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I미술관 해외순회전 《찐사실주의 Ultrarealism》
양자역학적 대머리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출근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데 문득, 성함 모를 아주머니의 뒤통수에 눈길이 갔다. 해안선 침식과도 같은 치명적 부분탈모가 남자의 업보라면, 골고루 숱이 묽을 팔자는 여자의 몫. 그녀의 머리는 있으면서도 없었다. 온전한 단발의 형상과, 민머리 두상이 포토샵 레이어처럼 절반씩 겹쳐 보이는 형국.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고군분투 두피를 고루 덮고 가려, 도리 없이 허전한 와중에도 치우침 없는 미묘한 균형이 돋보였다. 마치 가발 회사가 야심차게 론칭한 첨단 홀로그램 가발 피팅을 체험하듯 자연스러운 핏으로 반투명하게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원자핵 주변을 빠르게 돌며 확률적으로 두루 존재하는 전자의 구름이 떠올랐다. 모발과 두피, 생성과 상실, 짙음과 옅음, 풍요와 빈곤, 많음과 적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의 중첩이다. 말하자면 양자역학적 대머리였다.
어느 대머리는 부러워 마지않고, 그 옆의 ‘풍성충’은 또 연민하리라.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각자의 시선을, 여러 삶을 겹친 이미지야말로 가장 사실적이다. 뭇 시간을 한데 기운 권인경, 뭇 시야를 한 몸에 두른 이승훈의 이미지 또한 극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보는 건 늘 ‘언저리에 걸친 상태’이다. ‘그때’란 그 순간이 아니라 ‘그 무렵’이다. ‘거기’는 그 좌표가 아니라 ‘그 즈음’이다. ‘그 일’은 그 광경이 아니라 ‘그 사건’이다. ‘그 사람’은 이름, 성격, 외모가 아니라 그와 엮인 이들의 삶의 중첩이다. 하나는 확실하다. 인식은 면적이 있다. 손끝이 점으로 맞닿는 〈아담의 탄생〉이 그저 인간을, 신과 다름을 말했다면, 양 손바닥 전체로 두 뺨 가득 하이파이브하는 〈절규〉는 인생에, 수십 곡절 뒤얽은 각자의 복잡다단에 경악한다.
권인경과 이승훈은 손끝 말고 손바닥으로 말한다. 창문 너머로 너울너울 방이 이어진다. 살아 퍼덕이는 물고기의 단면이 생생하다. 안과 밖, 겉과 속, 어제와 그제가 걸쳐 있다. 얼마나 적나라하며 사실적인가.
권인경 변곡점1, 72×142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1
권인경 서로 다른 기억들 5, 59.1×79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0
권인경 열린 창 1, 135x197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3
이승훈_긴꼬리벵에돔 Long tail Beng Eh Dome_time-painting(single channel video)_4K(2160p), 2min 30sec_2024
이승훈_좌측식탁에서At the Left table & 우측식탁에서At the Right table time-painting(single channel video)_4K(2160p), 3min_2024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4 OCI미술관 해외순회전 《찐사실주의 Ultrarealism》
양자역학적 대머리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출근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데 문득, 성함 모를 아주머니의 뒤통수에 눈길이 갔다. 해안선 침식과도 같은 치명적 부분탈모가 남자의 업보라면, 골고루 숱이 묽을 팔자는 여자의 몫. 그녀의 머리는 있으면서도 없었다. 온전한 단발의 형상과, 민머리 두상이 포토샵 레이어처럼 절반씩 겹쳐 보이는 형국.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고군분투 두피를 고루 덮고 가려, 도리 없이 허전한 와중에도 치우침 없는 미묘한 균형이 돋보였다. 마치 가발 회사가 야심차게 론칭한 첨단 홀로그램 가발 피팅을 체험하듯 자연스러운 핏으로 반투명하게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원자핵 주변을 빠르게 돌며 확률적으로 두루 존재하는 전자의 구름이 떠올랐다. 모발과 두피, 생성과 상실, 짙음과 옅음, 풍요와 빈곤, 많음과 적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의 중첩이다. 말하자면 양자역학적 대머리였다.
어느 대머리는 부러워 마지않고, 그 옆의 ‘풍성충’은 또 연민하리라.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각자의 시선을, 여러 삶을 겹친 이미지야말로 가장 사실적이다. 뭇 시간을 한데 기운 권인경, 뭇 시야를 한 몸에 두른 이승훈의 이미지 또한 극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보는 건 늘 ‘언저리에 걸친 상태’이다. ‘그때’란 그 순간이 아니라 ‘그 무렵’이다. ‘거기’는 그 좌표가 아니라 ‘그 즈음’이다. ‘그 일’은 그 광경이 아니라 ‘그 사건’이다. ‘그 사람’은 이름, 성격, 외모가 아니라 그와 엮인 이들의 삶의 중첩이다. 하나는 확실하다. 인식은 면적이 있다. 손끝이 점으로 맞닿는 〈아담의 탄생〉이 그저 인간을, 신과 다름을 말했다면, 양 손바닥 전체로 두 뺨 가득 하이파이브하는 〈절규〉는 인생에, 수십 곡절 뒤얽은 각자의 복잡다단에 경악한다.
권인경과 이승훈은 손끝 말고 손바닥으로 말한다. 창문 너머로 너울너울 방이 이어진다. 살아 퍼덕이는 물고기의 단면이 생생하다. 안과 밖, 겉과 속, 어제와 그제가 걸쳐 있다. 얼마나 적나라하며 사실적인가.
권인경 변곡점1, 72×142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1
권인경 서로 다른 기억들 5, 59.1×79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0
권인경 열린 창 1, 135x197cm,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 2023
이승훈_긴꼬리벵에돔 Long tail Beng Eh Dome_time-painting(single channel video)_4K(2160p), 2min 30sec_2024
이승훈_좌측식탁에서At the Left table & 우측식탁에서At the Right table time-painting(single channel video)_4K(2160p), 3min_2024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