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그래서 아름다운 것.
정재연
Jaeyeon Chung, Independent Curator (NYC-SEOUL)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가을을 마중 나온 서늘해진 바람, 그리고 띄엄띄엄 나뒹구는 나뭇잎까지, 드디어 뉴욕의 가을이 왔다. 역동에서 정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계절 탓인가.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예술계도 계절에 맞춰진 듯한 분위기다. 특히, 참여 작가의 약 90% 이상이 여성 작가였던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어 올해에도 여성 작가들의 전시가 눈에 띈다. 고요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여성 작가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미학이 나오면서 예술의 주제도 철학, 역사, 사회 관습이 예술 실천으로 확장됐다. 여성을 사회화 문화 속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탐구하는 일로 주제가 확산하였다.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개인전이 뉴뮤지엄(New Museum)에서 선보이고 있다. 60년 동안 이어온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텍스타일, 사진, 스테인드글라스, 자수 작업, 그리고 판화 작업까지 그의 인생을 총망라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페미니스트 여성주의, 환경과 재난, 출산과 창조, 남성성, 죽음 등의 주제로 각 시대에 맞는 예술 사조에 대한 실험정신을 작품에 쏟아부었다. 여성이자, 아내, 엄마 그리고 예술가로서 그가 참여한 예술 운동 속에서 페미니스트 방법론을 맥락화시켰고, 역사적 상황, 지리적 위치, 사회적 위치, 인종에 의해 이전에 인정받지 못한 모든 여성 예술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 예술가들이 가지는 미감적 이념은 ‘여성’이라는 인간성의 초 감성적 기체라고 할 수 있는 ‘모성애’의 경험이 예술적인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과 모성애는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에선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Once There was a Mother’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그가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쓴 짧은 텍스트로 구성한 책으로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와 같은 모성애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눈에 띈 것은 그가 모아온 천에 인쇄하고 직접 꿰매고 드로잉 한 작품들이다. 옷가지에 모유가 스민 것처럼 보이는 천에는 잉크가 스미고 배 속에 아이와 엄마가 연결된 작은 선이 종종 새 생명 탄생에 대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모성애’(motherhood)라는 감정이 보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함만이 있는 것이 아닌, 불안과 위태로운 복잡한 감정은 번져버린 물감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여성과 모성애는 보호와 양육의 상징이지만 자연도 마찬가지로 보호와 양육의 공간이다. 디아 첼시(Dia: Chelsea)에선 흙의 작가라고 불리는 콜롬비아 출신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 전시가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선 안데스와 아마존의 조상 문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문화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흙이 가진 생명력을 내뿜는 거대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을 흙의 습기와 냄새로 가득 채운다. 어떻게 이렇게 무겁고 거대한 흙더미를 전시장 안으로 가지고 왔을까? 마치 내가 식물이 된 것처럼 흙에서 흩날리는 말라버린 황금색 풀은 머리카락처럼 바람을 탄다.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쌓인 흙은 지구의 피부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떠나고 난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은 지구에 잠시 왔다 가는 것이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을 품어온 흙은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처럼.
Judy Chicago, Immolation(1972). © Judy Chicag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the artist
“Judy Chicago: Herstory,” 2023. Exhibition view: New Museum, New York. Courtesy New Museum. Photo: Dario Lasagni
Louise Bourgeois, THE PASSAGE, 2007, Digital print on fabric with fabric collage, 129.5 x 96.5 x 5.1 cm / 51 x 38 x 2 in,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Photo: Christopher Burke
Louise Bourgeois, I AM AFRAID, 2009, Woven fabric, mounted on a stretcher, 110.5 × 182.9 cm / 43 1/2 × 72 in,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Photo: Christopher Burke
Delcy Morelos, El abrazo (The Embrace, detail), 2023. Installation view, Dia Chelsea, New York, 2023. © Delcy Morelos. Photo: Don Stahl
말보로 뉴욕(Marlborough)에서는 멕시코 출신 로라 앤더슨 바바타(Laura Anderson Barbata)의 첫 개인전 ‘Singing Leaf’’ 이 지난 10월 28일에 끝났다. 30년 동안 작업한 그의 풍부하고 다양한 작업을 사진, 드로잉, 콜라주, 직물, 비디오, 조각, 설치 작품으로 선보였다. 1990년 초부터 앤더슨 바바타는 미국, 베네수엘라 아마존강 유역, 트리니다드 토바고, 멕시코와 노르웨이 지역에서 예술 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는 인종과 계급, 문화,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하게 이뤄지는 탈식민주의 여성주의를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서 이론적인 것이 아닌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들이다. 이 전시는 1992년에 시작된다. 그가 베네수엘라 아마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아메리카 원주민 야노마미(Yanomami), 예쿠아나(Ye’Kuana), 피아로아(Piaroa) 커뮤니티와 제지술(Papermaking)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야노마미 원주민들과 섬유와 염료로 만든 종이를 사용하여 제작된 원주민들의 공동 거주지 샤포노(Shapono)-1992년에 구상, 2001년에 완성-는 최초 탈식민주의 적인 야노마미 민족의 이야기로 야노마미 언어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수제 종이는 그의 예술 실천에 중심이고, 스토리텔링의 완전한 매체로 사용되고 있다.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작품 중 ‘Archive X’(1998, 2023 재설치)로 스페인어, 예쿠아나어, 야노마미어, 아슈아르어, 마야어, 케추아어로 번역된 신약성서 페이지들을 쌓아 대나무 구조물 위에 설치한 대형 설치 작품과 세네갈과 트리니아드 토바고 의상이었다. 또한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속칭 ‘유인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로 불렸던 멕시코 원주민 훌리아 파스트라나(Julia Pastrana)의 기구한 삶 이후 153년 만에 고국 멕시코로 돌아와 장례식을 하게 된 사건을 추적한다. 이 장례식은 로라 앤더슨 바바타의 주도로 이루어진 장례식이었다. 다양한 원주민들을 “라틴 아메리카”라는 지역에서 원주민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식민지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가 진정한 예술 실천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티나 킴 갤러리(Tinakim Gallery)에선 이집트 카이로 출신 가다 아메르(Ghada Amer)의 거대 청동 작품 ‘Paravent girl’을 뉴욕에서 처음 공개한다. 청동은 무겁고 견고하고 기념비적인 소재이지만,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을 병치해 강인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아메르는 몸, 젠더, 성 정체성에 대한 탐구에 대한 돌파구와 해방을 보여준다. 예술은 삶을 구하고 있는가, 속에서 끌어내는 여러 물음에서 작품의 꽃이 피어오른다.
Installation View, Photo: Olympia Shannon
303 Gallery 에선 물질과 에너지와 관계, 물리적 공간과 비물질적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스웨덴 출신 조각가 니나 카넬(Nina Canell)의 전시도 10월 말에 막을 내렸다. 2015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는 전통적 조각 개념을 확장하여 전기, 공기, 빛, 물, 케이블 등과 같은 비물질 적이거나 작은 물질이더라도 그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환경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일시적 현상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한다. 전시장 가운데 거대 롤러가 굴러가는데 가운데 작은 진주가 굴러간다. 롤러 사이를 따라 튕겨가는 작은 진주의 움직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진주를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또한 작은 유리 접시에 물을 담아 돌아가는 기계 위에 올려둔다. 접시 속 물은 아슬아슬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기계 위를 질주한다. 이처럼 물질의 성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의 시적이고 문학적인 시각언어로 평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에너지 변환 과정을 아름답게 가시화 했다. 결국 예술은 난감하게 놓인 고철 덩어리와 심리적 환기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덩어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차라리 조각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을. 지난 9월에 막을 내린 뉴뮤지엄에서 막을 내린 이미래 또한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 삶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와 아름다움, 젠더와 여성성에 관한 작품을 선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모터 기계와 글리세린, 실리콘, 점토, 호스가 뒤엉켜 혐오스럽지만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오염돼 보이는 물질과 고장 난 기계가 ‘새로운 (괴)생명체’를 탄생시켰고, 이내 자유로운 자아로 돌아왔다. 자유로운 자아로 돌아온 최종 종착지는 모성의 품 일지도 모른다. 이에 따른 한국(여성) 작가의 전시도 주목 받고 있다. 데이비드 즈워너 52 워커(52 Walker) 갤러리는 10월 8일까지 한국계 독일 사진작가 신혜지(Heji Shin) 의 개인전이 있었다. 상업과 예술 사진 경계를 넘나들며 성적인 묘사, 신생아 탄생의 순간, 동물과 인간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성에 대한 인식, 인간에 관습에 대하 도전하는 작품을 제작한다. “더 빅 누드”라는 제목은 패션 사진가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의 대표작에서 인용했다. 작가의 뇌를 MRI 스캔해 촬영한 사진과 바로 그 옆엔 돼지를 촬영한 연작을 병치 시켰다. 사진 속 돼지와 작가의 두뇌, 우리가 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감각적이고 경험하고 해석하는데 우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게 한다. 이어 2019년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쳤던 뉴욕에서 활동 중인 고캔디(Candy Koh)의 개인전 또한 10월 Space 776에서 펼쳐졌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자유로운 드로잉과 유연해진 색감, 충동적이면서 욕망을 표출하는 그의 작품이 인상 깊다.
현재 이어지고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실험미술전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까지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 전시가 선보이고 있다. -작품 선정과 전시의 퀄리티가 굉장히 만족스럽고 높아 곧 전시에 대한 리뷰를 다음 호에 작성할 예정이다- 또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Lineages: Korean Art at The Met’ 전시가 내년 10월까지 이어진다. 또한 뉴욕 비영리 기관 Tiger Strikes Asteroid New York(TSA NY)과 협력하여 이유성 작가의 개인전 ‘Epitaphs’가 막 막을 내렸다.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는 11월 10일부터 유영국 전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생 크리에이티브 ‘웰컴 컬렉티브(Wellcome Collective)’ 의 “Sarang” 기획전이 K-Town 에서 열린다. 이처럼 한국 미술이 순식간에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해가 지지 않는 뜨거운 여름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이 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의 슬픔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에 드리운 슬픔은 제거 되지 않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끔찍한 전쟁으로 잃은 소중한 생명을 애도 중인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어린 아이들과 희생된 모든 이들을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풍요로운, 그래서 아름다운 것.
정재연
Jaeyeon Chung, Independent Curator (NYC-SEOUL)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가을을 마중 나온 서늘해진 바람, 그리고 띄엄띄엄 나뒹구는 나뭇잎까지, 드디어 뉴욕의 가을이 왔다. 역동에서 정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계절 탓인가.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예술계도 계절에 맞춰진 듯한 분위기다. 특히, 참여 작가의 약 90% 이상이 여성 작가였던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어 올해에도 여성 작가들의 전시가 눈에 띈다. 고요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여성 작가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미학이 나오면서 예술의 주제도 철학, 역사, 사회 관습이 예술 실천으로 확장됐다. 여성을 사회화 문화 속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탐구하는 일로 주제가 확산하였다.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개인전이 뉴뮤지엄(New Museum)에서 선보이고 있다. 60년 동안 이어온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텍스타일, 사진, 스테인드글라스, 자수 작업, 그리고 판화 작업까지 그의 인생을 총망라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페미니스트 여성주의, 환경과 재난, 출산과 창조, 남성성, 죽음 등의 주제로 각 시대에 맞는 예술 사조에 대한 실험정신을 작품에 쏟아부었다. 여성이자, 아내, 엄마 그리고 예술가로서 그가 참여한 예술 운동 속에서 페미니스트 방법론을 맥락화시켰고, 역사적 상황, 지리적 위치, 사회적 위치, 인종에 의해 이전에 인정받지 못한 모든 여성 예술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 예술가들이 가지는 미감적 이념은 ‘여성’이라는 인간성의 초 감성적 기체라고 할 수 있는 ‘모성애’의 경험이 예술적인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과 모성애는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에선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Once There was a Mother’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그가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쓴 짧은 텍스트로 구성한 책으로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와 같은 모성애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눈에 띈 것은 그가 모아온 천에 인쇄하고 직접 꿰매고 드로잉 한 작품들이다. 옷가지에 모유가 스민 것처럼 보이는 천에는 잉크가 스미고 배 속에 아이와 엄마가 연결된 작은 선이 종종 새 생명 탄생에 대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모성애’(motherhood)라는 감정이 보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함만이 있는 것이 아닌, 불안과 위태로운 복잡한 감정은 번져버린 물감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여성과 모성애는 보호와 양육의 상징이지만 자연도 마찬가지로 보호와 양육의 공간이다. 디아 첼시(Dia: Chelsea)에선 흙의 작가라고 불리는 콜롬비아 출신 델시 모렐로스(Delcy Morelos) 전시가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선 안데스와 아마존의 조상 문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문화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흙이 가진 생명력을 내뿜는 거대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을 흙의 습기와 냄새로 가득 채운다. 어떻게 이렇게 무겁고 거대한 흙더미를 전시장 안으로 가지고 왔을까? 마치 내가 식물이 된 것처럼 흙에서 흩날리는 말라버린 황금색 풀은 머리카락처럼 바람을 탄다.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쌓인 흙은 지구의 피부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떠나고 난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은 지구에 잠시 왔다 가는 것이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을 품어온 흙은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처럼.
Judy Chicago, Immolation(1972). © Judy Chicag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the artist
“Judy Chicago: Herstory,” 2023. Exhibition view: New Museum, New York. Courtesy New Museum. Photo: Dario Lasagni
Louise Bourgeois, THE PASSAGE, 2007, Digital print on fabric with fabric collage, 129.5 x 96.5 x 5.1 cm / 51 x 38 x 2 in,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Photo: Christopher Burke
Louise Bourgeois, I AM AFRAID, 2009, Woven fabric, mounted on a stretcher, 110.5 × 182.9 cm / 43 1/2 × 72 in,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Photo: Christopher Burke
Delcy Morelos, El abrazo (The Embrace, detail), 2023. Installation view, Dia Chelsea, New York, 2023. © Delcy Morelos. Photo: Don Stahl
말보로 뉴욕(Marlborough)에서는 멕시코 출신 로라 앤더슨 바바타(Laura Anderson Barbata)의 첫 개인전 ‘Singing Leaf’’ 이 지난 10월 28일에 끝났다. 30년 동안 작업한 그의 풍부하고 다양한 작업을 사진, 드로잉, 콜라주, 직물, 비디오, 조각, 설치 작품으로 선보였다. 1990년 초부터 앤더슨 바바타는 미국, 베네수엘라 아마존강 유역, 트리니다드 토바고, 멕시코와 노르웨이 지역에서 예술 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는 인종과 계급, 문화,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하게 이뤄지는 탈식민주의 여성주의를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서 이론적인 것이 아닌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들이다. 이 전시는 1992년에 시작된다. 그가 베네수엘라 아마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아메리카 원주민 야노마미(Yanomami), 예쿠아나(Ye’Kuana), 피아로아(Piaroa) 커뮤니티와 제지술(Papermaking)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야노마미 원주민들과 섬유와 염료로 만든 종이를 사용하여 제작된 원주민들의 공동 거주지 샤포노(Shapono)-1992년에 구상, 2001년에 완성-는 최초 탈식민주의 적인 야노마미 민족의 이야기로 야노마미 언어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수제 종이는 그의 예술 실천에 중심이고, 스토리텔링의 완전한 매체로 사용되고 있다.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작품 중 ‘Archive X’(1998, 2023 재설치)로 스페인어, 예쿠아나어, 야노마미어, 아슈아르어, 마야어, 케추아어로 번역된 신약성서 페이지들을 쌓아 대나무 구조물 위에 설치한 대형 설치 작품과 세네갈과 트리니아드 토바고 의상이었다. 또한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속칭 ‘유인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로 불렸던 멕시코 원주민 훌리아 파스트라나(Julia Pastrana)의 기구한 삶 이후 153년 만에 고국 멕시코로 돌아와 장례식을 하게 된 사건을 추적한다. 이 장례식은 로라 앤더슨 바바타의 주도로 이루어진 장례식이었다. 다양한 원주민들을 “라틴 아메리카”라는 지역에서 원주민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식민지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가 진정한 예술 실천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티나 킴 갤러리(Tinakim Gallery)에선 이집트 카이로 출신 가다 아메르(Ghada Amer)의 거대 청동 작품 ‘Paravent girl’을 뉴욕에서 처음 공개한다. 청동은 무겁고 견고하고 기념비적인 소재이지만,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을 병치해 강인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아메르는 몸, 젠더, 성 정체성에 대한 탐구에 대한 돌파구와 해방을 보여준다. 예술은 삶을 구하고 있는가, 속에서 끌어내는 여러 물음에서 작품의 꽃이 피어오른다.
Installation View, Photo: Olympia Shannon
303 Gallery 에선 물질과 에너지와 관계, 물리적 공간과 비물질적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스웨덴 출신 조각가 니나 카넬(Nina Canell)의 전시도 10월 말에 막을 내렸다. 2015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는 전통적 조각 개념을 확장하여 전기, 공기, 빛, 물, 케이블 등과 같은 비물질 적이거나 작은 물질이더라도 그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환경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일시적 현상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한다. 전시장 가운데 거대 롤러가 굴러가는데 가운데 작은 진주가 굴러간다. 롤러 사이를 따라 튕겨가는 작은 진주의 움직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진주를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또한 작은 유리 접시에 물을 담아 돌아가는 기계 위에 올려둔다. 접시 속 물은 아슬아슬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기계 위를 질주한다. 이처럼 물질의 성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의 시적이고 문학적인 시각언어로 평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에너지 변환 과정을 아름답게 가시화 했다. 결국 예술은 난감하게 놓인 고철 덩어리와 심리적 환기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덩어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차라리 조각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을. 지난 9월에 막을 내린 뉴뮤지엄에서 막을 내린 이미래 또한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 삶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와 아름다움, 젠더와 여성성에 관한 작품을 선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모터 기계와 글리세린, 실리콘, 점토, 호스가 뒤엉켜 혐오스럽지만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오염돼 보이는 물질과 고장 난 기계가 ‘새로운 (괴)생명체’를 탄생시켰고, 이내 자유로운 자아로 돌아왔다. 자유로운 자아로 돌아온 최종 종착지는 모성의 품 일지도 모른다. 이에 따른 한국(여성) 작가의 전시도 주목 받고 있다. 데이비드 즈워너 52 워커(52 Walker) 갤러리는 10월 8일까지 한국계 독일 사진작가 신혜지(Heji Shin) 의 개인전이 있었다. 상업과 예술 사진 경계를 넘나들며 성적인 묘사, 신생아 탄생의 순간, 동물과 인간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성에 대한 인식, 인간에 관습에 대하 도전하는 작품을 제작한다. “더 빅 누드”라는 제목은 패션 사진가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의 대표작에서 인용했다. 작가의 뇌를 MRI 스캔해 촬영한 사진과 바로 그 옆엔 돼지를 촬영한 연작을 병치 시켰다. 사진 속 돼지와 작가의 두뇌, 우리가 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감각적이고 경험하고 해석하는데 우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게 한다. 이어 2019년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쳤던 뉴욕에서 활동 중인 고캔디(Candy Koh)의 개인전 또한 10월 Space 776에서 펼쳐졌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자유로운 드로잉과 유연해진 색감, 충동적이면서 욕망을 표출하는 그의 작품이 인상 깊다.
현재 이어지고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실험미술전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까지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 전시가 선보이고 있다. -작품 선정과 전시의 퀄리티가 굉장히 만족스럽고 높아 곧 전시에 대한 리뷰를 다음 호에 작성할 예정이다- 또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Lineages: Korean Art at The Met’ 전시가 내년 10월까지 이어진다. 또한 뉴욕 비영리 기관 Tiger Strikes Asteroid New York(TSA NY)과 협력하여 이유성 작가의 개인전 ‘Epitaphs’가 막 막을 내렸다.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는 11월 10일부터 유영국 전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생 크리에이티브 ‘웰컴 컬렉티브(Wellcome Collective)’ 의 “Sarang” 기획전이 K-Town 에서 열린다. 이처럼 한국 미술이 순식간에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해가 지지 않는 뜨거운 여름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이 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의 슬픔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에 드리운 슬픔은 제거 되지 않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끔찍한 전쟁으로 잃은 소중한 생명을 애도 중인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어린 아이들과 희생된 모든 이들을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2023.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3,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