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띠뜌드(Attitude)
비영리전시공간 싹
(문은주, 박정언, 박천, 정연진)
2024년 연초부터 한국의 미술계는 조금 시끄럽게 시작되었다. 두 광역시에서 시장의 동창생이 각 지역의 미술관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시장과의 학연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역량이 의심된다는 것이 화두였다. 특히 대구의 경우, 2023년 대구미술관에서 현 관장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전시 개막 일주일 후 당초 걸려 있던 그림 한 점을 떼고 자신이 그린 홍 시장의 초상화를 걸어 당시 논란이 있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추상에 가까웠지만, 이와는 맥락이 다른 초상화가 갑작스럽게, 그것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개인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애티튜드’가 기획과 행정 경험이 전무한 그를 관장직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애티튜드가 관장 선임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재미있게도 이와는 상반되는 애티튜드를 보여줬던 예술가의 전시가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2023.10.31.~2024.3.17.)》展의 예술가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이다.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초상화의 수요가 많아지던 17세기 당시의 네덜란드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절제되면서도 겸양을 겸비한 인물처럼 그려내는 그의 표현은 소위 ‘검소해 보이지만 귀티 나는 초상’을 원하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묘사를 통해 그 인물과 시대를 표현한 렘브란트를 역사상 최고의 초상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칭하는 만큼 미술사에서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다. 이처럼 렘브란트는 초상화를 통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상화로 인해 인생의 끝을 경험한 화가이기도 하다. 렘브란트는 기념사진처럼 일률적으로 그리는 단체 초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와 주조연이 존재하는 단체 초상으로 태도를 굳히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작품은 미술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야행(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1642)〉이었다. 그러나 그림의 모델이 된 의뢰인들의 불만과 이와 관련된 소문이 거세지면서 더 이상 그에게는 단체 초상 의뢰는 거의 끊기다시피 하였고, 여기에 개인적인 불운까지 겹쳐 말년에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자신의 예술적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렘브란트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를 미술사 속에서 찾아보더라도, 역사 속에 등장하는 초상화의 대부분은 초상화의 주인공 혹은 그와 관련 있는 인물의 의뢰를 통해 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검증할 방도는 없겠지만, 초상화는 보통 실제 모델들보다 ‘잘 생기고, 예쁘게’ 그려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할 수 있다. 오늘날의 SNS에 올라와 있는 사진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의뢰인을 그대로 빼다 박은 초상화는 제값을 받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인 듯 주관적으로, 그리고 실제의 모습보다 ‘잘’ 그려져야 하기에 이를 그려내는 주체인 예술가는 철저히 자신의 애티튜드를 최대한 숨겨야만 초상화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애티튜드가 개입된 초상화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대에 와서의 이와 같은 (사실적일 뿐인)초상화는 그저 기록용으로만 사용될 뿐 예술적 평가를 거의 받지 못한다. 오히려 말년의 렘브란트가 그러했듯이 화가만의 관점(애티튜드)과 개성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초상화가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다. 그래서 20세기 전후부터 등장하는 초상은 인물의 심리가 표정이나 색채 등으로 표현되어 있거나, 추상적인 표현으로 모델의 특징을 나타내지 않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과거가 아닌 오늘날의 초상화는 예술가의 ‘애티튜드’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예술’의 한 측면에 자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환언하자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가 그린 초상화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예술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기법은 중요하지 않다. 동시대 미술에서의 초상화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드러내기도 혹은 과거의 초상화처럼 실제와 같은 표현 기법 또한 그의 태도를 반영할 수도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예술이라는 단어 속에서 다양한 지점을 탐구하고 질문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연결되어야 하는가)’,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많은 질문들이 예술을 통해 표현된다. 그렇기에 초상화에서도 이러한 지점들은 자연스레 연구된다. 이제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초상화이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애티튜드를 확인할 수 있는 매체이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애티튜드는 ‘비영리전시공간 싹’의 애티튜드와도 이웃된다. 비영리전시공간 싹은 2006년에 개관하여 대구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안공간으로서의 애티튜드를 고민해오고 있다. 2011년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의 건립과 역사 깊은 대구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 신(Scene)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미술관 그리고 상업 화랑이 하지 못하는, 혹은 놓치고 있는 지점을 탐색하며 대안적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본 전시는 서두에 언급된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건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긴 하였으나, 미술의 역사 깊은 장르 중 하나인 ‘초상화’를 소재로 예술가의 애티튜드, 즉 예술가의 태도에 대한 (예술가들의)소고를 《에띠뜌드(Attitude)》라는 전시를 통해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 전시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부터 누군가의 초상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참여 작가 개개인이 생각하는 예술, 삶 그리고 태도 등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드러내는 애티튜드를 통해 앞으로 변화할 미술 신을 조심스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2024.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에띠뜌드(Attitude)
비영리전시공간 싹
(문은주, 박정언, 박천, 정연진)
2024년 연초부터 한국의 미술계는 조금 시끄럽게 시작되었다. 두 광역시에서 시장의 동창생이 각 지역의 미술관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시장과의 학연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역량이 의심된다는 것이 화두였다. 특히 대구의 경우, 2023년 대구미술관에서 현 관장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전시 개막 일주일 후 당초 걸려 있던 그림 한 점을 떼고 자신이 그린 홍 시장의 초상화를 걸어 당시 논란이 있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추상에 가까웠지만, 이와는 맥락이 다른 초상화가 갑작스럽게, 그것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개인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애티튜드’가 기획과 행정 경험이 전무한 그를 관장직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애티튜드가 관장 선임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재미있게도 이와는 상반되는 애티튜드를 보여줬던 예술가의 전시가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2023.10.31.~2024.3.17.)》展의 예술가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이다.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초상화의 수요가 많아지던 17세기 당시의 네덜란드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절제되면서도 겸양을 겸비한 인물처럼 그려내는 그의 표현은 소위 ‘검소해 보이지만 귀티 나는 초상’을 원하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묘사를 통해 그 인물과 시대를 표현한 렘브란트를 역사상 최고의 초상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칭하는 만큼 미술사에서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다. 이처럼 렘브란트는 초상화를 통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상화로 인해 인생의 끝을 경험한 화가이기도 하다. 렘브란트는 기념사진처럼 일률적으로 그리는 단체 초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와 주조연이 존재하는 단체 초상으로 태도를 굳히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작품은 미술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야행(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1642)〉이었다. 그러나 그림의 모델이 된 의뢰인들의 불만과 이와 관련된 소문이 거세지면서 더 이상 그에게는 단체 초상 의뢰는 거의 끊기다시피 하였고, 여기에 개인적인 불운까지 겹쳐 말년에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자신의 예술적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렘브란트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를 미술사 속에서 찾아보더라도, 역사 속에 등장하는 초상화의 대부분은 초상화의 주인공 혹은 그와 관련 있는 인물의 의뢰를 통해 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검증할 방도는 없겠지만, 초상화는 보통 실제 모델들보다 ‘잘 생기고, 예쁘게’ 그려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할 수 있다. 오늘날의 SNS에 올라와 있는 사진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의뢰인을 그대로 빼다 박은 초상화는 제값을 받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인 듯 주관적으로, 그리고 실제의 모습보다 ‘잘’ 그려져야 하기에 이를 그려내는 주체인 예술가는 철저히 자신의 애티튜드를 최대한 숨겨야만 초상화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애티튜드가 개입된 초상화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대에 와서의 이와 같은 (사실적일 뿐인)초상화는 그저 기록용으로만 사용될 뿐 예술적 평가를 거의 받지 못한다. 오히려 말년의 렘브란트가 그러했듯이 화가만의 관점(애티튜드)과 개성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초상화가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다. 그래서 20세기 전후부터 등장하는 초상은 인물의 심리가 표정이나 색채 등으로 표현되어 있거나, 추상적인 표현으로 모델의 특징을 나타내지 않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과거가 아닌 오늘날의 초상화는 예술가의 ‘애티튜드’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예술’의 한 측면에 자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환언하자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가 그린 초상화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예술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기법은 중요하지 않다. 동시대 미술에서의 초상화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드러내기도 혹은 과거의 초상화처럼 실제와 같은 표현 기법 또한 그의 태도를 반영할 수도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예술이라는 단어 속에서 다양한 지점을 탐구하고 질문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연결되어야 하는가)’,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많은 질문들이 예술을 통해 표현된다. 그렇기에 초상화에서도 이러한 지점들은 자연스레 연구된다. 이제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초상화이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애티튜드를 확인할 수 있는 매체이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애티튜드는 ‘비영리전시공간 싹’의 애티튜드와도 이웃된다. 비영리전시공간 싹은 2006년에 개관하여 대구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안공간으로서의 애티튜드를 고민해오고 있다. 2011년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의 건립과 역사 깊은 대구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 신(Scene)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미술관 그리고 상업 화랑이 하지 못하는, 혹은 놓치고 있는 지점을 탐색하며 대안적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본 전시는 서두에 언급된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건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긴 하였으나, 미술의 역사 깊은 장르 중 하나인 ‘초상화’를 소재로 예술가의 애티튜드, 즉 예술가의 태도에 대한 (예술가들의)소고를 《에띠뜌드(Attitude)》라는 전시를 통해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 전시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부터 누군가의 초상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참여 작가 개개인이 생각하는 예술, 삶 그리고 태도 등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드러내는 애티튜드를 통해 앞으로 변화할 미술 신을 조심스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2024.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