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
박준수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앨범자켓, 29년전 사전검열로 삭제되었던 가사 중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그런 세상을 꿈꾼다.
몇 해 전부터 나는 공공연히 사석에서 미술판에도 기획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중음악 시장이 조용필과 서태지 같은 슈퍼스타 아티스트로 대표되었던 시대에서 SM, YG, JYP, 하이브 같은 대형기획사의 시대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뉴진스의 어머니 민희진 프로듀서와 같은 기획자의 시대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보며, 한국 미술판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그리고 박서보, 이우환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시대를 지나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와 같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메이저 갤러리 시대가 왔고, 점차 기획자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기획자는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평론가, 컨텐츠 크리에이터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기획자의 시대에는 필요한 요건이 몇 가지 있다. 대중음악씬이 그랬던 것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많아져야 하고, 전문적으로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매니지먼트하는 기획사가 충분히 있어야 하고, 대중과 평단의 폭발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요건들이 한국 미술판에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 미술판에도 기획자들이 현대미술의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만큼 작가가 많아졌다. 작가는 늘 많았지만, 미술 시장과 평단, 컬렉터, 대중의 관심을 모두 받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국내에 그런 작가가 많지 않다보니 과거의 기획자들은 해외에서 작가를 끌어와야 했다. 소위 외국물 좀 먹어 본 유학파 기획자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와야 좋은 평가를 받는 전시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풀이 충분히 넓어졌다. 구슬이 서말이 되었으니 보배로 꿸 기획자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드래곤볼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그냥 별 그려진 구슬에 불과하다. 7개를 모아야 소원을 빌 수 있다. 옥석 같은 작가들은 손오공처럼 모으는 기획자들.
팬데믹 이후에 유례 없는 한국 미술 시장의 활황으로 우후죽순 갤러리가 늘어났다. 아트테크 열풍에 편승해 제대로 된 기획 없이 판매에만 열중하는 갤러리도 있고, 오래된 갤러리 중에도 더이상 기획전 없이 대관이나 상설전만 하는 갤러리도 있지만, 일단 많아지니 잘하는 갤러리도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이런 갤러리들은 작가의 유명세와 탄탄한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기획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넘나들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화상(畫商)에 그치지 않고 좋은 기획자가 되고 있다. 또한, 단순히 기획자에게 주례사와 같은 전시 서문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 기획자와 적극적으로 협업하여 좋은 전시를 만들어 내고있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의 동시 개최 전후로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아트바젤을 갔을 때만 해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내게 특별히 관심을 주는 갤러리는 없었다. 키아프를 소개하는게 아니라, 한국과 서울을 먼저 소개해야 할 판이었다. 팬데믹 이후 2022년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첫 동시 개최를 마치고 찾은 베니스와 베를린, 런던에서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있었다. 키아프를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먼저 물어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시작된 K-Movie와 BTS로 시작된 K-Pop 덕분에 이미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었는데, 프리즈 서울의 진출이 일어나자 미지에 가깝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K-Art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작가, 국제적인 갤러리와 더불어 좋은 기획자가 필요하다. 이 때 국제적인 감각과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많은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잘 알릴 수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다.
제리살츠를 만나 성덕이 된 필자, 한국의 잘하는 기획자들에게도 이 같은 팬덤이 생기길 바란다.
지난 해 뉴욕에서 머물고 있을 때 데이비드 코단스키의 전시 오프닝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오프닝에 평소 너무 좋아하는 예술평론가 제리살츠가 와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흡사 팬 싸인회에 나와있는 아이돌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매우 쾌활하고 사교적이었으며, 멀리 한국에서 온 낯선 나에게도 친절했다. 팬심에 요청한 셀피에도 기꺼이 자신이 직접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국에서도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아져 사랑을 받는 기획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영화 배우나 아이돌, 유명 유튜버처럼 팬덤을 몰고 다니지 않지만,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의 오프닝에 영화나 음반 제작 발표회처럼 셀럽들이 가득하다. 한국에서도 그 안에 슈퍼스타 기획자도 끼어있으면 참 좋겠다.
David Zwirner, 지금도 매력적인 외모의 독일 악센트의 영어를 쓰는 이 갤러리스트는 뉴욕 미술 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출처 : New York Times
이런 요건들이 다 갖춰져 있으니, 이제 아티스트만큼이나 사랑받는 기획자가 나와야 한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기획자에게는 대중을 빠지게 하는 매력, 평단과 미술판에서의 인정, 기성 세대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 자신의 색다른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갤러리 중에 하나인 데이비드 쯔워너는 독일 출신의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쯔워너가 만들었다. 아버지도 갤러리를 운영하였지만, 그것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던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드러머를 꿈꾸며 음악을 공부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독일로 돌아가 레코드사에 취직해 일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힘들 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미술로 돌아와 뉴욕으로 건너가 갤러리를 열었다. 뉴욕 미술계는 젊고 잘생긴 독일 악센트식 영어를 하는 그에게 주목했다. 부모로부터 이어진 미술사적 지식과 미술계 인맥, 매력적인 외모와 태도로 뉴욕 미술계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기존에 뉴욕 미술계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기획들을 열었다. 대표적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가 기획했던 자선경매에 150여개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참여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2011년 크리스티와 함께한 아이티를 위한 기금 마련 경매에서는 150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런 행보를 통해 그는 이미 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가고시안과도 밀리지 않고 경쟁하며 더욱 크게 성장하였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 2019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공모전 파라노이드 파크의 기획자로 처음 만났다. 서태지를 닮은 첫 인상에서 어렴풋이 차세대 문화대통령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처 : 프리즈 서울 윤율리가 뽑은 프리즈 서울 뷰잉룸
한국에도 이런 좋은 기획자들이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미술판에서야 이미 잘한다고 알려졌었고 프리즈 서울의 프로그램인 ‘프리즈 필름’을 기획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김성우 큐레이터, 추성아 큐레이터, 젊은 나이에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를 맡은 윤율리 큐레이터, 최근 창원조각비엔날레를 맡았던 시청각의 현시원 큐레이터도 그런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는 기획자들이다. 2세대 갤러리스트로 경력을 쌓으며, 최근 돋보이는 전시를 보이고 있는 갤러리조선의 여준수 부디렉터,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갤러리스트라는 유머러스한 별명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기존 미술판에 없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갤러리신라 서울의 이준엽 디렉터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기획자들이다. 키아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동현 팀장의 아트페어 ‘셀렉션 서울’도 비슷비슷해진 아트페어들과 차별화된 기획으로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 낼지도 지켜볼만하다.
민희진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3년전쯤 음반제작자로 활동하는 후배 입을 통해서 였다. 음반 시장에 일을 아주 잘하는 프로듀서가 있다고 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뉴진스의 데뷔로 대중들에게 뉴진스의 어머니로 알려졌고, 하이브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이슈가 되었다. 출처 : 한국경제 관련 기사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늘 기존 세력의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하이브로부터 민희진이 강하게 저항 받듯이, 미술판에도 기존 세력은 이런 기획자의 세대로 변화에 세게 저항한다. 위정자들은 그들이 쥔 권력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하물며 옛 임금들은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도 쉽사리 그 자리를 내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변화하는 시대라고 해도 움켜쥔 손을 열어줄 리 만무하다. 미술판에서도 여러 번 이런 저항에 발목이 묶인 기획자들의 뜻이 꺾인 안타까운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권력의 이양은 그리하여 이전 세대가 죽은 다음에야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두고 마냥 시간이 가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길 기다리기에는 젊은 기획자들의 능력이 아쉽다. 이런 강한 저항을 유연하게 극복하며, 구시대의 저항이 아닌 응원과 지지를 함께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획자들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시대유감
박준수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앨범자켓, 29년전 사전검열로 삭제되었던 가사 중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그런 세상을 꿈꾼다.
몇 해 전부터 나는 공공연히 사석에서 미술판에도 기획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중음악 시장이 조용필과 서태지 같은 슈퍼스타 아티스트로 대표되었던 시대에서 SM, YG, JYP, 하이브 같은 대형기획사의 시대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뉴진스의 어머니 민희진 프로듀서와 같은 기획자의 시대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보며, 한국 미술판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그리고 박서보, 이우환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시대를 지나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와 같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메이저 갤러리 시대가 왔고, 점차 기획자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기획자는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평론가, 컨텐츠 크리에이터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기획자의 시대에는 필요한 요건이 몇 가지 있다. 대중음악씬이 그랬던 것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많아져야 하고, 전문적으로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매니지먼트하는 기획사가 충분히 있어야 하고, 대중과 평단의 폭발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요건들이 한국 미술판에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 미술판에도 기획자들이 현대미술의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만큼 작가가 많아졌다. 작가는 늘 많았지만, 미술 시장과 평단, 컬렉터, 대중의 관심을 모두 받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국내에 그런 작가가 많지 않다보니 과거의 기획자들은 해외에서 작가를 끌어와야 했다. 소위 외국물 좀 먹어 본 유학파 기획자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와야 좋은 평가를 받는 전시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풀이 충분히 넓어졌다. 구슬이 서말이 되었으니 보배로 꿸 기획자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드래곤볼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그냥 별 그려진 구슬에 불과하다. 7개를 모아야 소원을 빌 수 있다. 옥석 같은 작가들은 손오공처럼 모으는 기획자들.
팬데믹 이후에 유례 없는 한국 미술 시장의 활황으로 우후죽순 갤러리가 늘어났다. 아트테크 열풍에 편승해 제대로 된 기획 없이 판매에만 열중하는 갤러리도 있고, 오래된 갤러리 중에도 더이상 기획전 없이 대관이나 상설전만 하는 갤러리도 있지만, 일단 많아지니 잘하는 갤러리도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이런 갤러리들은 작가의 유명세와 탄탄한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기획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넘나들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화상(畫商)에 그치지 않고 좋은 기획자가 되고 있다. 또한, 단순히 기획자에게 주례사와 같은 전시 서문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 기획자와 적극적으로 협업하여 좋은 전시를 만들어 내고있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의 동시 개최 전후로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아트바젤을 갔을 때만 해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내게 특별히 관심을 주는 갤러리는 없었다. 키아프를 소개하는게 아니라, 한국과 서울을 먼저 소개해야 할 판이었다. 팬데믹 이후 2022년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첫 동시 개최를 마치고 찾은 베니스와 베를린, 런던에서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있었다. 키아프를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먼저 물어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시작된 K-Movie와 BTS로 시작된 K-Pop 덕분에 이미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었는데, 프리즈 서울의 진출이 일어나자 미지에 가깝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K-Art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작가, 국제적인 갤러리와 더불어 좋은 기획자가 필요하다. 이 때 국제적인 감각과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많은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잘 알릴 수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다.
제리살츠를 만나 성덕이 된 필자, 한국의 잘하는 기획자들에게도 이 같은 팬덤이 생기길 바란다.
지난 해 뉴욕에서 머물고 있을 때 데이비드 코단스키의 전시 오프닝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오프닝에 평소 너무 좋아하는 예술평론가 제리살츠가 와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흡사 팬 싸인회에 나와있는 아이돌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매우 쾌활하고 사교적이었으며, 멀리 한국에서 온 낯선 나에게도 친절했다. 팬심에 요청한 셀피에도 기꺼이 자신이 직접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국에서도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아져 사랑을 받는 기획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영화 배우나 아이돌, 유명 유튜버처럼 팬덤을 몰고 다니지 않지만,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의 오프닝에 영화나 음반 제작 발표회처럼 셀럽들이 가득하다. 한국에서도 그 안에 슈퍼스타 기획자도 끼어있으면 참 좋겠다.
David Zwirner, 지금도 매력적인 외모의 독일 악센트의 영어를 쓰는 이 갤러리스트는 뉴욕 미술 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출처 : New York Times
이런 요건들이 다 갖춰져 있으니, 이제 아티스트만큼이나 사랑받는 기획자가 나와야 한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기획자에게는 대중을 빠지게 하는 매력, 평단과 미술판에서의 인정, 기성 세대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 자신의 색다른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갤러리 중에 하나인 데이비드 쯔워너는 독일 출신의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쯔워너가 만들었다. 아버지도 갤러리를 운영하였지만, 그것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던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드러머를 꿈꾸며 음악을 공부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독일로 돌아가 레코드사에 취직해 일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힘들 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미술로 돌아와 뉴욕으로 건너가 갤러리를 열었다. 뉴욕 미술계는 젊고 잘생긴 독일 악센트식 영어를 하는 그에게 주목했다. 부모로부터 이어진 미술사적 지식과 미술계 인맥, 매력적인 외모와 태도로 뉴욕 미술계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기존에 뉴욕 미술계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기획들을 열었다. 대표적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가 기획했던 자선경매에 150여개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참여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2011년 크리스티와 함께한 아이티를 위한 기금 마련 경매에서는 150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런 행보를 통해 그는 이미 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가고시안과도 밀리지 않고 경쟁하며 더욱 크게 성장하였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 2019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공모전 파라노이드 파크의 기획자로 처음 만났다. 서태지를 닮은 첫 인상에서 어렴풋이 차세대 문화대통령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처 : 프리즈 서울 윤율리가 뽑은 프리즈 서울 뷰잉룸
한국에도 이런 좋은 기획자들이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미술판에서야 이미 잘한다고 알려졌었고 프리즈 서울의 프로그램인 ‘프리즈 필름’을 기획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김성우 큐레이터, 추성아 큐레이터, 젊은 나이에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를 맡은 윤율리 큐레이터, 최근 창원조각비엔날레를 맡았던 시청각의 현시원 큐레이터도 그런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는 기획자들이다. 2세대 갤러리스트로 경력을 쌓으며, 최근 돋보이는 전시를 보이고 있는 갤러리조선의 여준수 부디렉터,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갤러리스트라는 유머러스한 별명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기존 미술판에 없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갤러리신라 서울의 이준엽 디렉터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기획자들이다. 키아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동현 팀장의 아트페어 ‘셀렉션 서울’도 비슷비슷해진 아트페어들과 차별화된 기획으로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 낼지도 지켜볼만하다.
민희진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3년전쯤 음반제작자로 활동하는 후배 입을 통해서 였다. 음반 시장에 일을 아주 잘하는 프로듀서가 있다고 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뉴진스의 데뷔로 대중들에게 뉴진스의 어머니로 알려졌고, 하이브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이슈가 되었다. 출처 : 한국경제 관련 기사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늘 기존 세력의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하이브로부터 민희진이 강하게 저항 받듯이, 미술판에도 기존 세력은 이런 기획자의 세대로 변화에 세게 저항한다. 위정자들은 그들이 쥔 권력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하물며 옛 임금들은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도 쉽사리 그 자리를 내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변화하는 시대라고 해도 움켜쥔 손을 열어줄 리 만무하다. 미술판에서도 여러 번 이런 저항에 발목이 묶인 기획자들의 뜻이 꺾인 안타까운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권력의 이양은 그리하여 이전 세대가 죽은 다음에야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를 두고 마냥 시간이 가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길 기다리기에는 젊은 기획자들의 능력이 아쉽다. 이런 강한 저항을 유연하게 극복하며, 구시대의 저항이 아닌 응원과 지지를 함께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획자들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2024.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4,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