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느닷없이 모든 장면이 다가온다
정재연
적막감마저 소음이 되는 작업실 안 철문이 살짝 열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작업실엔 정리되지 않은 도구들과 나열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작업실 조명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실크천에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그려진 여성이 눈에 띈다. 팔다리가 연약하고 그림 속 형체는 몸을 외튼 모습이다.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침 김조은(Aatchim, Kim Joeun, 1989)은 어린 시절의 순간이나 기억하고 싶은 광경을 수집하여 섬세한 실크 혹은 종이에 잉크, 숯, 파스텔, 색연필, 광물의 안료 등을 사용해 작업한다. 필요하다면 직접 액자 틀을 만들고, 왁스를 굳히거나 청동 주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가끔은 책을 쓰듯 아이디어 초안의 밑그림을 선반에 걸어 전시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주제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페페,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 한국에서 경험했던 어린 시절 순간을 그린다. 아니 ‘기록한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각적 작품 속엔 일상적인 기억과 장면 그리고 언어가 공존한다. 이러한 기억이나 사건에 대한 일련의 기록과 재현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아침의 기억 속에 기인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 상관없이 뒤섞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멀티플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관념적 경계를 허물고 관람자에게 전통적인 선형적 해석, 시간 순서에 걸맞은 나열식 구조를 넘어,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차원을 탐구하게 한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상황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면, 여러 차원의 관점을 마주하게 된다. 다층적인 시점을 평면 드로잉 안에서 재현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하나의 모습을 다양한 시점으로 여러 겹 쌓아 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각기 다른 시점이 겹친 레이어들은 시간과 기억의 중첩을 통해 시각적 경험을 확장하고 심화시킨다. 이 방식은 한 화면에서 다양한 서사를 담아내며, 우리의 인식과 해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게 한다. 단일한 순간 속에서 앞과 뒤가 똑같지 않은 서사의 이어짐, 누구도 돌보지 못해 눈치 못 채는 장면들을 기록한다. 이상하리라 만큼 사랑하는 장면은 완성되지 않는다. 사건의 순서나 과정은 상관없이 기억의 중첩을 이용해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끌어안는다. 끌어안은 장면은 예전의 기억과 지금의 기억이 맞물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침은 회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3차원을 통해 훨씬 깊이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신성하고 숙명적인 것이고, 아침만이 가진 재능 이자 뜻밖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여나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계속 그린다. 순간의 기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있어서 계속 그린다. 끊임없이 그린다. 필자와 작업실에서 대화를 이어 나간 이 순간, 이 기억도 마찬가지라고 아침은 전한다.
드로잉은 아침이 ‘평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시작점에서 출발한다. 아침의 작업에는 유독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의 형상이 많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불안한 과거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것, 마음 편안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달라는 제스처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불어닥치는 불안감과 고립감이 스며들어오는 날이 있다. 그래서 겹치는 이미지는 수많은 생각이 실크 천을 통해 스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은 구원되지 않는다. 과거의 힘은 강력하여, 과거의 잔재들을 끌어와 견고하게 형성된 현재에 투영한다. 아침의 결점이 지금의 신화가 된 것처럼 자신감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자, 이제 말해볼까’ 하면서 ‘이렇게 살아왔지’ 고개를 끄덕이며 스케치를 시작한다. 아침은 잊기 전에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한 강박이 있다. 기억력이 아주 좋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구석구석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든 기억하고 싶지 않든, 아침에게 일어나는 모든 광경은 쉽사리 그려진다. 말하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침은 드로잉을 할 때, 레퍼런스가 외부에 없는 것이 작업의 특징이다. 직접 관찰(observation)하거나 기억(memory)에 의존해 드로잉을 한다는 뜻이다. 기억에서 시작한 것들은 확고해서 앞에 어떠한 이미지나 모형을 두지 않고 그린다.
지나간 일에 관한 것으로부터
사람들은 아픔을 둘러싸고 돈독해진다. 불행은 도처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일까? IMF 외환위기 때 가족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고, 그로 인해 절벽에 매달린 심경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글쓰기는 아픔으로 빛난다는 것이 애처롭다. 슬퍼야만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다행히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해피 엔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의 결말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는 대부분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중간에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의 작업에선 이야기와 이미지 사이를 붙잡고 있는 글의 힘이 강력하다. 슬픔과 아픔은 아침이 쓰는 시의 원료가 되고, 슬픔을 견뎌내는 것은 작품으로 완성된다. 아침의 작품이 우울하거나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었던 것뿐, 오랫동안 두고 관찰하는 것이 작품이 되었던 것뿐이다. 아침은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아침에게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도피 같았을 것이다.
아침은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작가가 가깝게 느끼는 가족, 친구, 기억에 남는 지인들이다. 특히, 집에 있길 좋아하는 작가는 엄마, 언니, 여동생 등 주로 여성을 많이 그린다. 투명 실크 안에 비친 여성의 유방과 엉덩이는 모성애와 보호 본능에 가깝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을 넓히려고 하는 시도로 보인다. 자극을 위해 설계된 몸이 아닌 아름다운 능동적 주체로 나타난다. 신체의 일부가 뒤틀려 보이지만, 억압된 형태가 아닌 달려오는 과거를 헤아리고 안아주는 포옹의 신체다. 아침과 개인적 친밀도가 높을수록 실크천의 투명도는 높아진다. 그래서 엄마, 언니, 여동생, 조카들은 더 투명한 천에 그려진다. 특히 여동생과 엄마는 보지 않고도 완전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는 일, 매일 끊임없이 보는 것, 듣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병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안전지대를 오고 가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글을 먼저 쓴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엄마를 닮아 문학작품과 글에 가까웠지만, 작업을 이해하는 데는 글쓰기가 다각적인 도움이 된다. 흰색 면에 글을 채운 후, 그 글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체감할 수 있다. 아침은 유년기 경험이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닌, 작품의 영감이자 새로운 모티브가 된다고 말한다. 2022년 LA에 있는 Make Room에서 있었던 아침의 개인전 <사자굴 Sajagul – Then, out of the Den>은 사자굴에서 나온 아침만의 기억 게임(memory game)에서 시작된다. 아침이 유년기에 가지고 있었던 불안한 기억. 특히 병원에 입원해 갑작스레 집을 비운 엄마의 빈자리. 아침이 상상한, 가장 오래된 악몽일 것이다. 필자에게 사자굴은 성서의 다니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작가가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을 비유한 것일까? 절망 속에서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본 것일까? 아침 작업에서 사자굴은 기억과 상상을 넘어 영화[1], 집단 기억, 시청각적 환각, 판타지, 엑소시즘 등 다양한 의미를 창출했다. “한 사자가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사자(獅子 사자), 사자(死者 죽은 자) 가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2] <Doubt The Hands (The Debt Collector Seeks the Father Through a Milk Delivery Hole)>(2022)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에 있는 우유 투입구로 몸통을 구겨 넣고 있는 채권자와, 무서움에 떨며 입을 틀어막고 웅크린 동생과 아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채권자가 돈을 받으러 긴장된 상황을 묘사하며, 앞에 놓인 신발 다섯 켤레가 집안 식구 수를 나타낸다. 피아노 가게 위에 대리석 바닥이 있는 아파트 내부는 아침이 기억하는 다양한 사물, 동백꽃과 시든 장미, 가족의 모습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다. 녹슬고 비틀어진 장면에는 두 사람이 말없이 부둥켜안거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자굴 개인전을 위해 아침의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시간이 흘러 이해하게 됐다.[3]
Joeun Kim Aatchim. Doubt The Hands (The Debt Collector Seeks the Father Through a Milk Delivery Hole).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Joeun Kim Aatchim. A Safe Coffin — A Tale of a Tail, Out of the Blue. (Kinderszenen).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Joeun Kim Aatchim. Deliver her — Like a Thief in the Night. We Heard of Lions, Above a Herd of Pianos.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2022년 같은 해 프랑수아 게발리(François Ghebaly)에서 가진 개인전 <Homed>도 마찬가지로 위기와 고독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안정적인 정착을 원한다. 돌아오기까지 이유 없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심리상태를 고백한다. “엄마, 주님, 자기야, 아가야, 나 집에 왔어.”라고 말할 수 있는 안도의 상태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처럼, 긴 방황 끝에 집으로 돌아와 안식과 용서를 찾는 순간을 그린다. 슬픔에 잠겨 고독한 장면, 두 손을 꽉 깍지 지고 기도하는 엄마, 엄마와 나, 정물화들은 아침이 자주 보는 광경, 눈앞에 매일 보는 일상,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Bail Mother Melancholy (Sunday Garden Given Forgiven)>(2021)와 <Homed (Unwilling & Never Not Awkward)>(2021-2022)는 투명하고 가벼운 실크 작품으로, 끝부분에 구멍을 뚫어 두꺼운 끈으로 잡아당겨 직접 만든 나무 프레임에 묶어 두었다. 4면의 끝부분 매듭은 엉켜 있기도 하고 느슨하게 묶여 있기도 하다. 두꺼운 끈으로 잡아당기는 얇은 실크천은 찢어질 것 같은 아슬함과 아픔이 있다. 혼돈된 줄의 결합은 상처를 꿰맨 후 아문 자국 같다. 상처로 벌어진 자국들이 아물고 나면 튀어나온 단단한 살갗의 자국처럼 아침에게서 견고함을 배운다. 아침은 작업에 있어 자신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이야기다.
Bail Mother Melancholy (Sunday Garden Given Forgiven), 2021
Mineral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silk, colored pencil, conté on paper, brass, wood, waxed cotton, leather, blackened steel, found wood cross painted with India ink, sterling silver
36 x 24 inches/91.5 x 61 cm.
(image courtesy François Ghebaly Gallery)
Homed (Unwilling & Never Not Awkward), 2021 - 2022
Natural mineral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silk, colored pencil on paper, brass, beach wood, waxed cotton, leather, blackened steel, book clothes, sterling silver
36 x 24 inches/91.5 x 61 cm.
(image courtesy François Ghebaly Gallery)
2016년 뉴욕 두산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Dear무(无)질(质)>(2016) 프로젝트는 문학적 표현을 차용해 우연의 일치를 만들어 내는 시각적 글쓰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무질이란 단어는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의 소설 『발트해 연안의 어부들』에서 낚시를 준비하는 남자의 장면과 소설을 쓰는 예술가가 만든 새로운 인물의 장면을 선보였다. <solace to a fisherman>(2016)은 물에 빠질 뻔했을 때 낚시하던 아저씨가 구해준 일화를 이야기로 담은 작업이다. 아침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예를 들어 제본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2017년 졸업작품 <Four of Mattresses Stacked on Misery>는 아침이 2009-2017년까지 아이폰 메모를 ‘Forwarded message’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314 페이지나 되는 검증받지 않은 글을 정성스럽게 손수 판화로 찍어 제작했다. 당시 Small Editions라는 아트북 출판사에서 일하던 친구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침은 작업을 위해 먼저 글을 써내려 간다. 그건 작업에 대한 이해는 쓰면서 다각도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미지가 함께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니 읽을 수 있는 시각적 도구도 작업 프로세스에 하나라는 것이다. 아침은 2011년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로 편입 후부터 프린트 메이킹에 관심을 뒀고, 이미지가 중첩되고 메모리가 쌓이는 것에 대해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학부 시절부터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제자로 있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의 몸을,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미쉘 푸코의 말을 실천하듯, 아침은 키키 스미스와 함께 작업하며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며 살아가는지 구체적 작업 개념을 배우며 터득했다. 그러니 아침 또한 회화 이외에 판화, 모자이크,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 작업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 경험과 연결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작품 그 자체가 주목받길 바랬을 것이다. 아침과 작업실에서의 대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모든 것이 눈에 띄려고 하니 오히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기록하고 중요한 순간을 그리는 동안엔 모든 장면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위에 자발적으로 겹쳐야 완성된다. 하루하루 느끼는 일상은 매번 다르므로 하루는 불안함에 몸이 사그라들고, 어느 하루는 평온함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 둘만 아는 비밀
아침은 2019년 전후로 작업 성향과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 2019년 이전에는 조각, 설치 작업과 개념 작업이 많았다.[4] 하지만 개념미술 작업은 관람자들에게 설득이 필요한 전시였다. 상대방이 아침이 의도한 세계를 알고 이해하고 있을 거란 가정하에 전시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동요하기란 쉽지 않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풍부해야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불평등한 것 아닐까. LACMA 큐레이터 Virginia Moon, PhD와 대화하면서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 스토리가 있어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2019년 이후 아침은 자신이 보고 기억하는 것만 그리기로 다짐했다. 오브제 설치 작업도 하지만, 건강 문제로 에너지가 한정된 아침은 쓰고 그리는 것에 집중한다. 아침이 말하길,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에 결국 좋아하는 것들[5] 소위 취미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작업이 된다고 한다. 아침의 작품은 불친절한 그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집중과 친밀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길에서 예쁜 꽃을 사서 오랫동안 관찰하거나, 엄마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 좋아하는 신발이나 열쇠고리를 보는 것 등이다. 아침은 내적으로 완전한 친밀도가 있어야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다. 선물로 받은 사탕 하나라도 잊어버리기 전에 그려야 한다. 그렇기에 아침은 항상 게으를 수 없다. 글로 나타내고 그림으로 그려야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와 '우리 둘만 아는 비밀' 노트를 주고받으며 편지를 썼던 기억도 있다. 아침은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만 아는 비밀이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엇을 받고 바로 그것을 그렸을 땐 모르지만, 지금 와서 봤을 땐 지금 이 작품이 내 것이 되고 작업이 된다. 그런 작업이 그리고 전시로 이어진다. 최근 멕시코시티 과다라하라(Guadalajara)에 있는
Joeun Kim 'Aatchim', Old Habit Theater, installation view.
Travesia Cuatro GDL, Guadalajara, MX. 2024.
Travesía Cuatro에서 <Old habit theater>(2024)라는 제목으로 어린 시절을 담은 작업 시리즈를 내걸었다. 가상의 인물이 자신이 되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얼굴과 몸이 교차하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소소한 내면의 감정과 기억을 끌어올려 화해와 용서를 이룬다. 결국 미래의 자신은 끊임없이 작업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다. 하얀 종이와 투명한 천 조각은 아침 김조은이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글래드스톤 갤러리(Gladstone Gallery) 서울에서 <최最/소小/침侵/습襲Minimally Invasive>(2024)이란 제목[6]으로 개인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아침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억되고 싶은 작은 배려, 돌봄, 사랑이 묻어나는 작은 행동들의 기억과 관찰에 대한 광경을 그린 신작, 조각, 오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비스듬하게 걸린 실크 드로잉을 통해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빛을 통해 거짓 없이 드러나는 투명 실크의 투명함과 이미지의 중첩, 왜곡이 이미지 너머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볼 수 있게 한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언젠가 같은 고민을 했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아침은 선천적인 양안시로 인해 오히려 하나의 사물을 넓은 시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가 기억하고 관찰한 하나의 장면은 아침만의 공간을 만들고 질서를 만든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집중한다. 아침은 그림에는 완성이라는 개념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완성’이란 개념이 오히려 작품에 있어 해(violence)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위 미완성이라고 하는 작품도 걸기도 한다. 아침은 자신의 작품은 페인팅이라고 하지 않고 드로잉이라고 한다. 페인팅은 그림의 전체 장면, 그림 전체가 꽉 차있는 것이 페인팅이다. 아침의 그림은 배경이 남아있고 표면이 비어 있기 때문에 항상 그림에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한다. 수채화 연필로 그리고 섬세하게 석채[石彩]로 마무리한다. 이번 전시 그림은 유독 가방 사이즈에 들어갈 만큼의 사이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침대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그래서 아침은 Bed drawing이라고 표현한다. 침대 위에서 그림을 가장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유리창에 빛이 들어오는 1층은 낮이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지하 1층은 밤이다. 올려다보다, 다시 정면을 쳐다보다 아침의 그림을 살핀다. 아침이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만끽한다. 가령 <Smiles From Kloster Mariastein>(2024)은 아침의 어머니와 함께 여행한 스위스에 있는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주고받은 작은 알사탕, 목이 말라 물 한 잔 건네는 행동 <Thirst, My Opioid Night>(2024), 아침의 긴 머리를 고정해 주는 집게 핀<Hair Claw Love Theory: Hold Tight, Leave No Marks>(2024), 어린 시절, 절대로 먹을 수 없는 흰 생선 살, 이젠 아침만 온전히 먹을 수 있는 생선 한 마리<Unshoved(Fish Dish over Mom Picking Bone Out of My Throat)(2021-2024) 등이 그렇다. 작품은 아침의 마음을 전부 담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남겨진 기억을 의미한다. 그 기억을 이어준 누군가의 마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침의 작업에서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가장 많이 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마는 자연스럽게 아침의 주제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어둠과 함께 마주하는 <Before the Savior (Kneeled Nutcracker)>(2024)[7]는 무릎을 꿇고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는 형상의 호두 망치다. 아침이 호두까기 증후군으로 입원 중, 호두를 깨는 너트 크래커를 작업의 주제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8] 이 작품은 브론즈로 본을 뜬 후 밀납(wax)을 손으로 여러 차례 조각하며, 맨하탄 미드타운의 쥬얼리 장인들과 로스트 왁스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아침은 과거의 두려움과 허망함을 담아내면서도, 기적 같은 행복과 구원의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9]을 표현하는 ‘눈앞이 캄캄하다’란 표현처럼 지하의 어두운 조명은 고통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예상케한다. 이번 전시에서 아침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객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발걸음이다. 밝은 자연광이 비추는 1층 전시장을 지나, 음울한 어둠으로 가는 지하 1층 전시장.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순간적으로 흩날리며 빛나는 것처럼, 삶을 이끌어가는 데는 비워내고 지켜내며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둠이 원하지 않는 순간에 내려앉듯, 바라는 순간에는 새로운 눈부심과 같은 행복이 찾아온다. <Sole Solace>(2024)는 유일한 아침의 위로가 되는 인물인 엄마를 표현한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의 맥박을 확인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Pulse, and Peace of Mind>(2024)는 “엄마, 걱정하지 마요, 괜찮아요.” 고 속삭이는 듯하다. 모든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견딜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잊히지 않을 기억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아침의 기록에 대한 열망과 그 열망을 가장 연약하고 섬세한 실크 천에 그려내는 자신감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는 소리 없는 몸짓이다. 아침은 어느 곳에나 작업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생각할 것이다. 평일 오전 아침, 모든 것이 완벽하던 어느 한 시점처럼.
[1] 영화 쥬만지(1995)의 한 장면에서, 어린 주인공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피아노의 음과 함께 벽에서 사자와 같은 무서운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를 위협한다. 사자 꼬리로 먼지가 쌓인 피아노 건반을 쓸어 내리며 소리를 내며 두드린다. 주인공 누나 주디가 동생에게 ‘이건 진짜가 아니야, 피터’ 라고 말한다.
[2] 사자굴 [Sajagul] Lion’s Den intro 영상 내레이션 일부
[3] 당시 아버지가 엄마를 병원에 보냈고, 이유를 모르는 세 자매는 외로웠다. 이러한 이유로 아침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다. 그래서 사자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아버지는 뒷모습이 전부다. 아빠, 그리고 세자매 총 네 명의 숫자 사(四)는 사자굴의 ‘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버지를 통해 집안 구조를 이해하고 순서를 기억했다고 전한다.
[4] 아침은 한 인터뷰에서, 2015~2017년까지 콜롬비아 대학원 재학시절, 다수의 모자이크 장식품과 가짜 콘크리트 조각상을 제작했다. “당시에는 이런 작품이 유행했다. 사람들이 진정성을 조롱하고 모든 것을 비꼬고, 풍자적이었다. 이제는 이제 그런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진실되게 전심으로 다룰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20살 때 했던 양안시 교정술이 다시 재발하여 도자기, 제본, 판화, 복화술에 대한 매체를 탐구하다 2019년 다시 그림 그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Joeun Kim Aatchim’s Delicate Drawings on Silk Are Defiantly Sincere” by Claire Voon, Artsy, June 29, 2022,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joeun-kim-aatchims-delicate-drawings-silk-defiantly-sincere
[5] 아침의 작업실에서는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발견할 수 있다. 세라믹, 책(제본 포함), 사진, 에칭 판화, 실크 스크린, 스테인드글라스, 직접 제작한 액자 틀, 타일을 붙여 만든 테이블, 지렁이 모형, 그리고 호두까기인 너트 크래커 등 다양한 재료가 존재한다. 마치 거대한 아침의 세계가 그녀에게 다가올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대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아침은 작업할 때 한 가지에 몰두하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집중한다. 그래서 과거의 작업을 현재에 내놓아도 전혀 무방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는다. 단순한 재료적 맥락을 넘어 개인사, 예술사, 전시, 작품을 대하는 모든 방식에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6] 최근 아침은 희귀 신장(콩팥) 정맥 압박 증후군인 호두까기 증후군(Nutcracker Syndrome)으로 최소침습 수술을 받았다. 최소침습 수술은 회복 시간을 단축하고 수술 후 합병증을 줄이기 위한 시술로 아주 최소의 부분만 절개하여 이루어진다. 아침이 진행하는 ‘최소침습’ 프로젝트 중 소(小)에 집중하여 아주 작은 것, 소소한 것,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래 전체 프로젝트는 아침이 병원에 다니면서 닥터 H 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하나씩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7] 호두까기는 낮과 밤,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는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을 구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작가가 직접 설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계기도 되었다. 호두까기를 받치고 있는 붉은 거울과 호두나무 선반에서 나오는 붉은 반사광이 벽에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항상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8]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호두까기는 유럽에서 남성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아침은 호두까기 오브제를 온라인 옥션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아침이 호두까기 증후군으로 응급실을 드나들기 전, 수년간의 고통을 겪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의 병과 그가 모은 오브제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적 연결이었을 것이다.
[9]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의 근본적 불안을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 로 설명한다. 존재론적 불안 자체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데, 인간은 불현듯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어두워진다.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다.
2024.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무심코, 느닷없이 모든 장면이 다가온다
정재연
적막감마저 소음이 되는 작업실 안 철문이 살짝 열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작업실엔 정리되지 않은 도구들과 나열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작업실 조명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실크천에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그려진 여성이 눈에 띈다. 팔다리가 연약하고 그림 속 형체는 몸을 외튼 모습이다.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침 김조은(Aatchim, Kim Joeun, 1989)은 어린 시절의 순간이나 기억하고 싶은 광경을 수집하여 섬세한 실크 혹은 종이에 잉크, 숯, 파스텔, 색연필, 광물의 안료 등을 사용해 작업한다. 필요하다면 직접 액자 틀을 만들고, 왁스를 굳히거나 청동 주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가끔은 책을 쓰듯 아이디어 초안의 밑그림을 선반에 걸어 전시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주제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페페,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 한국에서 경험했던 어린 시절 순간을 그린다. 아니 ‘기록한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각적 작품 속엔 일상적인 기억과 장면 그리고 언어가 공존한다. 이러한 기억이나 사건에 대한 일련의 기록과 재현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아침의 기억 속에 기인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 상관없이 뒤섞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멀티플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관념적 경계를 허물고 관람자에게 전통적인 선형적 해석, 시간 순서에 걸맞은 나열식 구조를 넘어,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차원을 탐구하게 한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상황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면, 여러 차원의 관점을 마주하게 된다. 다층적인 시점을 평면 드로잉 안에서 재현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하나의 모습을 다양한 시점으로 여러 겹 쌓아 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각기 다른 시점이 겹친 레이어들은 시간과 기억의 중첩을 통해 시각적 경험을 확장하고 심화시킨다. 이 방식은 한 화면에서 다양한 서사를 담아내며, 우리의 인식과 해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게 한다. 단일한 순간 속에서 앞과 뒤가 똑같지 않은 서사의 이어짐, 누구도 돌보지 못해 눈치 못 채는 장면들을 기록한다. 이상하리라 만큼 사랑하는 장면은 완성되지 않는다. 사건의 순서나 과정은 상관없이 기억의 중첩을 이용해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끌어안는다. 끌어안은 장면은 예전의 기억과 지금의 기억이 맞물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침은 회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3차원을 통해 훨씬 깊이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신성하고 숙명적인 것이고, 아침만이 가진 재능 이자 뜻밖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여나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계속 그린다. 순간의 기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있어서 계속 그린다. 끊임없이 그린다. 필자와 작업실에서 대화를 이어 나간 이 순간, 이 기억도 마찬가지라고 아침은 전한다.
드로잉은 아침이 ‘평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시작점에서 출발한다. 아침의 작업에는 유독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의 형상이 많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불안한 과거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것, 마음 편안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달라는 제스처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불어닥치는 불안감과 고립감이 스며들어오는 날이 있다. 그래서 겹치는 이미지는 수많은 생각이 실크 천을 통해 스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은 구원되지 않는다. 과거의 힘은 강력하여, 과거의 잔재들을 끌어와 견고하게 형성된 현재에 투영한다. 아침의 결점이 지금의 신화가 된 것처럼 자신감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자, 이제 말해볼까’ 하면서 ‘이렇게 살아왔지’ 고개를 끄덕이며 스케치를 시작한다. 아침은 잊기 전에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한 강박이 있다. 기억력이 아주 좋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구석구석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든 기억하고 싶지 않든, 아침에게 일어나는 모든 광경은 쉽사리 그려진다. 말하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침은 드로잉을 할 때, 레퍼런스가 외부에 없는 것이 작업의 특징이다. 직접 관찰(observation)하거나 기억(memory)에 의존해 드로잉을 한다는 뜻이다. 기억에서 시작한 것들은 확고해서 앞에 어떠한 이미지나 모형을 두지 않고 그린다.
지나간 일에 관한 것으로부터
사람들은 아픔을 둘러싸고 돈독해진다. 불행은 도처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일까? IMF 외환위기 때 가족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고, 그로 인해 절벽에 매달린 심경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글쓰기는 아픔으로 빛난다는 것이 애처롭다. 슬퍼야만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다행히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해피 엔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의 결말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는 대부분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중간에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의 작업에선 이야기와 이미지 사이를 붙잡고 있는 글의 힘이 강력하다. 슬픔과 아픔은 아침이 쓰는 시의 원료가 되고, 슬픔을 견뎌내는 것은 작품으로 완성된다. 아침의 작품이 우울하거나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었던 것뿐, 오랫동안 두고 관찰하는 것이 작품이 되었던 것뿐이다. 아침은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아침에게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도피 같았을 것이다.
아침은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작가가 가깝게 느끼는 가족, 친구, 기억에 남는 지인들이다. 특히, 집에 있길 좋아하는 작가는 엄마, 언니, 여동생 등 주로 여성을 많이 그린다. 투명 실크 안에 비친 여성의 유방과 엉덩이는 모성애와 보호 본능에 가깝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을 넓히려고 하는 시도로 보인다. 자극을 위해 설계된 몸이 아닌 아름다운 능동적 주체로 나타난다. 신체의 일부가 뒤틀려 보이지만, 억압된 형태가 아닌 달려오는 과거를 헤아리고 안아주는 포옹의 신체다. 아침과 개인적 친밀도가 높을수록 실크천의 투명도는 높아진다. 그래서 엄마, 언니, 여동생, 조카들은 더 투명한 천에 그려진다. 특히 여동생과 엄마는 보지 않고도 완전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는 일, 매일 끊임없이 보는 것, 듣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병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안전지대를 오고 가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글을 먼저 쓴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엄마를 닮아 문학작품과 글에 가까웠지만, 작업을 이해하는 데는 글쓰기가 다각적인 도움이 된다. 흰색 면에 글을 채운 후, 그 글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체감할 수 있다. 아침은 유년기 경험이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닌, 작품의 영감이자 새로운 모티브가 된다고 말한다. 2022년 LA에 있는 Make Room에서 있었던 아침의 개인전 <사자굴 Sajagul – Then, out of the Den>은 사자굴에서 나온 아침만의 기억 게임(memory game)에서 시작된다. 아침이 유년기에 가지고 있었던 불안한 기억. 특히 병원에 입원해 갑작스레 집을 비운 엄마의 빈자리. 아침이 상상한, 가장 오래된 악몽일 것이다. 필자에게 사자굴은 성서의 다니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작가가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을 비유한 것일까? 절망 속에서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본 것일까? 아침 작업에서 사자굴은 기억과 상상을 넘어 영화[1], 집단 기억, 시청각적 환각, 판타지, 엑소시즘 등 다양한 의미를 창출했다. “한 사자가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사자(獅子 사자), 사자(死者 죽은 자) 가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2] <Doubt The Hands (The Debt Collector Seeks the Father Through a Milk Delivery Hole)>(2022)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에 있는 우유 투입구로 몸통을 구겨 넣고 있는 채권자와, 무서움에 떨며 입을 틀어막고 웅크린 동생과 아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채권자가 돈을 받으러 긴장된 상황을 묘사하며, 앞에 놓인 신발 다섯 켤레가 집안 식구 수를 나타낸다. 피아노 가게 위에 대리석 바닥이 있는 아파트 내부는 아침이 기억하는 다양한 사물, 동백꽃과 시든 장미, 가족의 모습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다. 녹슬고 비틀어진 장면에는 두 사람이 말없이 부둥켜안거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자굴 개인전을 위해 아침의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시간이 흘러 이해하게 됐다.[3]
Joeun Kim Aatchim. Doubt The Hands (The Debt Collector Seeks the Father Through a Milk Delivery Hole).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Joeun Kim Aatchim. A Safe Coffin — A Tale of a Tail, Out of the Blue. (Kinderszenen).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Joeun Kim Aatchim. Deliver her — Like a Thief in the Night. We Heard of Lions, Above a Herd of Pianos. 2022.
imag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ke Room Los Angeles.
2022년 같은 해 프랑수아 게발리(François Ghebaly)에서 가진 개인전 <Homed>도 마찬가지로 위기와 고독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안정적인 정착을 원한다. 돌아오기까지 이유 없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심리상태를 고백한다. “엄마, 주님, 자기야, 아가야, 나 집에 왔어.”라고 말할 수 있는 안도의 상태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처럼, 긴 방황 끝에 집으로 돌아와 안식과 용서를 찾는 순간을 그린다. 슬픔에 잠겨 고독한 장면, 두 손을 꽉 깍지 지고 기도하는 엄마, 엄마와 나, 정물화들은 아침이 자주 보는 광경, 눈앞에 매일 보는 일상,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Bail Mother Melancholy (Sunday Garden Given Forgiven)>(2021)와 <Homed (Unwilling & Never Not Awkward)>(2021-2022)는 투명하고 가벼운 실크 작품으로, 끝부분에 구멍을 뚫어 두꺼운 끈으로 잡아당겨 직접 만든 나무 프레임에 묶어 두었다. 4면의 끝부분 매듭은 엉켜 있기도 하고 느슨하게 묶여 있기도 하다. 두꺼운 끈으로 잡아당기는 얇은 실크천은 찢어질 것 같은 아슬함과 아픔이 있다. 혼돈된 줄의 결합은 상처를 꿰맨 후 아문 자국 같다. 상처로 벌어진 자국들이 아물고 나면 튀어나온 단단한 살갗의 자국처럼 아침에게서 견고함을 배운다. 아침은 작업에 있어 자신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이야기다.
Bail Mother Melancholy (Sunday Garden Given Forgiven), 2021
Mineral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silk, colored pencil, conté on paper, brass, wood, waxed cotton, leather, blackened steel, found wood cross painted with India ink, sterling silver
36 x 24 inches/91.5 x 61 cm.
(image courtesy François Ghebaly Gallery)
Homed (Unwilling & Never Not Awkward), 2021 - 2022
Natural mineral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silk, colored pencil on paper, brass, beach wood, waxed cotton, leather, blackened steel, book clothes, sterling silver
36 x 24 inches/91.5 x 61 cm.
(image courtesy François Ghebaly Gallery)
2016년 뉴욕 두산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Dear무(无)질(质)>(2016) 프로젝트는 문학적 표현을 차용해 우연의 일치를 만들어 내는 시각적 글쓰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무질이란 단어는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의 소설 『발트해 연안의 어부들』에서 낚시를 준비하는 남자의 장면과 소설을 쓰는 예술가가 만든 새로운 인물의 장면을 선보였다. <solace to a fisherman>(2016)은 물에 빠질 뻔했을 때 낚시하던 아저씨가 구해준 일화를 이야기로 담은 작업이다. 아침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예를 들어 제본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2017년 졸업작품 <Four of Mattresses Stacked on Misery>는 아침이 2009-2017년까지 아이폰 메모를 ‘Forwarded message’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314 페이지나 되는 검증받지 않은 글을 정성스럽게 손수 판화로 찍어 제작했다. 당시 Small Editions라는 아트북 출판사에서 일하던 친구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침은 작업을 위해 먼저 글을 써내려 간다. 그건 작업에 대한 이해는 쓰면서 다각도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미지가 함께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니 읽을 수 있는 시각적 도구도 작업 프로세스에 하나라는 것이다. 아침은 2011년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로 편입 후부터 프린트 메이킹에 관심을 뒀고, 이미지가 중첩되고 메모리가 쌓이는 것에 대해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학부 시절부터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제자로 있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의 몸을,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미쉘 푸코의 말을 실천하듯, 아침은 키키 스미스와 함께 작업하며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며 살아가는지 구체적 작업 개념을 배우며 터득했다. 그러니 아침 또한 회화 이외에 판화, 모자이크,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 작업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 경험과 연결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작품 그 자체가 주목받길 바랬을 것이다. 아침과 작업실에서의 대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모든 것이 눈에 띄려고 하니 오히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기록하고 중요한 순간을 그리는 동안엔 모든 장면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위에 자발적으로 겹쳐야 완성된다. 하루하루 느끼는 일상은 매번 다르므로 하루는 불안함에 몸이 사그라들고, 어느 하루는 평온함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 둘만 아는 비밀
아침은 2019년 전후로 작업 성향과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 2019년 이전에는 조각, 설치 작업과 개념 작업이 많았다.[4] 하지만 개념미술 작업은 관람자들에게 설득이 필요한 전시였다. 상대방이 아침이 의도한 세계를 알고 이해하고 있을 거란 가정하에 전시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동요하기란 쉽지 않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풍부해야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불평등한 것 아닐까. LACMA 큐레이터 Virginia Moon, PhD와 대화하면서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 스토리가 있어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2019년 이후 아침은 자신이 보고 기억하는 것만 그리기로 다짐했다. 오브제 설치 작업도 하지만, 건강 문제로 에너지가 한정된 아침은 쓰고 그리는 것에 집중한다. 아침이 말하길,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에 결국 좋아하는 것들[5] 소위 취미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작업이 된다고 한다. 아침의 작품은 불친절한 그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집중과 친밀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길에서 예쁜 꽃을 사서 오랫동안 관찰하거나, 엄마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 좋아하는 신발이나 열쇠고리를 보는 것 등이다. 아침은 내적으로 완전한 친밀도가 있어야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다. 선물로 받은 사탕 하나라도 잊어버리기 전에 그려야 한다. 그렇기에 아침은 항상 게으를 수 없다. 글로 나타내고 그림으로 그려야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와 '우리 둘만 아는 비밀' 노트를 주고받으며 편지를 썼던 기억도 있다. 아침은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만 아는 비밀이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엇을 받고 바로 그것을 그렸을 땐 모르지만, 지금 와서 봤을 땐 지금 이 작품이 내 것이 되고 작업이 된다. 그런 작업이 그리고 전시로 이어진다. 최근 멕시코시티 과다라하라(Guadalajara)에 있는
Joeun Kim 'Aatchim', Old Habit Theater, installation view.
Travesia Cuatro GDL, Guadalajara, MX. 2024.
Travesía Cuatro에서 <Old habit theater>(2024)라는 제목으로 어린 시절을 담은 작업 시리즈를 내걸었다. 가상의 인물이 자신이 되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얼굴과 몸이 교차하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소소한 내면의 감정과 기억을 끌어올려 화해와 용서를 이룬다. 결국 미래의 자신은 끊임없이 작업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지를 볼 수 있다. 하얀 종이와 투명한 천 조각은 아침 김조은이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글래드스톤 갤러리(Gladstone Gallery) 서울에서 <최最/소小/침侵/습襲Minimally Invasive>(2024)이란 제목[6]으로 개인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아침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억되고 싶은 작은 배려, 돌봄, 사랑이 묻어나는 작은 행동들의 기억과 관찰에 대한 광경을 그린 신작, 조각, 오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비스듬하게 걸린 실크 드로잉을 통해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빛을 통해 거짓 없이 드러나는 투명 실크의 투명함과 이미지의 중첩, 왜곡이 이미지 너머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볼 수 있게 한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언젠가 같은 고민을 했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아침은 선천적인 양안시로 인해 오히려 하나의 사물을 넓은 시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가 기억하고 관찰한 하나의 장면은 아침만의 공간을 만들고 질서를 만든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집중한다. 아침은 그림에는 완성이라는 개념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완성’이란 개념이 오히려 작품에 있어 해(violence)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위 미완성이라고 하는 작품도 걸기도 한다. 아침은 자신의 작품은 페인팅이라고 하지 않고 드로잉이라고 한다. 페인팅은 그림의 전체 장면, 그림 전체가 꽉 차있는 것이 페인팅이다. 아침의 그림은 배경이 남아있고 표면이 비어 있기 때문에 항상 그림에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한다. 수채화 연필로 그리고 섬세하게 석채[石彩]로 마무리한다. 이번 전시 그림은 유독 가방 사이즈에 들어갈 만큼의 사이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침대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그래서 아침은 Bed drawing이라고 표현한다. 침대 위에서 그림을 가장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유리창에 빛이 들어오는 1층은 낮이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지하 1층은 밤이다. 올려다보다, 다시 정면을 쳐다보다 아침의 그림을 살핀다. 아침이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만끽한다. 가령 <Smiles From Kloster Mariastein>(2024)은 아침의 어머니와 함께 여행한 스위스에 있는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주고받은 작은 알사탕, 목이 말라 물 한 잔 건네는 행동 <Thirst, My Opioid Night>(2024), 아침의 긴 머리를 고정해 주는 집게 핀<Hair Claw Love Theory: Hold Tight, Leave No Marks>(2024), 어린 시절, 절대로 먹을 수 없는 흰 생선 살, 이젠 아침만 온전히 먹을 수 있는 생선 한 마리<Unshoved(Fish Dish over Mom Picking Bone Out of My Throat)(2021-2024) 등이 그렇다. 작품은 아침의 마음을 전부 담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남겨진 기억을 의미한다. 그 기억을 이어준 누군가의 마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침의 작업에서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가장 많이 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마는 자연스럽게 아침의 주제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어둠과 함께 마주하는 <Before the Savior (Kneeled Nutcracker)>(2024)[7]는 무릎을 꿇고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는 형상의 호두 망치다. 아침이 호두까기 증후군으로 입원 중, 호두를 깨는 너트 크래커를 작업의 주제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8] 이 작품은 브론즈로 본을 뜬 후 밀납(wax)을 손으로 여러 차례 조각하며, 맨하탄 미드타운의 쥬얼리 장인들과 로스트 왁스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아침은 과거의 두려움과 허망함을 담아내면서도, 기적 같은 행복과 구원의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9]을 표현하는 ‘눈앞이 캄캄하다’란 표현처럼 지하의 어두운 조명은 고통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예상케한다. 이번 전시에서 아침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객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발걸음이다. 밝은 자연광이 비추는 1층 전시장을 지나, 음울한 어둠으로 가는 지하 1층 전시장.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순간적으로 흩날리며 빛나는 것처럼, 삶을 이끌어가는 데는 비워내고 지켜내며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둠이 원하지 않는 순간에 내려앉듯, 바라는 순간에는 새로운 눈부심과 같은 행복이 찾아온다. <Sole Solace>(2024)는 유일한 아침의 위로가 되는 인물인 엄마를 표현한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의 맥박을 확인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Pulse, and Peace of Mind>(2024)는 “엄마, 걱정하지 마요, 괜찮아요.” 고 속삭이는 듯하다. 모든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견딜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잊히지 않을 기억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아침의 기록에 대한 열망과 그 열망을 가장 연약하고 섬세한 실크 천에 그려내는 자신감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는 소리 없는 몸짓이다. 아침은 어느 곳에나 작업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생각할 것이다. 평일 오전 아침, 모든 것이 완벽하던 어느 한 시점처럼.
[1] 영화 쥬만지(1995)의 한 장면에서, 어린 주인공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피아노의 음과 함께 벽에서 사자와 같은 무서운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를 위협한다. 사자 꼬리로 먼지가 쌓인 피아노 건반을 쓸어 내리며 소리를 내며 두드린다. 주인공 누나 주디가 동생에게 ‘이건 진짜가 아니야, 피터’ 라고 말한다.
[2] 사자굴 [Sajagul] Lion’s Den intro 영상 내레이션 일부
[3] 당시 아버지가 엄마를 병원에 보냈고, 이유를 모르는 세 자매는 외로웠다. 이러한 이유로 아침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다. 그래서 사자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아버지는 뒷모습이 전부다. 아빠, 그리고 세자매 총 네 명의 숫자 사(四)는 사자굴의 ‘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버지를 통해 집안 구조를 이해하고 순서를 기억했다고 전한다.
[4] 아침은 한 인터뷰에서, 2015~2017년까지 콜롬비아 대학원 재학시절, 다수의 모자이크 장식품과 가짜 콘크리트 조각상을 제작했다. “당시에는 이런 작품이 유행했다. 사람들이 진정성을 조롱하고 모든 것을 비꼬고, 풍자적이었다. 이제는 이제 그런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진실되게 전심으로 다룰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20살 때 했던 양안시 교정술이 다시 재발하여 도자기, 제본, 판화, 복화술에 대한 매체를 탐구하다 2019년 다시 그림 그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Joeun Kim Aatchim’s Delicate Drawings on Silk Are Defiantly Sincere” by Claire Voon, Artsy, June 29, 2022,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joeun-kim-aatchims-delicate-drawings-silk-defiantly-sincere
[5] 아침의 작업실에서는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발견할 수 있다. 세라믹, 책(제본 포함), 사진, 에칭 판화, 실크 스크린, 스테인드글라스, 직접 제작한 액자 틀, 타일을 붙여 만든 테이블, 지렁이 모형, 그리고 호두까기인 너트 크래커 등 다양한 재료가 존재한다. 마치 거대한 아침의 세계가 그녀에게 다가올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대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아침은 작업할 때 한 가지에 몰두하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집중한다. 그래서 과거의 작업을 현재에 내놓아도 전혀 무방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는다. 단순한 재료적 맥락을 넘어 개인사, 예술사, 전시, 작품을 대하는 모든 방식에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6] 최근 아침은 희귀 신장(콩팥) 정맥 압박 증후군인 호두까기 증후군(Nutcracker Syndrome)으로 최소침습 수술을 받았다. 최소침습 수술은 회복 시간을 단축하고 수술 후 합병증을 줄이기 위한 시술로 아주 최소의 부분만 절개하여 이루어진다. 아침이 진행하는 ‘최소침습’ 프로젝트 중 소(小)에 집중하여 아주 작은 것, 소소한 것,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래 전체 프로젝트는 아침이 병원에 다니면서 닥터 H 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하나씩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7] 호두까기는 낮과 밤,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는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을 구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작가가 직접 설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계기도 되었다. 호두까기를 받치고 있는 붉은 거울과 호두나무 선반에서 나오는 붉은 반사광이 벽에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항상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8]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호두까기는 유럽에서 남성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아침은 호두까기 오브제를 온라인 옥션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아침이 호두까기 증후군으로 응급실을 드나들기 전, 수년간의 고통을 겪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의 병과 그가 모은 오브제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적 연결이었을 것이다.
[9]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의 근본적 불안을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 로 설명한다. 존재론적 불안 자체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데, 인간은 불현듯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어두워진다.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다.
2024.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