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23년 12월호 크리틱-전시리뷰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는 제의祭儀같은 전시이다. 사그라진 것들에 대한 추사追思의 열기가 전시장 가득하다. 전시는 예술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짚으며, 그 자연스러운 태동과 의식적인 성격,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토론과 답사, 시각 예술과 퍼포먼스로 뜨개질하듯 촘촘하게 엮는다. 이 모든 활동의 고리바늘은 한 권의 책, 김지하 시인의 <수왕사>이다. <수왕사>의 역사적 배경은 동학이다. 동학은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운동이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것은 예술의 동기이며, 변화무쌍한 예술사의 흐름과도 그 뜻이 통한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동학은 근원을 말한다. 이 전시는 새로운 것으로 향하고자 하는 것과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들이 순환의 고리처럼 얽혀 있다.
전시 제목이 물의 여왕이 아닌 <물의 왕>인 까닭을 살펴본다. 수왕사의 주인공 이수인에서부터 더듬는다. 전후 동학 모임 <수왕회>는 여성 리더 이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수는 물이요, 왕은 임금이다. 물은 만물을 만들고 품는다. 수왕회가 세운 새 세상의 주체는 아기들(현람玄覽), 여성(애월涯月)과 인민(민民)이고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새 역사의 내용은 현람성(玄覽性)과 애월성(涯月性)이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 전시가 여성성에 말하는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들어진 역사의 잣대로 성을 나누고 힘의 크기를 분별하는 현시대의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해월과 이수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장소이기도 한 두물머리는 이 전시를 상징적으로 아우른다. 모든 것이 만나 합하여진다.
전시 전경,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기획팀 이미지 제공
자하미술관 입구를 감싸며 펄럭이는 천에 쓰인 김남수 기획자의 ‘이수인 독트린’은 이 전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수인은 기존의 동학사상을 엄마 마음, 밥, 월경혈로 해석하여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마저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이에 따라 이 전시는 이 실현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과거에서 끄집어내어 현재 진행형의 역사로 만들어 낸다. 프로젝트와 전시를 꾸리며 새 시대를 논하고 세상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수왕사> 회독, 3차례에 걸친 동학 답사.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진행하며, 참여 작가와 연구자들은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동학과 이수인을 만난다.
움직임의 시각적 결과물들 혹은 출품작들은 작품의 내용과 이미지에 따른 기세가 조율되어 설치되었다. 전시는 수왕사-이수인-여성-근원-우주-환영-예술-사회-동학-새시대-수왕사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구성의 시작은 여성의 신체이다. 여성의 시간을 외화 된 신석기 시대의 소머리 모양에 비유한 권군의 조각 <소머리 나팔관>(2023)과 폐경 이후의 여성의 모습을 담은 홍이현숙의 영상 <장수탕 탕 탕-버렸던 장면들>(2023)로 새 시대로 향하는 포문을 열면, 조영진의 <이수인의 초상>(2023)이 주인공의 비극을 담아 수왕사를 언급하고, 최중낙의 <해인도>(2023)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초상에 형형한 기운을 불어넣어 동학을 상기시킨다. 날개의 <이.마음.고이.노님 안심묘연.安心妙衍>(2023)은 김지하 시인에게로 향한다. <수왕水王>과 <묘연妙衍>를 문자로 형상화한 작품은 비선형적 시간관과 자기회귀의 생명관, 우로보로스, 고대 여성 상위의 남녀 평등관을 반지에 빗대 묘연-오묘한 물 가득 고인 연못을 설명하던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 전경,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기획팀 이미지 제공
차진엽 「원형하는 몸 빙 Being 氷」 2023, 퍼포먼스, 30분
정정호의 <돌과 기억>(2021)은 전설이 깃든 바위 사진으로 한국 무속 신앙인 마고할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희미해진 창조신의 위상을 되새긴다. 그 옆에 걸린 이순종의 <E-man>(2005)은 성전환한 여성이 자궁이 살아있는 남성으로서 아이를 잉태하였던 모습을 그려내어 젠더가 하나였을지 모르는 태초를 표현한다. 영원의 과거를 되뇌는 사이 환희의 폭포가 상승하는 모습으로 월경혈이 연상되는 이희명의 <붉은 섬>(2015-2017)을 마주하며 몸의 우주성이 깃든 또 다른 세계를 눈으로 체험한다. 지현아의 <COATLICUE STATES>(2023)가 그 우주의 환영을 이어간다. 코아틀리쿠에는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작품의 도상은 음문의 모양과 함께 고대 여성 신과 다산을 연상시키고 이수인이라는 인물에 결속되었던 지현아의 고백은 작품에 주술과 환영이라는 내러티브를 더한다. 최선, 고현정의 작품은 사회와 예술의 연대를 찾고 임민욱의 영상은 모심을 발견하게 한다. 드넓은 바다, 자궁안처럼 아득한 물에서 고요히 부유하는 여성은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온 유산을 행위 한다. 이 모든 작품들은 1층 전시장 중앙의 정기현의 작품 <9개의 등걸>(2023)으로 매듭이 지어진다. 두물머리처럼 하나의 물줄기로 합하여지듯이 중앙에서 하나가 되어 순환한다.
아카이브 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시는 <수왕사>의 역사적 증명을 목표로 한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은 정승원이 기록하였으며 2층 전시장에 영상물로 볼 수 있다. 차진엽의 퍼포먼스 <원형하는 몸: 빙 Being 氷>과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발제-김종길 평론가의 <웅녀, 곰에서 우주여자로>, 양진호 철학자의 <수왕사를 접근하는 두가지 길>은 이번 전시가 시각적인 작품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밝힌다. 두 토론은 곰 샤먼과 사슴 샤먼, 웅녀 신화, 여신 문명과 도끼 문양을 다루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를 해석하며 문화의 맥락을 읽고자 하였다. 대립의 시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무엇으로부터 기반하는가. 삶에서 축적된 예술과 예술의 기술성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근원이자 포용의 공간인 나팔관과 자궁은 진정 어디에 있는가. 동학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한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지난 것들에서 찾을 수 있는 현 문명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라 느껴진다. 나아가고자 한다면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마치 <수왕사> 속 수왕회를 연상시키는 여러 차례의 모임과 그 내용은 희미해져 가는 예술의 본래 모습을 깨우친다. 사그라지고 사그라든 세상의 본질들이 레퍼런스가 되어 전시의 곁이 아닌 중심에 있다. 수운과 해월의 맥락, 여성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의 소뿔, 멕시코계 미국인 치카나 철학자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여신 삼위일체, 들뢰즈의 여성되기로서의 마조히즘, 신범순의 동화적 생명서판 등등 방대한 자료가 범람하는 이 전시는 어떠한 하나의 시각적인 산물보다 그 안의 이야기들로 사고를 깨우친다. 거기에 더한 전시의 전략은 수왕회와 이수인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관객에게 돌림으로써 어찌 되었든 이 활동에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환영처럼 뒤섞여, 그물에 걸린 관객은 빠져나갈 출구를 실타래를 풀 듯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다.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월간미술 2023년 12월호 크리틱-전시리뷰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정희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선임큐레이터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는 제의祭儀같은 전시이다. 사그라진 것들에 대한 추사追思의 열기가 전시장 가득하다. 전시는 예술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짚으며, 그 자연스러운 태동과 의식적인 성격,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토론과 답사, 시각 예술과 퍼포먼스로 뜨개질하듯 촘촘하게 엮는다. 이 모든 활동의 고리바늘은 한 권의 책, 김지하 시인의 <수왕사>이다. <수왕사>의 역사적 배경은 동학이다. 동학은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운동이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것은 예술의 동기이며, 변화무쌍한 예술사의 흐름과도 그 뜻이 통한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동학은 근원을 말한다. 이 전시는 새로운 것으로 향하고자 하는 것과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들이 순환의 고리처럼 얽혀 있다.
전시 제목이 물의 여왕이 아닌 <물의 왕>인 까닭을 살펴본다. 수왕사의 주인공 이수인에서부터 더듬는다. 전후 동학 모임 <수왕회>는 여성 리더 이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수는 물이요, 왕은 임금이다. 물은 만물을 만들고 품는다. 수왕회가 세운 새 세상의 주체는 아기들(현람玄覽), 여성(애월涯月)과 인민(민民)이고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새 역사의 내용은 현람성(玄覽性)과 애월성(涯月性)이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 전시가 여성성에 말하는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들어진 역사의 잣대로 성을 나누고 힘의 크기를 분별하는 현시대의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해월과 이수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장소이기도 한 두물머리는 이 전시를 상징적으로 아우른다. 모든 것이 만나 합하여진다.
전시 전경,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기획팀 이미지 제공
자하미술관 입구를 감싸며 펄럭이는 천에 쓰인 김남수 기획자의 ‘이수인 독트린’은 이 전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수인은 기존의 동학사상을 엄마 마음, 밥, 월경혈로 해석하여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마저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이에 따라 이 전시는 이 실현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과거에서 끄집어내어 현재 진행형의 역사로 만들어 낸다. 프로젝트와 전시를 꾸리며 새 시대를 논하고 세상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수왕사> 회독, 3차례에 걸친 동학 답사.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진행하며, 참여 작가와 연구자들은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동학과 이수인을 만난다.
움직임의 시각적 결과물들 혹은 출품작들은 작품의 내용과 이미지에 따른 기세가 조율되어 설치되었다. 전시는 수왕사-이수인-여성-근원-우주-환영-예술-사회-동학-새시대-수왕사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구성의 시작은 여성의 신체이다. 여성의 시간을 외화 된 신석기 시대의 소머리 모양에 비유한 권군의 조각 <소머리 나팔관>(2023)과 폐경 이후의 여성의 모습을 담은 홍이현숙의 영상 <장수탕 탕 탕-버렸던 장면들>(2023)로 새 시대로 향하는 포문을 열면, 조영진의 <이수인의 초상>(2023)이 주인공의 비극을 담아 수왕사를 언급하고, 최중낙의 <해인도>(2023)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초상에 형형한 기운을 불어넣어 동학을 상기시킨다. 날개의 <이.마음.고이.노님 안심묘연.安心妙衍>(2023)은 김지하 시인에게로 향한다. <수왕水王>과 <묘연妙衍>를 문자로 형상화한 작품은 비선형적 시간관과 자기회귀의 생명관, 우로보로스, 고대 여성 상위의 남녀 평등관을 반지에 빗대 묘연-오묘한 물 가득 고인 연못을 설명하던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 전경,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기획팀 이미지 제공
차진엽 「원형하는 몸 빙 Being 氷」 2023, 퍼포먼스, 30분
정정호의 <돌과 기억>(2021)은 전설이 깃든 바위 사진으로 한국 무속 신앙인 마고할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희미해진 창조신의 위상을 되새긴다. 그 옆에 걸린 이순종의 <E-man>(2005)은 성전환한 여성이 자궁이 살아있는 남성으로서 아이를 잉태하였던 모습을 그려내어 젠더가 하나였을지 모르는 태초를 표현한다. 영원의 과거를 되뇌는 사이 환희의 폭포가 상승하는 모습으로 월경혈이 연상되는 이희명의 <붉은 섬>(2015-2017)을 마주하며 몸의 우주성이 깃든 또 다른 세계를 눈으로 체험한다. 지현아의 <COATLICUE STATES>(2023)가 그 우주의 환영을 이어간다. 코아틀리쿠에는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작품의 도상은 음문의 모양과 함께 고대 여성 신과 다산을 연상시키고 이수인이라는 인물에 결속되었던 지현아의 고백은 작품에 주술과 환영이라는 내러티브를 더한다. 최선, 고현정의 작품은 사회와 예술의 연대를 찾고 임민욱의 영상은 모심을 발견하게 한다. 드넓은 바다, 자궁안처럼 아득한 물에서 고요히 부유하는 여성은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온 유산을 행위 한다. 이 모든 작품들은 1층 전시장 중앙의 정기현의 작품 <9개의 등걸>(2023)으로 매듭이 지어진다. 두물머리처럼 하나의 물줄기로 합하여지듯이 중앙에서 하나가 되어 순환한다.
아카이브 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시는 <수왕사>의 역사적 증명을 목표로 한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은 정승원이 기록하였으며 2층 전시장에 영상물로 볼 수 있다. 차진엽의 퍼포먼스 <원형하는 몸: 빙 Being 氷>과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발제-김종길 평론가의 <웅녀, 곰에서 우주여자로>, 양진호 철학자의 <수왕사를 접근하는 두가지 길>은 이번 전시가 시각적인 작품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밝힌다. 두 토론은 곰 샤먼과 사슴 샤먼, 웅녀 신화, 여신 문명과 도끼 문양을 다루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를 해석하며 문화의 맥락을 읽고자 하였다. 대립의 시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무엇으로부터 기반하는가. 삶에서 축적된 예술과 예술의 기술성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근원이자 포용의 공간인 나팔관과 자궁은 진정 어디에 있는가. 동학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한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지난 것들에서 찾을 수 있는 현 문명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라 느껴진다. 나아가고자 한다면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마치 <수왕사> 속 수왕회를 연상시키는 여러 차례의 모임과 그 내용은 희미해져 가는 예술의 본래 모습을 깨우친다. 사그라지고 사그라든 세상의 본질들이 레퍼런스가 되어 전시의 곁이 아닌 중심에 있다. 수운과 해월의 맥락, 여성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의 소뿔, 멕시코계 미국인 치카나 철학자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여신 삼위일체, 들뢰즈의 여성되기로서의 마조히즘, 신범순의 동화적 생명서판 등등 방대한 자료가 범람하는 이 전시는 어떠한 하나의 시각적인 산물보다 그 안의 이야기들로 사고를 깨우친다. 거기에 더한 전시의 전략은 수왕회와 이수인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관객에게 돌림으로써 어찌 되었든 이 활동에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환영처럼 뒤섞여, 그물에 걸린 관객은 빠져나갈 출구를 실타래를 풀 듯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다.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