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을지로 The Art Plaza 《Walkie-Talkie》 전시 서문
따뜻한 물벼락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돈봉투에도 아랑곳 않는 꿋꿋한 여주인공. 빈정 상한 재벌집 사모님이 참지 못하고 물잔을 들어 여주인공의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언감생심 어디 우리 아들을 넘봐? 천한 것이 주제도 모르고!” 이에 질세라 여주인공은 닦지도 않고 되레 물병 째로 들이부으며 마주 부르짖는다. “댁의 아들만 귀해? 나도 우리집에선 금쪽같은 딸래미라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1.8리터를 끼얹다 18리터를 뒤집어쓰기, 즉 열 배의 되갚음을 이른다. 서기 6세기, 중국을 제패한 수나라는 100만이 넘는 군대를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한다. 국경은 쑥대밭이 되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그때, 을지문덕이 적진에 홀로 들어가 상대를 기만해 청천강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둑을 터뜨려 아까 여주인공의 물세례와는 아예 단위가 다른 물벼락으로 수십만을 즉석에서 물귀신으로 만든다. 되로 주고 말로 받기를 정통으로 체험한 수나라는 이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안 그래도 팍팍한 현실 삭막한 세상. 티키타카 서로 정 주고받으며 살아도 짧은 인생. 이런 살벌한 앙갚음 말고, 감동과 낭만으로 서로 보답할 순 없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2024 더 아트플라자는 을지문덕의 이름을 이은 을지로를 무대로 ‘말(18L) 대신 말(word)로 주고받기’를 실현한다. 을지로 곳곳을 누비며, 작가들 저마다의 기발한 주고받기 열 한 가지를 체험한다. 발걸음과 이야기의 만남. 말 그대로 “Walkie-Talkie”를 시작한다.
무전기(walkie-talkie)를 비롯, 열 한 가지의 대표적 통신수단이 곧 각 섹션의 테마이다. 체온 감도는 손편지, 우뚝 서서 제 할 말 하는 봉수대, 추억과 동심의 실전화, 모두의 시선을 모으는 호루라기, 리드미컬 모스 전신기, 하늘만한 현수막 스카이라이팅, 손바닥만한 지구 아이폰, 빚 내서 빛나는 청첩장, 세상을 발아래로 누비는 전서구,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텔레파시까지. 소곤소곤 쩌렁쩌렁, 섹션별 참여 작가들의 각양각색 말벼락에 흠뻑 젖으러, 을지로 나들이 전진~
#봉수대
“할 말 할래, 비바람 몰아쳐도 안 꺾이고 우뚝 서서”
먼 옛날, 불꽃과 연기로 급박한 사정을 끝말 잇듯 연이어 알리던 봉수대, 이제 속 사정을 뭉게뭉게 뿜는다.
#실전화
“아아~ 들리나요? 안 들리면 실을 당겨 불러요. 상대가 어리둥절해도 재밌으니 됐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실전화. 굵고 육중한 금속 전선 뭉치가 풍기는 삭막한 쇠내음 속에서 보풀 하늘대는 분홍색 털실의 따뜻한 촉감을 그려 본다.
#무전기
“응답하라 오바~ 설령 바로 옆이어도 허리춤에 손 얹고, 폼나게 무전기 흔들면서!”
현장은 늘 손발 척척, 호흡이 중요하다. 인생 현장에도 저절로 티키타카 마음 주고받는 짝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호루라기
“삐이익-! 반칙, 옐로우 카드!!”
“아니 저는 심판인데요?”
“내 마음이야”
거기 동작 그만. 모두 주목. 딴 데 보지 마. 남들이 뭐라건 마이 웨이, 오늘도 양 볼을 가득 부풀리며 삑삑, 귀청 빠지도록 선언한다.
#모스 전신기
“달달 달- 달달달달달- 나만의 리듬에 맞춰 까닥까닥. 혈액순환에 좋은 다리떨기로 사무실 바닥에, 지구에, 온 세상에 오늘도 신호를 보낸다. 복이 나가도 한 바퀴 돌아 다시 들어올 때까지.”
먼 곳에 누구든 알 수 있는 신호를 보내는 전신기. 전쟁 때는 암호로 해독을 어렵게 했다. 그리고 백 년 후 이들은 자신만의 부호로 하루종일 세상에 전신을 두들긴다. 몰라줘도 좋다. 알아주면 더 좋고.
#스카이라이팅
“하늘만한 현수막은 얼마에요?”
허공에 슥삭슥삭, 넓은 하늘이, 그림자 드리운 땅이, 온 세상이 캔버스이다. 모든 이들이 다 함께 동시에 볼 수 있는 메시지. 이런 게 바로 자동 소총, 아니 자동 소통 아닐까?
#아이폰
“손바닥만한 문 속에 세상이 있다, 내 옷이랑 신발 가방 다 합한 거보다 비싼 200만원짜리 할부 중 최첨단 문“
빛과 소리가 나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흐른다. 액정의 빛과 디지털 정보는 조형의 재료이며 이미 실물이다. 무엇보다 큰 통로. 창문 크기가, 배관의 굵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청첩장
“인생에 (가급적) 한 번 뿐인 날, (축의금 봉투 뿐만 아니라) 당신을 모십니다. 부디 자리를 (빚 내서라도)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누구에게 이렇게 신경 써서 편지 쓴 적이 있던가. 가장 정성들여 쥐어짠 글월이건만, 받는 사람에겐 가장 뻔한 글이기도 한 청첩장. 이제 뻔하지 않은 청첩장으로 내 안의 식장에 초대한다.
#전서구
“구구구구국 국국- 푸드드드덕..으악!!”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동물 1위 비둘기. 캣맘이 퍼지른 사료 먹던 길고양이도 떼지어 쫓아내고 기어이 뺏어먹는 현대의 대표적 맹수이지만, 한때 가녀린 발목에 애틋한 편지 여미고 세상을 널리 누비며, 크고 작은 기다림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작가들처럼.
#텔레파시
“오빤 내 맘도 몰라?”
“응 몰라. 초능력자니? 말을 하든지”
‘초능력자면 널 만나겠냐고, 그 능력으로 딴 사람 만나지…’ 오빠의 바람대로 초능력자들이 텔레파시를 보내며 수많은 딴 사람을 만나러 을지로에 나들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니 과연?
#손편지
“스승에겐 감사를, 연인에겐 감동을, 판사에겐 감형을”
우리 사회 다방면에서 여전히 활약하는 유서 깊은 대화 수단 손편지! 우편경영수지는 사양길로 접어들어도, 작가들의 우정사업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4 을지로 The Art Plaza 《Walkie-Talkie》 전시 서문
따뜻한 물벼락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돈봉투에도 아랑곳 않는 꿋꿋한 여주인공. 빈정 상한 재벌집 사모님이 참지 못하고 물잔을 들어 여주인공의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언감생심 어디 우리 아들을 넘봐? 천한 것이 주제도 모르고!” 이에 질세라 여주인공은 닦지도 않고 되레 물병 째로 들이부으며 마주 부르짖는다. “댁의 아들만 귀해? 나도 우리집에선 금쪽같은 딸래미라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1.8리터를 끼얹다 18리터를 뒤집어쓰기, 즉 열 배의 되갚음을 이른다. 서기 6세기, 중국을 제패한 수나라는 100만이 넘는 군대를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한다. 국경은 쑥대밭이 되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그때, 을지문덕이 적진에 홀로 들어가 상대를 기만해 청천강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둑을 터뜨려 아까 여주인공의 물세례와는 아예 단위가 다른 물벼락으로 수십만을 즉석에서 물귀신으로 만든다. 되로 주고 말로 받기를 정통으로 체험한 수나라는 이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안 그래도 팍팍한 현실 삭막한 세상. 티키타카 서로 정 주고받으며 살아도 짧은 인생. 이런 살벌한 앙갚음 말고, 감동과 낭만으로 서로 보답할 순 없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2024 더 아트플라자는 을지문덕의 이름을 이은 을지로를 무대로 ‘말(18L) 대신 말(word)로 주고받기’를 실현한다. 을지로 곳곳을 누비며, 작가들 저마다의 기발한 주고받기 열 한 가지를 체험한다. 발걸음과 이야기의 만남. 말 그대로 “Walkie-Talkie”를 시작한다.
무전기(walkie-talkie)를 비롯, 열 한 가지의 대표적 통신수단이 곧 각 섹션의 테마이다. 체온 감도는 손편지, 우뚝 서서 제 할 말 하는 봉수대, 추억과 동심의 실전화, 모두의 시선을 모으는 호루라기, 리드미컬 모스 전신기, 하늘만한 현수막 스카이라이팅, 손바닥만한 지구 아이폰, 빚 내서 빛나는 청첩장, 세상을 발아래로 누비는 전서구,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텔레파시까지. 소곤소곤 쩌렁쩌렁, 섹션별 참여 작가들의 각양각색 말벼락에 흠뻑 젖으러, 을지로 나들이 전진~
#봉수대
“할 말 할래, 비바람 몰아쳐도 안 꺾이고 우뚝 서서”
먼 옛날, 불꽃과 연기로 급박한 사정을 끝말 잇듯 연이어 알리던 봉수대, 이제 속 사정을 뭉게뭉게 뿜는다.
#실전화
“아아~ 들리나요? 안 들리면 실을 당겨 불러요. 상대가 어리둥절해도 재밌으니 됐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실전화. 굵고 육중한 금속 전선 뭉치가 풍기는 삭막한 쇠내음 속에서 보풀 하늘대는 분홍색 털실의 따뜻한 촉감을 그려 본다.
#무전기
“응답하라 오바~ 설령 바로 옆이어도 허리춤에 손 얹고, 폼나게 무전기 흔들면서!”
현장은 늘 손발 척척, 호흡이 중요하다. 인생 현장에도 저절로 티키타카 마음 주고받는 짝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호루라기
“삐이익-! 반칙, 옐로우 카드!!”
“아니 저는 심판인데요?”
“내 마음이야”
거기 동작 그만. 모두 주목. 딴 데 보지 마. 남들이 뭐라건 마이 웨이, 오늘도 양 볼을 가득 부풀리며 삑삑, 귀청 빠지도록 선언한다.
#모스 전신기
“달달 달- 달달달달달- 나만의 리듬에 맞춰 까닥까닥. 혈액순환에 좋은 다리떨기로 사무실 바닥에, 지구에, 온 세상에 오늘도 신호를 보낸다. 복이 나가도 한 바퀴 돌아 다시 들어올 때까지.”
먼 곳에 누구든 알 수 있는 신호를 보내는 전신기. 전쟁 때는 암호로 해독을 어렵게 했다. 그리고 백 년 후 이들은 자신만의 부호로 하루종일 세상에 전신을 두들긴다. 몰라줘도 좋다. 알아주면 더 좋고.
#스카이라이팅
“하늘만한 현수막은 얼마에요?”
허공에 슥삭슥삭, 넓은 하늘이, 그림자 드리운 땅이, 온 세상이 캔버스이다. 모든 이들이 다 함께 동시에 볼 수 있는 메시지. 이런 게 바로 자동 소총, 아니 자동 소통 아닐까?
#아이폰
“손바닥만한 문 속에 세상이 있다, 내 옷이랑 신발 가방 다 합한 거보다 비싼 200만원짜리 할부 중 최첨단 문“
빛과 소리가 나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흐른다. 액정의 빛과 디지털 정보는 조형의 재료이며 이미 실물이다. 무엇보다 큰 통로. 창문 크기가, 배관의 굵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청첩장
“인생에 (가급적) 한 번 뿐인 날, (축의금 봉투 뿐만 아니라) 당신을 모십니다. 부디 자리를 (빚 내서라도)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누구에게 이렇게 신경 써서 편지 쓴 적이 있던가. 가장 정성들여 쥐어짠 글월이건만, 받는 사람에겐 가장 뻔한 글이기도 한 청첩장. 이제 뻔하지 않은 청첩장으로 내 안의 식장에 초대한다.
#전서구
“구구구구국 국국- 푸드드드덕..으악!!”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동물 1위 비둘기. 캣맘이 퍼지른 사료 먹던 길고양이도 떼지어 쫓아내고 기어이 뺏어먹는 현대의 대표적 맹수이지만, 한때 가녀린 발목에 애틋한 편지 여미고 세상을 널리 누비며, 크고 작은 기다림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작가들처럼.
#텔레파시
“오빤 내 맘도 몰라?”
“응 몰라. 초능력자니? 말을 하든지”
‘초능력자면 널 만나겠냐고, 그 능력으로 딴 사람 만나지…’ 오빠의 바람대로 초능력자들이 텔레파시를 보내며 수많은 딴 사람을 만나러 을지로에 나들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니 과연?
#손편지
“스승에겐 감사를, 연인에겐 감동을, 판사에겐 감형을”
우리 사회 다방면에서 여전히 활약하는 유서 깊은 대화 수단 손편지! 우편경영수지는 사양길로 접어들어도, 작가들의 우정사업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2024.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