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성신여대 동양화과 특별기획전 《우리 속 우리》
틀? 딱!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네모난 마루에 걸려 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애창곡 ‘네모의 꿈(작사/작곡 유영석, 1996)’을 부를 때면 네모 가득한 주변이 새삼스럽다. 네모만 서른일곱 번 나오는 노랫말, 자막이 흐르는 TV 화면 크기, 배경 이미지의 가로세로 해상도, 사각 테이블에 나뒹구는 노래방 책의 판형, 구석의 네모진 스피커와 곁에 걸린 싸구려 캔버스의 호수, 덜렁이는 네모 문짝 치수까지. 그저 사각형이 아니라, 크고 작게 풍경을 나눠 가진 지분율이 아이언맨 시야의 인포그래픽처럼 펼쳐진다. 다시 화면에 눈을 돌려 노랫말을 곱씹는다. 전시장(네모난 마루) 한가득 걸린 작품(네모난 액자)과 명성(네모난 명함)은 모든 작가가 바라는 바이다. 그렇게 네모의 꿈을 꾸는,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을 만났다.
마무리를 앞둔 네모진 그림들이, 풀자마자, 결코 서로 겹치지 않겠다는 듯 제각기 다름을 뽐낸다. 으르렁대며 영역을 과시하는 녀석, 네모 틀을 담장 삼아 웅크린 녀석, 좁은 화폭에 갇혀 어딘가 생기 없는 녀석을 뒤섞어 훑으며 한편으론, 지난주 다녀온 동물원이 떠올랐다. 이미지 동물원. 어떤 그림은 마치 서커스단의 유연한 여배우 같았다.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디미는 칼을 스쳐 피하듯, 네모진 화폭에 맞춰 이미지를 쓸어박고 힐난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다. ‘틀’은 곧 ‘속박’일까?
“극복하지 말고, 활용하면 어때요?”
‘보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음식 사진이나 셀카도 테두리 끊는 솜씨 하나에 천하일미 화용월태이기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신분증에 정사각형 증명사진? 잘하면 색다르고 자칫하면 어색하다. 새집에 창을 낸다. 시원스레 통창? 군데군데 작은 정사각형 창문? 과감하게 사선으로? 풍경은 늘 제자리 건만, 그저 구멍 몇 개 터도 따지고 잴 게 수두룩하다. 보기 나름, 긋기 나름, 자르고 오리기 나름이다. 어렵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있다.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볼 지, 틀을 딱 짜는 이, 보는 법을 보여주는 이. 그게 작가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찍어내는 자판기가 아니다. 이미지 생산에 한하면 때론 생성형 AI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시각언어를 비중 있게 활용하는 일종의 철학가, 웅변가, 활동가, 정치가, 혁명가이다. ‘가’로 끝난대서 주제가 거창하고 규모가 웅장하며 태도가 비장할 건 없다. 물 반 잔을 그리면 이미지 생산자이지만, 반 잔이나 되는 물을, 달랑 반 잔뿐인 물을 그리면 작가이다. 그들은 보는 틀을, 시선을 판다. 이미지에 듬뿍 묻은 그 시선을 맛보는 일을 ‘감상’이라 한다.
우열의 뉘앙스 똑 떼고 건조하게,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다른 여러 직업 간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생산물에 방점이 있지 않은 것. 외려 틀이 본론이다. 결과물에 창작자를 부연하는 다른 숱한 분야와 견주어, 미술씬이 유독 ‘인물’ 단위에 익숙한 배경이기도 하다.
길고 짧고 좁고 넓고 비뚤고 뜬금없는 온갖 네모 틀은, 다루기에 따라 붓질 말고도 화가의 또 다른 도구나 무기이다. 남의 틀에 갇힐 바엔 내 틀을 짠다. 딱딱 뻣뻣 지루한 네모 지옥 대신, 저마다 가지각색 말랑말랑한 네모 파티를 연다.
가장 어려운 전시는 무얼까? 졸업전을 난 첫손에 꼽는다. 서로 안 닮으려 몸부림치는 이들이다. 속도, 방향, 색깔, 박자라는 동아줄 두고 시기, 처지, 위치, 동기라는 실오라기로 수월히 묶일 턱이 없다. 흥한들 천장이 뻔하고, 망하면 바닥은 까마득한 전시. 가장 어려운 전시로 작가 커리어를, 네모의 꿈을 시작한다.
2024.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4 성신여대 동양화과 특별기획전 《우리 속 우리》
틀? 딱!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네모난 마루에 걸려 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애창곡 ‘네모의 꿈(작사/작곡 유영석, 1996)’을 부를 때면 네모 가득한 주변이 새삼스럽다. 네모만 서른일곱 번 나오는 노랫말, 자막이 흐르는 TV 화면 크기, 배경 이미지의 가로세로 해상도, 사각 테이블에 나뒹구는 노래방 책의 판형, 구석의 네모진 스피커와 곁에 걸린 싸구려 캔버스의 호수, 덜렁이는 네모 문짝 치수까지. 그저 사각형이 아니라, 크고 작게 풍경을 나눠 가진 지분율이 아이언맨 시야의 인포그래픽처럼 펼쳐진다. 다시 화면에 눈을 돌려 노랫말을 곱씹는다. 전시장(네모난 마루) 한가득 걸린 작품(네모난 액자)과 명성(네모난 명함)은 모든 작가가 바라는 바이다. 그렇게 네모의 꿈을 꾸는,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을 만났다.
마무리를 앞둔 네모진 그림들이, 풀자마자, 결코 서로 겹치지 않겠다는 듯 제각기 다름을 뽐낸다. 으르렁대며 영역을 과시하는 녀석, 네모 틀을 담장 삼아 웅크린 녀석, 좁은 화폭에 갇혀 어딘가 생기 없는 녀석을 뒤섞어 훑으며 한편으론, 지난주 다녀온 동물원이 떠올랐다. 이미지 동물원. 어떤 그림은 마치 서커스단의 유연한 여배우 같았다.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디미는 칼을 스쳐 피하듯, 네모진 화폭에 맞춰 이미지를 쓸어박고 힐난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다. ‘틀’은 곧 ‘속박’일까?
“극복하지 말고, 활용하면 어때요?”
‘보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음식 사진이나 셀카도 테두리 끊는 솜씨 하나에 천하일미 화용월태이기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신분증에 정사각형 증명사진? 잘하면 색다르고 자칫하면 어색하다. 새집에 창을 낸다. 시원스레 통창? 군데군데 작은 정사각형 창문? 과감하게 사선으로? 풍경은 늘 제자리 건만, 그저 구멍 몇 개 터도 따지고 잴 게 수두룩하다. 보기 나름, 긋기 나름, 자르고 오리기 나름이다. 어렵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있다.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볼 지, 틀을 딱 짜는 이, 보는 법을 보여주는 이. 그게 작가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찍어내는 자판기가 아니다. 이미지 생산에 한하면 때론 생성형 AI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시각언어를 비중 있게 활용하는 일종의 철학가, 웅변가, 활동가, 정치가, 혁명가이다. ‘가’로 끝난대서 주제가 거창하고 규모가 웅장하며 태도가 비장할 건 없다. 물 반 잔을 그리면 이미지 생산자이지만, 반 잔이나 되는 물을, 달랑 반 잔뿐인 물을 그리면 작가이다. 그들은 보는 틀을, 시선을 판다. 이미지에 듬뿍 묻은 그 시선을 맛보는 일을 ‘감상’이라 한다.
우열의 뉘앙스 똑 떼고 건조하게,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다른 여러 직업 간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생산물에 방점이 있지 않은 것. 외려 틀이 본론이다. 결과물에 창작자를 부연하는 다른 숱한 분야와 견주어, 미술씬이 유독 ‘인물’ 단위에 익숙한 배경이기도 하다.
길고 짧고 좁고 넓고 비뚤고 뜬금없는 온갖 네모 틀은, 다루기에 따라 붓질 말고도 화가의 또 다른 도구나 무기이다. 남의 틀에 갇힐 바엔 내 틀을 짠다. 딱딱 뻣뻣 지루한 네모 지옥 대신, 저마다 가지각색 말랑말랑한 네모 파티를 연다.
가장 어려운 전시는 무얼까? 졸업전을 난 첫손에 꼽는다. 서로 안 닮으려 몸부림치는 이들이다. 속도, 방향, 색깔, 박자라는 동아줄 두고 시기, 처지, 위치, 동기라는 실오라기로 수월히 묶일 턱이 없다. 흥한들 천장이 뻔하고, 망하면 바닥은 까마득한 전시. 가장 어려운 전시로 작가 커리어를, 네모의 꿈을 시작한다.
2024.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