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 개인전 <Close-up!>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비평매칭
표면 위로 올라온 표면 아래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우리를 찾아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찾아 나서지 않아도 내 앞을 찾아오는 풍경이 있다. 선택되는 이미지들은 주체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김소라가 그린 이번 전시의 작업 소재들은 분명 그에 의해 선택되었다. 이 선택을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김소라 앞을 찾아가는 풍경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내는 흔적일 때가 많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실이 섞인 이미지가 그를 찾아갈 때, 김소라는 그 밀도와 질감으로 그 풍경이 말하는 것들을 드러내곤 했다. 이번 전시의 작업을 통해 본 그를 찾아간 이미지들은 이전 작업 속 풍경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표면 너머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가 표면 위로 슬며시 올라왔을 때, 그 역행은 의외일 수 있다. 버려진 공간의 뜯기고 바래고 퇴색된 표면이 가지는 미美라면 더더욱. 깊이를 담고자 직접적인 깊이를 의식하지 않은 작업의 흐름은 그 선후先後를 생각하게 한다. 너머의 깊이가 드러나 담긴 표면을 그린 김소라의 이번 회화 작업은 질감의 무게감이 가벼워지고, 많은 이야기로 들어차 빽빽하던 밀도 역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깊이의 강요를 벗어난 홀가분함으로 무장한 기법들은 한결 솔직해졌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표현대로 소외된 풍경 속에서 포착한 다양한 표면들을 회화로 기록한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최대한 덜어내고 그곳의 다양한 표면과 색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역설적으로 왜 그 장소인지, 왜 그 장소에서도 낡은 벽면과 뜯긴 사물(오브제)들이 주인공이 되었는지 표면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김소라의 표면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그만의 ‘소외된 풍경’을 언급하여야 한다. 풍경 안에서 시간이 남긴 흔적들을 지속적으로 좇아온 그는 이 흔적들이 어느새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고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김소라는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지나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속 시각에서 배제되어 잘 보이지 않는 낡은 흔적 안에서 발견한 표면의 모양을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 선보인다.
김소라의 지난 작업을 살펴보면, 포괄적이던 주제를 개인과 관련된 주제로 범위를 좁히며 경험하지 않은 장소들에서 본인과 관련된 장소로 옮겨갔다. 작업 초기에는 체르노빌과 같은 역사적인 장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히는 과정들을 유화의 물성을 통해 더욱 강조하고자 하였다. 2018년부터는 부곡 하와이처럼 사라진 장소의 흔적들로 시선을 옮긴다. 어릴 적 부모님,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갔던 부곡 하와이가 2017년 폐장한다는 소식에 다시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회화로 옮기며 소외된 장소를 기록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할머니 집 또한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며, 과거의 기억 속 모습과 현재 변화된 새로운 모습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껴 감정을 담은 질감 표현에 집중했다. 이렇게 김소라는 오랜 기간 봐온 것들이 자신과 점차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주시하였다. <빈_자리>(2018)에서도 기억을 기록하지 않으면 완전히 그 세상이 없어질 것 같은 감정의 동요를 캔버스 화면에 빈틈없이 채워 나갔다. 동요를 표현한 물감의 질감들은 자연스레 소용돌이치듯 한 모양새를 이루고 두터운 무게감을 지닌다. 이는 작업 안에 자신의 감정을 밀접하게 담으며 먼 사건이 아닌 곁에 있어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이번 작업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선다.
장소에서 장소의 표면으로, 감정의 질감에서 표면의 질감으로.
<Close-up!> 전시의 작업은 표면마다 다르게 지니는 질감을 작가 본인의 미적 감각에 의지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내밀한 시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물론 이 시도에 화면 구성에 대한 조형 연구가 포함되는 것은 기본 전제다. 구상적인 기법에서 추상적인 기법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김소라 작업의 주요 소재인 소외된 풍경과 그곳에서 발견된 사물들을 찍은 사진을 확대하고 발견한 조형 요소들을 묘사하면서, 캔버스 안에서 실물의 비율을 변경하고 풍경의 구성을 캔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바꾸는 과정은 포착한 이미지의 변형과 재가공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된 화면 구성은 작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소재의 편편함이 살아 있는 <교차점>(2023)은 삼각형을 이루는 건축물의 지붕 부분의 선을 한정된 화면 안에서 가능한 만큼 확장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김소라는 2022년 전시 <모서리 위 파편들은>에서도 캔버스 안에 그린 것들의 실제를 캔버스 바깥에 같이 설치함으로써 캔버스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시도를 해왔다. 포스터와 공지물들을 부착하는 테이프의 낡은 흔적들을 화면 안에 리얼하게 그리고, 그려낸 것들의 진짜들을 전시장 벽면에 부착하였다. 이 경계는 그 화-면의 면이 그대로(실물과 다르지 않게 그려내고, 그려낸 것과 동일한 것을 설치함으로써) 화면 밖으로 이어지도록 의도하였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2022년의 작업과 2023년의 작업이 겹쳐 보이는 것은 캔버스 안팎의 구성과 캔버스 안에서의 구성이라는 차이를 고려해도 경계를 긋지 않고 경계를 지우면서 소재의 확장을 이루려는 김소라의 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김소라에게 캔버스 안 소재들은 단순히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캔버스에서 살아 숨 쉬는 대상이다. 이 대상을 이루는 면의 크기와 선의 길이가 작가에 의해 캔버스 안에서 자라는 것은 경계 안팎에서 대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도 같다.
예술 작품의 인지적 효과는 작가에 의해 제시된 예술적 요소들의 조합 방식과 패턴에 의한다. 세계를 범주화하고 조직하는 화가의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만났던, 만나는, 만나게 될 어떤 것들과의 유사성과 대조성을 생각하게 하고 가르쳐 준다. 그렇게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미적 효과는 우리에게 미적 가치를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그렸나, 어떻게 그렸나 같은 질문에 김소라는 거칠 것 없이 작업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각 캔버스 위에 드러난 개별적인 표면들이 가지는(혹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질감의 성격들을 마주한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가 미적 효과에 의한 미적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그렇다면 미적 효과를 만드는 조형 요소를 선택하는 김소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를 알 수 있는 작은 실마리는 이번 전시의 작업이 정방형의 캔버스 작품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100x100cm, 140x140cm, 200x200cm 크기의 캔버스 위에 표면을 그려내었다. 정방형의 화면들이 개별로, 또는 함께 픽셀처럼 모이고 흩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의도하였다. 사진을 확대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기하학적 요소들과 경쾌한 색감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픽셀 게임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김소라의 말은 그의 작업이 기억과 무관하지 않으며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두 개의 뿔>, <Zero-Sum>(2023)과 같은 장면이 연출된 이유는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 만지작거리던 게임기 혹은 게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기억 조각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Butterfly>, <Snowwall>(2023) 속 벽면에 나타난 형태는 나비의 모습와 눈이 내리는 풍경이 연상된다. 무색무취의 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내가 있더라는 어느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객관적인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벽의 겉면에서 발견한 형태들이 작가 자신과 그의 기억이 투영된 형상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작가가 포착한 형태들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표면 위를 그리면서도 여전히 표면 아래의 영향 아래 있음을 우리도 작가도 깨닫는다.
관리되지 않아 근거 없이 벗겨진 페인트칠의 모양새나 언젠가는 반듯하게 붙어 있었을 포스터가 너덜너덜해지고 아무렇게나 뜯겨 있는 형태에서 미적 가치를 찾는 작업은 그 이미지에 내재된 내용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빛을 잃어 퇴색한 지난 시간의 흔적들 틈바구니에서 찾아낸 꿈틀거리는 조형적인 생명들은 마치 꽉 쥐고 있어 미처 보지 못했던 손안의 아름다운(그러나 계속해서 변하는) 손금과도 같다.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하게 낡아버린 것들의 풍경이 김소라에게는 아름다워 보여 캔버스 위로 옮겼다는 접근법에 대해서만 논하기에는 그 시각에 숨겨진 미적 가치가 생산해 내는 색다른 질문들이 중요해 보인다. 이번 작업들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말하고자 영역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고 소재의 위치를 제거한다. 다시 말해 부동의 것을 움직이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늘려간다. 그리하여 확장에 확장을 꾀하며 고유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굳어진 자신의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기법에 변화를 주는 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김소라는 표면과 표면이 그려진 캔버스를 탈위치화시키며 작가 스스로도 탈범주화하고자 한다.
2023.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김소라 개인전 <Close-up!>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비평매칭
표면 위로 올라온 표면 아래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우리를 찾아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찾아 나서지 않아도 내 앞을 찾아오는 풍경이 있다. 선택되는 이미지들은 주체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김소라가 그린 이번 전시의 작업 소재들은 분명 그에 의해 선택되었다. 이 선택을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김소라 앞을 찾아가는 풍경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내는 흔적일 때가 많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실이 섞인 이미지가 그를 찾아갈 때, 김소라는 그 밀도와 질감으로 그 풍경이 말하는 것들을 드러내곤 했다. 이번 전시의 작업을 통해 본 그를 찾아간 이미지들은 이전 작업 속 풍경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표면 너머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가 표면 위로 슬며시 올라왔을 때, 그 역행은 의외일 수 있다. 버려진 공간의 뜯기고 바래고 퇴색된 표면이 가지는 미美라면 더더욱. 깊이를 담고자 직접적인 깊이를 의식하지 않은 작업의 흐름은 그 선후先後를 생각하게 한다. 너머의 깊이가 드러나 담긴 표면을 그린 김소라의 이번 회화 작업은 질감의 무게감이 가벼워지고, 많은 이야기로 들어차 빽빽하던 밀도 역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깊이의 강요를 벗어난 홀가분함으로 무장한 기법들은 한결 솔직해졌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표현대로 소외된 풍경 속에서 포착한 다양한 표면들을 회화로 기록한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최대한 덜어내고 그곳의 다양한 표면과 색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역설적으로 왜 그 장소인지, 왜 그 장소에서도 낡은 벽면과 뜯긴 사물(오브제)들이 주인공이 되었는지 표면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김소라의 표면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그만의 ‘소외된 풍경’을 언급하여야 한다. 풍경 안에서 시간이 남긴 흔적들을 지속적으로 좇아온 그는 이 흔적들이 어느새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고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김소라는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지나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속 시각에서 배제되어 잘 보이지 않는 낡은 흔적 안에서 발견한 표면의 모양을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 선보인다.
김소라의 지난 작업을 살펴보면, 포괄적이던 주제를 개인과 관련된 주제로 범위를 좁히며 경험하지 않은 장소들에서 본인과 관련된 장소로 옮겨갔다. 작업 초기에는 체르노빌과 같은 역사적인 장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히는 과정들을 유화의 물성을 통해 더욱 강조하고자 하였다. 2018년부터는 부곡 하와이처럼 사라진 장소의 흔적들로 시선을 옮긴다. 어릴 적 부모님,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갔던 부곡 하와이가 2017년 폐장한다는 소식에 다시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회화로 옮기며 소외된 장소를 기록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할머니 집 또한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며, 과거의 기억 속 모습과 현재 변화된 새로운 모습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껴 감정을 담은 질감 표현에 집중했다. 이렇게 김소라는 오랜 기간 봐온 것들이 자신과 점차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주시하였다. <빈_자리>(2018)에서도 기억을 기록하지 않으면 완전히 그 세상이 없어질 것 같은 감정의 동요를 캔버스 화면에 빈틈없이 채워 나갔다. 동요를 표현한 물감의 질감들은 자연스레 소용돌이치듯 한 모양새를 이루고 두터운 무게감을 지닌다. 이는 작업 안에 자신의 감정을 밀접하게 담으며 먼 사건이 아닌 곁에 있어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이번 작업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선다.
장소에서 장소의 표면으로, 감정의 질감에서 표면의 질감으로.
<Close-up!> 전시의 작업은 표면마다 다르게 지니는 질감을 작가 본인의 미적 감각에 의지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내밀한 시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물론 이 시도에 화면 구성에 대한 조형 연구가 포함되는 것은 기본 전제다. 구상적인 기법에서 추상적인 기법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김소라 작업의 주요 소재인 소외된 풍경과 그곳에서 발견된 사물들을 찍은 사진을 확대하고 발견한 조형 요소들을 묘사하면서, 캔버스 안에서 실물의 비율을 변경하고 풍경의 구성을 캔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바꾸는 과정은 포착한 이미지의 변형과 재가공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된 화면 구성은 작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소재의 편편함이 살아 있는 <교차점>(2023)은 삼각형을 이루는 건축물의 지붕 부분의 선을 한정된 화면 안에서 가능한 만큼 확장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김소라는 2022년 전시 <모서리 위 파편들은>에서도 캔버스 안에 그린 것들의 실제를 캔버스 바깥에 같이 설치함으로써 캔버스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시도를 해왔다. 포스터와 공지물들을 부착하는 테이프의 낡은 흔적들을 화면 안에 리얼하게 그리고, 그려낸 것들의 진짜들을 전시장 벽면에 부착하였다. 이 경계는 그 화-면의 면이 그대로(실물과 다르지 않게 그려내고, 그려낸 것과 동일한 것을 설치함으로써) 화면 밖으로 이어지도록 의도하였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2022년의 작업과 2023년의 작업이 겹쳐 보이는 것은 캔버스 안팎의 구성과 캔버스 안에서의 구성이라는 차이를 고려해도 경계를 긋지 않고 경계를 지우면서 소재의 확장을 이루려는 김소라의 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김소라에게 캔버스 안 소재들은 단순히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캔버스에서 살아 숨 쉬는 대상이다. 이 대상을 이루는 면의 크기와 선의 길이가 작가에 의해 캔버스 안에서 자라는 것은 경계 안팎에서 대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도 같다.
예술 작품의 인지적 효과는 작가에 의해 제시된 예술적 요소들의 조합 방식과 패턴에 의한다. 세계를 범주화하고 조직하는 화가의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만났던, 만나는, 만나게 될 어떤 것들과의 유사성과 대조성을 생각하게 하고 가르쳐 준다. 그렇게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미적 효과는 우리에게 미적 가치를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그렸나, 어떻게 그렸나 같은 질문에 김소라는 거칠 것 없이 작업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각 캔버스 위에 드러난 개별적인 표면들이 가지는(혹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질감의 성격들을 마주한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가 미적 효과에 의한 미적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그렇다면 미적 효과를 만드는 조형 요소를 선택하는 김소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를 알 수 있는 작은 실마리는 이번 전시의 작업이 정방형의 캔버스 작품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100x100cm, 140x140cm, 200x200cm 크기의 캔버스 위에 표면을 그려내었다. 정방형의 화면들이 개별로, 또는 함께 픽셀처럼 모이고 흩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의도하였다. 사진을 확대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기하학적 요소들과 경쾌한 색감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픽셀 게임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김소라의 말은 그의 작업이 기억과 무관하지 않으며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두 개의 뿔>, <Zero-Sum>(2023)과 같은 장면이 연출된 이유는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 만지작거리던 게임기 혹은 게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기억 조각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Butterfly>, <Snowwall>(2023) 속 벽면에 나타난 형태는 나비의 모습와 눈이 내리는 풍경이 연상된다. 무색무취의 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내가 있더라는 어느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객관적인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벽의 겉면에서 발견한 형태들이 작가 자신과 그의 기억이 투영된 형상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작가가 포착한 형태들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표면 위를 그리면서도 여전히 표면 아래의 영향 아래 있음을 우리도 작가도 깨닫는다.
관리되지 않아 근거 없이 벗겨진 페인트칠의 모양새나 언젠가는 반듯하게 붙어 있었을 포스터가 너덜너덜해지고 아무렇게나 뜯겨 있는 형태에서 미적 가치를 찾는 작업은 그 이미지에 내재된 내용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빛을 잃어 퇴색한 지난 시간의 흔적들 틈바구니에서 찾아낸 꿈틀거리는 조형적인 생명들은 마치 꽉 쥐고 있어 미처 보지 못했던 손안의 아름다운(그러나 계속해서 변하는) 손금과도 같다.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하게 낡아버린 것들의 풍경이 김소라에게는 아름다워 보여 캔버스 위로 옮겼다는 접근법에 대해서만 논하기에는 그 시각에 숨겨진 미적 가치가 생산해 내는 색다른 질문들이 중요해 보인다. 이번 작업들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말하고자 영역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고 소재의 위치를 제거한다. 다시 말해 부동의 것을 움직이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늘려간다. 그리하여 확장에 확장을 꾀하며 고유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굳어진 자신의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기법에 변화를 주는 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김소라는 표면과 표면이 그려진 캔버스를 탈위치화시키며 작가 스스로도 탈범주화하고자 한다.
2023.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