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과 틈 사이의 관계[1]
정재연
자신이 만든 탁자 위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때론 옆으로 기울인다. 더 많은 말을 듣기 위해서. 상대방의 말과 소리에 귀 기울인다. 기울인 몸은 이해와 관심을 품은 배려다. 탁자 주위를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관조하는 관객이 아닌 참여자의 일부다. 필자는 공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장소에서 옆, 앞사람들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몸짓,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자세를 살핀다. 여러 인종이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 다른 억양으로 구사하는 영어 사운드가 리드미컬하다. 뉴욕 차이나타운에 있는 FAR-NEAR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lunares (2023)는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참여형 퍼포먼스이자 전시다. lunares[2] 는2016년부터 2022년까지 노혜리의 작업에 대한 7명의 동년배 예술 종사자가 쓴 에세이 책 <모은점 lunares>에 대한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 형식으로 작품을 둘러싼 여러 방식에 대해 대화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앞에 놓인 작품에 대한 완전한 분석이라고 하기보단 앞으로의 대안적 현실을 상정하고, 이를 실체로 나타낼 방안을 모색하는 테이블이다. 모인 사람들은 탁자 앞에 놓인 작은 사물들을 만져보고 책의 한 구절을 차례대로 읽는다. 요즘 시대에 전시를 보여주는 형태나 큐레이팅이라고 하는 행위의 명확한 정의가 있을까? 고정된 전시 작품이 디스플레이되는 전형적인 전시 형식이 아닌 다양한 요소의 지속과 움직임이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든 창조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이자 맥락이 될 수 있다. 동시대 미술과 문화의 렌즈를 통해 사람을 연결하고 생각을 잇는 일들을 이어 나간다. lunares 는 이동이 가능하고 집단적이다. 그러기에 작품의 형식과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감은 작가 혼자만 감당하는 영역이 아니다. 함께 분석하고, 이해하고, 논의한다.
Lunares table, 2023, 60”x35”x32”, maple, mahogany, walnut, pine, other dimensional lumber, pewter, fired clay, found rocks, found seeds, found paper packing tray, paper maché, plaster, tracing paper, copper pipe, steel rod, acrylic sheet, seven different writers' essays about Hyeree Ro's practice between 2016 and 2022
함께
노혜리의 이전 작업은 대부분 퍼포먼스를 직접 조직하고 만들어 시현했다면, lunares 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직접 테이블 앞에 놓인 오브제를 만져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건 노혜리가 직접 운영하는 Friend of a Friend [3]와 비슷하다. <동료의동료>라는 이름으로 노혜리와 아르만도 코르테스(Armando Cortés)가 각자의 친구를 초대해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모여 5일간 교류로 시작된다. <동료의동료>는 들어 본적은 있지만 만날 수는 없던, 서로를 알지만 알지 못하는 각 개인이 모이는 자리다.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며,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자각하며 조율하고 환대한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모여 의미 생산에 참여하고, 형태와 가능성을 실험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발생한 모든 일들은 ‘탐구’의 주제가 된다. 어떤 장소에서 펼쳐지는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때마다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 대화들, 공동체 의식 수행이 강조되는 것이다. 서로를 위한 워크숍, 함께 생활하고, 요리하는 새로운 돌봄과 보살핌. 그런 관점에서 보면 큐레토리얼이 ‘돌봄’이라는 개념적 기반을 둔 라틴어 ‘carare’[4]에 가까운 실천이 아닐까 싶다.
노혜리가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간 7년이란 시간은 아버지를 재회한 시기와 맞물린다. 서로 만나지 못한 빈 시간의 틈을 좁힌다. 마치 물건과 물건 사이 쌓인 먼지 틈새를 닦아 다시 제자리에 두는 것처럼 말이다. 닦아내는 시간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낸 시간을 뜻한다. 복잡한 지하철 속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처럼, 아버지를 위한 기억의 자리를 만든다. 노혜리는 기억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작업에 더 너그러워지기[5]로 한다. 너그러움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엄격하지 않은 관대함을 말하기에 lunares 와 닮아있다. 노혜리가 대하는 사물은 그저 가볍게 생각되는 작업의 일부인 사물이 아니다. 노혜리와 사물(object)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만들고, 붙이고, 떼고, 뭉치고, 말리고, 움직여 보고 탐구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노혜리와 오브제는 서로 우정을 쌓는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 함께 주고 받은 행위-우리는 모르는-의 잠재적인 관계는 노혜리와 노혜리가 만든 물건, 이 둘만이 안다. 2022년 이전의 작업은 대부분 작가-작업-사물의 관계에서 퍼포먼스 및 설치 작업이 많다. 작가가 제작한 사물은 특정한 방식으로 만져야 작동한다. 그리고 작가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이동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업에 사용되는 물건은 다른 이가 함부로 만지거나 이동하긴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간 부서지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unares 는 다르다. 모두가 만지고, 돌리며, 접었다 펼 수 있다. 이전에는 작업의 일부인 오브제와 작가 관계가 1대1이었다면 지금은 1 대 다수이다. 그러니 너그러워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라운드 테이블 토크가 이어지는 내내 아슬아슬 탁자 사이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길쭉하고 뭉툭한 부드러운 목재, 납작한 판, 탁자 아래로 흩날리는 종이와 얇은 지지대들. 그런데 만져보면 생각보다 견고하고 단단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앞에 놓인 사물은 묵직하고, 나름 균형이 잘 잡혀있다. 만졌던 물건들을 다시 내려놓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넓은 틈 사이로 떨어진다. 이것은 노혜리가 관객과 물건을 긴밀하게 관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돌봄도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작업에는 협력, 공동생산, 대화를 위한 일시적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lunares 는 테이블이라는 사물 자체가 일종의 장소가 된다.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그간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공개하는 것이 작업의 일부가 된다. 동시에, 나란히 일어날 수 있는 이 예술 실천이 열린 개념의 전시로 주변 사물, 사람들의 행동, 담론이 오가는 중간엔 lunares가 자리 잡고 있다. lunares는 언제나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탐사선처럼 모두에게 존재한다.
Jinhee, 2022,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Jinhee and Jinny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2, single channel video, 25'00"
Maju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3, single channel video, 60'00"
사이
두 대상이나 물체 사이의 공간 또는 거리를 두고 우리는 ‘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사람이나 그룹, 대상 간의 상호작용이나 연결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중간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이어줄 때 ‘사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두 사건, 혹은 두 행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022-23년 사루비아(Project space SARUBIA)에서 진행된 <진희와 지니 Jinhee and Jinny)>(2022), <마주 Maju>(2023) 퍼포먼스는 노혜리의 이전 작업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변곡점이자 새로운 시적점이 된 lunares 테이블은 실제 노혜리 집 거실에 놓여있는 테이블을 모델로 만든 최초의 작업이다. 노혜리는 원래 사물을 만들 때, 움직임이 없고 어떤 기본 세팅 배경이 되는 작업 -무대라고 일컬음- 을 먼저 생각한 후, 이 무대에 맞는 -작고, 몸에 붙이거나 떼고, 들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사물을 제작한다. 한마디로 구체적인 모델이나 대상으로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 혼자 하거나 필요로 할 땐 둘 이상의 퍼포머와 함께 작업하게 된다. 2022년 첫 번째로 정윤영(Yoon Young Jeong)과 함께 진행한 퍼포먼스 I <진희와 지니>는 노혜리의 사물들을 가지고 정윤영의 이야기와 움직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2023년 두 번째로 루카스 야스나가(Lucas Yasunaga)와 진행한 즉흥 퍼포먼스 II <마주> 는 루카스가 본인 작품과 사물들을 전시장에 가지고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진희와 지니>에서 나오는 ‘진희’는 여성으로 살며 받는 사회적 기대, 보편적 한국 여성의 경험으로서 누구나 될 수 있는 인물을 지칭하고, 지니는 노혜리가 키우는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해 온 입양견이다. 여기서 노혜리가 전하는 “진희”는 여성 예술가 작품이 늘 특정적 미적 성질을 드러낸다는 말에 대한 느슨함을 풍긴다. 느슨하다는 것 자체가 제약이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개방됨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지니는 작업실에서 돌아다닐 때 가구 혹은 장애물에 걸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생존 본능 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고 학습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 동선에 따라 높이와 구조가 다른 설치물의 재료는 독립적이지 않지만, 다른 것과 관계 맺으며 작동한다. 설치 오브제는 지나치게 형태가 잡혀 있지 않고, 미완성처럼 보인다. 제한된 영역 안에서 마주치는 오브제는 신체를 움직이게 하고 정지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은 모두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 동료 작가와 맞추지는 않았지만 조율해 가며 소리를 만들고, 리듬감을 맞춰 행동한다. 숨을 고르고, 말하고, 과거를 불러들이고, 다시 침을 삼키고, 다리를 옮기고 팔을 올리는 과정에 힘겨움을 느낄 때 다시 숨을 가다듬는다. 두 퍼포머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중간 시간 사이에 잠시 쉴까?” 혹은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어”라는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마주> 같은 경우는 즉흥으로 진행했던 퍼포먼스다. 노혜리는 사물의 마찰에 의한 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순간의 관계성에 집중해 사운드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마주침 사이 내재하는 우연성에 집중하는 두 작가 모두 그들 세계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작업이라고 일컫는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노혜리 작업을 이해하는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Orbit Library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3, single channel video, 40'00"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 블록을 조합하며 쌓는 테트리스처럼 상자를 회전하거나 수직으로 놓거나 가로로 놓아서 정리한다. 엄지은 작가와 노혜리는 함께 상자를 쌓고 대화[6]를 나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궤도 라이브러리 Orbit Library>(2023)는 미술관에 소장된 적 없는 두 작가의 작업물을 3층 수장고에 직접 들어가 모두 입고시키는 장면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작업물은 미술관 수장고 분류 형식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분류 체계로 격납고에 재배치된다. 8개 꼭짓점으로 분할된 정육면체가 어떤 부분을 중심점 삼아 서로 모서리를 맞추고 질서를 만든다. 두 작가는 자기 주위의 사물을 질서 있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판단과 개인의 서사를 대화로 주고받는다. 반복되는 단어 나열은 하나의 음률을 만들고 리듬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진희, 브루클린 미술가게, 지니 코 모양 네 개, 나성, 아버지가 수집한 돌, 정보 없음 그리고 굴업도, 스리랑카, 아빠 집 장면, 수석을 수집하던 아빠, 나성 아빠 방에 작은 돌들” 반복되는 단어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경로와 같다. 아마도 오랜 시간 또는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는 듯하다. 그러니까, 같은 단어로 연결된 전혀 다른 내용의 기록들이다. 유리창 넘어 관객들은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다. ‘이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앞뒤를 연결하려고 해도 헛수고다. 하지만 괜찮다. 몇 개의 장면, 몇 개의 단어만 내 것으로 가져가면 된다. 아직도 작가와 수많은 물건 사이에 할 이야기들이 많아 보인다. 노혜리가 가진 결핍의 해결점은 결국 작업 방식의 부산물이다. 그가 작업하는 영역들, 예를 들어 퍼포먼스에 대한 글을 쓰거나 물건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실행하는 것,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표현하고 시각화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하나의 장면을 발전시켜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충족됐을 때, 비로소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작품,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것, 각종 언어-대화를 포함한- 출판 등의 모든 작품은 서로 연결되었고, 각기 다른 단계(층위)를 보여준다. 전시는 늘 독립된 프로젝트로 보이지만, 과거의 작업을 보여주는, 즉 분리된 오브제 조각의 모음이라기보다는 매번 과거의 작업을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노혜리의 작업 초반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풀어내는 과정이었기에 상대방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았던 작업 소위 불친절할 수도 있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함께 소유할지 고민한다.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알아볼 수 있는 연극적 미학을 취하는 것, 일상적인 생활 안에 깃든 퍼포먼스를 우리가 함께 소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다. 노혜리는 말했다.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궁금해할 것이고, 탐구하고 작업하고 연구할 것 같아요.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궁금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노혜리는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쉽게 물건을 대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글쓰기, 만들기, 대화, 소셜 미디어, 전시, 출판 이 모든 관계가 노혜리의 예술 실천이다. 수집된 부분들을 조합하고, 찾아보며, 사물과 개념을 결합한다. 작업실을 나오는 입구에서 노혜리와 아버지가 활짝 웃는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나는 오늘 이 장면을 기억하고 수집했다.
[1] 틀과 틈이란 예술학적 관점에서 틈과 틀은 각각 예술 작품 구조와 여백을 나타낼 때 쓰인다. 틀은 예술 작품의 구조나 경계를 뜻한다. 그러니 틀이라는 단어 자체가 형식, 구성, 그리고 제약과 관련 있다. 반면, 틈은 작품 내부의 여백이나 공백을 의미한다. 틈은 완성과 미완성, 모호함, 개방성 상태를 나타내므로 작품의 다양한 해석과 경험이 필요하다. 틀은 작품의 안정성과 구조 그리고 작품 틈 사이에 존재하는 유동성과 다의성 이 두 가지의 균형 유지해야 한다. 2022년 전·후로 연약함과 견고함 사이에서 자신의 틀과 틈을 만들어내는 탐구를 이어 나가는 시도가 눈에 띄어 틀과 틈 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2] 스페인어로 루나레스 lunares 는 피부의 점, 반점, 자국을 뜻한다. 또한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 luna와 어원을 공유한다. 태어날 때 없던 점도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서 새롭게 생긴다. 문화에 따라서 점이 달의 영향으로 형성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점에는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시간과 여러 영향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Hyeree, Ro, 『모은점』, 2022, p. 6.
[3] https://friend-friend.org/about/ 참고
[4] 큐레토리얼 활동이 사람, 공동체, 사물보다 그들 사이의(일시적이지만 역동적인) 관계에 적합하도록 맞춰지게 한다. 베아트리체 폰 비스마르크(Beatrice von Bismarck), 『큐레토리얼 사이와 변주』, “성좌와 전이: 큐레토리얼 실천의 정치적 가능성”, (국립현대미술관, 2018), p. 144 참고.
[5] ‘너그럽다’란 단어를 쓴 이유는 사전적으로 관대하고, 이해심이 있는, 엄격하지 않고 인정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타인의 실수나 부족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눈물을 감당할 수 있고 자비로움을 설명한다. 용감하고 고귀함을 뜻하기에 lunares 의 작업과 결을 같이한다.
[6] 대화의 내용은 가령, 가장 많이 여행을 다닌 작업(작품의 이동과 이주), 엄마 집에 보관되어 있는 작업(작품의 보관 문제), 울면서 만들었던 작업(작가의 심리적 상황과 신체 리듬), 빛과 사운드가 필요한 작업(매체 구동의 조건) 등 창작 과정과 이후 상황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물리적 조건과 정서적 문제를 포괄한다. 더불어 두 작가의 작업을 작동시키는 공동의 구조인 우연성을 주요한 키워드로 삼아 창작과 승인, 기록과 배제, 망각과 부활로 이어지는 궤적을 만들어내는 비가시적 조건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출처: 노혜리 작가 홈페이지 https://www.hyereero.com/works/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틀과 틈 사이의 관계[1]
정재연
자신이 만든 탁자 위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때론 옆으로 기울인다. 더 많은 말을 듣기 위해서. 상대방의 말과 소리에 귀 기울인다. 기울인 몸은 이해와 관심을 품은 배려다. 탁자 주위를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관조하는 관객이 아닌 참여자의 일부다. 필자는 공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장소에서 옆, 앞사람들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몸짓,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자세를 살핀다. 여러 인종이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 다른 억양으로 구사하는 영어 사운드가 리드미컬하다. 뉴욕 차이나타운에 있는 FAR-NEAR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lunares (2023)는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참여형 퍼포먼스이자 전시다. lunares[2] 는2016년부터 2022년까지 노혜리의 작업에 대한 7명의 동년배 예술 종사자가 쓴 에세이 책 <모은점 lunares>에 대한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 형식으로 작품을 둘러싼 여러 방식에 대해 대화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앞에 놓인 작품에 대한 완전한 분석이라고 하기보단 앞으로의 대안적 현실을 상정하고, 이를 실체로 나타낼 방안을 모색하는 테이블이다. 모인 사람들은 탁자 앞에 놓인 작은 사물들을 만져보고 책의 한 구절을 차례대로 읽는다. 요즘 시대에 전시를 보여주는 형태나 큐레이팅이라고 하는 행위의 명확한 정의가 있을까? 고정된 전시 작품이 디스플레이되는 전형적인 전시 형식이 아닌 다양한 요소의 지속과 움직임이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든 창조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이자 맥락이 될 수 있다. 동시대 미술과 문화의 렌즈를 통해 사람을 연결하고 생각을 잇는 일들을 이어 나간다. lunares 는 이동이 가능하고 집단적이다. 그러기에 작품의 형식과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감은 작가 혼자만 감당하는 영역이 아니다. 함께 분석하고, 이해하고, 논의한다.
Lunares table, 2023, 60”x35”x32”, maple, mahogany, walnut, pine, other dimensional lumber, pewter, fired clay, found rocks, found seeds, found paper packing tray, paper maché, plaster, tracing paper, copper pipe, steel rod, acrylic sheet, seven different writers' essays about Hyeree Ro's practice between 2016 and 2022
함께
노혜리의 이전 작업은 대부분 퍼포먼스를 직접 조직하고 만들어 시현했다면, lunares 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직접 테이블 앞에 놓인 오브제를 만져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건 노혜리가 직접 운영하는 Friend of a Friend [3]와 비슷하다. <동료의동료>라는 이름으로 노혜리와 아르만도 코르테스(Armando Cortés)가 각자의 친구를 초대해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모여 5일간 교류로 시작된다. <동료의동료>는 들어 본적은 있지만 만날 수는 없던, 서로를 알지만 알지 못하는 각 개인이 모이는 자리다.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며,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자각하며 조율하고 환대한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모여 의미 생산에 참여하고, 형태와 가능성을 실험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발생한 모든 일들은 ‘탐구’의 주제가 된다. 어떤 장소에서 펼쳐지는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때마다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 대화들, 공동체 의식 수행이 강조되는 것이다. 서로를 위한 워크숍, 함께 생활하고, 요리하는 새로운 돌봄과 보살핌. 그런 관점에서 보면 큐레토리얼이 ‘돌봄’이라는 개념적 기반을 둔 라틴어 ‘carare’[4]에 가까운 실천이 아닐까 싶다.
노혜리가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간 7년이란 시간은 아버지를 재회한 시기와 맞물린다. 서로 만나지 못한 빈 시간의 틈을 좁힌다. 마치 물건과 물건 사이 쌓인 먼지 틈새를 닦아 다시 제자리에 두는 것처럼 말이다. 닦아내는 시간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낸 시간을 뜻한다. 복잡한 지하철 속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처럼, 아버지를 위한 기억의 자리를 만든다. 노혜리는 기억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작업에 더 너그러워지기[5]로 한다. 너그러움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엄격하지 않은 관대함을 말하기에 lunares 와 닮아있다. 노혜리가 대하는 사물은 그저 가볍게 생각되는 작업의 일부인 사물이 아니다. 노혜리와 사물(object)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만들고, 붙이고, 떼고, 뭉치고, 말리고, 움직여 보고 탐구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노혜리와 오브제는 서로 우정을 쌓는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 함께 주고 받은 행위-우리는 모르는-의 잠재적인 관계는 노혜리와 노혜리가 만든 물건, 이 둘만이 안다. 2022년 이전의 작업은 대부분 작가-작업-사물의 관계에서 퍼포먼스 및 설치 작업이 많다. 작가가 제작한 사물은 특정한 방식으로 만져야 작동한다. 그리고 작가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이동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업에 사용되는 물건은 다른 이가 함부로 만지거나 이동하긴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간 부서지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unares 는 다르다. 모두가 만지고, 돌리며, 접었다 펼 수 있다. 이전에는 작업의 일부인 오브제와 작가 관계가 1대1이었다면 지금은 1 대 다수이다. 그러니 너그러워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라운드 테이블 토크가 이어지는 내내 아슬아슬 탁자 사이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길쭉하고 뭉툭한 부드러운 목재, 납작한 판, 탁자 아래로 흩날리는 종이와 얇은 지지대들. 그런데 만져보면 생각보다 견고하고 단단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앞에 놓인 사물은 묵직하고, 나름 균형이 잘 잡혀있다. 만졌던 물건들을 다시 내려놓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넓은 틈 사이로 떨어진다. 이것은 노혜리가 관객과 물건을 긴밀하게 관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돌봄도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작업에는 협력, 공동생산, 대화를 위한 일시적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lunares 는 테이블이라는 사물 자체가 일종의 장소가 된다.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그간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공개하는 것이 작업의 일부가 된다. 동시에, 나란히 일어날 수 있는 이 예술 실천이 열린 개념의 전시로 주변 사물, 사람들의 행동, 담론이 오가는 중간엔 lunares가 자리 잡고 있다. lunares는 언제나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탐사선처럼 모두에게 존재한다.
Jinhee, 2022,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Jinhee and Jinny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2, single channel video, 25'00"
Maju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3, single channel video, 60'00"
사이
두 대상이나 물체 사이의 공간 또는 거리를 두고 우리는 ‘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사람이나 그룹, 대상 간의 상호작용이나 연결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중간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이어줄 때 ‘사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두 사건, 혹은 두 행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022-23년 사루비아(Project space SARUBIA)에서 진행된 <진희와 지니 Jinhee and Jinny)>(2022), <마주 Maju>(2023) 퍼포먼스는 노혜리의 이전 작업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변곡점이자 새로운 시적점이 된 lunares 테이블은 실제 노혜리 집 거실에 놓여있는 테이블을 모델로 만든 최초의 작업이다. 노혜리는 원래 사물을 만들 때, 움직임이 없고 어떤 기본 세팅 배경이 되는 작업 -무대라고 일컬음- 을 먼저 생각한 후, 이 무대에 맞는 -작고, 몸에 붙이거나 떼고, 들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사물을 제작한다. 한마디로 구체적인 모델이나 대상으로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 혼자 하거나 필요로 할 땐 둘 이상의 퍼포머와 함께 작업하게 된다. 2022년 첫 번째로 정윤영(Yoon Young Jeong)과 함께 진행한 퍼포먼스 I <진희와 지니>는 노혜리의 사물들을 가지고 정윤영의 이야기와 움직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2023년 두 번째로 루카스 야스나가(Lucas Yasunaga)와 진행한 즉흥 퍼포먼스 II <마주> 는 루카스가 본인 작품과 사물들을 전시장에 가지고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진희와 지니>에서 나오는 ‘진희’는 여성으로 살며 받는 사회적 기대, 보편적 한국 여성의 경험으로서 누구나 될 수 있는 인물을 지칭하고, 지니는 노혜리가 키우는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해 온 입양견이다. 여기서 노혜리가 전하는 “진희”는 여성 예술가 작품이 늘 특정적 미적 성질을 드러낸다는 말에 대한 느슨함을 풍긴다. 느슨하다는 것 자체가 제약이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개방됨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지니는 작업실에서 돌아다닐 때 가구 혹은 장애물에 걸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생존 본능 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고 학습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 동선에 따라 높이와 구조가 다른 설치물의 재료는 독립적이지 않지만, 다른 것과 관계 맺으며 작동한다. 설치 오브제는 지나치게 형태가 잡혀 있지 않고, 미완성처럼 보인다. 제한된 영역 안에서 마주치는 오브제는 신체를 움직이게 하고 정지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은 모두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 동료 작가와 맞추지는 않았지만 조율해 가며 소리를 만들고, 리듬감을 맞춰 행동한다. 숨을 고르고, 말하고, 과거를 불러들이고, 다시 침을 삼키고, 다리를 옮기고 팔을 올리는 과정에 힘겨움을 느낄 때 다시 숨을 가다듬는다. 두 퍼포머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중간 시간 사이에 잠시 쉴까?” 혹은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어”라는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마주> 같은 경우는 즉흥으로 진행했던 퍼포먼스다. 노혜리는 사물의 마찰에 의한 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순간의 관계성에 집중해 사운드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마주침 사이 내재하는 우연성에 집중하는 두 작가 모두 그들 세계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작업이라고 일컫는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노혜리 작업을 이해하는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Orbit Library Performance documentation, 2023, single channel video, 40'00"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 블록을 조합하며 쌓는 테트리스처럼 상자를 회전하거나 수직으로 놓거나 가로로 놓아서 정리한다. 엄지은 작가와 노혜리는 함께 상자를 쌓고 대화[6]를 나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궤도 라이브러리 Orbit Library>(2023)는 미술관에 소장된 적 없는 두 작가의 작업물을 3층 수장고에 직접 들어가 모두 입고시키는 장면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작업물은 미술관 수장고 분류 형식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분류 체계로 격납고에 재배치된다. 8개 꼭짓점으로 분할된 정육면체가 어떤 부분을 중심점 삼아 서로 모서리를 맞추고 질서를 만든다. 두 작가는 자기 주위의 사물을 질서 있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판단과 개인의 서사를 대화로 주고받는다. 반복되는 단어 나열은 하나의 음률을 만들고 리듬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진희, 브루클린 미술가게, 지니 코 모양 네 개, 나성, 아버지가 수집한 돌, 정보 없음 그리고 굴업도, 스리랑카, 아빠 집 장면, 수석을 수집하던 아빠, 나성 아빠 방에 작은 돌들” 반복되는 단어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경로와 같다. 아마도 오랜 시간 또는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는 듯하다. 그러니까, 같은 단어로 연결된 전혀 다른 내용의 기록들이다. 유리창 넘어 관객들은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다. ‘이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앞뒤를 연결하려고 해도 헛수고다. 하지만 괜찮다. 몇 개의 장면, 몇 개의 단어만 내 것으로 가져가면 된다. 아직도 작가와 수많은 물건 사이에 할 이야기들이 많아 보인다. 노혜리가 가진 결핍의 해결점은 결국 작업 방식의 부산물이다. 그가 작업하는 영역들, 예를 들어 퍼포먼스에 대한 글을 쓰거나 물건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실행하는 것,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표현하고 시각화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하나의 장면을 발전시켜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충족됐을 때, 비로소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작품,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것, 각종 언어-대화를 포함한- 출판 등의 모든 작품은 서로 연결되었고, 각기 다른 단계(층위)를 보여준다. 전시는 늘 독립된 프로젝트로 보이지만, 과거의 작업을 보여주는, 즉 분리된 오브제 조각의 모음이라기보다는 매번 과거의 작업을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노혜리의 작업 초반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풀어내는 과정이었기에 상대방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았던 작업 소위 불친절할 수도 있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함께 소유할지 고민한다.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알아볼 수 있는 연극적 미학을 취하는 것, 일상적인 생활 안에 깃든 퍼포먼스를 우리가 함께 소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다. 노혜리는 말했다.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궁금해할 것이고, 탐구하고 작업하고 연구할 것 같아요.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궁금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노혜리는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쉽게 물건을 대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글쓰기, 만들기, 대화, 소셜 미디어, 전시, 출판 이 모든 관계가 노혜리의 예술 실천이다. 수집된 부분들을 조합하고, 찾아보며, 사물과 개념을 결합한다. 작업실을 나오는 입구에서 노혜리와 아버지가 활짝 웃는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나는 오늘 이 장면을 기억하고 수집했다.
[1] 틀과 틈이란 예술학적 관점에서 틈과 틀은 각각 예술 작품 구조와 여백을 나타낼 때 쓰인다. 틀은 예술 작품의 구조나 경계를 뜻한다. 그러니 틀이라는 단어 자체가 형식, 구성, 그리고 제약과 관련 있다. 반면, 틈은 작품 내부의 여백이나 공백을 의미한다. 틈은 완성과 미완성, 모호함, 개방성 상태를 나타내므로 작품의 다양한 해석과 경험이 필요하다. 틀은 작품의 안정성과 구조 그리고 작품 틈 사이에 존재하는 유동성과 다의성 이 두 가지의 균형 유지해야 한다. 2022년 전·후로 연약함과 견고함 사이에서 자신의 틀과 틈을 만들어내는 탐구를 이어 나가는 시도가 눈에 띄어 틀과 틈 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2] 스페인어로 루나레스 lunares 는 피부의 점, 반점, 자국을 뜻한다. 또한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 luna와 어원을 공유한다. 태어날 때 없던 점도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서 새롭게 생긴다. 문화에 따라서 점이 달의 영향으로 형성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점에는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시간과 여러 영향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Hyeree, Ro, 『모은점』, 2022, p. 6.
[3] https://friend-friend.org/about/ 참고
[4] 큐레토리얼 활동이 사람, 공동체, 사물보다 그들 사이의(일시적이지만 역동적인) 관계에 적합하도록 맞춰지게 한다. 베아트리체 폰 비스마르크(Beatrice von Bismarck), 『큐레토리얼 사이와 변주』, “성좌와 전이: 큐레토리얼 실천의 정치적 가능성”, (국립현대미술관, 2018), p. 144 참고.
[5] ‘너그럽다’란 단어를 쓴 이유는 사전적으로 관대하고, 이해심이 있는, 엄격하지 않고 인정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타인의 실수나 부족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눈물을 감당할 수 있고 자비로움을 설명한다. 용감하고 고귀함을 뜻하기에 lunares 의 작업과 결을 같이한다.
[6] 대화의 내용은 가령, 가장 많이 여행을 다닌 작업(작품의 이동과 이주), 엄마 집에 보관되어 있는 작업(작품의 보관 문제), 울면서 만들었던 작업(작가의 심리적 상황과 신체 리듬), 빛과 사운드가 필요한 작업(매체 구동의 조건) 등 창작 과정과 이후 상황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물리적 조건과 정서적 문제를 포괄한다. 더불어 두 작가의 작업을 작동시키는 공동의 구조인 우연성을 주요한 키워드로 삼아 창작과 승인, 기록과 배제, 망각과 부활로 이어지는 궤적을 만들어내는 비가시적 조건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출처: 노혜리 작가 홈페이지 https://www.hyereero.com/works/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