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 13회》
을지로 인셉션
Euljiro Inception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어릴 적부터 내 입맛은 관대하지 않았다. 해 질 녘 노을빛에 허리춤까지 잠긴 부엌에서 엄마가 뚝뚝뚝 오이를 썰면, 비명을 지르며 코를 부여잡고 방으로 숨곤 했다. 수박은 수박바만 먹고, 김밥은 우엉 금지였으며, 복국에 담긴 미나리부터 건져냈다. 만두에 김치는 좋고, 김치만두는 싫었다. 땡감이 곶감 되도록 손도 대지 않아 호랑이가 힘들어했다. 덕분에 내가 거듭 손대는 무언가는 종종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안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까탈스러운 이 인간이 맛있다는 건. 언젠가 남동생이 그랬다. “형이 맛있다고 할 정도면, 확실히 누구나 좋아할 만한 거니까.” 특별히 혀가 섬세할 리는 없으니 그저 ‘호불호’에 모질고 박하다. 취향을 탈수록 감점인 셈. 지금도 들깨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민트 초코와 녹차 맛 아이스크림은 스푼까지 넉넉히 챙겨 양보한다. 김, 통깨, 깻잎, 고수 따위를 뿌린 음식도 멀리한다. 올리브유나 아보카도유는 새 프라이팬 닦을 때도 안 쓴다. 기준이 불분명하지만 대개 향이 강한 것들이다. 조연이 주연을 압도하는 꼴을 못 본다.
십여 년 전 대학원생 시절, 내 전공은 시각 디자인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다행히 날 무척 예뻐했다. 우선 동기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미술 분야의 주먹구구식 논문에 질린 교수님은 뭔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원했다. 이론적 토대와 이를 활용한 독자적 연구 모델, 실증적/정량적/정성적인 접근에 무척 목말라하며 미술이론을 전공한 제자를 찾던 차, 문득 내가 눈에 띈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림을 좀 그리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슬슬 포트폴리오나 쌓으며 말이다.
아무튼 난 연구장학생(R/A)으로 찍혀 교수님과 국가과제 연구를 하게 되었다. 학회에 등재할 소논문 외에도 교재를 포함한 각종 저서를 집필 중이었던 교수님에게 나는 그럭저럭 예리한 칼이었다. 무딘 티가 날 때면 가끔 밥이나 술을 사 칼날을 갈아주곤 했다.
그런데 군데군데 지랄맞은 내 입맛은, 없어서 못 드시는 교수님과 도통 맞질 않았다. 언젠가 지인의 식당을 전세 내고 동기 중 나와 내 동기 여학생, 딱 둘을 초대했다. 자연산 농어와 제철 전어를 그 자리에서 잡아, 연탄불에 직접 구워 주셨다. 친구분인 식당 주인은 내 다리만 한 농어를 회 떴다. 눈 달렸으면 누구나 빤히 보이는 정성을 거역할 수 없어, 베어 그릴스와 똑같은 표정으로 전어 한 마리를 가득 베어 물었다. 손바닥 반만 한 게 무슨 뼈가 이리도 많은지. 눈알은 또 왜 그렇게 생겼는지. 고소하다면서 어디가 대체 고소한지. 연탄불 맛을 찢고 스멀스멀 콧구멍을 찔러대는 비린내는 또 왜 이리 짙은지. 재차 권하는 교수님의 서슬에 몇 마리 우적우적 억지로 삼키는데 문득 눈물이 고였다. 정신이 혼미해 그만 의자를 굴리며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교수님은 얼른 일으켜 세우며 잘 썰어 놓은 두툼~한 농어 한 젓가락을 내 입에 밀어 넣으신다. “야, 천천히 먹어. 맛있다고 그렇게 욱여넣다 체해. 많으니까 더 먹어.” 물컹한 식감 너머로 물씬 들이닥치는 비릿한 흙내에 맞서, 마늘이 다 파묻히도록 쌈장을 찍어 삼킨다. 그 옆의 오이채까지 차마 손댈 순 없었다. 눈치 없이 활기차게 헤엄치는 수조 속 농어를 손짓하며 교수님이 윙크한다. “체면 차리지 말고 막 먹어. 쟤도 있으니까.”
“을지로 콜?” 힘겨운 식생활에 지칠 무렵 교수님의 연락. 길을 나서며 각오를 다진다. 혀야 힘내자. 굽이굽이 연탄 냄새 후미진 골목 어림에 푸르죽죽한 글씨로 내걸린 컴컴한 간판 ‘Beer Halle’. 맥주만 파리라 다짐하며 들어서자 교수님이 손을 흔든다.
“이걸 먹어야 해. 이거 먹으러 여기 오는 거야.”
디자이너 아니랄까 봐 선명하고 단호하게 두들기는 손끝에 가려진 글씨 ‘훈제 족발’. 수십 년째 원조 배틀 중인 ‘장충동 할매’들 손맛도 두루 본 바, 딱히 끌리지 않았다. 돼지 발이 맛있어봐야 뭐.
그날 난 두 접시를 해치웠다. 특이하게도 훈제이면서 냉족발이다. 살짝 차다. 그래서 얇게 썰어다 낸다. 박힌 분홍색 살코기를 따라 기름기가 거의 없는 매트한 고기 표면. 족발과 수제 햄에 한 발씩 담근 중성적인 비주얼이 뇌쇄적이다. 양은 인색한 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접시에 깔린 뼈를 대충 뜯으면 몇 점 없다. 별다른 소스나 고명도 없다. 다만 양념 부추 한 주먹을 함께 낸다. 이 부추가 또 특별하다. 은은하게 매콤한 가운데 살짝 남은 아삭한 풀기와 부추 풋내가 씹을수록 올라온다. 쪽파를 썰어 넣은 새우젓을 곁들이는데, 붉은 국물에 적신 하얀 잔새우가 모양새도 깔끔하다. 새콤달콤 상쾌하면서 끝이 쓰지 않고, 적당한 간이 기분 좋게 혀끝을 꼬집는다. 우선 얇게 켠 훈제 냉족발 한 점을, 넙데데한 사기 재질의 손바닥만 한 앞접시에 훤히 펼친다. 양념 부추 두어 줄기를 고명 놓듯 얹는다. 마무리로 쪽파를 품은 새우젓 한 꼬집을 족두리 씌우듯 올린다. 고기의 한쪽 끄트머리를 집어 다른 쪽과 맞닿게 감싼다. 그대로 말아 올려 주저 없이 통째로 와앙! 5초만 씹으면 갓난아이도 무심코 맥주잔을 거머쥘 만치 농후한 고소함에 뇌리가 아찔하다. 동서남북 골고루 혀를 후려치는 깊은 감칠맛에 마치 미뢰를 안마하는 기분도 밀려온다. 이미 시켜 둔 생맥주로 시원하게 한 모금 입가심이다. 족발 맛이란 게 사실, 서너 점이면 으레 견적이 나온다. 그냥 먹어 보고, 싸 먹고, 찍어 먹고, 다시 그냥 먹고. 듬직하면서 뻔한 맛이랄까? 반면, 이 냉족발은 온화한 훈제 향에 식감이 단단 야무지면서 간이 세지 않은 덕인지, 먹어도 먹어도 야금야금 또 들어간다. 도무지 물리지 않는다. 이 혀끝의 기적엔 사실 양념 부추의 공이 상당하다. 시험 삼아 한 줄기 집어삼킬 때 입속을 종횡무진 단독 드리블하는 부추의 신선함도 범상치 않지만, 냉족발과 새우젓의 눈부신 티키타카 끝에 터지는 현란한 맛의 골은 가히 스페인 국가대표팀급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합이 이렇게 중요하다. 맛도 맛인 만큼 이 부추의 몸값이 공짜일 순 없고, 따로 추가 가능하다.
나설 때마다 느끼는 또 한 가지, 시킨 게 별거 없어도, 카드가 생각보다 묵직하게 긁힌다. 맥주 탓이 크다. 여기 맥주가 특별하진 않아도 기본은 지킨다. 몇몇 외산 생맥주도 있지만 기본 생맥주만으로도 술술 넘어간다. 영수증을 구기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입맛 며칠 다시다 바보처럼 또 찾는 곳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들를 참이다. 티키타카 합심해 올해를 꾸린 내 새우젓과 부추 같은 사람들 잡아끌고 말이다. 족발 한 점 휘적이며, 이미 몇 번 한 듯하지만 한 번만 더 해야겠다. 교수님과 처음 온 이야기부터.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주간경향 《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 13회》
을지로 인셉션
Euljiro Inception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어릴 적부터 내 입맛은 관대하지 않았다. 해 질 녘 노을빛에 허리춤까지 잠긴 부엌에서 엄마가 뚝뚝뚝 오이를 썰면, 비명을 지르며 코를 부여잡고 방으로 숨곤 했다. 수박은 수박바만 먹고, 김밥은 우엉 금지였으며, 복국에 담긴 미나리부터 건져냈다. 만두에 김치는 좋고, 김치만두는 싫었다. 땡감이 곶감 되도록 손도 대지 않아 호랑이가 힘들어했다. 덕분에 내가 거듭 손대는 무언가는 종종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안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까탈스러운 이 인간이 맛있다는 건. 언젠가 남동생이 그랬다. “형이 맛있다고 할 정도면, 확실히 누구나 좋아할 만한 거니까.” 특별히 혀가 섬세할 리는 없으니 그저 ‘호불호’에 모질고 박하다. 취향을 탈수록 감점인 셈. 지금도 들깨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민트 초코와 녹차 맛 아이스크림은 스푼까지 넉넉히 챙겨 양보한다. 김, 통깨, 깻잎, 고수 따위를 뿌린 음식도 멀리한다. 올리브유나 아보카도유는 새 프라이팬 닦을 때도 안 쓴다. 기준이 불분명하지만 대개 향이 강한 것들이다. 조연이 주연을 압도하는 꼴을 못 본다.
십여 년 전 대학원생 시절, 내 전공은 시각 디자인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다행히 날 무척 예뻐했다. 우선 동기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미술 분야의 주먹구구식 논문에 질린 교수님은 뭔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원했다. 이론적 토대와 이를 활용한 독자적 연구 모델, 실증적/정량적/정성적인 접근에 무척 목말라하며 미술이론을 전공한 제자를 찾던 차, 문득 내가 눈에 띈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림을 좀 그리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슬슬 포트폴리오나 쌓으며 말이다.
아무튼 난 연구장학생(R/A)으로 찍혀 교수님과 국가과제 연구를 하게 되었다. 학회에 등재할 소논문 외에도 교재를 포함한 각종 저서를 집필 중이었던 교수님에게 나는 그럭저럭 예리한 칼이었다. 무딘 티가 날 때면 가끔 밥이나 술을 사 칼날을 갈아주곤 했다.
그런데 군데군데 지랄맞은 내 입맛은, 없어서 못 드시는 교수님과 도통 맞질 않았다. 언젠가 지인의 식당을 전세 내고 동기 중 나와 내 동기 여학생, 딱 둘을 초대했다. 자연산 농어와 제철 전어를 그 자리에서 잡아, 연탄불에 직접 구워 주셨다. 친구분인 식당 주인은 내 다리만 한 농어를 회 떴다. 눈 달렸으면 누구나 빤히 보이는 정성을 거역할 수 없어, 베어 그릴스와 똑같은 표정으로 전어 한 마리를 가득 베어 물었다. 손바닥 반만 한 게 무슨 뼈가 이리도 많은지. 눈알은 또 왜 그렇게 생겼는지. 고소하다면서 어디가 대체 고소한지. 연탄불 맛을 찢고 스멀스멀 콧구멍을 찔러대는 비린내는 또 왜 이리 짙은지. 재차 권하는 교수님의 서슬에 몇 마리 우적우적 억지로 삼키는데 문득 눈물이 고였다. 정신이 혼미해 그만 의자를 굴리며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교수님은 얼른 일으켜 세우며 잘 썰어 놓은 두툼~한 농어 한 젓가락을 내 입에 밀어 넣으신다. “야, 천천히 먹어. 맛있다고 그렇게 욱여넣다 체해. 많으니까 더 먹어.” 물컹한 식감 너머로 물씬 들이닥치는 비릿한 흙내에 맞서, 마늘이 다 파묻히도록 쌈장을 찍어 삼킨다. 그 옆의 오이채까지 차마 손댈 순 없었다. 눈치 없이 활기차게 헤엄치는 수조 속 농어를 손짓하며 교수님이 윙크한다. “체면 차리지 말고 막 먹어. 쟤도 있으니까.”
“을지로 콜?” 힘겨운 식생활에 지칠 무렵 교수님의 연락. 길을 나서며 각오를 다진다. 혀야 힘내자. 굽이굽이 연탄 냄새 후미진 골목 어림에 푸르죽죽한 글씨로 내걸린 컴컴한 간판 ‘Beer Halle’. 맥주만 파리라 다짐하며 들어서자 교수님이 손을 흔든다.
“이걸 먹어야 해. 이거 먹으러 여기 오는 거야.”
디자이너 아니랄까 봐 선명하고 단호하게 두들기는 손끝에 가려진 글씨 ‘훈제 족발’. 수십 년째 원조 배틀 중인 ‘장충동 할매’들 손맛도 두루 본 바, 딱히 끌리지 않았다. 돼지 발이 맛있어봐야 뭐.
그날 난 두 접시를 해치웠다. 특이하게도 훈제이면서 냉족발이다. 살짝 차다. 그래서 얇게 썰어다 낸다. 박힌 분홍색 살코기를 따라 기름기가 거의 없는 매트한 고기 표면. 족발과 수제 햄에 한 발씩 담근 중성적인 비주얼이 뇌쇄적이다. 양은 인색한 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접시에 깔린 뼈를 대충 뜯으면 몇 점 없다. 별다른 소스나 고명도 없다. 다만 양념 부추 한 주먹을 함께 낸다. 이 부추가 또 특별하다. 은은하게 매콤한 가운데 살짝 남은 아삭한 풀기와 부추 풋내가 씹을수록 올라온다. 쪽파를 썰어 넣은 새우젓을 곁들이는데, 붉은 국물에 적신 하얀 잔새우가 모양새도 깔끔하다. 새콤달콤 상쾌하면서 끝이 쓰지 않고, 적당한 간이 기분 좋게 혀끝을 꼬집는다. 우선 얇게 켠 훈제 냉족발 한 점을, 넙데데한 사기 재질의 손바닥만 한 앞접시에 훤히 펼친다. 양념 부추 두어 줄기를 고명 놓듯 얹는다. 마무리로 쪽파를 품은 새우젓 한 꼬집을 족두리 씌우듯 올린다. 고기의 한쪽 끄트머리를 집어 다른 쪽과 맞닿게 감싼다. 그대로 말아 올려 주저 없이 통째로 와앙! 5초만 씹으면 갓난아이도 무심코 맥주잔을 거머쥘 만치 농후한 고소함에 뇌리가 아찔하다. 동서남북 골고루 혀를 후려치는 깊은 감칠맛에 마치 미뢰를 안마하는 기분도 밀려온다. 이미 시켜 둔 생맥주로 시원하게 한 모금 입가심이다. 족발 맛이란 게 사실, 서너 점이면 으레 견적이 나온다. 그냥 먹어 보고, 싸 먹고, 찍어 먹고, 다시 그냥 먹고. 듬직하면서 뻔한 맛이랄까? 반면, 이 냉족발은 온화한 훈제 향에 식감이 단단 야무지면서 간이 세지 않은 덕인지, 먹어도 먹어도 야금야금 또 들어간다. 도무지 물리지 않는다. 이 혀끝의 기적엔 사실 양념 부추의 공이 상당하다. 시험 삼아 한 줄기 집어삼킬 때 입속을 종횡무진 단독 드리블하는 부추의 신선함도 범상치 않지만, 냉족발과 새우젓의 눈부신 티키타카 끝에 터지는 현란한 맛의 골은 가히 스페인 국가대표팀급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합이 이렇게 중요하다. 맛도 맛인 만큼 이 부추의 몸값이 공짜일 순 없고, 따로 추가 가능하다.
나설 때마다 느끼는 또 한 가지, 시킨 게 별거 없어도, 카드가 생각보다 묵직하게 긁힌다. 맥주 탓이 크다. 여기 맥주가 특별하진 않아도 기본은 지킨다. 몇몇 외산 생맥주도 있지만 기본 생맥주만으로도 술술 넘어간다. 영수증을 구기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입맛 며칠 다시다 바보처럼 또 찾는 곳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들를 참이다. 티키타카 합심해 올해를 꾸린 내 새우젓과 부추 같은 사람들 잡아끌고 말이다. 족발 한 점 휘적이며, 이미 몇 번 한 듯하지만 한 번만 더 해야겠다. 교수님과 처음 온 이야기부터.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