 기본 리듬이다.
199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미술관 본관은 펄럭이는(?) 외형부터 심상찮다. 들어서면 넉넉한 규모와, 변화무쌍 드높은 층고가 반긴다. 비대칭/비정형적 생김새, 닫히지 않고 교묘히 이어지는 구획, 벽의 곡선이 바닥과 만나 너울대는 실루엣에 기획자는 ‘어렵고 충동적이고 재밌겠구나’ 예감한다. 자연광의 변화를 감지, 인공조명을 최대한 배제한 빛 활용을 마주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화이트도, 큐브도 아니네? 화이트큐브인데…” 덕분에 여느 기관과도 유다른, 화장발 조명발 싹 뺀 솔직한 연출이 돋보인다. 연출이 솔직하다니 어폐가 있지만.
바야흐로 ‘뭐라도 해 볼 기회’이다. 곡면도 활용하고, 1000호에 달하는 큰 그림도 건다. 선보인 시기도, 장소도 제각각인 작품을 재조합해 한 덩이 가득 메운다. 못 보던 것, 보여 주지 않은 것을 내민다. 꺼내기 애매한 것? 오히려 좋다. 규모로 물타기를 하든 새로운 맥락을 짜내든, 받아 낼 멍석을 깐다. 잠시 두 눈과 귀를 막은 기획자 옆에서, 작가는 한 섹션을 독선적으로 꾸며 본다. 그렇게 자기 작업을 낯설게 마주한다. 자신도 모르던 작가적 단면을 발견한다. 내친걸음에 가 본 적 없는 길을 디딘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이렇게 일탈한다. 한 집 건너 한 전시장마다 운운하는 멘트 ‘실험적이고 도발적 작업 세계와 개성적인 면 조명’은 글로도 짚일 만큼 또렷한 아이템이 뒤따라야 한다. 입 털 시간에 손발로 실현해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 피부와 각막에 콕콕 와닿지 않으면? 대번에 결론 낸다. “속았다…” 바쁘고 맵고 성급하고 별스러운 요즘 관객에게 자비란 없다.
취향 참 또렷하다. 회화, 조각, 공예. ‘배척하지 않고 열려 있다’는 정희라 선임 큐레이터의 답변에도 불구, 여태까지의 발자취는 전통적 형식과 매체에 꽂혔다. 그러면서 개별 작업과 전시 기획 전반에 동시대성을 노골적으로 깔고 뿌린다. 참여 작가 전원이 작품으로 답한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사실, 기관의 취향은 따로 내세우지 않아도 미술씬과 콘텐츠 소비자가 정한다. 중립 기어 넣어 봐야 피할 수 없는 것. 공공영역에 발 담근 기관은 수집, 선정에 보완책을 두어 편향, 편파, 편중을 피하고, 사립 기관은 개별 기획의 의외성으로 극복한다. 그런 면에서 AP의 취향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고전, 사회적 역할, 일탈 일괄 보장이라니. 세대별 장점만 모은 실비보험이 문득 떠오른다.
작가 구성은 전적으로 학예실의 연구에 달렸다. 공모와 외부 심사 없이 선정한다. 기획자의 역할, 권한, 책임이 막강, 막중하다. 확보한 자료의 규모나 연구 심도도 그렇지만, 기관장의 관심과 의지도 인상 깊다. 매번 작업실에 직접 동행한다. 기획자가 학예연구를 챙기는 동안, 작업량, 자세와 열의, 아이디어, 성실과 협조, 유연성을 요모조모 살핀다. 작가 등줄기에 식은땀이야 제법 흐르겠지만 기관 차원의 관심이 곧 AP의 경쟁력 지속의 텃밭이고 원동력이다. 한편으론 발언권이 있는 관계자와 기관의 성향을 공략하는 것은 동시대 작가의 중요 소양 중 하나임을 다시금 절감한다. 또한 제대로 폭발하려면 연쇄 반응이 필요하다. 일회적인 전시가 아닌, 전시 서사와 인연의 시작을 추구한다. 참여 작가의 대표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소장품전, 기획전 등 다양한 작품 노출로 지속적인 활동 기회와 활력을 제공한다. 바로 AP가 노리는 선순환이다.
표면적으로 주제전 형식이면서도, 참여 작가 각자는 개인전 한번 제대로 여는 만큼 정성과 각오가 어릴 수밖에 없다. AP는 만 35세부터 45세 사이의 작가, 전업작가로 롱런할 기로에 선 이른바 ‘끼인 세대’를 겨냥한다. 그래서 별칭이 ‘이른 회고전’. 규모와 성격은 물론 색다른 압박감까지, 이런저런 색채에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명명이다. 너무 커 버리면 오히려 할 수 없는, ‘지금 당장 회고전’이라니.
대표사진촬영_임장활
2023.06 ACK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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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3, Published by 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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