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위한 영역의 구분과 그 무한한 굴레
: 박수형의 작업 변화 양상을 짚으며
정희라(큐레이터/미술평론)
영역의 구분은 사회의 질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인다.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곳곳에 설치된 경고 표지는 아름다운 곳, 가장 질서 정연한 곳에서 유독 눈에 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놓인 공원의 안내 문구, 미술관의 감상 가이드 선들은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는지. 우리는 잘 관리된 잔디를 선 밖에서 구경하기 위해서, 공간에 최적으로 설치한 미술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공간의 최고의 풍경에 방해 요소를 더한다. 관리된 잔디와 체계를 의미하는 벽돌을 그려낸 박수형의 작품 앞에 또 하나의 안내선이 놓인 광경은 영역이 가지는 무한한 굴레를 보여준다. 사회의 체계 속 사람들의 모습이 파편처럼 담긴 박수형의 작업은 구분된 영역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박수형, fence_green, oil on canvas, 130x130cm, 2018
그라데이션 속 철조망의 영역
사람들은 왜 짧게 잘린 잔디를 선호하는가? 이에 관하여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한 안내 표지판은 너무나 흔히 목격된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권위를 인정받으며 관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잔디에 관하여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니, 철조망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설정되어 있다. 누군가의 영토인 <안>에는 잘 관리된 잔디가 있고, 외부인 <밖>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잔디밭 안에는 잡초도 섞여 있을 테지만 잡초 역시 잔디 모양으로 관리되어 있다. 잘 관리된 잔디밭은 안정과 규범, 그리고 질서와 표준을 표방한다는 작가의 말에 힘이 실린다. 박수형은 「fence_green」(2018)을 통해 사람과 구분된 구역과 이 구역에 따라 관리된 자연을 말한다.
박수형, brick and grass, oil on canvas, #1,130x 162cm, 2019
「brick and grass」(2019) 연작은 사람이 건물을 올리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단위로서의 벽돌과 풀을 함께 그려졌다. 벽돌은 만들어진 수직이나 수평과 같은 규격을 이야기하고자 테이핑으로 구역을 만들어 그 안에 물감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벽돌 앞 무성한 풀은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손으로 거침없이 그려졌다. 이러한 대조는 2019~2022년 작품인 「infinite fields」 연작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다양한 색채 실험으로 그려진 배경은 그러데이션으로 변주를 주었음에도 「brick and grass」의 벽돌처럼 평평해 보이는데, 이 평평함이 역설적으로 무한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무한해 보이는 공간 앞에 놓인 물감의 개별적인 질감이 두드러지는 풀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다른 물성의 배경과 소재는 그 다름으로 인해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박수형, snow night, oil on paper, 241x130cm, 2014
박수형, grey forest , oil pencil, color pencil on paper, 121x190cm 2015
박수형, grassfields#1,#2, #3, oil on canvas, 182x227cm(3p), 2017
박수형, infinite fields_weeds, 130x162cm, oil on canvas, 2021
「snow night」(2014), 「grey forest」(2015), 「grass fields」(2016), 「brick and grass」(2019~2021), 「infinite fields」로 변화한 작업 양상은 「continuous play」(2021~2024)로 이어진다. 마른 붓으로 젖은 유화 화면을 닦아 내는 표현 방식은 물감을 더하고 쌓아 올리는 전통적인 유채 방식에서 벗어난다. 마른 붓질은 붓질 하나하나의 모양을 구체화하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화 물감 층이 외곽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 가장 먼저 칠했던 제소 층이 반투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투명해진 물감이 깎이고 잘려 텅 비어 버린 잡초의 자아처럼 비추어진다.
박수형, continuous play_blue_gradation, oil on canvas, 112x112cm, 2023
2024.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아름다움을 위한 영역의 구분과 그 무한한 굴레
: 박수형의 작업 변화 양상을 짚으며
정희라(큐레이터/미술평론)
영역의 구분은 사회의 질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인다.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곳곳에 설치된 경고 표지는 아름다운 곳, 가장 질서 정연한 곳에서 유독 눈에 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놓인 공원의 안내 문구, 미술관의 감상 가이드 선들은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는지. 우리는 잘 관리된 잔디를 선 밖에서 구경하기 위해서, 공간에 최적으로 설치한 미술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공간의 최고의 풍경에 방해 요소를 더한다. 관리된 잔디와 체계를 의미하는 벽돌을 그려낸 박수형의 작품 앞에 또 하나의 안내선이 놓인 광경은 영역이 가지는 무한한 굴레를 보여준다. 사회의 체계 속 사람들의 모습이 파편처럼 담긴 박수형의 작업은 구분된 영역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박수형, fence_green, oil on canvas, 130x130cm, 2018
그라데이션 속 철조망의 영역
사람들은 왜 짧게 잘린 잔디를 선호하는가? 이에 관하여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한 안내 표지판은 너무나 흔히 목격된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권위를 인정받으며 관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잔디에 관하여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니, 철조망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설정되어 있다. 누군가의 영토인 <안>에는 잘 관리된 잔디가 있고, 외부인 <밖>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잔디밭 안에는 잡초도 섞여 있을 테지만 잡초 역시 잔디 모양으로 관리되어 있다. 잘 관리된 잔디밭은 안정과 규범, 그리고 질서와 표준을 표방한다는 작가의 말에 힘이 실린다. 박수형은 「fence_green」(2018)을 통해 사람과 구분된 구역과 이 구역에 따라 관리된 자연을 말한다.
박수형, brick and grass, oil on canvas, #1,130x 162cm, 2019
「brick and grass」(2019) 연작은 사람이 건물을 올리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단위로서의 벽돌과 풀을 함께 그려졌다. 벽돌은 만들어진 수직이나 수평과 같은 규격을 이야기하고자 테이핑으로 구역을 만들어 그 안에 물감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벽돌 앞 무성한 풀은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손으로 거침없이 그려졌다. 이러한 대조는 2019~2022년 작품인 「infinite fields」 연작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다양한 색채 실험으로 그려진 배경은 그러데이션으로 변주를 주었음에도 「brick and grass」의 벽돌처럼 평평해 보이는데, 이 평평함이 역설적으로 무한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무한해 보이는 공간 앞에 놓인 물감의 개별적인 질감이 두드러지는 풀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다른 물성의 배경과 소재는 그 다름으로 인해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박수형, snow night, oil on paper, 241x130cm, 2014
박수형, grey forest , oil pencil, color pencil on paper, 121x190cm 2015
박수형, grassfields#1,#2, #3, oil on canvas, 182x227cm(3p), 2017
박수형, infinite fields_weeds, 130x162cm, oil on canvas, 2021
「snow night」(2014), 「grey forest」(2015), 「grass fields」(2016), 「brick and grass」(2019~2021), 「infinite fields」로 변화한 작업 양상은 「continuous play」(2021~2024)로 이어진다. 마른 붓으로 젖은 유화 화면을 닦아 내는 표현 방식은 물감을 더하고 쌓아 올리는 전통적인 유채 방식에서 벗어난다. 마른 붓질은 붓질 하나하나의 모양을 구체화하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화 물감 층이 외곽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 가장 먼저 칠했던 제소 층이 반투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투명해진 물감이 깎이고 잘려 텅 비어 버린 잡초의 자아처럼 비추어진다.
박수형, continuous play_blue_gradation, oil on canvas, 112x112cm, 2023
2024.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