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서리풀 아트갤러리 2023 기획전 《회화 유니버스》
완충재 압수, 유예의 종말
Shock absorbers were confiscated, Grace period has passed away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벽이 필요 없다, 회화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은 거 말고, 합판이랑 석고보드로 짠 벽면이.
도전적인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오히려 회화의 현주소를 절로 되짚는 전시이다.
전시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는 ‘미술씬 진단’이다. 문외한에게 이런 전시는 대개 ‘그들만의 리그’스럽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신선함을 공급해야, 열린 논의가 가능하고 판이 커진다. 그래서 본 전시는 진단에서 한 발짝 더 디뎌, 떠오르는 유망한 회화 작가를 대거 소개한다. 지난 5년간 서리풀 갤러리를 거친 청년작가들 가운데 엄선해 선보이는 일종의 올스타전이다.
김영주_CRASH!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_2023
전시 구성은 순차적이며, 시야와 동선 면에 일부 강제성을 띤다. 3개 파트 내 각 섹션은 열세 작가 각자가 전담해 꾸민다. 아이디어도 하고 싶은 것도 에너지도 넘치는 그들이 이런 기획과 만났다면 얌전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 각 섹션의 구성은 도전적이다 못해 가끔은 ‘어디까지 회화인가?’ 떠올릴 수밖에 없을 만치 현란하다. 나뭇결을 살려 만든 지지대는 캔버스의 독립심에 불을 지핀다. 늘 벽에 기대어 살았던 과거가 무색하게 반수 이상의 평면 작업이 홀로서기를 뽐낸다. 캔버스 자체가 동선을 유도하는 기물이다. 때론 몇 폭이 서로 경첩을 끼고 병풍처럼 늘어선다. 금속 판에 그려 바닥 어름이나 동선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운다.
김효진_전시 전경
김효진_전시 전경
김영주는, 개별 작업의 모음이면서도 이산가족처럼 서로 찢을 없는 속성(=총체성)을 직관적으로 내보인다. 각 작업은 다른 작업의 틈새나 그림자나 시선과 맞닿고 겹치며 비로소 완결된 이미지로 우뚝 선다. 실체, 실물로서의 물리적 상호 관계와 내용 혹은 목적으로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구분/분리될 수 없음을 관객은 목도한다. 목조 프레임의 일부를 좌대처럼 활용하거나, 조형 수단이나 도구였던 목판 조각들이 캔버스 위에 토핑처럼 내려앉으며 그 자체로 형상이 된다. ㄱ자로 꺾여 우뚝 선 패널 앞뒤로 페인팅과 LED 작업이 공존하는 장하윤의 <저 너머> 시리즈는 어쩌면, ‘회화적 요소가 있다’라고 칭하는 게 더 낫겠다. 벽과 바닥, 그림 사이를 마음대로 가로지르는 이지연의 테이프 드로잉 위로 오가는 관객들의 발자국이 찍힌다. 형형색색의 직선을 밟고 서면, 숫제 ‘매체 말고, 형상도 일종의 실물인가?’ 싶다. 전시의 선봉장을 맡은 임윤묵의 <Spectator>(2019)는 아홉 피스 캔버스를 잇대어 유화 물감으로 그려낸 평이한(?) 페인팅이다. 그런데, 여러 피스가 단일한 장면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건 그림이야!’를 일깨우듯 우하단 마지막 피스를 덜어다 구석에 덩그러니 홀로 던져둔다. 게다가 우상단과 좌하단, 즉 3번과 7번 피스는 여느 피스와 마찬가지로 피땀 흘려 그린, 단일한 회화 작업의 동등한 구성원이건만 관객 눈에는 내용적으로 사실상 ‘별것 없는 텅 빈’, 온통 흰 피스이다. 현실은 균일하지만 동등하지 않고, 회화는 동등하지만 균일하지 않음에서 양자의 차이를 문득 깨닫는다. 레진과 아크릴 채색을 CT처럼 층층이 목함 속에 쌓아 채운 신형록의 <군어유영>(2023)은 지극히 회화적인 과정과 공예에 가까운 결과물 사이의 괴리로, 보는 이의 정신이 유영하게 한다.
신형록_군어유영_resin, acrylic on wood_2023
신형록_전시 전경
이지연_전시 전경
DP든 작업이든, 휘몰아치는 연출 배틀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전시장이라기보단 숫제 경연장이 떠오른다. 젊은 회화 작가들은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매력적이다. 몸부림친다. 쥐어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으니까. 경연이 나쁘지만은 않다. 살아남은 작가들은, 잘 보여주기에 빠져 동기와 맥락, 조형 논리, 작업 얼개, 시각적 구성을 놓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 빠지면 그냥 자빠지는 서든 데스이니까.
심지어 접촉사고의 위험도 가장 크다. 회화에서 촉발한, 혹은 벗어난 다른 형식의 조형은, 형식 그 자체가 하나의 특성이다. 반면 회화는 상대적으로 기본적, 중립적인 형식이며 시각적으로 겹칠 위험도 가장 크다. ‘이미 다 나왔다’고들 하지 않나. 선배들이 써먹은 나머지를 찾아 자기화해야 하는데, 그 빈칸이 얼마나 남았을는지 의문이다. 이제 ‘회화니까’, ‘회화라서’는 통하지 않는다. 완충재 압수. 낭만과 유예는 종말을 고한다. 내가 요즘 회화를, ‘회화’라기보단 차라리 ‘회화 베이스의 작업’이라 일컫는 이유이다.
임윤묵_Spectator_oil on canvas_273x219cm_2019
장하윤_전시 전경
2023.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예술의 전당 서리풀 아트갤러리 2023 기획전 《회화 유니버스》
완충재 압수, 유예의 종말
Shock absorbers were confiscated, Grace period has passed away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벽이 필요 없다, 회화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은 거 말고, 합판이랑 석고보드로 짠 벽면이.
도전적인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오히려 회화의 현주소를 절로 되짚는 전시이다.
전시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는 ‘미술씬 진단’이다. 문외한에게 이런 전시는 대개 ‘그들만의 리그’스럽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신선함을 공급해야, 열린 논의가 가능하고 판이 커진다. 그래서 본 전시는 진단에서 한 발짝 더 디뎌, 떠오르는 유망한 회화 작가를 대거 소개한다. 지난 5년간 서리풀 갤러리를 거친 청년작가들 가운데 엄선해 선보이는 일종의 올스타전이다.
김영주_CRASH!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_2023
전시 구성은 순차적이며, 시야와 동선 면에 일부 강제성을 띤다. 3개 파트 내 각 섹션은 열세 작가 각자가 전담해 꾸민다. 아이디어도 하고 싶은 것도 에너지도 넘치는 그들이 이런 기획과 만났다면 얌전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 각 섹션의 구성은 도전적이다 못해 가끔은 ‘어디까지 회화인가?’ 떠올릴 수밖에 없을 만치 현란하다. 나뭇결을 살려 만든 지지대는 캔버스의 독립심에 불을 지핀다. 늘 벽에 기대어 살았던 과거가 무색하게 반수 이상의 평면 작업이 홀로서기를 뽐낸다. 캔버스 자체가 동선을 유도하는 기물이다. 때론 몇 폭이 서로 경첩을 끼고 병풍처럼 늘어선다. 금속 판에 그려 바닥 어름이나 동선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운다.
김효진_전시 전경
김효진_전시 전경
김영주는, 개별 작업의 모음이면서도 이산가족처럼 서로 찢을 없는 속성(=총체성)을 직관적으로 내보인다. 각 작업은 다른 작업의 틈새나 그림자나 시선과 맞닿고 겹치며 비로소 완결된 이미지로 우뚝 선다. 실체, 실물로서의 물리적 상호 관계와 내용 혹은 목적으로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구분/분리될 수 없음을 관객은 목도한다. 목조 프레임의 일부를 좌대처럼 활용하거나, 조형 수단이나 도구였던 목판 조각들이 캔버스 위에 토핑처럼 내려앉으며 그 자체로 형상이 된다. ㄱ자로 꺾여 우뚝 선 패널 앞뒤로 페인팅과 LED 작업이 공존하는 장하윤의 <저 너머> 시리즈는 어쩌면, ‘회화적 요소가 있다’라고 칭하는 게 더 낫겠다. 벽과 바닥, 그림 사이를 마음대로 가로지르는 이지연의 테이프 드로잉 위로 오가는 관객들의 발자국이 찍힌다. 형형색색의 직선을 밟고 서면, 숫제 ‘매체 말고, 형상도 일종의 실물인가?’ 싶다. 전시의 선봉장을 맡은 임윤묵의 <Spectator>(2019)는 아홉 피스 캔버스를 잇대어 유화 물감으로 그려낸 평이한(?) 페인팅이다. 그런데, 여러 피스가 단일한 장면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건 그림이야!’를 일깨우듯 우하단 마지막 피스를 덜어다 구석에 덩그러니 홀로 던져둔다. 게다가 우상단과 좌하단, 즉 3번과 7번 피스는 여느 피스와 마찬가지로 피땀 흘려 그린, 단일한 회화 작업의 동등한 구성원이건만 관객 눈에는 내용적으로 사실상 ‘별것 없는 텅 빈’, 온통 흰 피스이다. 현실은 균일하지만 동등하지 않고, 회화는 동등하지만 균일하지 않음에서 양자의 차이를 문득 깨닫는다. 레진과 아크릴 채색을 CT처럼 층층이 목함 속에 쌓아 채운 신형록의 <군어유영>(2023)은 지극히 회화적인 과정과 공예에 가까운 결과물 사이의 괴리로, 보는 이의 정신이 유영하게 한다.
신형록_군어유영_resin, acrylic on wood_2023
신형록_전시 전경
이지연_전시 전경
DP든 작업이든, 휘몰아치는 연출 배틀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전시장이라기보단 숫제 경연장이 떠오른다. 젊은 회화 작가들은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매력적이다. 몸부림친다. 쥐어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으니까. 경연이 나쁘지만은 않다. 살아남은 작가들은, 잘 보여주기에 빠져 동기와 맥락, 조형 논리, 작업 얼개, 시각적 구성을 놓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 빠지면 그냥 자빠지는 서든 데스이니까.
심지어 접촉사고의 위험도 가장 크다. 회화에서 촉발한, 혹은 벗어난 다른 형식의 조형은, 형식 그 자체가 하나의 특성이다. 반면 회화는 상대적으로 기본적, 중립적인 형식이며 시각적으로 겹칠 위험도 가장 크다. ‘이미 다 나왔다’고들 하지 않나. 선배들이 써먹은 나머지를 찾아 자기화해야 하는데, 그 빈칸이 얼마나 남았을는지 의문이다. 이제 ‘회화니까’, ‘회화라서’는 통하지 않는다. 완충재 압수. 낭만과 유예는 종말을 고한다. 내가 요즘 회화를, ‘회화’라기보단 차라리 ‘회화 베이스의 작업’이라 일컫는 이유이다.
임윤묵_Spectator_oil on canvas_273x219cm_2019
장하윤_전시 전경
2023.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