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기억ᆞ공간》 :
꿈틀거리는 공간
정희라
공간의 연대기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공간의 감각과 기억을 마주하며 상응하는 작업들을 선보인 아르코미술관의 《기억ᆞ공간》은 실증적 아카이브와는 다른 주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였다. 시간이 쌓이고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초청 작가들의 감각으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신뢰와 설득에 다가가려 하지 않음을 표명함으로써 공간에 각인된 개인의 경험이 객관적인 사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반추하게 한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강력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현재와 과거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기억>의 능력에 주목하는 전시의 주된 맥락 속에는 개인의 주관적 기억이야말로 역사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알라이다 아스만의 주장이 인용된다.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기억이 역사에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각각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들은 사실이라 여겨지는 객관적 문자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살아 있는 흔적들을 발생시킴으로써 비판적인 역사관을 재정립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기록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억ᆞ공간》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의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다시금 추적하게 한다.
개인의 경험이 삭제된 지식을 역사적 본질로 보는 시각, 그리고 역사에서 기술한 것만이 진실이라는 배타적 역사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억의 잠재력을 전시의 기본 전제로 삼고 미술관에 대한 실증적인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사변적 기억을 통해 미술관을 살펴본다.[1] 9명(팀)의 초정 작가는 각각의 시각과 방식대로 공간을 감각한다. 기억의 지지체인 신체를 통해 미술관을 해석한 황원해, 다이아거날 써츠, 또 다른 지지체인 시간을 통해 미술관을 바라본 김보경, 지지체들인 신체와 시간을 통합하는 작업을 한 안경수, 이 모든 것을 기억으로 소환하는 박민하, 윤향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의식으로 불러온 이현종, 양승빈, 새로운 세계로서의 기억을 과거와 연결한 옐로우닷컴퍼니(문승현, 김명신, 김경민). 이들의 작업은 과거의 시간들로 견고해지며 무게감이 더해지는 있는 공간에 마치 숨구멍을 만들 듯 현재의 감각을 입혀 시간 속에 갇히지 않고 생명력을 얻어 현재를 살아가도록 한다.
문승현(엘로우 닷 컴퍼니),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2023,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2분 18초
퍼포머: 문승현, 김명신; 안무: 김명신; 미디어 아트: 김경민; 첼로 연주: 김지현; 영상 연출: 김경민, 박천호; 영상 촬영: 박천호; 촬영 보조: 김준수; 음향 녹음: 경규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감각이다. 기절한 누군가를 깨우려 뺨을 때리는 것처럼 강한 자극은 우리의 감각이 살아나 발동하도록 한다. 신체의 감각이 공간의 기억과 맞닿아 서로 상응하며 꿈틀거리는 것이 가장 돋보이는 작업은 옐로우닷컴퍼니(문승현, 김명신, 김경민)의 영상이다. 사람의 감각은 보고 듣는 것은 서로 어떤 식으로든 공유할 수 있지만, 냄새와 촉각, 미각은 여럿이 동일하게 공유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내가 느끼는 것을 전달하려면 바라볼 수 있는 형상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필요해진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손을 튕기고 그 소리가 울리고 퍼져나가는 느낌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기도 한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보다 즉각적인 시각적 경험을 한다. 땅과 중력의 느낌은 다리의 감각을 통하기도 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벽의 가로막힘은 팔과 손으로 쓰다듬어 간다. 눈앞에 놓인 하나의 벽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다리로 버티고, 눈을 감고 벽의 소리를 들어 본다. 혼자 감각한 공간은 둘이 되어 그 파장이 달라진다. 복수의 신체의 움직임은 공간에 전혀 다른 공기의 흐름, 분위기를 생성하고, 공간은 그들에게 반응하며 살아 움직인다. 신체와 공간은 무엇인가를 담는다는 점에서 그릇의 역할을 한다. 동등한 존재이자 대상이 된 신체와 공간의 대화를 보여주는 옐로우닷컴퍼니의 작업은 공간을 감각하여, 공간과 마주하여, 공간을 제시하여, 공간을 밖으로 꺼내, 공간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였다.
[1] 우리는 여기에서 기억한다, 전지영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글 중에서
2023.0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아르코미술관 《기억ᆞ공간》 :
꿈틀거리는 공간
정희라
공간의 연대기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공간의 감각과 기억을 마주하며 상응하는 작업들을 선보인 아르코미술관의 《기억ᆞ공간》은 실증적 아카이브와는 다른 주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였다. 시간이 쌓이고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초청 작가들의 감각으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신뢰와 설득에 다가가려 하지 않음을 표명함으로써 공간에 각인된 개인의 경험이 객관적인 사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반추하게 한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강력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현재와 과거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기억>의 능력에 주목하는 전시의 주된 맥락 속에는 개인의 주관적 기억이야말로 역사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알라이다 아스만의 주장이 인용된다.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기억이 역사에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각각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들은 사실이라 여겨지는 객관적 문자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살아 있는 흔적들을 발생시킴으로써 비판적인 역사관을 재정립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기록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억ᆞ공간》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의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다시금 추적하게 한다.
개인의 경험이 삭제된 지식을 역사적 본질로 보는 시각, 그리고 역사에서 기술한 것만이 진실이라는 배타적 역사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억의 잠재력을 전시의 기본 전제로 삼고 미술관에 대한 실증적인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사변적 기억을 통해 미술관을 살펴본다.[1] 9명(팀)의 초정 작가는 각각의 시각과 방식대로 공간을 감각한다. 기억의 지지체인 신체를 통해 미술관을 해석한 황원해, 다이아거날 써츠, 또 다른 지지체인 시간을 통해 미술관을 바라본 김보경, 지지체들인 신체와 시간을 통합하는 작업을 한 안경수, 이 모든 것을 기억으로 소환하는 박민하, 윤향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의식으로 불러온 이현종, 양승빈, 새로운 세계로서의 기억을 과거와 연결한 옐로우닷컴퍼니(문승현, 김명신, 김경민). 이들의 작업은 과거의 시간들로 견고해지며 무게감이 더해지는 있는 공간에 마치 숨구멍을 만들 듯 현재의 감각을 입혀 시간 속에 갇히지 않고 생명력을 얻어 현재를 살아가도록 한다.
문승현(엘로우 닷 컴퍼니),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2023,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2분 18초
퍼포머: 문승현, 김명신; 안무: 김명신; 미디어 아트: 김경민; 첼로 연주: 김지현; 영상 연출: 김경민, 박천호; 영상 촬영: 박천호; 촬영 보조: 김준수; 음향 녹음: 경규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감각이다. 기절한 누군가를 깨우려 뺨을 때리는 것처럼 강한 자극은 우리의 감각이 살아나 발동하도록 한다. 신체의 감각이 공간의 기억과 맞닿아 서로 상응하며 꿈틀거리는 것이 가장 돋보이는 작업은 옐로우닷컴퍼니(문승현, 김명신, 김경민)의 영상이다. 사람의 감각은 보고 듣는 것은 서로 어떤 식으로든 공유할 수 있지만, 냄새와 촉각, 미각은 여럿이 동일하게 공유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내가 느끼는 것을 전달하려면 바라볼 수 있는 형상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필요해진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손을 튕기고 그 소리가 울리고 퍼져나가는 느낌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기도 한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보다 즉각적인 시각적 경험을 한다. 땅과 중력의 느낌은 다리의 감각을 통하기도 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벽의 가로막힘은 팔과 손으로 쓰다듬어 간다. 눈앞에 놓인 하나의 벽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다리로 버티고, 눈을 감고 벽의 소리를 들어 본다. 혼자 감각한 공간은 둘이 되어 그 파장이 달라진다. 복수의 신체의 움직임은 공간에 전혀 다른 공기의 흐름, 분위기를 생성하고, 공간은 그들에게 반응하며 살아 움직인다. 신체와 공간은 무엇인가를 담는다는 점에서 그릇의 역할을 한다. 동등한 존재이자 대상이 된 신체와 공간의 대화를 보여주는 옐로우닷컴퍼니의 작업은 공간을 감각하여, 공간과 마주하여, 공간을 제시하여, 공간을 밖으로 꺼내, 공간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였다.
[1] 우리는 여기에서 기억한다, 전지영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글 중에서
2023.0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