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의 주석
정희라(큐레이터/미술사)
1.
두 번째 슬픔. 이 슬픔은 첫 번째가 될 수 없다. 내가 겪은 것이 아니며, 지켜본 것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이 이것은 내가 겪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첫 번째는 아니다. 두 번째이어야만 했다.
2.
현전(現前). 나만의 신화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그 이야기 The Story’는 이곳저곳에 근거 있는 기승전결을 은근슬쩍 흩뿌려 놓았다. 당신이 내 안에서 할 말을 찾는 사이, 나는 무심코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예술은 너와 내가 상응하는 반응이며,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는 환상 속에 섞인 우리의 모습이라고 이 순간만큼은 믿는다. 그림 속에서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나와의 경계가 흐려진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찾는 말이 내가 하려던 말일 것이다. 그 아우성은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눈이 충혈되고, 배가 불렀으며, 가슴이 열렸다. 숲은 이 아우성을 감싼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은 우리의 언어를 토대로 성장했다.
이희명, Twiny, 130×162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8-2019
이희명, The Siren, 390×162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3-2023
이희명, 숲과 몸, 486×260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오일, 2016-2018,
(일부러 불편하게 展 설치 전경, 소마 미술관, 2018)
이희명, Melancholia, 162×97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7-2022
3.
대변자. 나를 대변하는 이 여성은 이 세계에서 홀로 여성이다. 유일하게 등장하니 성의 구분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주 드물게 또 다른 성이 나타난다. 알고 보니, 여성의 변환이다. 이 여성은 숲 가운데 나무들의 찬양을 받고 잎사귀의 돌봄을 받는다. 다시 숲이다. 숲의 품으로 귀환한다.
4.
회화의 정령. 이희명의 작업은 빈틈이 없다. 그만의 세계가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희명만의 스토리가 새겨져 있는 구조가 생성되었다. 그림 속에서 흘러나오는 서사는 인물과 배경 간의 응답이며, 스케일이 큰 바탕(캔버스)일수록 더욱 고조된다. 녹색 톤의 색채와 거친 듯 세밀한 표현이 이를 뒷받침하면서도, 고조된 분위기에 압도되어 뒤로 물러나 있다. 배경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인물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물을 위로한다. 이 흐름은 그리는 이가 이 인물에 다가가는 간격의 굴곡에 따라 요동친다. 그들이 얽혀 있는 그림의 구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서로 마주하며 파생되는 구조에 기반한 세계는 무한대로 존재한다. 그림 속 인물이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눈여겨보아라. 이 인물은 누구인가.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는가. 언제나 그림에서 찾는 것은 나이지만, 회화의 정령은 어김없이 그리는 이에게 회귀한다. 그림에서 찾아 헤맨 것은 나의 두 번째 슬픔인 너의 이야기.
이희명, Birdy, 130×194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23
5.
화해와 호출. 화해로 이어지는 최근 작업을 통해 당신의 이야기에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한다. 슬픔에서 삐져나온 작은 해방감이 더욱 증폭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내가 너를 부를 때, 네가 나를 끌어당길 때 나(너)는 너(나)를 이끈다. 이 엇갈린 과정은 그리는 이(나)와 바라보는 이(너)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Text)이며, 그리는 이가 본인의 경험을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이야기로 이미지화하며 생긴 간격을 내재한다. 이 간극은 정화의 과정으로 기능한다.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호출의 주석
정희라(큐레이터/미술사)
1.
두 번째 슬픔. 이 슬픔은 첫 번째가 될 수 없다. 내가 겪은 것이 아니며, 지켜본 것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이 이것은 내가 겪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첫 번째는 아니다. 두 번째이어야만 했다.
2.
현전(現前). 나만의 신화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그 이야기 The Story’는 이곳저곳에 근거 있는 기승전결을 은근슬쩍 흩뿌려 놓았다. 당신이 내 안에서 할 말을 찾는 사이, 나는 무심코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예술은 너와 내가 상응하는 반응이며,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는 환상 속에 섞인 우리의 모습이라고 이 순간만큼은 믿는다. 그림 속에서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나와의 경계가 흐려진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찾는 말이 내가 하려던 말일 것이다. 그 아우성은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눈이 충혈되고, 배가 불렀으며, 가슴이 열렸다. 숲은 이 아우성을 감싼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은 우리의 언어를 토대로 성장했다.
이희명, Twiny, 130×162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8-2019
이희명, The Siren, 390×162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3-2023
이희명, 숲과 몸, 486×260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오일, 2016-2018,
(일부러 불편하게 展 설치 전경, 소마 미술관, 2018)
이희명, Melancholia, 162×97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17-2022
3.
대변자. 나를 대변하는 이 여성은 이 세계에서 홀로 여성이다. 유일하게 등장하니 성의 구분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주 드물게 또 다른 성이 나타난다. 알고 보니, 여성의 변환이다. 이 여성은 숲 가운데 나무들의 찬양을 받고 잎사귀의 돌봄을 받는다. 다시 숲이다. 숲의 품으로 귀환한다.
4.
회화의 정령. 이희명의 작업은 빈틈이 없다. 그만의 세계가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희명만의 스토리가 새겨져 있는 구조가 생성되었다. 그림 속에서 흘러나오는 서사는 인물과 배경 간의 응답이며, 스케일이 큰 바탕(캔버스)일수록 더욱 고조된다. 녹색 톤의 색채와 거친 듯 세밀한 표현이 이를 뒷받침하면서도, 고조된 분위기에 압도되어 뒤로 물러나 있다. 배경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인물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물을 위로한다. 이 흐름은 그리는 이가 이 인물에 다가가는 간격의 굴곡에 따라 요동친다. 그들이 얽혀 있는 그림의 구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서로 마주하며 파생되는 구조에 기반한 세계는 무한대로 존재한다. 그림 속 인물이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눈여겨보아라. 이 인물은 누구인가.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는가. 언제나 그림에서 찾는 것은 나이지만, 회화의 정령은 어김없이 그리는 이에게 회귀한다. 그림에서 찾아 헤맨 것은 나의 두 번째 슬픔인 너의 이야기.
이희명, Birdy, 130×194cm, 캔버스 위에 과슈, 아크릴, 2023
5.
화해와 호출. 화해로 이어지는 최근 작업을 통해 당신의 이야기에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한다. 슬픔에서 삐져나온 작은 해방감이 더욱 증폭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내가 너를 부를 때, 네가 나를 끌어당길 때 나(너)는 너(나)를 이끈다. 이 엇갈린 과정은 그리는 이(나)와 바라보는 이(너)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Text)이며, 그리는 이가 본인의 경험을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이야기로 이미지화하며 생긴 간격을 내재한다. 이 간극은 정화의 과정으로 기능한다.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