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구예술발전소 《파편화된 알고리즘》 입주작가 김서량 전시 서문
이 세상 사람 모두 협업자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공감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어느 천재 수학자의 수 감각의 비결을 물으니, 숫자에서 색깔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며, 때때로 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색깔에 따라 냄새와 습도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우리도 종종 간접 체험한다. 이를테면 오디오에 달린 시각화 패널은 소리를 보는 경험인 셈이다.
김서량은 대상을 귀로 더듬는다. 직관적인 무언가를 전달하기에는 시각이 여러모로 간편하고 유리할 텐데 굳이? 겉껍질 너머 복잡다단하고 깊디깊은 삶의 현장이나 시간의 층위를 묘사하는 데엔 더 나은 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소리로 사생하는 것이다. 엄마 배를 바라보며 ‘안녕 아기야’ 하는 대신, 초음파 진단으로 그 속내를 그리는 것이다. 이번엔 대구의 등과 배를 초음파로 심층 진단한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는, 위로든 옆으로든 끝 모를 고층 아파트의 숲을 조망한다. 중구의 공구상가를 파헤치고 공업사 사장님의 삶을 들여다본다.
“척척, 끼익~ 척척척..” 윤활유가 부족한 듯 종종 이질적인 마찰음이 뒤섞인 기계 소리, “덜커덩” 바닥의 단차를 생생히 전하는 카트의 진동, 귀 기울여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 뒤로 늙은 1톤 트럭의 탁한 배기음이 멀어져 간다. ‘사운드 설치’의 방식으로, 실제 전시 공간에 감응하여 마치 몸체가 소리로 된 기물들을 엮은, 일종의 ‘장(field)’을 결과물로 선보인다. 작가는 회화도 공부했지만, 사운드 설치는 대개 암실에 가까운 공간에 제안한다. 시청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상상을 방해한다. 소리는 진동과 현장감, 공간감을 체험하고 그 너머까지 상상하게 한다. 시각 위주의 장치가 줄 수 없는 효과와 감흥이 있다. 단서를 잘 주면, 관객은 알아서 떠올리고 그린다.
어둠을 헤치고 막상 그 권역에 들어서면 상상 이상의 생생함에 놀란다. 현장을 벗어나 다른 매체로 도무지 담을 수 없는 전형적 체험 작업이다. 작업에 따라, 무용가와 성악가, 음악가들과 편곡하고 협연도 한다. 자연, 포트폴리오나 도록을 본 사람들은 실제 작업과의 갭에 또한 놀란다. 결국 전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 승부를 봐야 하는 작업.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 섬세하게 더듬고 편집한 작업인 만큼, 간섭과 손실 없이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잘 보여주려면 늘 독립된 공간이 고프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독방은 비싼 법. 전시 오픈 직전까지도 그녀는 독방을 찾아 헤맸다. 여러 의미로, 시간과 공간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빈백을 몇 개 놓아두면, 앉아 듣다 어둠을 이불 삼아 종종 잠드는 이들이 있다. 그런 낮잠이나 짧은 꿈의 체험 또한 사운드 설치가 가진 강점이다. 암흑과 졸음이 외려 소리에 오래 가두는 좋은 창살인 셈. 소리에 매몰될 필요가 없다. 소리는 그저 주요 수단이자 형식이다. 시공간과 빛, 설치 기물의 형상과 배치, 사방에서 찌르는 진동, 공기의 흐름, 숨소리와 분위기를 함께 즐기는 작업이다. 기실 ‘사운드스케이프’란 단지 청각으로 그리는 풍경이 아니라, 현장에서 저마다 무언가 발견하고 각자 주물러 2차 창작하는 체험까지 포괄한다. 김서량의 작업의 중요한 공통분모 중 하나는 어떤 형식이든, 창작 과정에서의 주변과의 감응, 감상과 체험 현장에서의 각양각색 재생산이다. 그녀의 작업은 ‘의외’와 ‘돌발’을 먹고 끝없이 자라는 생명체와 같다.
소스 생산이 내 손 밖에서 일어난다면? 누군가는 불안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소리가 그러하다. 내는 게 아니라 담는다 기본적으로. 의도치 않은 난입과 전개는 그냥 일상이다. 시끄러운 공장에 울리는 클래식, 녹음 도중 들려오는 욕설과 개 짖는 소리, 다짜고짜 날아와 박히는 날 선 호통과 오해의 눈초리는 이제 정겹다. 오히려 작업의 크고 작은 전환점이 된다. 단순히 기록하기보다, 기록의 여정을 다시 기록하는 재창작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마주치고 스친 모든 이들이 창작 협업을 하는 격이다.
그렇게, 과정 구석구석 섬세한 데다, 결과물의 형식 또한 대개 떠올리는 것과 사뭇 다르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기금 따고, 협업 예술가 섭외해서 규합하고 중재하는 일은 물론, 레코딩과 편집 등 기술적인 실무, 사소한 행정까지 혼자 다 하는 사정을 토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해야 하는, 그러나 몸은 하나인 그 심정. 전시기획자로서 십분 공감한다. 융복합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의 유난은 비단 미술에만 국한하는 건 아니라고. 다양한 분야의 상상 초월 매운 이들을 추슬러 깊고 순하고 그윽한 맛을 내려다 보니, 그런 면에서 이 복잡 섬세한 사운드 설치가 작가에겐 그나마 절충과 타협의 형식이다.
분진과 때, 기름과 매연, 소음으로 가득한 거친 공장 바닥을 이리 빼꼼 저리 기웃거리는 작가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다. 괄시도 홀대도 당연한 비용으로 기꺼이 치르며 공장 사장님들과 얼굴 트고, 말 나누고, 술 마시며 심리적 장벽을 허문다. 작업을 위한 도구처럼 사람을 대하지 않으면, 진정 인연으로 서로 대하면 그제야 귀염받는다. 그때야 작업도 나온다. 그 장벽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게 김서량의 기본 작업 리듬. 덕분에 이런저런 작업 전반에 묻은 시선은 언론이나 유튜브의 그것과는 참 다르다. 평생 주목받은 적 없던 것에 눈길을 나눈다. 유튜브 쇼츠였으면 단번에 잘랐을 법한 일시적, 유동적, 돌발적인 것들을 오히려 챙긴다. 낡은 작업복을 걸친 공장 사장님의 뒷모습을 본인은 평생 본 적이 있을까? 본인도 모르는 그 숭고한 등을 존경, 진지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소음 속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일하는 사장님에게 정말로 첼로 연주자를 데려와 공연하기도 한다. 평소 보지 못한 것을 파헤치지만, 날 서고 음흉하고 해반닥대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잔잔하며 골똘한 시선이다.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은, 다시는 올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곳. 그래서 욕심을 부린다. 수박 겉만 핥지 않고 속살이 나올 때까지 두드리고 기다린다. 살아 봐야 아는 것을 전시장에 데려다 놓는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거창한 게 아니지만 쉽고 간편하지 않음 또한 새삼 확인한다.
역사나 세계사에 관심도 없었다. 처음엔 그냥 무턱대고 녹음부터 했다. 작업을 할수록 깊이를 더하게 되었고, 이를 알아챈 주변에서도 연구와 탐구를 거듭 의뢰했다. 하다 보니 장소 특정적인 요소가 늘고, 어느새 지금과 같은 접근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때론 밀려오는 부담감에 무섭다고 한다. 잘못 해석할까 봐.
“대구를 작업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분들을 붙들고 물으면 ‘정확히 봤어요. 재미가 없는 도시에요.’래요.” 그래서 답했다. “아무리 봐도 재미없는 곳이면, 재미없는 소리를 열심히 채집해 최대한 재미없는 풍경을 그려내는 것도 대구의 어엿한 면모겠네요?” 다음 달, 해변 ASMR을 넣은 대구 영상 샘플을 보여주며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바다가 없는 내륙 분지라서 바닷소리를 선물하려고요.” 찾을 수 없다면, 없는 걸 채우는 역발상이라. 아무래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마음에 10그램 정도는 기여한 듯하다. 그럼 나도 협업자?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4 대구예술발전소 《파편화된 알고리즘》 입주작가 김서량 전시 서문
이 세상 사람 모두 협업자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공감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어느 천재 수학자의 수 감각의 비결을 물으니, 숫자에서 색깔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며, 때때로 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색깔에 따라 냄새와 습도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우리도 종종 간접 체험한다. 이를테면 오디오에 달린 시각화 패널은 소리를 보는 경험인 셈이다.
김서량은 대상을 귀로 더듬는다. 직관적인 무언가를 전달하기에는 시각이 여러모로 간편하고 유리할 텐데 굳이? 겉껍질 너머 복잡다단하고 깊디깊은 삶의 현장이나 시간의 층위를 묘사하는 데엔 더 나은 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소리로 사생하는 것이다. 엄마 배를 바라보며 ‘안녕 아기야’ 하는 대신, 초음파 진단으로 그 속내를 그리는 것이다. 이번엔 대구의 등과 배를 초음파로 심층 진단한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는, 위로든 옆으로든 끝 모를 고층 아파트의 숲을 조망한다. 중구의 공구상가를 파헤치고 공업사 사장님의 삶을 들여다본다.
“척척, 끼익~ 척척척..” 윤활유가 부족한 듯 종종 이질적인 마찰음이 뒤섞인 기계 소리, “덜커덩” 바닥의 단차를 생생히 전하는 카트의 진동, 귀 기울여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 뒤로 늙은 1톤 트럭의 탁한 배기음이 멀어져 간다. ‘사운드 설치’의 방식으로, 실제 전시 공간에 감응하여 마치 몸체가 소리로 된 기물들을 엮은, 일종의 ‘장(field)’을 결과물로 선보인다. 작가는 회화도 공부했지만, 사운드 설치는 대개 암실에 가까운 공간에 제안한다. 시청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상상을 방해한다. 소리는 진동과 현장감, 공간감을 체험하고 그 너머까지 상상하게 한다. 시각 위주의 장치가 줄 수 없는 효과와 감흥이 있다. 단서를 잘 주면, 관객은 알아서 떠올리고 그린다.
어둠을 헤치고 막상 그 권역에 들어서면 상상 이상의 생생함에 놀란다. 현장을 벗어나 다른 매체로 도무지 담을 수 없는 전형적 체험 작업이다. 작업에 따라, 무용가와 성악가, 음악가들과 편곡하고 협연도 한다. 자연, 포트폴리오나 도록을 본 사람들은 실제 작업과의 갭에 또한 놀란다. 결국 전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 승부를 봐야 하는 작업.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 섬세하게 더듬고 편집한 작업인 만큼, 간섭과 손실 없이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잘 보여주려면 늘 독립된 공간이 고프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독방은 비싼 법. 전시 오픈 직전까지도 그녀는 독방을 찾아 헤맸다. 여러 의미로, 시간과 공간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빈백을 몇 개 놓아두면, 앉아 듣다 어둠을 이불 삼아 종종 잠드는 이들이 있다. 그런 낮잠이나 짧은 꿈의 체험 또한 사운드 설치가 가진 강점이다. 암흑과 졸음이 외려 소리에 오래 가두는 좋은 창살인 셈. 소리에 매몰될 필요가 없다. 소리는 그저 주요 수단이자 형식이다. 시공간과 빛, 설치 기물의 형상과 배치, 사방에서 찌르는 진동, 공기의 흐름, 숨소리와 분위기를 함께 즐기는 작업이다. 기실 ‘사운드스케이프’란 단지 청각으로 그리는 풍경이 아니라, 현장에서 저마다 무언가 발견하고 각자 주물러 2차 창작하는 체험까지 포괄한다. 김서량의 작업의 중요한 공통분모 중 하나는 어떤 형식이든, 창작 과정에서의 주변과의 감응, 감상과 체험 현장에서의 각양각색 재생산이다. 그녀의 작업은 ‘의외’와 ‘돌발’을 먹고 끝없이 자라는 생명체와 같다.
소스 생산이 내 손 밖에서 일어난다면? 누군가는 불안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소리가 그러하다. 내는 게 아니라 담는다 기본적으로. 의도치 않은 난입과 전개는 그냥 일상이다. 시끄러운 공장에 울리는 클래식, 녹음 도중 들려오는 욕설과 개 짖는 소리, 다짜고짜 날아와 박히는 날 선 호통과 오해의 눈초리는 이제 정겹다. 오히려 작업의 크고 작은 전환점이 된다. 단순히 기록하기보다, 기록의 여정을 다시 기록하는 재창작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마주치고 스친 모든 이들이 창작 협업을 하는 격이다.
그렇게, 과정 구석구석 섬세한 데다, 결과물의 형식 또한 대개 떠올리는 것과 사뭇 다르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기금 따고, 협업 예술가 섭외해서 규합하고 중재하는 일은 물론, 레코딩과 편집 등 기술적인 실무, 사소한 행정까지 혼자 다 하는 사정을 토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해야 하는, 그러나 몸은 하나인 그 심정. 전시기획자로서 십분 공감한다. 융복합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의 유난은 비단 미술에만 국한하는 건 아니라고. 다양한 분야의 상상 초월 매운 이들을 추슬러 깊고 순하고 그윽한 맛을 내려다 보니, 그런 면에서 이 복잡 섬세한 사운드 설치가 작가에겐 그나마 절충과 타협의 형식이다.
분진과 때, 기름과 매연, 소음으로 가득한 거친 공장 바닥을 이리 빼꼼 저리 기웃거리는 작가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다. 괄시도 홀대도 당연한 비용으로 기꺼이 치르며 공장 사장님들과 얼굴 트고, 말 나누고, 술 마시며 심리적 장벽을 허문다. 작업을 위한 도구처럼 사람을 대하지 않으면, 진정 인연으로 서로 대하면 그제야 귀염받는다. 그때야 작업도 나온다. 그 장벽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게 김서량의 기본 작업 리듬. 덕분에 이런저런 작업 전반에 묻은 시선은 언론이나 유튜브의 그것과는 참 다르다. 평생 주목받은 적 없던 것에 눈길을 나눈다. 유튜브 쇼츠였으면 단번에 잘랐을 법한 일시적, 유동적, 돌발적인 것들을 오히려 챙긴다. 낡은 작업복을 걸친 공장 사장님의 뒷모습을 본인은 평생 본 적이 있을까? 본인도 모르는 그 숭고한 등을 존경, 진지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소음 속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일하는 사장님에게 정말로 첼로 연주자를 데려와 공연하기도 한다. 평소 보지 못한 것을 파헤치지만, 날 서고 음흉하고 해반닥대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잔잔하며 골똘한 시선이다.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은, 다시는 올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곳. 그래서 욕심을 부린다. 수박 겉만 핥지 않고 속살이 나올 때까지 두드리고 기다린다. 살아 봐야 아는 것을 전시장에 데려다 놓는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거창한 게 아니지만 쉽고 간편하지 않음 또한 새삼 확인한다.
역사나 세계사에 관심도 없었다. 처음엔 그냥 무턱대고 녹음부터 했다. 작업을 할수록 깊이를 더하게 되었고, 이를 알아챈 주변에서도 연구와 탐구를 거듭 의뢰했다. 하다 보니 장소 특정적인 요소가 늘고, 어느새 지금과 같은 접근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때론 밀려오는 부담감에 무섭다고 한다. 잘못 해석할까 봐.
“대구를 작업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분들을 붙들고 물으면 ‘정확히 봤어요. 재미가 없는 도시에요.’래요.” 그래서 답했다. “아무리 봐도 재미없는 곳이면, 재미없는 소리를 열심히 채집해 최대한 재미없는 풍경을 그려내는 것도 대구의 어엿한 면모겠네요?” 다음 달, 해변 ASMR을 넣은 대구 영상 샘플을 보여주며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바다가 없는 내륙 분지라서 바닷소리를 선물하려고요.” 찾을 수 없다면, 없는 걸 채우는 역발상이라. 아무래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마음에 10그램 정도는 기여한 듯하다. 그럼 나도 협업자?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