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조규빈_목적어 없는 일기_Single channel video_1min18sec-1
세계의 많은 선각자들에 의하여 우리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상을 인지하거나 이해하기 위해서 모르는 것을 애써 감추며 추상적인 개념어를 통해 안다고 포장하였고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지도 모르는 ‘현대사회’라는 시대에 떨어진 우리는 이러한 추상적 개념어들에 익숙해져,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기 힘든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모호한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복잡함, 바쁨, 다양성 따위의 부유하는 개념어들로 해석을 시도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풀어내기 위해 추상적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를 명징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선 선각자들이 그러했듯,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고찰해온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는 앞서 서술한 내용의 출발점이자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존재론적 질문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른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규빈 작가는 모른다는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모르는 상태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규정하지 않은 상태를 디폴트 값으로 지정하고, 모르는 것과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예술의 언어를 빌려 탐구한다. 조규빈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시리즈에서 어떠한 대상의 인상(얼굴)은 존재하지 않으며, 몇 가지 단서들만이 이미지를 부유하고 있다. 이 같은 구성을 통해 조규빈 작가는 우리가 대상을 인지하거나 판단함에 있어서 정합적이지 않은 불완전한 정보만을 활용한다는 것을 작업 속에 내포시키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위의 단서들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디지털 콜라주라는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발견한 정보들을 정합적 판단이 아닌, 증거품을 나열하였다가 재배열하여 단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디지털 콜라주의 형식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이미지들로써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을 유도한다.
조규빈_목적어 없는 일기_Single channel video_1min18sec-2
조규빈_아무도 아닌 사람_Single channel video_1min-1
조규빈_아무도 아닌 사람_Single channel video_1min-3
조규빈 작가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유추하기 힘든 추상적 형태가 아니라, 우리가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단서들로써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침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혹은 무엇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의 가능성이라는 열쇠를 쥐어줌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 세계를 ‘보편’이라는 뭉뚱그린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방식을 해제하고, 그 안에 있는 실제를 볼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즉 추상적 개념어로 구축된 세계의 보편성을 해체하여 추상화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은 실현되거나 실체화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조규빈 작가는 예술이라는 언어로 이를 서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만큼이나 추상적이고 가변적이기에 ‘보편’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어 설명할 수는 없다. 때문에 조규빈 작가는 규정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매체를 채택하여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보편성으로 ‘박제’되어 정지되어 있는 세계를 ‘목적어 없는 일기’를 통해 써내가는 이 작업은 어쩌면 어디에도 거주할 수 없이 끊임없이 배회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에 대한 고찰이지 않을까.
조규빈_얼굴 없는 풍경-박제_Single channel video_Loop animation-1
조규빈_얼굴 없는 풍경-박제_Single channel video_Loop animation-2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말할 수 없는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조규빈_목적어 없는 일기_Single channel video_1min18sec-1
세계의 많은 선각자들에 의하여 우리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상을 인지하거나 이해하기 위해서 모르는 것을 애써 감추며 추상적인 개념어를 통해 안다고 포장하였고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지도 모르는 ‘현대사회’라는 시대에 떨어진 우리는 이러한 추상적 개념어들에 익숙해져,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기 힘든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모호한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복잡함, 바쁨, 다양성 따위의 부유하는 개념어들로 해석을 시도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풀어내기 위해 추상적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를 명징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선 선각자들이 그러했듯,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고찰해온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는 앞서 서술한 내용의 출발점이자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존재론적 질문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른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규빈 작가는 모른다는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모르는 상태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규정하지 않은 상태를 디폴트 값으로 지정하고, 모르는 것과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예술의 언어를 빌려 탐구한다. 조규빈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시리즈에서 어떠한 대상의 인상(얼굴)은 존재하지 않으며, 몇 가지 단서들만이 이미지를 부유하고 있다. 이 같은 구성을 통해 조규빈 작가는 우리가 대상을 인지하거나 판단함에 있어서 정합적이지 않은 불완전한 정보만을 활용한다는 것을 작업 속에 내포시키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위의 단서들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디지털 콜라주라는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발견한 정보들을 정합적 판단이 아닌, 증거품을 나열하였다가 재배열하여 단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디지털 콜라주의 형식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이미지들로써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을 유도한다.
조규빈_목적어 없는 일기_Single channel video_1min18sec-2
조규빈_아무도 아닌 사람_Single channel video_1min-1
조규빈_아무도 아닌 사람_Single channel video_1min-3
조규빈 작가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유추하기 힘든 추상적 형태가 아니라, 우리가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단서들로써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침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혹은 무엇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의 가능성이라는 열쇠를 쥐어줌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 세계를 ‘보편’이라는 뭉뚱그린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방식을 해제하고, 그 안에 있는 실제를 볼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즉 추상적 개념어로 구축된 세계의 보편성을 해체하여 추상화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은 실현되거나 실체화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조규빈 작가는 예술이라는 언어로 이를 서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만큼이나 추상적이고 가변적이기에 ‘보편’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어 설명할 수는 없다. 때문에 조규빈 작가는 규정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매체를 채택하여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보편성으로 ‘박제’되어 정지되어 있는 세계를 ‘목적어 없는 일기’를 통해 써내가는 이 작업은 어쩌면 어디에도 거주할 수 없이 끊임없이 배회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에 대한 고찰이지 않을까.
조규빈_얼굴 없는 풍경-박제_Single channel video_Loop animation-1
조규빈_얼굴 없는 풍경-박제_Single channel video_Loop animation-2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