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지 않는 장면에 몸짓은 하염없이 흔들거리고
:노구치에 관한 시각적 변주들
정재연(독립큐레이터 NYC-SEOUL)
단순하게 정의된 문장들을 읽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단순하게 나열되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영상을 볼 때도 놀랍다. 의미 없어 보이는 영상에서 의미를 찾다니. 이건 마치 삭막한 사막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지대를 찾기 위해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여정 같다. 4분짜리 짧은 영상에도 8분 12분 16분…. 눈을 떼지 못하고 앉아서 되풀이되는 영상을 살펴보고. 이전에 봤던 화면과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는 영상. 그렇게 얼마나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다시 시작한 건가” 얼마나 그 말을 반복했던지. 바로 4분짜리 영상의 주인공은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의 작품이다. 선구적인 실험영화 제작자 마리 멘켄(Marie Menken, 1909~1970)은 그녀의 첫 영화를 제작한다. 4분짜리 흑백 작품으로 ‘노구치에 대한 시각적 변주(Visual Variations on Noguchi)’라는 제목으로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노구치의 맥두걸 앨리 스튜디오(MacDougal Alley studio)에서 그의 작품을 여러 관점에서 파편화하여 담은 작품이다. 일단 장면은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노구치 조각의 윤곽선을 따라 표면을 훑고 공간과 조각 사이는 음악과 공기가 화면을 채운다. 영상은 마치 친한 친구 집에 들러 “이 멋진 조각들 영상으로 찍어도 돼?” 물어본 후, 스튜디오를 혼자 바쁘게 오가며 급속으로 찍은 것 같다. 그러니 열정적이기도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혼란스럽고 방향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노구치의 가벼운 공간 초상화랄까. 하지만 중요한 건 멘켄의 첫 번째 실험 영화이고 이러한 진격의 관점 변화는 결국 새롭고 무겁지 않은 어지러운 촬영 전략을 개척한다. 바로 핸드헬드 촬영 기법(Hand-held Shooting)으로 카메라를 손으로 직접 들고 화면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멘켄이 “위대한 작품을 볼 때의 설렘”(excitation on seeing great works of art)[1]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화면의 빠른 전환은 우리가 무엇을 발견했을 때 보이는 동공의 흔들림과 같을 것이다. ‘노구치에 대한 시각적 변주’는 16mm 형식으로 상영하면서 노구치의 관련 조각들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예술가의 작업 사이의 상호작용과 유사점을 탐구한다. 물론 멘켄의 작품은 우리의 움직이는 신체, 동공의 팽창, 정신적 노력의 정도를 빠르게 시점을 돌리지만, 그와 반대로 노구치의 조각 느긋하고 부드럽다. 조각가의 스튜디오에서 일상 대화를 나누며, 마음껏 손으로 제스처를 사용한다. 한 손엔 제스처를 다른 한 손엔 카메라를. 사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기법은 손으로 들고 찍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 보면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이 신체적 행위에서 파생되는 예술적 실천이라는 것이 그 영상 안에 담겨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우리의 눈은 오로지 그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주변의 모습도 함께 보게 된다는 존 버거(John Berger)의 기록이 생각난다. 그의 말대로 시각의 상호작용의 성격이 대화의 상호작용보다 더 근본적이라면 결국 보는(seeing) 방식은 노구치가 말하는 “우리가 움직이기 때문에 조각이 움직인다” (Sculptures move because we move)[2] 의 말이 완전히 이해된다.
FILM Marie Menken,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1945/46. Soundtrack 1953. 16mm, black and white, sound, 4 min. Music by Lucia Dlugoszewski. Courtesy Anthology Film Archives.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Rudolph Burckhardt, Photograph of storage room at Noguchi’s MacDougal Alley studio, 1944. 2 7/8 x 3 7/8 in. NMA, 03198.
Isamu Noguchi’s since-destroyed illuminated ceiling for the “Information Center” in the public lobby of the Time & Life Building, One Rockefeller Center, New York, c. 1944. The Noguchi Museum Archives, 01644. ©INFGM / ARS
작품이 선보이고 있는 퀸즈 노구치 뮤지엄에서는 멘켄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등장한 그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1953년에는 작곡가 루시아 드루고셰프스키(Lucia Dlugoszewski, 1925~2000)는 멘켄의 영화를 위해 여러 불협화음들을 모아놓은 유령 같은 콜라주 음악을 제작했다. 불협화음 안에는 성냥을 마찰시켜 긁는 소리, 종이 찢는 소리, 책을 떨어뜨리는 소리,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 작업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이들의 예술 실천은 움직임, 빛, 파편화(fragmentation)로 집결된다. 다시 돌아와 멘켄 영화는 어지러운 추상화 효과를 가져다주는데, 노구치 작품 속에 보이는 기하학적인 형태인 깎인 정육면체, 원형, 피라미드형 사면체 등이 서로 연관성을 가져다준다. 또한 조각 작품에서 빛과 움직임, 소리 등 모든 현상을 종합해 조각과 공간의 구성을 설정했던 노구치 그리고 빛과 운동의 역학을 탐구하여 파편화된 매혹적 시각적 서사를 만든 멘켄은 동료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친구였다. 노구치 작품 중 눈에 들어오는 Gregory(1945)는 표면이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으로 유기적 형태가 인상적이다. 어딘가 어색한데 균형적이고 이상하지만 우아하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 속은 복잡하다. 이 작품은 노구치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바퀴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을 느슨하게 해석한다. 돌 틈 사이를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처럼. 그래서 어색했고 이상하지만 우아했던 건가? 인간의 신체와 바퀴벌레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요소를 결합해 인간과 비 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한다. Gregory (1945)는 노구치가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복잡한 인간성, 변형, 신체와 정신 사이를 탐구하는 핵심적 작품일 것이다. 영상에서 멘켄은 부분과 전체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끊어지는 화면, 그림자, 오브제를 확대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흐름을 통해 작품의 미묘한 측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덧없음 같은 것이랄까? 인생은 늘 수수께끼 같고 각자의 미래를 알지 못하지. 인생의 절정에 불꽃이 타오르는 듯이. 영화에서 노구치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찍음으로 보는 사람들이 작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한다. 의심 없이 보고 그냥 믿으면 되는, 그저 보고 있는 나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조용하다 못해 의식하면서 걸어야 발자국 소리를 잠재우는 전시장 안에서 요란하게 조명이 어둠 속에 빛난다. 영상 작품 안에서 흔들리는 빛은 아름답지만 어지러운 흔적을 만든다. 우연 발생적인 느낌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크리스마스 조명 같은 빛들이 지나친다. 멘켄의 Lights(1966)는 말 그대로 불빛을 촬영한 영상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 스케치를 하거나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처럼 멘켄은 촬영한 대상과 자신이 수행한 행위를 그대로 제목으로 붙였다. 하루하루 일과를 촬영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통일된 구조나 의도, 주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우발적으로 ‘그냥’ 해버리는 행위가 영상으로 남을 뿐. 마리 멘켄은 일기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첫 작가로 평가 받는다. 멘켄이 남긴 산문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하는데 그는 서정적 문장을 주로 사용하여 영화적 문장들, 움직임, 리듬상 구조가 특징적이다.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의 몸짓. 주인공은 없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촬영하는 대상보다는 멘켄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서정영화와도 같다. 빛은 움직임을 조각으로 만들기도 하고 정적인 순간엔 한순간에 풍경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흔들리는 빛 위에 멘켄 자신을 놓아두는 것. 조각난 파편 속에 늘 결말이 정해져 있진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결말을 상상해볼 수 밖에 없다. 그냥 가늠해 보고 예상하는 것. 전시장에서 조각을 만나고, 깨진 소리와 빛을 만나는 경험이 결국 세상을 탐색하고 편협한 생각 속에서 기쁨의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 바로 이런 게 영화지 뭐.
Marie Menken, Lights, 1966. Single-channel video (transferred from 16mm film), color, silent, 6.5 min. Courtesy Anthology Film Archives.
Area 13 Reading Room.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Marie Menken Writes
“My camera and I took a turn about Noguchi’s studio and the camera-eye recorded the happy journey and when Lucille saw what the camera had seen she too took a happy journey and together it is all happiness”[3]
내 카메라와 나는 노구치의 스튜디오를 거닐며 카메라의 눈이 즐거웠던 여정을 기록했고, 나의 카메라가 봤던 행복한 여정을 담은 장면을 본 루실도 행복한 여행을 했다. 우린 모두 함께 행복감을 느꼈다.
[1] Gryphon Productio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brochure, c. 1953. Erick Hawkins and Lucia Dlugoszewski Papers, Box 21, Folder 24, Music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2] Isamu Noguchi, Isamu Noguchi: A sculptor’s World (New York: Harper & Row, 1968), 39.
[3] Gryphon Productio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brochure.
2024.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눈을 뜨지 않는 장면에 몸짓은 하염없이 흔들거리고
:노구치에 관한 시각적 변주들
정재연(독립큐레이터 NYC-SEOUL)
단순하게 정의된 문장들을 읽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단순하게 나열되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영상을 볼 때도 놀랍다. 의미 없어 보이는 영상에서 의미를 찾다니. 이건 마치 삭막한 사막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지대를 찾기 위해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여정 같다. 4분짜리 짧은 영상에도 8분 12분 16분…. 눈을 떼지 못하고 앉아서 되풀이되는 영상을 살펴보고. 이전에 봤던 화면과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는 영상. 그렇게 얼마나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다시 시작한 건가” 얼마나 그 말을 반복했던지. 바로 4분짜리 영상의 주인공은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의 작품이다. 선구적인 실험영화 제작자 마리 멘켄(Marie Menken, 1909~1970)은 그녀의 첫 영화를 제작한다. 4분짜리 흑백 작품으로 ‘노구치에 대한 시각적 변주(Visual Variations on Noguchi)’라는 제목으로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노구치의 맥두걸 앨리 스튜디오(MacDougal Alley studio)에서 그의 작품을 여러 관점에서 파편화하여 담은 작품이다. 일단 장면은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노구치 조각의 윤곽선을 따라 표면을 훑고 공간과 조각 사이는 음악과 공기가 화면을 채운다. 영상은 마치 친한 친구 집에 들러 “이 멋진 조각들 영상으로 찍어도 돼?” 물어본 후, 스튜디오를 혼자 바쁘게 오가며 급속으로 찍은 것 같다. 그러니 열정적이기도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혼란스럽고 방향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노구치의 가벼운 공간 초상화랄까. 하지만 중요한 건 멘켄의 첫 번째 실험 영화이고 이러한 진격의 관점 변화는 결국 새롭고 무겁지 않은 어지러운 촬영 전략을 개척한다. 바로 핸드헬드 촬영 기법(Hand-held Shooting)으로 카메라를 손으로 직접 들고 화면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멘켄이 “위대한 작품을 볼 때의 설렘”(excitation on seeing great works of art)[1]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화면의 빠른 전환은 우리가 무엇을 발견했을 때 보이는 동공의 흔들림과 같을 것이다. ‘노구치에 대한 시각적 변주’는 16mm 형식으로 상영하면서 노구치의 관련 조각들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예술가의 작업 사이의 상호작용과 유사점을 탐구한다. 물론 멘켄의 작품은 우리의 움직이는 신체, 동공의 팽창, 정신적 노력의 정도를 빠르게 시점을 돌리지만, 그와 반대로 노구치의 조각 느긋하고 부드럽다. 조각가의 스튜디오에서 일상 대화를 나누며, 마음껏 손으로 제스처를 사용한다. 한 손엔 제스처를 다른 한 손엔 카메라를. 사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기법은 손으로 들고 찍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 보면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이 신체적 행위에서 파생되는 예술적 실천이라는 것이 그 영상 안에 담겨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우리의 눈은 오로지 그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주변의 모습도 함께 보게 된다는 존 버거(John Berger)의 기록이 생각난다. 그의 말대로 시각의 상호작용의 성격이 대화의 상호작용보다 더 근본적이라면 결국 보는(seeing) 방식은 노구치가 말하는 “우리가 움직이기 때문에 조각이 움직인다” (Sculptures move because we move)[2] 의 말이 완전히 이해된다.
FILM Marie Menken,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1945/46. Soundtrack 1953. 16mm, black and white, sound, 4 min. Music by Lucia Dlugoszewski. Courtesy Anthology Film Archives.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Rudolph Burckhardt, Photograph of storage room at Noguchi’s MacDougal Alley studio, 1944. 2 7/8 x 3 7/8 in. NMA, 03198.
Isamu Noguchi’s since-destroyed illuminated ceiling for the “Information Center” in the public lobby of the Time & Life Building, One Rockefeller Center, New York, c. 1944. The Noguchi Museum Archives, 01644. ©INFGM / ARS
작품이 선보이고 있는 퀸즈 노구치 뮤지엄에서는 멘켄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등장한 그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1953년에는 작곡가 루시아 드루고셰프스키(Lucia Dlugoszewski, 1925~2000)는 멘켄의 영화를 위해 여러 불협화음들을 모아놓은 유령 같은 콜라주 음악을 제작했다. 불협화음 안에는 성냥을 마찰시켜 긁는 소리, 종이 찢는 소리, 책을 떨어뜨리는 소리,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 작업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이들의 예술 실천은 움직임, 빛, 파편화(fragmentation)로 집결된다. 다시 돌아와 멘켄 영화는 어지러운 추상화 효과를 가져다주는데, 노구치 작품 속에 보이는 기하학적인 형태인 깎인 정육면체, 원형, 피라미드형 사면체 등이 서로 연관성을 가져다준다. 또한 조각 작품에서 빛과 움직임, 소리 등 모든 현상을 종합해 조각과 공간의 구성을 설정했던 노구치 그리고 빛과 운동의 역학을 탐구하여 파편화된 매혹적 시각적 서사를 만든 멘켄은 동료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친구였다. 노구치 작품 중 눈에 들어오는 Gregory(1945)는 표면이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으로 유기적 형태가 인상적이다. 어딘가 어색한데 균형적이고 이상하지만 우아하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 속은 복잡하다. 이 작품은 노구치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바퀴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을 느슨하게 해석한다. 돌 틈 사이를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처럼. 그래서 어색했고 이상하지만 우아했던 건가? 인간의 신체와 바퀴벌레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요소를 결합해 인간과 비 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한다. Gregory (1945)는 노구치가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복잡한 인간성, 변형, 신체와 정신 사이를 탐구하는 핵심적 작품일 것이다. 영상에서 멘켄은 부분과 전체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끊어지는 화면, 그림자, 오브제를 확대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흐름을 통해 작품의 미묘한 측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덧없음 같은 것이랄까? 인생은 늘 수수께끼 같고 각자의 미래를 알지 못하지. 인생의 절정에 불꽃이 타오르는 듯이. 영화에서 노구치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찍음으로 보는 사람들이 작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한다. 의심 없이 보고 그냥 믿으면 되는, 그저 보고 있는 나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조용하다 못해 의식하면서 걸어야 발자국 소리를 잠재우는 전시장 안에서 요란하게 조명이 어둠 속에 빛난다. 영상 작품 안에서 흔들리는 빛은 아름답지만 어지러운 흔적을 만든다. 우연 발생적인 느낌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크리스마스 조명 같은 빛들이 지나친다. 멘켄의 Lights(1966)는 말 그대로 불빛을 촬영한 영상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 스케치를 하거나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처럼 멘켄은 촬영한 대상과 자신이 수행한 행위를 그대로 제목으로 붙였다. 하루하루 일과를 촬영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통일된 구조나 의도, 주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우발적으로 ‘그냥’ 해버리는 행위가 영상으로 남을 뿐. 마리 멘켄은 일기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첫 작가로 평가 받는다. 멘켄이 남긴 산문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하는데 그는 서정적 문장을 주로 사용하여 영화적 문장들, 움직임, 리듬상 구조가 특징적이다.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의 몸짓. 주인공은 없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촬영하는 대상보다는 멘켄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서정영화와도 같다. 빛은 움직임을 조각으로 만들기도 하고 정적인 순간엔 한순간에 풍경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흔들리는 빛 위에 멘켄 자신을 놓아두는 것. 조각난 파편 속에 늘 결말이 정해져 있진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결말을 상상해볼 수 밖에 없다. 그냥 가늠해 보고 예상하는 것. 전시장에서 조각을 만나고, 깨진 소리와 빛을 만나는 경험이 결국 세상을 탐색하고 편협한 생각 속에서 기쁨의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 바로 이런 게 영화지 뭐.
Marie Menken, Lights, 1966. Single-channel video (transferred from 16mm film), color, silent, 6.5 min. Courtesy Anthology Film Archives.
Area 13 Reading Room. Installation view, A Glorious Bewilderment: Marie Menke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The Noguchi Museum, September 27, 2023 – February 4, 2024. Photo: Nicholas Knight. ©INFGM / ARS
Marie Menken Writes
“My camera and I took a turn about Noguchi’s studio and the camera-eye recorded the happy journey and when Lucille saw what the camera had seen she too took a happy journey and together it is all happiness”[3]
내 카메라와 나는 노구치의 스튜디오를 거닐며 카메라의 눈이 즐거웠던 여정을 기록했고, 나의 카메라가 봤던 행복한 여정을 담은 장면을 본 루실도 행복한 여행을 했다. 우린 모두 함께 행복감을 느꼈다.
[1] Gryphon Productio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brochure, c. 1953. Erick Hawkins and Lucia Dlugoszewski Papers, Box 21, Folder 24, Music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2] Isamu Noguchi, Isamu Noguchi: A sculptor’s World (New York: Harper & Row, 1968), 39.
[3] Gryphon Productions,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brochure.
2024.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