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라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창밖을 보라.”
유명한 캐롤의 첫 구절이다.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아이들이 썰매를 타며 뛰노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곤 곧 해가 지고 오색찬란한 빛이 거리를 수놓고 있는 풍경을 묘사하며, 창밖으로의 초대로 노래는 끝이 난다. 잠시 살펴보면,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창(window)은 안과 밖을 구분하여 분리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이를 기준으로 청자는 ‘안’에 있는 존재로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청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관조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창밖의 조명과 사건들이 그를 초대함으로써 관조자의 역할은 탈락되게 된다. 이제 청자는 감시(관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밖으로 나가야한다.
신준민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창밖의 초대에 의해 도시를 거니는 산책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말한 산책자와 같이 목적 없이 배회하며 도시의 면면을 관찰하던 작가는 ‘동물원(달성공원)’, ‘야구장’, ‘산책로’ 등의 흥미로운 장소를 마주했고, 이를 기반으로 그 장소성을 드러내는 내러티브를 그려내었다. 다시 말해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이고 사회적(개인적)인 의미를 산책자 혹은 관찰자로서 이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신준민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주요하게 관통한 주제가 ‘일상’이었고, ‘보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과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작업의 숨겨놓은(hidden) 주제로 기능하며 작품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했다.
2023 신준민 개인전 <New light> 전경
하지만 신준민 작가의 신작은 이러한 일상성과 장소성을 제거하고, 보다 근본적인 ‘빛’이라는 매개를 두고 ‘위치성’ 그리고 ‘불완전성’과 ‘가변성’에 대한 주제를 작업으로 드러낸다. 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전혀 다른 주제로의 이행이 아닌,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도출된 주제이다. 신준민 작가의 이전 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소가 ‘빛’인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 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 이렇듯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토대로 이어진 새로운 탐구 영역이 바로 ‘빛’이었다.
신준민 작가의 개인전 《NEW LIGHT》는 다양한 형태의 ‘빛’을 회화적 실험으로 풀어낸다. 환언하자면, 작가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형상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가변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위치’는 일반적인 좌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창’의 존재로부터 기인되는 지점을 안과 밖으로 설정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창’을 기준하는 이유는 신준민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부터 근거하는데, 창안에서 마주하는 빛과 창밖에서 조우한 빛은 각각의 성질이 다른 특성으로 구분하고 있고, 이는 각각의 빛이 상이한 내러티브와 메타포를 담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먼저 창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빛을 서술하자면, 몇 개의 작은 창이 공간의 벽면에 자리하고 있다. 창은 불투명한 유리로 안과 밖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고, 창밖의 빛들이 발산되어 창을 비출 때면 균질하지 못한 유리의 표면이 빛을 산화시켜 묘한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마주한 작은 창의 풍경은 어느 것도 재현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만이 남는다. 그리고 작가는 그 너머에 있는 빛을 조명하고자 창밖으로 향했고, 그곳에 존재하고 있던 빛은 외려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써 작가를 환대하였다. 작가와 마주하며, 주인이자 손님이 된 빛은 더욱 확장되어 잔상만이 가득한 추상적 이미지를 작가와 공유하였다.
이제 이 두 형태의 추상적 이미지는 신준민 작가의 손을 거쳐 기시적 대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빛(이미지)’으로 환원된다. 일반적으로 빛을 그린다는 것은 어떠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신준민 작가가 그려내는 두 가지 빛은 실제 너머에 있는, 개별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대상을 지시한다. 즉 관객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근거하는 대상들을 자극하며 개별적 이미지로 재구성을 시도한다. 간단하게 풀어내자면, 불투명한 창에 의해 산화되어 드러나는 이미지는 모호한 감각과 기억 저편에 있는 아련한 무언가를 자극하고, 직접적으로 빛과 조우한 강렬한 이미지는 인상 깊었던 경험과 근거하여 각인처럼 남아있는 기억의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여기서 관객이 소환하게 되는 감각적 기억은 작가로부터 기인되는 것이 아닌, 관객 스스로에게서 기인되는 자신에게로의 초대이며 방문이다.
2023 신준민 개인전 <New light> 전경
다감각적인 기억의 초대(방문)는 우리가 세계를 인지함에 있어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형태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세계의 단면을 작은 창인 책(기록)이나 회화, 조각 등의 매체로 인지해왔고, 지금은 모니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세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세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각과 인식에서 나타나는 불완전성을 우리는 늘 의심하고 있었고, 불명확하고 가변적인 정보들의 출처를 분명하게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기저가 개별적 감각으로부터 비롯하는 것과 어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거대 진리’를 더 이상 추종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대상의 가변성과 우연성 그리고 돌발성을 포괄하는 ‘개별적 진리’를 탐구하며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지점을 신준민 작가는 ‘빛’이라는 이미지와 ‘창’이라는 개념으로써 풀어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동시대에 있어 ‘빛’은 하나의 정보이자 관계(상호소통)를 상징하게 되었고, 이것은 ‘창(모니터)’을 통해 세계의 사건들과 정보들을 직간접적으로 개인과 이웃시킬 수 있음에서 기인되었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숨겨놓은 신준민 작가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빛’과 ‘창’의 개념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건과 정보들에 개입하고(혹은 이를 상징하고), 각각의 관객에게서 도출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매개로, 개인적 감각으로부터 개별적 진리로의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작가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이 여정에 있어 도출된 정보들이 불완전하거나 가변적인 것일지라도 이것은 작가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이 초대의 발신은 ‘빛’으로부터 왔기에. 이에 신준민 작가는 빛으로부터 받은 초대장을 다시 우리에게 전달한다. 초대장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창밖을 보라.”
2024.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창밖을 보라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창밖을 보라.”
유명한 캐롤의 첫 구절이다.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아이들이 썰매를 타며 뛰노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곤 곧 해가 지고 오색찬란한 빛이 거리를 수놓고 있는 풍경을 묘사하며, 창밖으로의 초대로 노래는 끝이 난다. 잠시 살펴보면,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창(window)은 안과 밖을 구분하여 분리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이를 기준으로 청자는 ‘안’에 있는 존재로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청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관조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창밖의 조명과 사건들이 그를 초대함으로써 관조자의 역할은 탈락되게 된다. 이제 청자는 감시(관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밖으로 나가야한다.
신준민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창밖의 초대에 의해 도시를 거니는 산책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말한 산책자와 같이 목적 없이 배회하며 도시의 면면을 관찰하던 작가는 ‘동물원(달성공원)’, ‘야구장’, ‘산책로’ 등의 흥미로운 장소를 마주했고, 이를 기반으로 그 장소성을 드러내는 내러티브를 그려내었다. 다시 말해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이고 사회적(개인적)인 의미를 산책자 혹은 관찰자로서 이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신준민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주요하게 관통한 주제가 ‘일상’이었고, ‘보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과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작업의 숨겨놓은(hidden) 주제로 기능하며 작품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했다.
2023 신준민 개인전 <New light> 전경
하지만 신준민 작가의 신작은 이러한 일상성과 장소성을 제거하고, 보다 근본적인 ‘빛’이라는 매개를 두고 ‘위치성’ 그리고 ‘불완전성’과 ‘가변성’에 대한 주제를 작업으로 드러낸다. 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전혀 다른 주제로의 이행이 아닌,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도출된 주제이다. 신준민 작가의 이전 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소가 ‘빛’인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 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 이렇듯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토대로 이어진 새로운 탐구 영역이 바로 ‘빛’이었다.
신준민 작가의 개인전 《NEW LIGHT》는 다양한 형태의 ‘빛’을 회화적 실험으로 풀어낸다. 환언하자면, 작가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형상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가변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위치’는 일반적인 좌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창’의 존재로부터 기인되는 지점을 안과 밖으로 설정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창’을 기준하는 이유는 신준민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부터 근거하는데, 창안에서 마주하는 빛과 창밖에서 조우한 빛은 각각의 성질이 다른 특성으로 구분하고 있고, 이는 각각의 빛이 상이한 내러티브와 메타포를 담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먼저 창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빛을 서술하자면, 몇 개의 작은 창이 공간의 벽면에 자리하고 있다. 창은 불투명한 유리로 안과 밖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고, 창밖의 빛들이 발산되어 창을 비출 때면 균질하지 못한 유리의 표면이 빛을 산화시켜 묘한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마주한 작은 창의 풍경은 어느 것도 재현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만이 남는다. 그리고 작가는 그 너머에 있는 빛을 조명하고자 창밖으로 향했고, 그곳에 존재하고 있던 빛은 외려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써 작가를 환대하였다. 작가와 마주하며, 주인이자 손님이 된 빛은 더욱 확장되어 잔상만이 가득한 추상적 이미지를 작가와 공유하였다.
이제 이 두 형태의 추상적 이미지는 신준민 작가의 손을 거쳐 기시적 대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빛(이미지)’으로 환원된다. 일반적으로 빛을 그린다는 것은 어떠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신준민 작가가 그려내는 두 가지 빛은 실제 너머에 있는, 개별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대상을 지시한다. 즉 관객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근거하는 대상들을 자극하며 개별적 이미지로 재구성을 시도한다. 간단하게 풀어내자면, 불투명한 창에 의해 산화되어 드러나는 이미지는 모호한 감각과 기억 저편에 있는 아련한 무언가를 자극하고, 직접적으로 빛과 조우한 강렬한 이미지는 인상 깊었던 경험과 근거하여 각인처럼 남아있는 기억의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여기서 관객이 소환하게 되는 감각적 기억은 작가로부터 기인되는 것이 아닌, 관객 스스로에게서 기인되는 자신에게로의 초대이며 방문이다.
2023 신준민 개인전 <New light> 전경
다감각적인 기억의 초대(방문)는 우리가 세계를 인지함에 있어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형태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세계의 단면을 작은 창인 책(기록)이나 회화, 조각 등의 매체로 인지해왔고, 지금은 모니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세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세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각과 인식에서 나타나는 불완전성을 우리는 늘 의심하고 있었고, 불명확하고 가변적인 정보들의 출처를 분명하게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기저가 개별적 감각으로부터 비롯하는 것과 어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거대 진리’를 더 이상 추종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대상의 가변성과 우연성 그리고 돌발성을 포괄하는 ‘개별적 진리’를 탐구하며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지점을 신준민 작가는 ‘빛’이라는 이미지와 ‘창’이라는 개념으로써 풀어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동시대에 있어 ‘빛’은 하나의 정보이자 관계(상호소통)를 상징하게 되었고, 이것은 ‘창(모니터)’을 통해 세계의 사건들과 정보들을 직간접적으로 개인과 이웃시킬 수 있음에서 기인되었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숨겨놓은 신준민 작가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빛’과 ‘창’의 개념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건과 정보들에 개입하고(혹은 이를 상징하고), 각각의 관객에게서 도출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매개로, 개인적 감각으로부터 개별적 진리로의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작가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이 여정에 있어 도출된 정보들이 불완전하거나 가변적인 것일지라도 이것은 작가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이 초대의 발신은 ‘빛’으로부터 왔기에. 이에 신준민 작가는 빛으로부터 받은 초대장을 다시 우리에게 전달한다. 초대장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창밖을 보라.”
2024.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