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우오모의 애상곡:
로베르트 문테안의 회화에 대하여
안재우(독립 큐레이터, 문화평론가)
“여기는 동침보다 입맞춤이 어려운 곳이야.” 내가 독일 베를린으로 처음 이주했을 때, 현지에서 만난 영화제작자 친구가 내 새 거주 도시에 대하여 한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현대 예술의 가장 자유로운 메카로 불리는 베를린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쾌락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위이자 신체적 접촉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동침이 아무렇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체적 접촉은 동침보다 상대적으로 덜하나 정서적 접촉의 활발함이 수반되어야만 이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지는 입맞춤은 그보다도 더 힘들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라. 몸의 나눔은 자유의 도시답게 다른 곳보다 쉬울 수 있으나, 마음의 나눔은 예술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을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라. 예술의 도시마저 정서적 유대의 형성은 쉽지 않은, 그러한 세상 속에서 진정한 애정과 위로를 쟁취하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당신과 나.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로베르트 문테안(Robert Muntean)의 작업을 감상하며, 그의 고요한 그림들이 들려주는 애상곡에 대하여 숙고에 빠졌다. 우선 굳이 미술사학의 용어법으로 말하자면, 그는 ‘추상적 구상화’를, 특히 추상적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 미술사조의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순히 그 조류 위에 자신의 돛단배를 띄운 게 아니라 그 구체적 흐름 하나를 일으키는 독창적인 중력이 되었다. 그러니까 추상적 인물화라는 흐름을 따라 그 형식을 통해 작업을 하기보다는, 그가 통찰하는 이 시대의 사람이 갖는 속성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한 결과로써 추상적 인물화라는 거시적 흐름 속에서 하나의 주요한 독창적인 자기만의 흐름을 그는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서, 그의 애상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인물들은 인물이라는 형태를 갖고 있는 구상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에 그 외형적 구체성이 해체된 추상성 또한 지니고 있는데, 그가 이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자신이 인물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외모를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의상, 장신구, 그리고 화장품 등은 그의 회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흐릿한 형태로 존재한다, 당신이 새로 산 에메랄드 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조명이 밝은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하여도 밤안개가 충분히 짙으면 나는 그것들을 알아볼 수 없듯이. 하지만 당신이나 나나 그 안개의 존재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지 않은가, 그 흐림은 또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흐림을 또렷하게, 즉 흐림을 흐리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흐림을 흐린 그대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테안의 추상을 흐림으로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형식적인 차원에서만 볼 때에는 분명 ‘추상적’ 인물화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가 오히려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Some Velvet Morning 1(2024, 캔버스에 유채, 80 × 65 cm)
Interzone(2024, 캔버스에 유채, 65 × 80 cm)
게다가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상청조차 예보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안개 두 가지와 공존하지 않는가. 하나는 우리의 시선에 존재하는 안개이다. 의학적으로 뛰어난 시력을 지녔어도 온전하지 못한 시선을 가진 게 인간이고, 오이디푸스(Oedipus)처럼 시력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도 인간이다. 문테안의 회화는 ‘우리는 그러한 존재이기에, 우리의 구상에는 언제나 추상이 있고, 추상을 응시할 때에만 새롭게 보이는 구상이 있다’를 힘있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안개는 정신의 안개이다. 철학사와 예술사 모두 정신의 안개란 무엇이며, 그 뒤에 숨은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이나 연애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여서, 관계 초기의 호감은 안개 뒤에 숨은 요소들이 보이지 않고 좋은 것들만 보이기 때문에 발생하고,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숨어있던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면서 그 결과 호감이 더욱 커질 수 있거나 소멸할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결혼 정보 회사에서 사용하는 회원들의 프로필 사진과 문테안의 인물화 가운데 어떤 게 당신과 나에 대한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고 봐야 할까. 사진관의 카메라는 정밀한 동시에 부정확한 반면, 문테안의 붓은 추상적이나, 아니 오히려 추상적이기에, 두 안개의 부정확성을 거두어 보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가 비록 흐린 시대의 흐린 존재들이다 하여도,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들임을 역설한다고도 볼 수 있을까. 문테안의 추상은 고요한 동시에 폭발적인 역동성 또한 지니고 있는데, 이 정적인 운동에너지는 추상적 인물화의 선배 거장들인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과 프랑크 아우어바흐(Frank Auerbach)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움직임은 무엇일까: 가면 갈수록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질주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 일단 그 속도에 맞춰서 함께 역주하는 움직임일까, 또는 그렇게 무리하며 달리고 있기에 자아가 부서지고 있는, 그러한 자기 파괴의 움직임일까. 여러 감상이 가능할 수 있는 가운데, 문테안이 실천하는 색의 조합과 만발하는 꽃밭과도 같은 그 형태적 울림을 고려하면 우리를 지배하는 부정적 움직임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고뇌와 열망의 심적 움직임으로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UNC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그의 개인전 제목은 《Closer》이며, 이는 그의 《Closer》 연작과 동명이다. 그의 작업과 이 제목을 동시에 생각해보면 동명의 다른 예술 분야 작품들도 자연스레 떠오르리라, 가령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의 희곡이자 이를 마이크 니컬스(Mike Nichols)가 영화화한 《Closer》, 그리고 조이 디비젼(Joy Division)의 앨범 《Closer》 등이 떠오를 것이다. 희곡, 영화, 그리고 앨범 모두 우리는 자아 속 미시적 안개와 세상의 거시적 안개 모두의 지배를 받기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음을 역설한다. ‘Closer’라는 영어 단어가 가진 중의성도 이를 흥미롭게 반영한다. ‘클로서’로 발음할 때에는 ‘더 가까이’를 뜻하지만, ‘클로저’로 발음할 때에는 ‘닫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아주 가끔만 아름다울 뿐, 실은 너무나 자주 결국 서로가 더 멀어지게 되고 마음의 문이 오히려 굳게 닫혀버리게 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고슴도치 딜레마’ 또한 이와 일맥상통한다. 즉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극복하고자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다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친밀감을 위해 서로에게 다가서지만 그 행위가 서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시대보다도 미시적/거시적 안개가 두터운 시대로 간주되는 현대에 사는 문테안과 그의 감상자들인 우리의 《Closer》는 어떻게 이해되고 재탄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논한 문테안의 화법을 고려하면, 그 애상곡이 유발하는 쓰디쓴 눈물에 적지 않은 기쁨의 눈물 또한 섞일 수 있으리라. 자명하지 않은가, 작업이 그 어떠한 안개도 관통할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광하기에.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아름다움 또한 밝혀지기에. 세상에서 가장 흐리고 애절한 애상곡조차 창법이 뛰어난 성악가의 목소리를 만나면 필히 오페라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것처럼, 붓으로 노래하는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인 문테안의 예술은 당신과 나를, 그리고 당신과 당신 자신을 더 가깝게 하리라.
Closer(2024, 캔버스에 유채, 40 × 30 cm)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프리모 우오모의 애상곡:
로베르트 문테안의 회화에 대하여
안재우(독립 큐레이터, 문화평론가)
“여기는 동침보다 입맞춤이 어려운 곳이야.” 내가 독일 베를린으로 처음 이주했을 때, 현지에서 만난 영화제작자 친구가 내 새 거주 도시에 대하여 한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현대 예술의 가장 자유로운 메카로 불리는 베를린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쾌락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위이자 신체적 접촉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동침이 아무렇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체적 접촉은 동침보다 상대적으로 덜하나 정서적 접촉의 활발함이 수반되어야만 이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지는 입맞춤은 그보다도 더 힘들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라. 몸의 나눔은 자유의 도시답게 다른 곳보다 쉬울 수 있으나, 마음의 나눔은 예술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을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라. 예술의 도시마저 정서적 유대의 형성은 쉽지 않은, 그러한 세상 속에서 진정한 애정과 위로를 쟁취하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당신과 나.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로베르트 문테안(Robert Muntean)의 작업을 감상하며, 그의 고요한 그림들이 들려주는 애상곡에 대하여 숙고에 빠졌다. 우선 굳이 미술사학의 용어법으로 말하자면, 그는 ‘추상적 구상화’를, 특히 추상적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 미술사조의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순히 그 조류 위에 자신의 돛단배를 띄운 게 아니라 그 구체적 흐름 하나를 일으키는 독창적인 중력이 되었다. 그러니까 추상적 인물화라는 흐름을 따라 그 형식을 통해 작업을 하기보다는, 그가 통찰하는 이 시대의 사람이 갖는 속성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한 결과로써 추상적 인물화라는 거시적 흐름 속에서 하나의 주요한 독창적인 자기만의 흐름을 그는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서, 그의 애상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인물들은 인물이라는 형태를 갖고 있는 구상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에 그 외형적 구체성이 해체된 추상성 또한 지니고 있는데, 그가 이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자신이 인물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외모를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의상, 장신구, 그리고 화장품 등은 그의 회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흐릿한 형태로 존재한다, 당신이 새로 산 에메랄드 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조명이 밝은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하여도 밤안개가 충분히 짙으면 나는 그것들을 알아볼 수 없듯이. 하지만 당신이나 나나 그 안개의 존재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지 않은가, 그 흐림은 또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흐림을 또렷하게, 즉 흐림을 흐리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흐림을 흐린 그대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테안의 추상을 흐림으로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형식적인 차원에서만 볼 때에는 분명 ‘추상적’ 인물화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가 오히려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Some Velvet Morning 1(2024, 캔버스에 유채, 80 × 65 cm)
Interzone(2024, 캔버스에 유채, 65 × 80 cm)
게다가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상청조차 예보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안개 두 가지와 공존하지 않는가. 하나는 우리의 시선에 존재하는 안개이다. 의학적으로 뛰어난 시력을 지녔어도 온전하지 못한 시선을 가진 게 인간이고, 오이디푸스(Oedipus)처럼 시력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도 인간이다. 문테안의 회화는 ‘우리는 그러한 존재이기에, 우리의 구상에는 언제나 추상이 있고, 추상을 응시할 때에만 새롭게 보이는 구상이 있다’를 힘있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안개는 정신의 안개이다. 철학사와 예술사 모두 정신의 안개란 무엇이며, 그 뒤에 숨은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이나 연애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여서, 관계 초기의 호감은 안개 뒤에 숨은 요소들이 보이지 않고 좋은 것들만 보이기 때문에 발생하고,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숨어있던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면서 그 결과 호감이 더욱 커질 수 있거나 소멸할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결혼 정보 회사에서 사용하는 회원들의 프로필 사진과 문테안의 인물화 가운데 어떤 게 당신과 나에 대한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고 봐야 할까. 사진관의 카메라는 정밀한 동시에 부정확한 반면, 문테안의 붓은 추상적이나, 아니 오히려 추상적이기에, 두 안개의 부정확성을 거두어 보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가 비록 흐린 시대의 흐린 존재들이다 하여도,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들임을 역설한다고도 볼 수 있을까. 문테안의 추상은 고요한 동시에 폭발적인 역동성 또한 지니고 있는데, 이 정적인 운동에너지는 추상적 인물화의 선배 거장들인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과 프랑크 아우어바흐(Frank Auerbach)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움직임은 무엇일까: 가면 갈수록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질주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 일단 그 속도에 맞춰서 함께 역주하는 움직임일까, 또는 그렇게 무리하며 달리고 있기에 자아가 부서지고 있는, 그러한 자기 파괴의 움직임일까. 여러 감상이 가능할 수 있는 가운데, 문테안이 실천하는 색의 조합과 만발하는 꽃밭과도 같은 그 형태적 울림을 고려하면 우리를 지배하는 부정적 움직임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고뇌와 열망의 심적 움직임으로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UNC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그의 개인전 제목은 《Closer》이며, 이는 그의 《Closer》 연작과 동명이다. 그의 작업과 이 제목을 동시에 생각해보면 동명의 다른 예술 분야 작품들도 자연스레 떠오르리라, 가령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의 희곡이자 이를 마이크 니컬스(Mike Nichols)가 영화화한 《Closer》, 그리고 조이 디비젼(Joy Division)의 앨범 《Closer》 등이 떠오를 것이다. 희곡, 영화, 그리고 앨범 모두 우리는 자아 속 미시적 안개와 세상의 거시적 안개 모두의 지배를 받기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음을 역설한다. ‘Closer’라는 영어 단어가 가진 중의성도 이를 흥미롭게 반영한다. ‘클로서’로 발음할 때에는 ‘더 가까이’를 뜻하지만, ‘클로저’로 발음할 때에는 ‘닫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아주 가끔만 아름다울 뿐, 실은 너무나 자주 결국 서로가 더 멀어지게 되고 마음의 문이 오히려 굳게 닫혀버리게 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고슴도치 딜레마’ 또한 이와 일맥상통한다. 즉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극복하고자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다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친밀감을 위해 서로에게 다가서지만 그 행위가 서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시대보다도 미시적/거시적 안개가 두터운 시대로 간주되는 현대에 사는 문테안과 그의 감상자들인 우리의 《Closer》는 어떻게 이해되고 재탄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논한 문테안의 화법을 고려하면, 그 애상곡이 유발하는 쓰디쓴 눈물에 적지 않은 기쁨의 눈물 또한 섞일 수 있으리라. 자명하지 않은가, 작업이 그 어떠한 안개도 관통할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광하기에.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아름다움 또한 밝혀지기에. 세상에서 가장 흐리고 애절한 애상곡조차 창법이 뛰어난 성악가의 목소리를 만나면 필히 오페라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것처럼, 붓으로 노래하는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인 문테안의 예술은 당신과 나를, 그리고 당신과 당신 자신을 더 가깝게 하리라.
Closer(2024, 캔버스에 유채, 40 × 30 cm)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