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독하고 견고해진 우리 사이, 바로 예술
정재연
한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의기소침해진 기억이 있을까? 예술 작품 앞에 한참 서서 감상하는 관람객을 보고 의아해했던 적은? 이전까지 예술은 다른 지식의 영역 같고 전문적인 집단 문화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들–예술가와 미술관, 갤러리, 평론가, 딜러, 수집가-만의 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만이었기에 대중의 호응이나 인기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쉽게 풀어보자면, 전통적으로 소수의 특권층이나 엘리트적 지식이 있어야 향유할 수 있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이제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이 내놓는 온라인 플랫폼과 공공재인 소장품의 활용적 측면에서 이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독립된 공간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민주적인 공공의 공간[1]이 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문화 경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풍경으로 담고 이해하는 사람들. 이 말인즉슨, 현대의 관람객은 단지 전시되어 있는 예술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형태로 예술을 접하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Edward Ruscha
OK (State I) (1990)
ARTIST ROOMS Tate and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Lent by Artist Rooms Foundation 2011
© Edward Ruscha
해시태그(#)만 있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탐색할 수 있다. 검색엔진을 활용해 누구나 원하는 장르, 작가의 작품을 만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온라인 전시 등 쉽게 예술 세계에 접촉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전 세계의 예술 작품과 만날 수 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예술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미술을 소개하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개인 채널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구독하고 있는 몇 가지 채널을 공유하자면, 예술산책 Art walk(@art_walk), 널 위한 문화예술(@art_for_you), ArtDrunk(@ArtDrunk)는 유튜브 채널로 우리가 궁금한 명화에 관한 이야기, 인기 있는 전시, 작가 탐구 등을 다룬다. 반면 인스타그램 craki(@craki), oottoogi(@oottoogi), 난트 NANT(@nant.official), Iron Velvet(@__ironvelvet__)은 국내외 전시와 미술계의 다양한 소식을 전한다. 우뚜기 같은 채널은 전시 관람 후 들르기 좋은 근처 맛집 코스까지 소개한다.
아이언 벨벳은 뉴욕에서 자신의 주거 공간을 오프라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을 시작으로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채널로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큐레이터나 작가 인터뷰, 작가들과 협업해 제작한 작품 판매와 전시 등을 온라인에 선보인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나 관람객의 입장으로 바라보자면 계속 바뀌고 생성되는 다양한 정보와 예술의 해석을 온라인으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더 이상 유일무이하게 예술 작품이나 관련 지식을 소개하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만나고 그것에 관여하며 매개하고 재매개하는 방식은 휴대전화 카메라, 인스타그램, 네트워크화된 문화 등의 테크놀로지가 규정하는 일상의 시각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이 내재적으로 엮여 있다.[2] 우리가 힘겹게 지나온 지난 2년 이상의 팬데믹 기간을 다시 상기해보자. 당연한 일상을 보내기 어려워진 그 시기에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시기를 보냈을지 말이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인터넷 콘텐츠로 보여지고, 온라인으로만 소통 가능해진 팬데믹 시기에 예술 작품이 ‘디지털 이미지’가 되고 ‘네트워크화된 이미지’로 유통되었다. NFT 디지털로 새로 태어난 예술 작품은 불티나게 사고 팔렸고 가격이 치솟았다. 팬데믹 시기에 미술사나 인문학, 큐레이터의 전문성은 새로운 기술을 잘 다룰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다. 디지털 예술 작품[3]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시대가 되면서 일반 사람들도 예술 작품 소유자, 즉 컬렉터가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부유한 수집가,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컬렉터’라는 이름이 디지털 작품의 소유자로 확대되면서 예술의 관심은 더 커졌다. VR기술, 드론 카메라, 라이더 스캔, 게임 등 현대 기술을 미술 관점에서 다루는 전시와 작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의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 스튜디오(Marshmallow Laser Feast Studio)는 ‘동물의 눈으로(In the Eyes of the Animals)’(2015)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잠자리, 개구리, 올빼미 같은 동물의 시각과 청각을 경험하게 해 인간 중심적 인류세 미학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 세계를 제시한다. 또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다중 감각적 체험을 통해 인간 지각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관객에게 인간 중심적 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문경원 & 전준호의 ‘불 피우기’(2022)는 관객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작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인공지능(GPT-3)을 사용해 작품의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생존, 발전, 파괴의 상징으로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불과 인간, 자연, 기술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특히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사회> 전시는 비디오게임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발전한 게임의 언어, 문법, 그래픽, 도구 등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가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짚어본 전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몰입하며,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상황과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신기술이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쓰는 등의 창작 도구로 변하면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가능성마저 열렸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예술 작품에 대한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와 이것이 유통되는 네트워크화된 생태계에 대한 이해[4]는 필수이며, 지식을 겸비한 예술적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배우고 감상하는 것이 특정 학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제한되었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온라인 예술 교육 플랫폼도 증가하면서 누구나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나에게도 4세 자녀와 함께 즐기는 몇몇 사이트가 있다. 국내 사이트로는 키드키즈(KidKIDS)로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놀이처럼 코딩을 배우거나, 종이접기, 퍼포먼스 미술 등의 활동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어 자주 이용한다. 또한 해외 사이트 아트 포 키즈 허브(Art for Kids Hub)는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드로잉 튜토리얼을 제공하고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대일 맞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웃스쿨(Outschool)은 역사, 수학, 과학 등의 학년별 학습 뿐만 아니라, 미술, 체스, 코딩과 같은 창의적인 특별 수업을 제공한다. 성인 학습 사이트로는 코세라(Coursera), 클래스 101 등이 있다. 우리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할 때 내적 동기가 강해진다. 특정 예술 사조나 기법에 관심이 있다면, 챗GPT와 같은 AI 기반 플랫폼을 통해 작품이나 자료를 탐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DeepArt, Runway ML 등의 AI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는 교육 자료를 추천받거나, AI를 통해 창작 활동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예술과 교육뿐 아니라 참여형 예술(Participatory Art)로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 뉴욕한국문화원(KCCNY)에서 진행한 ‘한글 벽 프로젝트’는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와 전 세계인의 지혜의 문장을 모아 벽을 채운 작품이다. 올해 5월에 뉴욕한국문화원이 ‘한글 벽 프로젝트 캠페인 웹사이를’를 공개한 이래 약 770만 명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프로젝트는 캠페인 웹사이트에서 ‘세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Things I love to talk about)’라는 주제로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문장을 입력하고 색칠해 자신만의 한글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이루어진 대형 벽면에 한글 자모를 조합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문화와 세계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 참여형 프로젝트다. 또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는 8월까지 오스카 무리요(Oscar Murillo)의 관람객 참여형 전시 <The Flooded Garden>을 진행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무리요는 파랑, 노랑, 분홍색으로 가득 채운 캔버스에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흔적을 남기는 프로젝트다. 이로써 예술가와 관람객의 함께 완성하는 공동 창작물이 탄생했다. 예술은 단순히 감상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와 집단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포스트디지털과 포스트인터넷 시대에서는 소비하는 문화와 예술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이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예술을 찾고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리고 예술 작품의 감상을 넘어 공유하고 싶어 할까? 현대 사회 사람들은 예술을 자기표현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며, 동시에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방식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을 독창적이고 유일한 존재로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우리는 다시금 미술관을 찾는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관점을 접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감한다. 문학.예술 비평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의 <<이상한 날씨>>에서는 “공감은 디킨스의 책을 읽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고를 들여야 한다. 예술이 하는 일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공간과 같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친구여, 그대 하기에 달렸다”고 밝히고 있다. 작품이 주는 위로의 깊이를 이해한다면 다시 찾게 된다.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제한된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상상하게 하고, 탐색하게 하며, 헤매게 만든다. 그 어디에 있든, 마음속에 품은 그림과 조각, 사진들은 우리의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 이 순간, 너와 나의 사이는 돈독하고 견고해졌다.
[1]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p. 36-37.
[2] <<큐레토리얼 사이와 변주>>(국립현대미술관, 2018) 중 빅토리아 월시의 ‘상황 특정적 연구: 큐레이팅, 테크놀로지, 미래’ p.123참고.
[3] 대표적으로 아트 블록스(Art Blocks)는 창의적인 코드를 사용해 생성 예술가(Generative artist)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오늘날에는 컴퓨터 코드를 사용하여 알고리즘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 알고리즘에는 무작위성(randomness)으로 인해 고유하고 유일한 작품을 생성하게 된다. 이 말은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도 똑같이 나오지 않는 유일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NFT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활동해 온 아티스트는 드미트리 체르디악(Dmitri Cherniak), 자크 리버만(Zack Lieberman), 비플(Beeple) 등이 있다.
[4] 앞의 책, p. 126.
정재연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 노동자이자 엄마. 2011년부터 아트선재센터를 시작으로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2014) <바우하우스: 무대실험 인간-공간-기계> 전시 어시스트로 일했고, 서울시립미술관(2015)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 문화역서울 284의 <다빈치 코덱스>(2016-2017), 제1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2022) 큐레이터로 지냈다. 2017년 뉴욕으로 넘어와 첼시에 있는 갤러리를 거쳐, 현재 <퍼블릭아트> 매거진, 미술 비평 웹진 ’ACK’에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이따금 전시를 기획한다.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돈독하고 견고해진 우리 사이, 바로 예술
정재연
한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의기소침해진 기억이 있을까? 예술 작품 앞에 한참 서서 감상하는 관람객을 보고 의아해했던 적은? 이전까지 예술은 다른 지식의 영역 같고 전문적인 집단 문화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들–예술가와 미술관, 갤러리, 평론가, 딜러, 수집가-만의 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만이었기에 대중의 호응이나 인기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쉽게 풀어보자면, 전통적으로 소수의 특권층이나 엘리트적 지식이 있어야 향유할 수 있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이제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이 내놓는 온라인 플랫폼과 공공재인 소장품의 활용적 측면에서 이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독립된 공간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민주적인 공공의 공간[1]이 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문화 경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풍경으로 담고 이해하는 사람들. 이 말인즉슨, 현대의 관람객은 단지 전시되어 있는 예술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형태로 예술을 접하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Edward Ruscha
OK (State I) (1990)
ARTIST ROOMS Tate and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Lent by Artist Rooms Foundation 2011
© Edward Ruscha
해시태그(#)만 있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탐색할 수 있다. 검색엔진을 활용해 누구나 원하는 장르, 작가의 작품을 만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온라인 전시 등 쉽게 예술 세계에 접촉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전 세계의 예술 작품과 만날 수 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예술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미술을 소개하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개인 채널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구독하고 있는 몇 가지 채널을 공유하자면, 예술산책 Art walk(@art_walk), 널 위한 문화예술(@art_for_you), ArtDrunk(@ArtDrunk)는 유튜브 채널로 우리가 궁금한 명화에 관한 이야기, 인기 있는 전시, 작가 탐구 등을 다룬다. 반면 인스타그램 craki(@craki), oottoogi(@oottoogi), 난트 NANT(@nant.official), Iron Velvet(@__ironvelvet__)은 국내외 전시와 미술계의 다양한 소식을 전한다. 우뚜기 같은 채널은 전시 관람 후 들르기 좋은 근처 맛집 코스까지 소개한다.
아이언 벨벳은 뉴욕에서 자신의 주거 공간을 오프라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을 시작으로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채널로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큐레이터나 작가 인터뷰, 작가들과 협업해 제작한 작품 판매와 전시 등을 온라인에 선보인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나 관람객의 입장으로 바라보자면 계속 바뀌고 생성되는 다양한 정보와 예술의 해석을 온라인으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더 이상 유일무이하게 예술 작품이나 관련 지식을 소개하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만나고 그것에 관여하며 매개하고 재매개하는 방식은 휴대전화 카메라, 인스타그램, 네트워크화된 문화 등의 테크놀로지가 규정하는 일상의 시각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이 내재적으로 엮여 있다.[2] 우리가 힘겹게 지나온 지난 2년 이상의 팬데믹 기간을 다시 상기해보자. 당연한 일상을 보내기 어려워진 그 시기에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시기를 보냈을지 말이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인터넷 콘텐츠로 보여지고, 온라인으로만 소통 가능해진 팬데믹 시기에 예술 작품이 ‘디지털 이미지’가 되고 ‘네트워크화된 이미지’로 유통되었다. NFT 디지털로 새로 태어난 예술 작품은 불티나게 사고 팔렸고 가격이 치솟았다. 팬데믹 시기에 미술사나 인문학, 큐레이터의 전문성은 새로운 기술을 잘 다룰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다. 디지털 예술 작품[3]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시대가 되면서 일반 사람들도 예술 작품 소유자, 즉 컬렉터가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부유한 수집가,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컬렉터’라는 이름이 디지털 작품의 소유자로 확대되면서 예술의 관심은 더 커졌다. VR기술, 드론 카메라, 라이더 스캔, 게임 등 현대 기술을 미술 관점에서 다루는 전시와 작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의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 스튜디오(Marshmallow Laser Feast Studio)는 ‘동물의 눈으로(In the Eyes of the Animals)’(2015)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잠자리, 개구리, 올빼미 같은 동물의 시각과 청각을 경험하게 해 인간 중심적 인류세 미학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 세계를 제시한다. 또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다중 감각적 체험을 통해 인간 지각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관객에게 인간 중심적 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문경원 & 전준호의 ‘불 피우기’(2022)는 관객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작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인공지능(GPT-3)을 사용해 작품의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생존, 발전, 파괴의 상징으로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불과 인간, 자연, 기술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특히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사회> 전시는 비디오게임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발전한 게임의 언어, 문법, 그래픽, 도구 등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가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짚어본 전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몰입하며,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상황과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신기술이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쓰는 등의 창작 도구로 변하면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가능성마저 열렸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예술 작품에 대한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와 이것이 유통되는 네트워크화된 생태계에 대한 이해[4]는 필수이며, 지식을 겸비한 예술적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배우고 감상하는 것이 특정 학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제한되었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온라인 예술 교육 플랫폼도 증가하면서 누구나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나에게도 4세 자녀와 함께 즐기는 몇몇 사이트가 있다. 국내 사이트로는 키드키즈(KidKIDS)로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놀이처럼 코딩을 배우거나, 종이접기, 퍼포먼스 미술 등의 활동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어 자주 이용한다. 또한 해외 사이트 아트 포 키즈 허브(Art for Kids Hub)는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드로잉 튜토리얼을 제공하고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대일 맞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웃스쿨(Outschool)은 역사, 수학, 과학 등의 학년별 학습 뿐만 아니라, 미술, 체스, 코딩과 같은 창의적인 특별 수업을 제공한다. 성인 학습 사이트로는 코세라(Coursera), 클래스 101 등이 있다. 우리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할 때 내적 동기가 강해진다. 특정 예술 사조나 기법에 관심이 있다면, 챗GPT와 같은 AI 기반 플랫폼을 통해 작품이나 자료를 탐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DeepArt, Runway ML 등의 AI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는 교육 자료를 추천받거나, AI를 통해 창작 활동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예술과 교육뿐 아니라 참여형 예술(Participatory Art)로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 뉴욕한국문화원(KCCNY)에서 진행한 ‘한글 벽 프로젝트’는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와 전 세계인의 지혜의 문장을 모아 벽을 채운 작품이다. 올해 5월에 뉴욕한국문화원이 ‘한글 벽 프로젝트 캠페인 웹사이를’를 공개한 이래 약 770만 명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프로젝트는 캠페인 웹사이트에서 ‘세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Things I love to talk about)’라는 주제로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문장을 입력하고 색칠해 자신만의 한글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이루어진 대형 벽면에 한글 자모를 조합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문화와 세계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 참여형 프로젝트다. 또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는 8월까지 오스카 무리요(Oscar Murillo)의 관람객 참여형 전시 <The Flooded Garden>을 진행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무리요는 파랑, 노랑, 분홍색으로 가득 채운 캔버스에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흔적을 남기는 프로젝트다. 이로써 예술가와 관람객의 함께 완성하는 공동 창작물이 탄생했다. 예술은 단순히 감상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와 집단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포스트디지털과 포스트인터넷 시대에서는 소비하는 문화와 예술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이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예술을 찾고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리고 예술 작품의 감상을 넘어 공유하고 싶어 할까? 현대 사회 사람들은 예술을 자기표현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며, 동시에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방식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을 독창적이고 유일한 존재로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우리는 다시금 미술관을 찾는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관점을 접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감한다. 문학.예술 비평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의 <<이상한 날씨>>에서는 “공감은 디킨스의 책을 읽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고를 들여야 한다. 예술이 하는 일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공간과 같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친구여, 그대 하기에 달렸다”고 밝히고 있다. 작품이 주는 위로의 깊이를 이해한다면 다시 찾게 된다.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제한된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상상하게 하고, 탐색하게 하며, 헤매게 만든다. 그 어디에 있든, 마음속에 품은 그림과 조각, 사진들은 우리의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 이 순간, 너와 나의 사이는 돈독하고 견고해졌다.
[1]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p. 36-37.
[2] <<큐레토리얼 사이와 변주>>(국립현대미술관, 2018) 중 빅토리아 월시의 ‘상황 특정적 연구: 큐레이팅, 테크놀로지, 미래’ p.123참고.
[3] 대표적으로 아트 블록스(Art Blocks)는 창의적인 코드를 사용해 생성 예술가(Generative artist)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오늘날에는 컴퓨터 코드를 사용하여 알고리즘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 알고리즘에는 무작위성(randomness)으로 인해 고유하고 유일한 작품을 생성하게 된다. 이 말은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도 똑같이 나오지 않는 유일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NFT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활동해 온 아티스트는 드미트리 체르디악(Dmitri Cherniak), 자크 리버만(Zack Lieberman), 비플(Beeple) 등이 있다.
[4] 앞의 책, p. 126.
정재연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 노동자이자 엄마. 2011년부터 아트선재센터를 시작으로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2014) <바우하우스: 무대실험 인간-공간-기계> 전시 어시스트로 일했고, 서울시립미술관(2015)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 문화역서울 284의 <다빈치 코덱스>(2016-2017), 제1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2022) 큐레이터로 지냈다. 2017년 뉴욕으로 넘어와 첼시에 있는 갤러리를 거쳐, 현재 <퍼블릭아트> 매거진, 미술 비평 웹진 ’ACK’에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이따금 전시를 기획한다.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