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가
박준수
역사 속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늘 혁명에 성공해도 내일은 반란군이 된다. 미술시장에서도 주도권를 쥐기 위한 패권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미술시장은 수많은 작가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와 컬렉터, 옥션과 아트페어가 만수산 드렁칡 마냥 뒤엉켜 만들어진다. 그 모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끊임없이 대립한다. 그 과정에 커다란 집단이 만들어져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다시 분열하여 갈라지기도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대립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점들에 세상이 변화한다. 그 지점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시대를 읽을 수 있고,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다.
1(왼쪽)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 (오른쪽)쥴리아나갤러리 박미현 대표.(사진=왕진오 기자)
미술시장 안의 대립은 계속 되어 왔겠지만, 내가 목도한 첫 대립은 2017년 2월에 일어났다.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와 쥴리아나 갤러리 박미현 대표가 후보로 나선 한국화랑협회 회장선거였다. 이화익 대표는 당시 메이저 갤러리를 비롯한 다수의 갤러리에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박미현 대표는 청담미술제라는 맹약으로 묶인 갤러리들과 함께 패권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당시 소수였던 박미현 대표의 청담파는 선거에서 씁쓸한 패배를 맛보았다. 선거가 끝난 후 둘로 갈라져 대립했던 갤러리들은 다시 자신들의 실리에 따라 흩어지고 뭉쳤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 주관하는 키아프는 선거에 승리한 이화익 회장의 주도로 국제화와 갤러리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키아프 심사는 보다 까다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엄선된 갤러리들의 참여를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회원은 키아프 프리패스라는 인식을 깨고, 화랑 운영을 오랫동안 안하고 있지만 키아프만 나오던 갤러리나 작가에게 부스를 파는 갤러리를 색출했다. 참가갤러리 수준이 높아지자 데이비드 쯔워너, 페이스, 리만 머핀, 페로탱을 비롯한 국제적 명성을 갖춘 갤러리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참가 신청을 한 갤러리들은 높아진 심사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 좋은 작가를 찾아내고 신선한 전시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작가들도 학연, 지연, 혈연 같은 라인 타기보다 실력을 향상하려 노력하였다. 이런 선순환 구조 덕분에 한국 미술 시장은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 소외 받는 이들도 생겼다. 자본력이 탄탄하지 못해 좋은 작가를 키우고 싶어도 쉽지 않은 영세한 중소갤러리들과 아직 블루칩 작가가 되지 못한 많은 중견 작가들이 키아프에 참가하기 어려워졌다. 키아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갤러리들은 컬렉터에게 외면 받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협회 정책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로 뭉쳐 협회 주도권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2 삼국지보다 흥미진진한 한국미술시장 (©KOEI TECMO GAMES CO.,LTD)
내가 후에 ‘황도대전’이라 이름 붙인 그 치열했던 두번째 대립은 2023년 2월에 발발했다. (사)한국화랑협회의 회장을 뽑는 선거가 한국미술시장의 판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양선처럼 나타난 프리즈와 맺은 동시개최 계약 5년 중 3년차까지 이끌어 갈 한국화랑협회 회장 임기는 한국미술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한국미술시장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그 대립에 그동안 소외 받아온 중소갤러리들의 대변자로 나선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와 갤러리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경쟁력 강화를 앞세운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후보로 나서 팽팽하게 맞섰다.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세력이 협회장 자리를 두고 벌인 ‘황도대전’의 승리는 1표차로 황달성 대표에게 돌아갔다.
‘황도대전’의 승리로 황달성 회장을 주축으로 하는 중소갤러리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해외 갤러리와 프리즈로부터 한국 미술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 키아프 참가 갤러리 수를 늘려 더욱 많은 국내 갤러리를 수용하였다. 프리즈에 대항하기 위해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명목하에 읍참마속 같은 심정으로 떨어트렸던 갤러리들을 다시금 키아프에 참가시켜 구제함으로써 그들이 한국미술시장에서 지켜왔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큰 부스에 더 높은 부스비를 받고, 작은 부스에 내는 부스비를 줄여 영세한 갤러리들이 키아프에 참가할 때 생기는 부담을 줄여주었다. 이미 아트바젤과 프리즈 역시 부스 크기별로 가격 차등을 주고 있으니, 부담이 더욱 커진 메이저 갤러리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주도권을 넘겨준 혁신 개혁파 갤러리들은 그들이 지켜왔던 국제화의 가치를 고수하며, 끝없이 해외 시장을 노크하며, 프리즈와 함께 들어온 국제화 물결에 재빠르게 변화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더 높은 기준인 프리즈에 문턱을 넘어 참가 승인을 받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우물안에 갇혀있던 많은 갤러리들은 우물 밖으로 나와 국제 무대에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다. 덕분에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 함께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 현상황을 보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모두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들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런 대립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은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하여가
박준수
역사 속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늘 혁명에 성공해도 내일은 반란군이 된다. 미술시장에서도 주도권를 쥐기 위한 패권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미술시장은 수많은 작가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와 컬렉터, 옥션과 아트페어가 만수산 드렁칡 마냥 뒤엉켜 만들어진다. 그 모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끊임없이 대립한다. 그 과정에 커다란 집단이 만들어져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다시 분열하여 갈라지기도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대립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점들에 세상이 변화한다. 그 지점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시대를 읽을 수 있고,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다.
1(왼쪽)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 (오른쪽)쥴리아나갤러리 박미현 대표.(사진=왕진오 기자)
미술시장 안의 대립은 계속 되어 왔겠지만, 내가 목도한 첫 대립은 2017년 2월에 일어났다.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와 쥴리아나 갤러리 박미현 대표가 후보로 나선 한국화랑협회 회장선거였다. 이화익 대표는 당시 메이저 갤러리를 비롯한 다수의 갤러리에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박미현 대표는 청담미술제라는 맹약으로 묶인 갤러리들과 함께 패권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당시 소수였던 박미현 대표의 청담파는 선거에서 씁쓸한 패배를 맛보았다. 선거가 끝난 후 둘로 갈라져 대립했던 갤러리들은 다시 자신들의 실리에 따라 흩어지고 뭉쳤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 주관하는 키아프는 선거에 승리한 이화익 회장의 주도로 국제화와 갤러리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키아프 심사는 보다 까다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엄선된 갤러리들의 참여를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회원은 키아프 프리패스라는 인식을 깨고, 화랑 운영을 오랫동안 안하고 있지만 키아프만 나오던 갤러리나 작가에게 부스를 파는 갤러리를 색출했다. 참가갤러리 수준이 높아지자 데이비드 쯔워너, 페이스, 리만 머핀, 페로탱을 비롯한 국제적 명성을 갖춘 갤러리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참가 신청을 한 갤러리들은 높아진 심사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 좋은 작가를 찾아내고 신선한 전시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작가들도 학연, 지연, 혈연 같은 라인 타기보다 실력을 향상하려 노력하였다. 이런 선순환 구조 덕분에 한국 미술 시장은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 소외 받는 이들도 생겼다. 자본력이 탄탄하지 못해 좋은 작가를 키우고 싶어도 쉽지 않은 영세한 중소갤러리들과 아직 블루칩 작가가 되지 못한 많은 중견 작가들이 키아프에 참가하기 어려워졌다. 키아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갤러리들은 컬렉터에게 외면 받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협회 정책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로 뭉쳐 협회 주도권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2 삼국지보다 흥미진진한 한국미술시장 (©KOEI TECMO GAMES CO.,LTD)
내가 후에 ‘황도대전’이라 이름 붙인 그 치열했던 두번째 대립은 2023년 2월에 발발했다. (사)한국화랑협회의 회장을 뽑는 선거가 한국미술시장의 판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양선처럼 나타난 프리즈와 맺은 동시개최 계약 5년 중 3년차까지 이끌어 갈 한국화랑협회 회장 임기는 한국미술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한국미술시장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그 대립에 그동안 소외 받아온 중소갤러리들의 대변자로 나선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와 갤러리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경쟁력 강화를 앞세운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후보로 나서 팽팽하게 맞섰다.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세력이 협회장 자리를 두고 벌인 ‘황도대전’의 승리는 1표차로 황달성 대표에게 돌아갔다.
‘황도대전’의 승리로 황달성 회장을 주축으로 하는 중소갤러리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해외 갤러리와 프리즈로부터 한국 미술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 키아프 참가 갤러리 수를 늘려 더욱 많은 국내 갤러리를 수용하였다. 프리즈에 대항하기 위해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명목하에 읍참마속 같은 심정으로 떨어트렸던 갤러리들을 다시금 키아프에 참가시켜 구제함으로써 그들이 한국미술시장에서 지켜왔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큰 부스에 더 높은 부스비를 받고, 작은 부스에 내는 부스비를 줄여 영세한 갤러리들이 키아프에 참가할 때 생기는 부담을 줄여주었다. 이미 아트바젤과 프리즈 역시 부스 크기별로 가격 차등을 주고 있으니, 부담이 더욱 커진 메이저 갤러리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주도권을 넘겨준 혁신 개혁파 갤러리들은 그들이 지켜왔던 국제화의 가치를 고수하며, 끝없이 해외 시장을 노크하며, 프리즈와 함께 들어온 국제화 물결에 재빠르게 변화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더 높은 기준인 프리즈에 문턱을 넘어 참가 승인을 받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우물안에 갇혀있던 많은 갤러리들은 우물 밖으로 나와 국제 무대에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다. 덕분에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 함께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 현상황을 보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모두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들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런 대립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은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4.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ept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