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냠냠? 슈퍼 마리오
김영기(OCI 미술관 부관장)
전시명 ”PLATFORM”은 작가들의 다음 행선지를 기대하는 승강장의 의미도 있지만, 말 그대로 발판처럼 지역 미술씬의 뒤를 든든히 바칠 기획임을 암시한다. 우선 대구광역시가 의욕적으로 주최하는 대형 미술 프로젝트이다. 독특한 공간과 다양한 도전적 콘텐츠로 전국구 명성을 확보한 대구예술발전소의 메인 전시 공간을 주 무대로 삼는다. 게다가 코로나 시즌 한 번을 제외하고는 매년 꾸준히 열어 온 연례행사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미술인들은 너나없이 공감하겠지만, 미술씬에서 꾸준함은 참신함보다 더 강하고 드높고 빛나(고 거머쥐기 어려운)는 가치이다.
만만히 보고 기세 좋게 들이민 발걸음이 무색하게, 규모와 호응에 우선 놀란다. 대구권을 대표하는 6개 미술대학 졸업 예정자를 엄선, 규합해 지역의 손꼽는 전시장에서 기획전을 여는 컨셉이 실감 났다. 세 자릿수 작가를 아우르는 대형 전시이면서, 일반적인 졸업 전시의 나열 형식을 최대한 탈피한 공간 맞춤형 기획전이다.
뜬금없지만 작품에 앞서, 일반적인 전시장과 전혀 다른 구조, 부실한 연출 설비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사정이 있다. 심술궂은 운명 탓인지 계획이 여러 차례 꼬였다. 전통적으로 대구예술발전소의 메인 전시 공간인 1층과 2층 전시실을 써 왔으나 이번에는 근처 “수창청춘맨숀”공간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난데없는 사용 부적합 판정으로 그조차 무산되었다. 이리 몇 달 발목 잡히고 저리 몇 달 표류하다 10월에야 간신히 가닥을 잡았다. 대구예술발전소 4층과 5층은 입주작가의 창작스튜디오 공간이다. 고민 끝에, 연말연시의 공실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극적인 타결을 이끈 예술감독 박천 기획자는 직접 장비를 들고 학생들과 공간부터 추슬렀다. 흙먼지를 덮어쓰며 각방 천장 콘크리트 슬래브를 파고 조명 레일을 달았다. 되는대로 긋고 오린 널빤지를 벽색 비슷하게 칠해 급한대로 창을 막아 벽을 세웠다. 꼬박 3일을 공사에 붇고 남은 시간은 달랑 6일. 내내 새벽을 새며 설치를 마쳤다고. 기관에 적을 둔 전업 기획자가 몸을 갈아 넣다시피 하며 전진 또 전진한 실천형 실행형 전시이다. 요약하면 차라리 기획자의 ‘묘기’에 가깝다. 처음부터 끝까지 추진력의 싸움이다.
전화위복이라고, 악조건이 묻은 전시의 색은 오히려 더욱 짙고 또렷해졌다. 장소 특정적 면모가 돋보이는 모둠형 옴니버스 기획이 탄생했다. 거대한 복도를 줄기 삼아 쌍떡잎처럼 돋아난 18개의 방에 맞춰,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18개의 소 주제전이 하나의 큰 전시를 이루는 형세이다.
기획자는 백 명 작가의 포트폴리오 주요 작품 전반을 조망하고, 우선 일종의 태깅에 착수했다. 해당하는 혹은 가까워 보이는 몇 가지 속성이나 키워드를 부여한 것. 이를 토대로 모둠을 지어 주제 가안을 주고, 조장을 뽑아 각 조를 이끌며 키워드에 살을 붙여 문장화를 유도했다. 의도를 보다 또렷이 다듬고, 실제 작업 내용과의 긴밀한 연결을 주문했다.
각 모둠은 공간을 탐구하고, 도면을 분석하고, 다양한 구성안을 실험했다. 외부 인사들을 초청해 전시 계획과 그에 따른 설치안을 세미나 형식으로 발표했다. 또한 피드백을 참고해 출품작을 조정하고 각종 제안을 수용, 적용하는 체험을 했다. 현장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연출의 효과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듬는 요령, 소통 능력의 무게, 절충과 협의의 위력을 점차 깨닫는다. 전시, 페어, 공모 등 각종 실전에 어떤 형식과 내용이 유리한지 조언을 얻고 그 감각을 전수하기도 한다.
모둠별 참여 작가들의 출신 학교는 두드러지지 않게 최대한 섞었다. 학교별로 작가 규모 편차 탓에 몰리는 구간도 있지만 의미를 흐렸다. 그런 경험조차 예비 작가들에겐 처음일 것이다.
종잡기 힘든 소재와 들쑥날쑥한 완성도는 기획자에게 큰 숙제였다. 열 명에도 편차나 기복이 띄기 마련인데, 백 명이면 중견 작가들조차 그저 중구난방이기 일쑤. 백 명을 석 달 안에 전시로 엮어내는, 극도로 밭은 일정. 자원과 시간의 태부족은 타협을 강요한다. 역할 분배 이후엔 각 모둠의 자율성에 어느 정도 맡기고 기대며 큰 가닥 위주로 이끌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필연적으로 구성원 일부의 책임감 해이와 품질 관리의 한계에 맞닥뜨린다. 정교한 조율과 섬세한 연출, 흠결 없는 마감은 애초 무리. 그 탓에 여러 모둠 곳곳, 이런저런 ‘튀는’ 작업이 도사린다. 부담스러운 선정과 시각적인 불협화음은 물론, 주제와의 거리감이 아득한 작업도 종종 마주친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야기가 작업으로 전이한 게 맞는지 다시금 살폈으면 싶은 작가도 있다. 또 신선하고 보는 재미가 있는 만큼, 기성 작가와의 교집합을 고민할 이들도 보인다.
한편으론, 여기저기 휘고 들뜬 캔버스, 어딘가 아쉬운 마감, 거친 아이디어, 뜬금없는 제안, 서툰 연출, 저세상 구성, 수습 곤란한 과감이, 우습게도 아니 재밌게도 예비 작가들의 특권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바로 그 특권이 곧 힌트인 경우도 섞여 있을 것이다. 기성 작가의 그늘을 벗어날 자기만의 해법 말이다. 사실 이 편차를 감지하며 리듬을 타는 것이 본 전시를 즐기는 근사한 포인트이다. 하나 더 고무적인 건 시너지까진 아니어도 (비록 의도치 않았겠지만) 긍정적인 대비가 얽혀 있는 점이다. 말하자면 발판처럼 밀어주며 희생하는 작업, 그리고 그 보람이 느껴지는, 바로 옆의 수준급 작업을 연이어 만난다는 것. 무언가 살리려면 옆이 죽어주는 건 주류 전시도 마찬가지. 어딘가 가혹한 기분도 드는 건, 단지 두 작업의 작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리라.
특히 올해 전시는 예년과도 차별화한 전시, 무지성으로 나열한 동호회전, 협회전, 졸업전을 탈피해 기획을 넉넉히 펴 바른 전시, 예술감독의 리딩이 닿은 전시, 까놓고 말해 ‘제대로 된’ 첫 전시이다. 무엇이 ‘제대로’인가? ‘작가로서의 바람직한 첫 경험은 바로 이런 것’의 모델을 제시하는 기획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학부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아티스트 피를 받고, ‘작가’의 타이틀을 달고 자신의 작업에 대외적 책임을 짊어지고, 미술씬의 기록에 정식으로 남는 전시에 발 담그고, 기획/연출/저술/보험/운송/설치/홍보 등 전시 기획 현장의 실무 역할 전반을 직접 수행한다. 예비 작가의 첫 실전인 셈.
사실, 어리고 아니고를 떠나 작가층 전반에 당장 필요하고 절실한 조력은 이런 것이다. 사회에서 계속 부딪고 뒤통수 맞고 실패하며 간신히 깨닫곤 하는 것들에 매끄럽게 적응하는 연착륙 말이다. 그게 없는 미술 시스템 속 작가 상황은, ‘찍어 먹고 나서야 똥인 걸 깨닫는데,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는 꼴’ 정도의 촌극 한 장면이다. 미술 기획과 같은 콘텐츠 생산의 실무 요소를 넘어, 예술행정/미술경영 전반의 이슈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술인 관련 제도와 산재, 복지, 저작, 표기, 매매, 수익 분배, 세금 문제, 각종 계약에 대응할 아무런 감각도 개념도 경험도 기준도 없이 헐벗은 상태로 대개 시장에 내던져진다. 그리고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무얼 해야 할는지는 고사하고 어떻게 할는지 의논할 상대조차 변변히 꼽지 못한다. 그에 앞서,문제에 봉착한 건지 아닌지 판단할 도리도 없고, 진단을 부탁할 곳도 마땅찮다.
그런 면에서 박천의 이번 기획은 예비 작가가 찰나에도 괄목상대 부쩍 클, 보약 같은 계기이다. 마치 비디오 게임 “슈퍼 마리오”의 버섯 아이템처럼 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예의 촌극 한복판에 내리꽂는 일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기관의 일정과 공공영역의 내부 사정이 도리 없이 꼬인 모양인지, 당장 내년 차수 전시 개최의 명맥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아 안타깝다. 아무리 봐도 금인데 이걸? 금을 버리고 돌을 줍다니. 최영 장군 직계 후손도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은데 말이다.
2024.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버섯 냠냠? 슈퍼 마리오
김영기(OCI 미술관 부관장)
전시명 ”PLATFORM”은 작가들의 다음 행선지를 기대하는 승강장의 의미도 있지만, 말 그대로 발판처럼 지역 미술씬의 뒤를 든든히 바칠 기획임을 암시한다. 우선 대구광역시가 의욕적으로 주최하는 대형 미술 프로젝트이다. 독특한 공간과 다양한 도전적 콘텐츠로 전국구 명성을 확보한 대구예술발전소의 메인 전시 공간을 주 무대로 삼는다. 게다가 코로나 시즌 한 번을 제외하고는 매년 꾸준히 열어 온 연례행사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미술인들은 너나없이 공감하겠지만, 미술씬에서 꾸준함은 참신함보다 더 강하고 드높고 빛나(고 거머쥐기 어려운)는 가치이다.
만만히 보고 기세 좋게 들이민 발걸음이 무색하게, 규모와 호응에 우선 놀란다. 대구권을 대표하는 6개 미술대학 졸업 예정자를 엄선, 규합해 지역의 손꼽는 전시장에서 기획전을 여는 컨셉이 실감 났다. 세 자릿수 작가를 아우르는 대형 전시이면서, 일반적인 졸업 전시의 나열 형식을 최대한 탈피한 공간 맞춤형 기획전이다.
뜬금없지만 작품에 앞서, 일반적인 전시장과 전혀 다른 구조, 부실한 연출 설비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사정이 있다. 심술궂은 운명 탓인지 계획이 여러 차례 꼬였다. 전통적으로 대구예술발전소의 메인 전시 공간인 1층과 2층 전시실을 써 왔으나 이번에는 근처 “수창청춘맨숀”공간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난데없는 사용 부적합 판정으로 그조차 무산되었다. 이리 몇 달 발목 잡히고 저리 몇 달 표류하다 10월에야 간신히 가닥을 잡았다. 대구예술발전소 4층과 5층은 입주작가의 창작스튜디오 공간이다. 고민 끝에, 연말연시의 공실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극적인 타결을 이끈 예술감독 박천 기획자는 직접 장비를 들고 학생들과 공간부터 추슬렀다. 흙먼지를 덮어쓰며 각방 천장 콘크리트 슬래브를 파고 조명 레일을 달았다. 되는대로 긋고 오린 널빤지를 벽색 비슷하게 칠해 급한대로 창을 막아 벽을 세웠다. 꼬박 3일을 공사에 붇고 남은 시간은 달랑 6일. 내내 새벽을 새며 설치를 마쳤다고. 기관에 적을 둔 전업 기획자가 몸을 갈아 넣다시피 하며 전진 또 전진한 실천형 실행형 전시이다. 요약하면 차라리 기획자의 ‘묘기’에 가깝다. 처음부터 끝까지 추진력의 싸움이다.
전화위복이라고, 악조건이 묻은 전시의 색은 오히려 더욱 짙고 또렷해졌다. 장소 특정적 면모가 돋보이는 모둠형 옴니버스 기획이 탄생했다. 거대한 복도를 줄기 삼아 쌍떡잎처럼 돋아난 18개의 방에 맞춰,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18개의 소 주제전이 하나의 큰 전시를 이루는 형세이다.
기획자는 백 명 작가의 포트폴리오 주요 작품 전반을 조망하고, 우선 일종의 태깅에 착수했다. 해당하는 혹은 가까워 보이는 몇 가지 속성이나 키워드를 부여한 것. 이를 토대로 모둠을 지어 주제 가안을 주고, 조장을 뽑아 각 조를 이끌며 키워드에 살을 붙여 문장화를 유도했다. 의도를 보다 또렷이 다듬고, 실제 작업 내용과의 긴밀한 연결을 주문했다.
각 모둠은 공간을 탐구하고, 도면을 분석하고, 다양한 구성안을 실험했다. 외부 인사들을 초청해 전시 계획과 그에 따른 설치안을 세미나 형식으로 발표했다. 또한 피드백을 참고해 출품작을 조정하고 각종 제안을 수용, 적용하는 체험을 했다. 현장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연출의 효과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듬는 요령, 소통 능력의 무게, 절충과 협의의 위력을 점차 깨닫는다. 전시, 페어, 공모 등 각종 실전에 어떤 형식과 내용이 유리한지 조언을 얻고 그 감각을 전수하기도 한다.
모둠별 참여 작가들의 출신 학교는 두드러지지 않게 최대한 섞었다. 학교별로 작가 규모 편차 탓에 몰리는 구간도 있지만 의미를 흐렸다. 그런 경험조차 예비 작가들에겐 처음일 것이다.
종잡기 힘든 소재와 들쑥날쑥한 완성도는 기획자에게 큰 숙제였다. 열 명에도 편차나 기복이 띄기 마련인데, 백 명이면 중견 작가들조차 그저 중구난방이기 일쑤. 백 명을 석 달 안에 전시로 엮어내는, 극도로 밭은 일정. 자원과 시간의 태부족은 타협을 강요한다. 역할 분배 이후엔 각 모둠의 자율성에 어느 정도 맡기고 기대며 큰 가닥 위주로 이끌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필연적으로 구성원 일부의 책임감 해이와 품질 관리의 한계에 맞닥뜨린다. 정교한 조율과 섬세한 연출, 흠결 없는 마감은 애초 무리. 그 탓에 여러 모둠 곳곳, 이런저런 ‘튀는’ 작업이 도사린다. 부담스러운 선정과 시각적인 불협화음은 물론, 주제와의 거리감이 아득한 작업도 종종 마주친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야기가 작업으로 전이한 게 맞는지 다시금 살폈으면 싶은 작가도 있다. 또 신선하고 보는 재미가 있는 만큼, 기성 작가와의 교집합을 고민할 이들도 보인다.
한편으론, 여기저기 휘고 들뜬 캔버스, 어딘가 아쉬운 마감, 거친 아이디어, 뜬금없는 제안, 서툰 연출, 저세상 구성, 수습 곤란한 과감이, 우습게도 아니 재밌게도 예비 작가들의 특권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바로 그 특권이 곧 힌트인 경우도 섞여 있을 것이다. 기성 작가의 그늘을 벗어날 자기만의 해법 말이다. 사실 이 편차를 감지하며 리듬을 타는 것이 본 전시를 즐기는 근사한 포인트이다. 하나 더 고무적인 건 시너지까진 아니어도 (비록 의도치 않았겠지만) 긍정적인 대비가 얽혀 있는 점이다. 말하자면 발판처럼 밀어주며 희생하는 작업, 그리고 그 보람이 느껴지는, 바로 옆의 수준급 작업을 연이어 만난다는 것. 무언가 살리려면 옆이 죽어주는 건 주류 전시도 마찬가지. 어딘가 가혹한 기분도 드는 건, 단지 두 작업의 작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리라.
특히 올해 전시는 예년과도 차별화한 전시, 무지성으로 나열한 동호회전, 협회전, 졸업전을 탈피해 기획을 넉넉히 펴 바른 전시, 예술감독의 리딩이 닿은 전시, 까놓고 말해 ‘제대로 된’ 첫 전시이다. 무엇이 ‘제대로’인가? ‘작가로서의 바람직한 첫 경험은 바로 이런 것’의 모델을 제시하는 기획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학부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아티스트 피를 받고, ‘작가’의 타이틀을 달고 자신의 작업에 대외적 책임을 짊어지고, 미술씬의 기록에 정식으로 남는 전시에 발 담그고, 기획/연출/저술/보험/운송/설치/홍보 등 전시 기획 현장의 실무 역할 전반을 직접 수행한다. 예비 작가의 첫 실전인 셈.
사실, 어리고 아니고를 떠나 작가층 전반에 당장 필요하고 절실한 조력은 이런 것이다. 사회에서 계속 부딪고 뒤통수 맞고 실패하며 간신히 깨닫곤 하는 것들에 매끄럽게 적응하는 연착륙 말이다. 그게 없는 미술 시스템 속 작가 상황은, ‘찍어 먹고 나서야 똥인 걸 깨닫는데,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는 꼴’ 정도의 촌극 한 장면이다. 미술 기획과 같은 콘텐츠 생산의 실무 요소를 넘어, 예술행정/미술경영 전반의 이슈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술인 관련 제도와 산재, 복지, 저작, 표기, 매매, 수익 분배, 세금 문제, 각종 계약에 대응할 아무런 감각도 개념도 경험도 기준도 없이 헐벗은 상태로 대개 시장에 내던져진다. 그리고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무얼 해야 할는지는 고사하고 어떻게 할는지 의논할 상대조차 변변히 꼽지 못한다. 그에 앞서,문제에 봉착한 건지 아닌지 판단할 도리도 없고, 진단을 부탁할 곳도 마땅찮다.
그런 면에서 박천의 이번 기획은 예비 작가가 찰나에도 괄목상대 부쩍 클, 보약 같은 계기이다. 마치 비디오 게임 “슈퍼 마리오”의 버섯 아이템처럼 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예의 촌극 한복판에 내리꽂는 일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기관의 일정과 공공영역의 내부 사정이 도리 없이 꼬인 모양인지, 당장 내년 차수 전시 개최의 명맥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아 안타깝다. 아무리 봐도 금인데 이걸? 금을 버리고 돌을 줍다니. 최영 장군 직계 후손도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은데 말이다.
2024.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