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로서의 기억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오늘날 우리는 기호로 가득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 장치를 통해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실제와 디지털 사이의 경계로 나뉘지 않고, 서로 융합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인류가 형성해 온 거의 모든 정보와 기억을 손 안의 작은 화면 안에 담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기호로 가득한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가 단순한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기호와 정보들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함께 담고 있는데, 이러한 기호들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며, 우리의 인식을 조작한다. 무의식적으로 들어오는 기호의 범람은 전혀 이질감 없이 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장윤지, 구슬놀이_2023_Oil on canvas_162.2x112.1cm
장윤지, 어른아이_2023, Oil on canvas_130x130cm
장윤지 작가는 이렇게 기호가 지닌 성질을 통해 관객 저마다의 기억에 대응을 시도한다. 작품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징하는 기호들이 그려져 있는데, 구슬의 투명한 유리와 반사되는 빛깔, 로봇(장난감)의 플라스틱 재질과 광택, 인형의 미묘한 미소와 부드러운 털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더욱 현실감 있게 나타낸 이미지가 그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구슬이나 장난감은 단순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과거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호로 작동한다. 이 기호는 관객의 성별, 나이, 문화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지만, 관객 각자가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연결된다. 이러한 접근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제시한 시뮬라크르의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완전히 같은 맥락에서 작용하진 않는다.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소재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대상이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기억 속의 경험에 대해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작품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우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 찬 시기이다. 그때 우리는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며 성장한 현재라는 시간 위에서 우리는 점점 선택과 결정의 폭이 좁아짐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현실의 제약들은 어느새 우리의 기회마저 제한한다. 어쩌면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성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매체에서 우리는 아직 새로운 선택과 결정에 대해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망 또한 한편에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부추기고자 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지금 묻어둔 꿈과 희망을 상기시킬 수 있게 하고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곧 작가는 작품이 내면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감정적인 매체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화면 위에 그려져 있는 장난감 이미지는 어린 시절 ‘나의 것이 아닌, 혹은 되기 전의 장난감’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장난감 매장에 예술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장난감보다 훨씬 더 화려해 보이고 소유욕을 자극한다. 비록 그 장난감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복제물이라 할지라도 아이에게는 시뮬라크르와 같이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제공한다. 풀어내자면 작가는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 느끼게 된 최초의 시뮬라크르의 기억에 대한 기호를 그리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더욱 사실적이면서 극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한다. 서술한 바와 같이 사실적 이미지는 상징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을 제한하고 더욱 객관적으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즉 장윤지 작가의 작품은 보는 순간부터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되기 때문에 대상의 실체에 대한 분석적 측면을 건너뛰고 작품의 아우라와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Installation view
결국 장윤지 작가의 질문은 현대 사회의 실존적인 질문과 이웃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 기억(과거)과 현재 사이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함께 동반되는 여러 가지 질문 앞에 서서, 자신의 선택과 실현에 대한 용기를 찾고자 한다. 작가는 우리의 삶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어떻게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 평가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희망한다.
2024.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기호로서의 기억
박천(시안미술관 큐레이터)
오늘날 우리는 기호로 가득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 장치를 통해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실제와 디지털 사이의 경계로 나뉘지 않고, 서로 융합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인류가 형성해 온 거의 모든 정보와 기억을 손 안의 작은 화면 안에 담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기호로 가득한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가 단순한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기호와 정보들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함께 담고 있는데, 이러한 기호들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며, 우리의 인식을 조작한다. 무의식적으로 들어오는 기호의 범람은 전혀 이질감 없이 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장윤지, 구슬놀이_2023_Oil on canvas_162.2x112.1cm
장윤지, 어른아이_2023, Oil on canvas_130x130cm
장윤지 작가는 이렇게 기호가 지닌 성질을 통해 관객 저마다의 기억에 대응을 시도한다. 작품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징하는 기호들이 그려져 있는데, 구슬의 투명한 유리와 반사되는 빛깔, 로봇(장난감)의 플라스틱 재질과 광택, 인형의 미묘한 미소와 부드러운 털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더욱 현실감 있게 나타낸 이미지가 그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구슬이나 장난감은 단순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과거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호로 작동한다. 이 기호는 관객의 성별, 나이, 문화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지만, 관객 각자가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연결된다. 이러한 접근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제시한 시뮬라크르의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완전히 같은 맥락에서 작용하진 않는다.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소재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대상이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기억 속의 경험에 대해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작품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우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 찬 시기이다. 그때 우리는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며 성장한 현재라는 시간 위에서 우리는 점점 선택과 결정의 폭이 좁아짐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현실의 제약들은 어느새 우리의 기회마저 제한한다. 어쩌면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성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매체에서 우리는 아직 새로운 선택과 결정에 대해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망 또한 한편에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부추기고자 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지금 묻어둔 꿈과 희망을 상기시킬 수 있게 하고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곧 작가는 작품이 내면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감정적인 매체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화면 위에 그려져 있는 장난감 이미지는 어린 시절 ‘나의 것이 아닌, 혹은 되기 전의 장난감’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장난감 매장에 예술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장난감보다 훨씬 더 화려해 보이고 소유욕을 자극한다. 비록 그 장난감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복제물이라 할지라도 아이에게는 시뮬라크르와 같이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제공한다. 풀어내자면 작가는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 느끼게 된 최초의 시뮬라크르의 기억에 대한 기호를 그리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더욱 사실적이면서 극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한다. 서술한 바와 같이 사실적 이미지는 상징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을 제한하고 더욱 객관적으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즉 장윤지 작가의 작품은 보는 순간부터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되기 때문에 대상의 실체에 대한 분석적 측면을 건너뛰고 작품의 아우라와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Installation view
결국 장윤지 작가의 질문은 현대 사회의 실존적인 질문과 이웃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 기억(과거)과 현재 사이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함께 동반되는 여러 가지 질문 앞에 서서, 자신의 선택과 실현에 대한 용기를 찾고자 한다. 작가는 우리의 삶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어떻게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 평가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희망한다.
2024.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