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흔적의 교차
박천(시안미술관 학예실장)
현대를 묘사하는 '급변하는 세계', '다원화된 세계'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이러한 문구가 오늘날의 모습을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개념들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바운더리에 속하는 공동체와의 연결을 정립하거나 혹은 재정립하기도 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결과적으로 '세계'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로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연결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모유진 작가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관계적 특성과 그로부터 생기는 기억과 흔적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써 작용한다. 이는 공동체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내에서 자신을 위치시키고 새로운 연결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넓힘과 동시에 사회적 연결을 더욱 복잡하고 긴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는 물리적 만남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사건으로부터 기인하기에, 작가는 개인과 개인이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억과 흔적이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모유진_마주친 것2,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97x130.3cm, 2022
모유진 _수집된 관계2,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90.9x72.7cm, 2022
모유진 _증식하는 군자란(엄마의 30년),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16x91cm, 2022
모유진 작가는 ‘우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요소인 '나'와 '너'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작가의 작업과 연구에서 '나'와 '너', 즉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물리적인 접촉을 넘어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교류를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교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복수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풀어내자면, 주체와 객체는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며,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없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두 대상 간의 상호작용은 사건 이후에도 '기억' 혹은 ‘흔적’이라는 형태로 남아 제3자에게 이어져 또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와 '기억(흔적)'은 다양한 기법과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한지에 채색과 다른 그림을 덧붙이는 방식을 사용하여, 각 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조화로운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러한 기법은 콜라주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부분적 요소가 지니는 의미를 배제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전체와 이웃시켜 작품의 서사를 더욱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안은 시간'(2024) 에서는 나무 밑 그늘이 있는 장소가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약간의 이질감이 있는 형태로 농부로 추정되는 사람의 흔적을 덧붙여 두었는데, 이 흔적은 그리 특별한 일도 기억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있었던 그 흔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남겨진 기억의 조각으로 머문다. 잠시 그 장소에 쉬어 간 등장인물의 서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덧붙여서.
모유진 _안은시간, 2024,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30.3x97cm
‘단단한 윤슬’(2024)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 풍경은 단순한 농업 장비가 아니라, 농부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흔적을 상징한다. 비닐하우스의 표면을 흐르는 반짝임은 농부들의 땀, 어쩌면 그 지역의 지속적인 삶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비닐하우스 위에는 여러 농부들의 실루엣이 겹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실루엣들은 농부들의 일상과 그들이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 우리의 삶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보다 깊게 접근하자면, 작품은 단순히 현재의 순간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존재론적 연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은 존재와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라는 개념의 무게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작가의 작품은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를 이루는 과정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장소, 사물, 사건 등 보다 확장된 개념과 이웃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와 확장을 반영하며,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유진 _단단한 윤슬, 2024,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47x200cm
아마도 이와 같은 질문은 작가의 삶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모유진 작가의 활동 반경은 도시와 시골을 넘나든다. 집과 작업실 그리고 직장까지의 반경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일어났던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지나다니는 길에 있던 비닐하우스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없어질 공간과 장소에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다든지, 전혀 연고가 없었던 성주라는 지역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나,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지역민과 호흡하며 사라진 이야기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 속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담아내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 작가 스스로의 위치는 끝내 놓은, 혹은 끝난 시점, 그리고 바로 다음을 시작하는 시점 사이에 있다고 한다. 아직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하는 모유진 작가는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면서, 자신이 속해야 할 집단의 위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와 같은 작업과 연구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의 구축을 수행하고 있다. 정리하면, 작가의 작업은 기억과 흔적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연결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태도이자 실천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의 조각과 흔적이 어떻게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하며, 개인과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업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파편화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아니 어쩌면 흔적을 남겨야만 하는 지점이 아닐까.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기억의 조각, 흔적의 교차
박천(시안미술관 학예실장)
현대를 묘사하는 '급변하는 세계', '다원화된 세계'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이러한 문구가 오늘날의 모습을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개념들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바운더리에 속하는 공동체와의 연결을 정립하거나 혹은 재정립하기도 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결과적으로 '세계'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로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연결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모유진 작가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관계적 특성과 그로부터 생기는 기억과 흔적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써 작용한다. 이는 공동체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내에서 자신을 위치시키고 새로운 연결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넓힘과 동시에 사회적 연결을 더욱 복잡하고 긴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는 물리적 만남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사건으로부터 기인하기에, 작가는 개인과 개인이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억과 흔적이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모유진_마주친 것2,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97x130.3cm, 2022
모유진 _수집된 관계2,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90.9x72.7cm, 2022
모유진 _증식하는 군자란(엄마의 30년),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16x91cm, 2022
모유진 작가는 ‘우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요소인 '나'와 '너'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작가의 작업과 연구에서 '나'와 '너', 즉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물리적인 접촉을 넘어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교류를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교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복수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풀어내자면, 주체와 객체는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며,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없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두 대상 간의 상호작용은 사건 이후에도 '기억' 혹은 ‘흔적’이라는 형태로 남아 제3자에게 이어져 또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와 '기억(흔적)'은 다양한 기법과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한지에 채색과 다른 그림을 덧붙이는 방식을 사용하여, 각 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조화로운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러한 기법은 콜라주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부분적 요소가 지니는 의미를 배제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전체와 이웃시켜 작품의 서사를 더욱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안은 시간'(2024) 에서는 나무 밑 그늘이 있는 장소가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약간의 이질감이 있는 형태로 농부로 추정되는 사람의 흔적을 덧붙여 두었는데, 이 흔적은 그리 특별한 일도 기억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있었던 그 흔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남겨진 기억의 조각으로 머문다. 잠시 그 장소에 쉬어 간 등장인물의 서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덧붙여서.
모유진 _안은시간, 2024,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30.3x97cm
‘단단한 윤슬’(2024)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 풍경은 단순한 농업 장비가 아니라, 농부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흔적을 상징한다. 비닐하우스의 표면을 흐르는 반짝임은 농부들의 땀, 어쩌면 그 지역의 지속적인 삶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비닐하우스 위에는 여러 농부들의 실루엣이 겹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실루엣들은 농부들의 일상과 그들이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 우리의 삶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보다 깊게 접근하자면, 작품은 단순히 현재의 순간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존재론적 연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은 존재와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라는 개념의 무게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작가의 작품은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를 이루는 과정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장소, 사물, 사건 등 보다 확장된 개념과 이웃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와 확장을 반영하며,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유진 _단단한 윤슬, 2024, 한지에 채색 및 덧붙임, 147x200cm
아마도 이와 같은 질문은 작가의 삶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모유진 작가의 활동 반경은 도시와 시골을 넘나든다. 집과 작업실 그리고 직장까지의 반경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일어났던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지나다니는 길에 있던 비닐하우스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없어질 공간과 장소에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다든지, 전혀 연고가 없었던 성주라는 지역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나,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지역민과 호흡하며 사라진 이야기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 속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담아내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 작가 스스로의 위치는 끝내 놓은, 혹은 끝난 시점, 그리고 바로 다음을 시작하는 시점 사이에 있다고 한다. 아직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하는 모유진 작가는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면서, 자신이 속해야 할 집단의 위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와 같은 작업과 연구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의 구축을 수행하고 있다. 정리하면, 작가의 작업은 기억과 흔적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연결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태도이자 실천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의 조각과 흔적이 어떻게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하며, 개인과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업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파편화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아니 어쩌면 흔적을 남겨야만 하는 지점이 아닐까.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