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양아티스트 365 평론
문화영의 데이터
:빙하의 모양과 밀랍의 형태 그리고 자라는 씨앗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이 작업의 시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빛이다.
빙하가 녹아 작은 얼음이 되고, 얼음이 돌이 되어 바람에 닿아 바스러지는 과정에서 형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침묵의 소리>(2023)는 추상 회화 속 이미지처럼 보이는 것들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영상 작업이다. 한 눈에 이 형상들이 어떤 모양의 어느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모양을 지녔던 것들-예를 들어 한 조각의 얼음은 꾸물대며 다른 형질을 지닌 모양으로 계속해서 옮겨간다. 부분과 전체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의 내용은 서로가 얽혀있는 시점을 더욱 혼돈에 빠뜨린다. 혼돈에 대한 답은 전시 공간의 가운데에 놓인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2023)>에 이르러 마주한다.
<침묵의 소리>는 문화영이 지각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이다. 자유롭게 전시장에 들어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을 보게 되는 관객은 일련의 순서보다는 형상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형상에 집중하다 보면 순간에 존재하는 모양의 특질을 살펴보게 되고, 형상이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담긴 시간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이 작업의 시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빛이다. 종소리와 함께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빛의 위치가 움직인다. 그림자로 드리워진 세계에 나타나 움직이는 빛은 어둠과 그 역할이 역전되어 보인다. 몇 번의 은유를 거듭하여 도출되었을 이 방식은 순간 속에서 똑. 딱. 똑. 딱. 흐르는 초 단위의 시간을 초현실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이 고요한 체험을 이루게 하는 힘은 영상 화면 안의 이미지의 움직임과 섬세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운드 트랙이다. 문화영의 소리는 이미지보다 추리하기가 쉬운데, 수집한 소리들을 가공한 것들이기에 기록의 성격을 띠며, 시간과 기억에 의한 왜곡의 과정에 덜 노출된다.
예술가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느끼는 것들을 세상을 인식하는 데이터로 가져온다. 이는 작가가 지각하는 세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에 의하며, 문화영은 이 전시에서 자신이 느끼고 지각하는 세계에 대한 데이터로 자신이 만난 사물과 자신의 기록을 취한다. 시간의 흐름은 사물의 모양을 움직여 본래의 모습을 탈피하게 한다. 이를 말하고자 작가는 형태의 유기적인 변형을 의도한다. 두 개의 영상을 합쳐 선보인 <기록 작업 :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것에 대하여>(2016) 작업은 먼저 각각의 사물들을 3D 스캔을 하여 객관적인 모양을 보여준다. 그가 여행한 모로코에서 만난 사물들-일기장, 수집한 터키석, 엔틱 펜던트는 실제의 모습과 작가의 기억에서 변화한 모습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몸과 마음 안에서 변화를 거친 새로운 모양을 갖는다. 그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 일기장의 텍스트는 기억의 잔재를 추적하는 도구이다. 문화영은 자신의 망각 속에 숨어있던 사실들에서 기억의 시간성을 찾아냈다. 예술가의 시간에 관한 작업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화영이 제시하는 사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는지를 지켜보며 그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하는 것을 새롭게 느낀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헤매며 잃어버린 지난 기억을 그의 시간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한다. 영상에서 이미지가 변하는 것은 기억이 변하여 망각하는 과정을 나타내며, 단위의 시간을 강조한 듯한 바람 소리가 담긴 사운드는 이것이 시간에 의한 것임을 말한다.
전시장에서 자라는 씨앗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2023)는 벽돌의 형태를 한 밀랍이 둥글게 쌓아 올려진 것으로 전시장 가운데 공간에 놓여 있다. 밀랍 사이사이 막 자라기 시작한 풀이 삐죽 올라와 있다. 식물이 자라려면 토양과 바람, 공기, 그리고 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매일 물을 주며 키워온 전시장 안의 식물들은 전시가 끝나면 넓디넓은 자연으로 돌아가 부서뜨린 밀랍과 함께 자연스레 자연으로 흡수될 예정이다. 문화영은 이 작업을 위해 인공 재료를 쓰지 않으면서도 단단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 그것이 밀랍이다. 필자는 이 설치 작업이 우물의 형태로 쌓아 올린 것이라 느꼈고, 어떤 이는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밀랍 안에 천연 비료를 담아 씨앗을 심어 놓고 전시가 시작되었다. 전시 중반에 이르니 씨앗은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 문화영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 관심이 많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순환의 연결고리가 무한함을 연상시킨다. 그 순환의 시스템이 가지는 시간성은 문화영의 모든 작업-영상, 설치, 사운드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경험하고 지각하는 것들이 자연적인 순환 구조 속의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되뇌는 것처럼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전시의 텍스트와 조형,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움직임은 자연의 형상으로 나타난 순환의 시간에 관하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2023.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3 고양아티스트 365 평론
문화영의 데이터
:빙하의 모양과 밀랍의 형태 그리고 자라는 씨앗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이 작업의 시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빛이다.
빙하가 녹아 작은 얼음이 되고, 얼음이 돌이 되어 바람에 닿아 바스러지는 과정에서 형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침묵의 소리>(2023)는 추상 회화 속 이미지처럼 보이는 것들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영상 작업이다. 한 눈에 이 형상들이 어떤 모양의 어느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모양을 지녔던 것들-예를 들어 한 조각의 얼음은 꾸물대며 다른 형질을 지닌 모양으로 계속해서 옮겨간다. 부분과 전체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의 내용은 서로가 얽혀있는 시점을 더욱 혼돈에 빠뜨린다. 혼돈에 대한 답은 전시 공간의 가운데에 놓인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2023)>에 이르러 마주한다.
<침묵의 소리>는 문화영이 지각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이다. 자유롭게 전시장에 들어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을 보게 되는 관객은 일련의 순서보다는 형상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형상에 집중하다 보면 순간에 존재하는 모양의 특질을 살펴보게 되고, 형상이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담긴 시간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이 작업의 시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빛이다. 종소리와 함께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빛의 위치가 움직인다. 그림자로 드리워진 세계에 나타나 움직이는 빛은 어둠과 그 역할이 역전되어 보인다. 몇 번의 은유를 거듭하여 도출되었을 이 방식은 순간 속에서 똑. 딱. 똑. 딱. 흐르는 초 단위의 시간을 초현실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이 고요한 체험을 이루게 하는 힘은 영상 화면 안의 이미지의 움직임과 섬세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운드 트랙이다. 문화영의 소리는 이미지보다 추리하기가 쉬운데, 수집한 소리들을 가공한 것들이기에 기록의 성격을 띠며, 시간과 기억에 의한 왜곡의 과정에 덜 노출된다.
예술가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느끼는 것들을 세상을 인식하는 데이터로 가져온다. 이는 작가가 지각하는 세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에 의하며, 문화영은 이 전시에서 자신이 느끼고 지각하는 세계에 대한 데이터로 자신이 만난 사물과 자신의 기록을 취한다. 시간의 흐름은 사물의 모양을 움직여 본래의 모습을 탈피하게 한다. 이를 말하고자 작가는 형태의 유기적인 변형을 의도한다. 두 개의 영상을 합쳐 선보인 <기록 작업 :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것에 대하여>(2016) 작업은 먼저 각각의 사물들을 3D 스캔을 하여 객관적인 모양을 보여준다. 그가 여행한 모로코에서 만난 사물들-일기장, 수집한 터키석, 엔틱 펜던트는 실제의 모습과 작가의 기억에서 변화한 모습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몸과 마음 안에서 변화를 거친 새로운 모양을 갖는다. 그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 일기장의 텍스트는 기억의 잔재를 추적하는 도구이다. 문화영은 자신의 망각 속에 숨어있던 사실들에서 기억의 시간성을 찾아냈다. 예술가의 시간에 관한 작업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화영이 제시하는 사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는지를 지켜보며 그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하는 것을 새롭게 느낀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헤매며 잃어버린 지난 기억을 그의 시간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한다. 영상에서 이미지가 변하는 것은 기억이 변하여 망각하는 과정을 나타내며, 단위의 시간을 강조한 듯한 바람 소리가 담긴 사운드는 이것이 시간에 의한 것임을 말한다.
전시장에서 자라는 씨앗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2023)는 벽돌의 형태를 한 밀랍이 둥글게 쌓아 올려진 것으로 전시장 가운데 공간에 놓여 있다. 밀랍 사이사이 막 자라기 시작한 풀이 삐죽 올라와 있다. 식물이 자라려면 토양과 바람, 공기, 그리고 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매일 물을 주며 키워온 전시장 안의 식물들은 전시가 끝나면 넓디넓은 자연으로 돌아가 부서뜨린 밀랍과 함께 자연스레 자연으로 흡수될 예정이다. 문화영은 이 작업을 위해 인공 재료를 쓰지 않으면서도 단단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 그것이 밀랍이다. 필자는 이 설치 작업이 우물의 형태로 쌓아 올린 것이라 느꼈고, 어떤 이는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밀랍 안에 천연 비료를 담아 씨앗을 심어 놓고 전시가 시작되었다. 전시 중반에 이르니 씨앗은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 문화영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 관심이 많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순환의 연결고리가 무한함을 연상시킨다. 그 순환의 시스템이 가지는 시간성은 문화영의 모든 작업-영상, 설치, 사운드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경험하고 지각하는 것들이 자연적인 순환 구조 속의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되뇌는 것처럼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전시의 텍스트와 조형,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움직임은 자연의 형상으로 나타난 순환의 시간에 관하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2023.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