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문화재단 고양 365 비평
염원(鹽圓)의 정원
정희라(미술평론, 미술사)
염원(鹽原)은 소금이나 광물로 뒤덮인 평원이고, 염원(念願)은 간절한 바람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현실과 다른 걱정 없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무릉도원과 같은 낙원을 꿈꿔왔다. 이러한 염원이 어느 한 시대에 머물겠는가. 재난이 닥쳐 염려를 공유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전염병이 도래한 최근에도 있었다. 그 시기를 겪은 예술가의 작업에는 재난의 그림자가 피할 도리 없이 섞여 있다. 경직된 사회를 경험한 이들은 치유와 정화의 세상을 꿈꾼다. 자란 지역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기묘한 지점을 발견한 이수현은 고요함의 또 다른 모습, 생경함에 보통의 염원을 담아 동그란 소금-염원(鹽圓)으로 만들어진 정원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이수현 개인전 <흩어지는 달빛>
“저기요, 도대체 어디로 가야 상가가 나올까요? 가도 가도 숲밖에 안 보이네요.” 도시 한가운데의 산책길에서 만난 낯선 이의 질문이 평화로운 풍광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바로 여기 이 도시 속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산책길에 있었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주목하였다는 이수현 작가의 추상적인 말은 여러모로 작품의 결과 비슷하다. 경외하고, 향유하고, 속하고, 차단하고, 피하고, 섞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자연 속 인간’과 ‘인간 속 자연’을 왔다 갔다 한다.
소금과 먹. 이수현의 작품 안에서 이 둘 사이의 관계도 자연과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림 위에 얹어진 소금과 먹은 서로를 흡수한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소금의 성질이 먹의 밀도를 정한다. 바로 다음 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우연성에 그림은 내맡겨진다. 전체 바운더리, 형태의 경계는 장소를 말하기 위해 작가가 개입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장소는 이번 전시에서 출발점이 되는 장소, 자신이 자란 익숙한 지역인 고양시 일산의 산책길과 공원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위치하는 <밤안개>(2024)는 먹과 소금으로 그린 고양시의 모습이다. 이수현은 이곳의 모습을 도시의 지형도를 통해 자신이 느낀 구획된 도시를 구체적으로 호명하고, 도시가 가진 인위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려 하였다. 뭉근하고 불규칙하게 퍼진 먹은 소금에 의해 점점이 찍히며 흘러가고, 농담이 불규칙하여 기묘한 안개처럼 보인다. 또 다른 작품 <흩어지는 달빛>(2024)은 일산 호수 공원을 형상화하여, 관람객들이 공원의 느낌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에 극적인 연출을 의도하였다. 밤 공원의 감각을 전시장으로 가져오기 위해 잔잔한 조명으로 어둡게 만든 전시장에는 먹을 머금은 소금 덩어리들이 빙글 빙글 도는 선형으로 놓였고, 벽에는 달처럼 느껴지는 130x130cm 규모의 작품 <염원(鹽圓)>(2024)이 두둥실 걸렸다. 서늘한 고즈넉함이 전시장을 맴돌고, 문득 느낄 수 있는 검고 고요한 분위기는 작품 안에서 반짝하는 하얀 결정체로서의 소금을 돋보이게 한다.
이수현, 흩어지는 달빛, 가변설치, 소금에 먹, 암염, 포맥스, 2024
이수현, 밤안개, 195x504, 종이에 먹, 소금, 2024
이수현, 흩어지는 달빛, 2024, 전시전경
이수현은 소금의 연출에 일본 모래 정원의 특성을 더했다. ‘가레 산스이’라고도 불리는 모래 정원은 일본 정원 양식 중 하나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로 산수를 표현한다. 모래 정원은 거니는 정원이 아닌 고요히 바라보며 명상하는 정원이다. 작가는 이 정원의 선과 모양을 모래 위가 아닌 소금 위로 가져왔다. 이로써, 동그라미 같은 선형은 호수의 잔물결을 상징하면서 반복된 문양으로 명상과 같은 고요한 시간을 제안한다.
일본 모래 정원은 정원을 위한 정원이며, 신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이다. 모두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리거나 보존하기보다는, 전체 안에서 자연을 인위적으로 설계한다. 사람들이 설계를 잊고 자연스레 자연으로 인지하여 향유한다면 계획은 성공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 설계된 장소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본래의 자연과 다른) 익숙한 자연이 된다.
이수현의 시간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장소에 관한 연구>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 실험>은 이전 작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위동 프로젝트인 <비로소 마주하다>(2021) 전시는 삶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의 풍경을 수집하여 설치와 사진, 영상으로 담아내었고, 소금을 거칠게 쌓아 올린 작품인 <중첩된 시간>(2022)은 우레탄폼과 암염을 혼합한 여러 형태를 시도하여 공간의 응축된 시간을 표현하려 하였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금의 형태와 색, 연출을 통해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과 장소를 향유하는 이들의 감각과 염원을 세심하게 합치시켰다. 전시장에 놓인 결정체로서의 소금(鹽圓)은 염원(鹽原)의 모습으로, 당신의 염원(念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이수현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를 다른 감각으로 인지하고, 작가가 건네는 하얀 세상을 향한 염원을 함께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현_염원_세부사진
이수현_염원(鹽圓)_세부사진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고양문화재단 고양 365 비평
염원(鹽圓)의 정원
정희라(미술평론, 미술사)
염원(鹽原)은 소금이나 광물로 뒤덮인 평원이고, 염원(念願)은 간절한 바람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현실과 다른 걱정 없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무릉도원과 같은 낙원을 꿈꿔왔다. 이러한 염원이 어느 한 시대에 머물겠는가. 재난이 닥쳐 염려를 공유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전염병이 도래한 최근에도 있었다. 그 시기를 겪은 예술가의 작업에는 재난의 그림자가 피할 도리 없이 섞여 있다. 경직된 사회를 경험한 이들은 치유와 정화의 세상을 꿈꾼다. 자란 지역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기묘한 지점을 발견한 이수현은 고요함의 또 다른 모습, 생경함에 보통의 염원을 담아 동그란 소금-염원(鹽圓)으로 만들어진 정원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이수현 개인전 <흩어지는 달빛>
“저기요, 도대체 어디로 가야 상가가 나올까요? 가도 가도 숲밖에 안 보이네요.” 도시 한가운데의 산책길에서 만난 낯선 이의 질문이 평화로운 풍광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바로 여기 이 도시 속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산책길에 있었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주목하였다는 이수현 작가의 추상적인 말은 여러모로 작품의 결과 비슷하다. 경외하고, 향유하고, 속하고, 차단하고, 피하고, 섞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자연 속 인간’과 ‘인간 속 자연’을 왔다 갔다 한다.
소금과 먹. 이수현의 작품 안에서 이 둘 사이의 관계도 자연과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림 위에 얹어진 소금과 먹은 서로를 흡수한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소금의 성질이 먹의 밀도를 정한다. 바로 다음 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우연성에 그림은 내맡겨진다. 전체 바운더리, 형태의 경계는 장소를 말하기 위해 작가가 개입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장소는 이번 전시에서 출발점이 되는 장소, 자신이 자란 익숙한 지역인 고양시 일산의 산책길과 공원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위치하는 <밤안개>(2024)는 먹과 소금으로 그린 고양시의 모습이다. 이수현은 이곳의 모습을 도시의 지형도를 통해 자신이 느낀 구획된 도시를 구체적으로 호명하고, 도시가 가진 인위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려 하였다. 뭉근하고 불규칙하게 퍼진 먹은 소금에 의해 점점이 찍히며 흘러가고, 농담이 불규칙하여 기묘한 안개처럼 보인다. 또 다른 작품 <흩어지는 달빛>(2024)은 일산 호수 공원을 형상화하여, 관람객들이 공원의 느낌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에 극적인 연출을 의도하였다. 밤 공원의 감각을 전시장으로 가져오기 위해 잔잔한 조명으로 어둡게 만든 전시장에는 먹을 머금은 소금 덩어리들이 빙글 빙글 도는 선형으로 놓였고, 벽에는 달처럼 느껴지는 130x130cm 규모의 작품 <염원(鹽圓)>(2024)이 두둥실 걸렸다. 서늘한 고즈넉함이 전시장을 맴돌고, 문득 느낄 수 있는 검고 고요한 분위기는 작품 안에서 반짝하는 하얀 결정체로서의 소금을 돋보이게 한다.
이수현, 흩어지는 달빛, 가변설치, 소금에 먹, 암염, 포맥스, 2024
이수현, 밤안개, 195x504, 종이에 먹, 소금, 2024
이수현, 흩어지는 달빛, 2024, 전시전경
이수현은 소금의 연출에 일본 모래 정원의 특성을 더했다. ‘가레 산스이’라고도 불리는 모래 정원은 일본 정원 양식 중 하나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로 산수를 표현한다. 모래 정원은 거니는 정원이 아닌 고요히 바라보며 명상하는 정원이다. 작가는 이 정원의 선과 모양을 모래 위가 아닌 소금 위로 가져왔다. 이로써, 동그라미 같은 선형은 호수의 잔물결을 상징하면서 반복된 문양으로 명상과 같은 고요한 시간을 제안한다.
일본 모래 정원은 정원을 위한 정원이며, 신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이다. 모두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리거나 보존하기보다는, 전체 안에서 자연을 인위적으로 설계한다. 사람들이 설계를 잊고 자연스레 자연으로 인지하여 향유한다면 계획은 성공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 설계된 장소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본래의 자연과 다른) 익숙한 자연이 된다.
이수현의 시간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장소에 관한 연구>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 실험>은 이전 작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위동 프로젝트인 <비로소 마주하다>(2021) 전시는 삶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의 풍경을 수집하여 설치와 사진, 영상으로 담아내었고, 소금을 거칠게 쌓아 올린 작품인 <중첩된 시간>(2022)은 우레탄폼과 암염을 혼합한 여러 형태를 시도하여 공간의 응축된 시간을 표현하려 하였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금의 형태와 색, 연출을 통해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과 장소를 향유하는 이들의 감각과 염원을 세심하게 합치시켰다. 전시장에 놓인 결정체로서의 소금(鹽圓)은 염원(鹽原)의 모습으로, 당신의 염원(念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이수현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를 다른 감각으로 인지하고, 작가가 건네는 하얀 세상을 향한 염원을 함께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현_염원_세부사진
이수현_염원(鹽圓)_세부사진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