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다녀오세요.
정재연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내가 증명해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 너무나 많다. 그림자 말고 내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일하는 소위 ‘예술계’는 무수한 작가들과 큐레이터가 서로 교집합처럼 응집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소행성 같은. 지금까지 많은 관계가 있었고, 당연하게 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관계로 변화해 갔다. 특히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아이를 낳은 후부터 더욱 자아와 타자의 불안정한 줄타기는 나를 음지로 내모는 듯했다.
관계는 멀어지고 낯설어진다. 아이를 낳는 일은 새로운 개념미술과도 같았다. 창조 그리고 생명, 양육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나에겐 미학적이고도 굉장히 기술적인 테크닉을 요하는 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면? 난 무엇을 가장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전시이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놀이터에 가서 그저 앉아 시간을 좀 때우고 그 다음엔 마트에 가서 이유식과 저녁 식사를 위한 재료를 구입한다. 커피숍에 가는 일은 최고의 유흥 이자 사치. 이 시기엔 똑같이 느끼는 것이 있다. 나 이외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주는데 아주 소질이 있어 보인다. 가령 소셜미디어에 모 큐레이터가 새로운 전시를 통해 자기 소질을 증명해 내거나, 알던 모 작가가 수상을 받고 해외 레지던스로 옮겨 자신을 증명한다. 이땐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나도 한때 그런 재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2022년부터 서서히 소행성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스스로의 물음에서 ‘강한 엄마가 되었으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생긴다. 부재는 새로운 도약이다. 나는 나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내 역할이 무엇이 되었든.
나에겐 글을 쓰는 일 또한 아주 중요하다.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그들을 증명해 간다면 큐레이터는 전시뿐만 아니라 글로 많은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 (물론 글 말고도 다양한 일들로 자신들의 행적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 많은 문장들로 다른 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휘저어야 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작가의 삶과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애정하는 책에서 읽은 문구에서 위로 받는다. “모성과 커리어는 서로를 보완하고 성장시키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다. 당신은 일에 관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와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향한 자유를 열망한다.” [1] 세상의 모든 것은 지고 나서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세상의 진리다. 정처 없이 헤매고, 부러워하고, 당황했고, 외로웠던 순간을 뒤로하고 지금을 이겨낸다. 우울을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희망적이지 않아도 나의 견고한 힘을 믿는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내게 엄마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이 있어보인다며 격려하곤 한다. 엄마라는 낙인이 두려워 엄마가 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엄마가 된 많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큐레이터이길 원한다. 그리고 엄마가 된 예술계 많은 이들과 함께 동행하고 연대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 낸 미술과 담론 문화센터 일명 <미담문센> * 아이와 동행은 필수다.
*미담문센*
- 서로 둘러앉아 아이의 언어, 몸짓, 손짓 행동을 포착해 아이와 엄마를 둘러싼 모든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가지기
-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탐색과 함께, 먹고 소화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의 소통하기
- 엄마가 된 후 신체 및 감정 변화에 관해 이야기 해보기
-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술계의 경력 단절의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문제점과 실현 할 수 있는 활동 나누기
- 소리에 민감한 아이들과 함께 예술 즐기기, 라디오 극장
- 맛있는 이유식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한 엄마들을 위한 후원 모임
이 아이디어를 곧 실현할 곳을 찾아본다. 현실은 잠깐 전시를 돕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말이다. 한동안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울컥해지는 것들을 뒤로하고 이 작은 예술 소행성에 그림자 같은 흔적을 흐릿하게 나마 남기기 위해.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 일하러 다녀올게”
Carmen Winant in her Columbus, Ohio, studio with her sons, Carlo, 2, and Rafa, 2 months. Photo: Luke Stettner
Carmen Winant’s My Birth (detail), 2018. Site-specific installation of found images, tape. The Museum of Modern Art.Photo: Kurt Heumiller / © 2018 Carmen Winant
이번 호 글과 함께 한 이미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카르멘 위넌트(Carmen Winant, 1983 ~) 작품으로 출산의 경험을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칩니다.
[1] 김다은, 『자아, 예술가, 엄마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팩토리, p 177
2023.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일하러 다녀오세요.
정재연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내가 증명해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 너무나 많다. 그림자 말고 내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일하는 소위 ‘예술계’는 무수한 작가들과 큐레이터가 서로 교집합처럼 응집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소행성 같은. 지금까지 많은 관계가 있었고, 당연하게 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관계로 변화해 갔다. 특히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아이를 낳은 후부터 더욱 자아와 타자의 불안정한 줄타기는 나를 음지로 내모는 듯했다.
관계는 멀어지고 낯설어진다. 아이를 낳는 일은 새로운 개념미술과도 같았다. 창조 그리고 생명, 양육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나에겐 미학적이고도 굉장히 기술적인 테크닉을 요하는 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면? 난 무엇을 가장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전시이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놀이터에 가서 그저 앉아 시간을 좀 때우고 그 다음엔 마트에 가서 이유식과 저녁 식사를 위한 재료를 구입한다. 커피숍에 가는 일은 최고의 유흥 이자 사치. 이 시기엔 똑같이 느끼는 것이 있다. 나 이외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주는데 아주 소질이 있어 보인다. 가령 소셜미디어에 모 큐레이터가 새로운 전시를 통해 자기 소질을 증명해 내거나, 알던 모 작가가 수상을 받고 해외 레지던스로 옮겨 자신을 증명한다. 이땐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나도 한때 그런 재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2022년부터 서서히 소행성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스스로의 물음에서 ‘강한 엄마가 되었으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생긴다. 부재는 새로운 도약이다. 나는 나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내 역할이 무엇이 되었든.
나에겐 글을 쓰는 일 또한 아주 중요하다.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그들을 증명해 간다면 큐레이터는 전시뿐만 아니라 글로 많은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 (물론 글 말고도 다양한 일들로 자신들의 행적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 많은 문장들로 다른 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휘저어야 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작가의 삶과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애정하는 책에서 읽은 문구에서 위로 받는다. “모성과 커리어는 서로를 보완하고 성장시키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다. 당신은 일에 관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와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향한 자유를 열망한다.” [1] 세상의 모든 것은 지고 나서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세상의 진리다. 정처 없이 헤매고, 부러워하고, 당황했고, 외로웠던 순간을 뒤로하고 지금을 이겨낸다. 우울을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희망적이지 않아도 나의 견고한 힘을 믿는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내게 엄마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이 있어보인다며 격려하곤 한다. 엄마라는 낙인이 두려워 엄마가 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엄마가 된 많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큐레이터이길 원한다. 그리고 엄마가 된 예술계 많은 이들과 함께 동행하고 연대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 낸 미술과 담론 문화센터 일명 <미담문센> * 아이와 동행은 필수다.
*미담문센*
- 서로 둘러앉아 아이의 언어, 몸짓, 손짓 행동을 포착해 아이와 엄마를 둘러싼 모든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가지기
-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탐색과 함께, 먹고 소화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의 소통하기
- 엄마가 된 후 신체 및 감정 변화에 관해 이야기 해보기
-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예술계의 경력 단절의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문제점과 실현 할 수 있는 활동 나누기
- 소리에 민감한 아이들과 함께 예술 즐기기, 라디오 극장
- 맛있는 이유식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한 엄마들을 위한 후원 모임
이 아이디어를 곧 실현할 곳을 찾아본다. 현실은 잠깐 전시를 돕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말이다. 한동안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울컥해지는 것들을 뒤로하고 이 작은 예술 소행성에 그림자 같은 흔적을 흐릿하게 나마 남기기 위해.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 일하러 다녀올게”
Carmen Winant in her Columbus, Ohio, studio with her sons, Carlo, 2, and Rafa, 2 months. Photo: Luke Stettner
Carmen Winant’s My Birth (detail), 2018. Site-specific installation of found images, tape. The Museum of Modern Art.Photo: Kurt Heumiller / © 2018 Carmen Winant
이번 호 글과 함께 한 이미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카르멘 위넌트(Carmen Winant, 1983 ~) 작품으로 출산의 경험을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칩니다.
[1] 김다은, 『자아, 예술가, 엄마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팩토리, p 177
2023.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